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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9)- 방관자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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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9)- 방관자효과
  • 소설가 이호준
  • 승인 2012.01.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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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이호준]

1. 경찰관은 하소연을 듣는다.

경계하는 퀭한 눈빛, 추레한 옷차림, 등에 맨 살림가방, 느릿한 걸음걸이, 1....5..8...... 모여드는 노숙부랑인들이 공포영화 속 좀비[zombi]들 같다.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뛰어든 두 덩치들, 뒤꽁무니엔 위풍당당[威風堂堂]한 경찰관이다. 준의 불호령에 똥 빠지게 줄행랑을 치다 지구대로 뛰어갔던 것이다.
삼삼오오[三三五五] 가로수벤치에 앉자 시시덕거리며 구경하기 바쁜 사람들, 여행용가방을 끼고 있는 것이 부산역을 빠져나온 여행객들이다. 추레한 옷차림의 무리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낯익은 사내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아스팔트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사내를 향해 손가락질 동원한 육두문자(肉頭文字) 퍼붓기 바쁘다. 그리고 개량한복 앞섶을 풀어헤친 채 가로수벤치에 앉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내, 산발(散髮)한 긴 머리를 헤치며 이마를 훔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심을 조합[照合]해 볼만한 상황들이다.
그래서 무전기를 꺼내든 나이어린경찰관, 119구급대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두어 걸음 뒤처진 나이많은경찰관은 육중한 몸을 ‘휘적휘적’ 역전을 무대로 등을 부비며 사는 사람들과 눈인사 나누기 바쁘다.

“어! 동생들 왔나.”
심상찮은 인기척에 뒤돌아본 동근, 몇날며칠을 씻지 않아 검댕이가 들어붙은 얼굴에 멍들어 붓고 터진 입 꼬리를 올린 미소가 과장스럽다. 그러나 두 경찰관 중 어느 누구도 관심 없다. 오히려 뒤늦게 도착한 나이많은경찰관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육중한 몸을 굽혀 지훈의 뺨을 두드린다.
“어! 어제 그 친구 아냐. 이 사람 이거? 정신 차려보소.”
어느 누가 봐도 조심스런 배려가 묻어나는 행동, 동근은 무시당한 만큼이나 마음이 복잡하다. 두 사람이 좋은 관계가 아니길 바라면 한 걸음 물러서려는데, 나이많은경찰관이 꼼짝 말라는 듯 올려다보며 묻는다.
“성동근씨, 어떻게 된 겁니까?”
햇볕에 노출된 얼굴을 찡그리지만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직업적인 물음, 동근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털어 놓을 순 없는 일, 약지손가락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고개 짓으론 지훈을 가르치며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쏟아낸다.
“이~바라. 이바!”
멍들어 붓고 터진 상처에 검댕이가 들어붙은 얼굴을 가르치는 정지된 모습이 흐릿한 흑백사진 속 역사적인 인물 같다. 그러나 나이많은경찰관의 불편한 기색에 설명을 이어가던 동근이 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주길 바라는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을 끊는다.
“이틀 전 새벽 잠자다 이 자슥한테 처 맞아가 이래 됐다 아니가! 아까 와서도, 맞제?”
쪼그려 앉아 재밌어라 ‘생글생글’ 평소에는 꼬붕 노릇이나 하던 노숙부랑인이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갤 돌리는 시치미에 외면당한 눈을 부라리는 동근, 어쩔 수 없다는 듯 끊었던 말을 잇는다.
“자는 사람 깨벼 돈 뺏고, 지 애비 같은 사람에게 손찌검 허고, 대한민국이 법치국가 아니가! 근데 뭐~ 이렇노?”
나이많은경찰관에겐 기대했던 사건의 내용이 아니 개인의 하소연에 불과한 내용이다. 몸을 일으키며 목소리 톤을 높여 묻는다.
“아니 누구랑 싸우다 이래 됐냐고요?”
정확한 의도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동조자가 나서주길 바라는 동근의 볼멘 목소리에 지난밤 일들을 푸념처럼 늘어놓는다.
“내가 어째 아노?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 걸다, 저래 됐다 아니가.”
“그래예! 내 참! 이 친구 이거, 어제 저녁에 만취상태로 지구대와가. 주섰다면서 옆구리에 칼을 뽑더라고예.”
“진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동근의 반문에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 나이많은경찰관, 고개를 ‘흔들흔들’ 말을 잇는다.
“아! 말도 마이소. 근무태도가 어떠니저떠니하며 행패 부려대 쌓는데.”
“이 자슥 이거,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만.”
“그래가 어쩔 수없이 공무집행방해로 경찰서로 넘겼다 아니요. 근데 어떻게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참! 어이가 없네예.”

2. 사실은 믿어주는 자의 몫 일 뿐이다. 

사실을 설명하면서도 진 죄를 자백하는 냥 눈치를 살펴야했던 동근에게 경찰관의 푸념은 두 번 다시없는 기회다. 주위를 휘둘러보며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손가락질지휘에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야~ 이 어린놈한테 쳐 맞고 돈 뺏긴 사람, 일[이리]나와 봐라.”
20년 역전인생의 에피소드[episode]를 엿볼 수 있는 행동으로 모여 있는 추레한 차림의 사내들은 무슨 뜻인 줄 알겠다는 듯 ‘번들번들’ 눈빛주고 받기 바쁘다. 이들 대부분이 지훈 패거리들의 공갈, 협박, 폭력 등을 한번쯤은 경험했으며, 이틀 전 새벽엔 부산역에 나타나 잠자던 동근을 짓밟고, 돈이나 돈 될 만한 물건들을 강탈해 유유히 사라진 사실에 피해자요,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앵벌이나 장애인, 노숙자들은 신고나 증언을 하기엔 떳떳치 못한 종자들, 영악한 지훈은 그런 약점들을 십분 활용하여 범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증거나 증언을 확보 못한 경찰들은 언제나 뒷북치는 신세였고, 나이많은경찰관이 몸서리치는 푸념을 늘어놓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때 사이렌소리를 짧게 끊어 넘실대는 인파를 헤치며 도착한 119구급차, 서둘러 내린 구급대원이 경찰관들에게 준비된 인사를 하며 큰 대자로 널 부러져 있는 지훈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들고 온 구급상자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오픈하는데, 나이많은경찰관 또한 반기는 인사와 함께 취합한 정보를 늘어놓는다.
“고생 많으십니다.”
“아! 오셨는교. 지나가는 사람에게 맞았다는데예? 지희들도 아직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십더? 일단은 술이 많이 취한 것 같고예?....”
나이어린대원은 구급차에서 꺼낸 구급장비들을 나이많은구급대원이 이용하기 편한 곳에 놓기 위해 분주하고, 동근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한 노숙부랑인들의 요구는 점점 거세진다.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제각자의 지껄임 같지만, 필요하면 증인을 서고 진단서를 끊을 테니 지훈과 두 덩치들을 잡아가 달라는 것이다. 그 모습에 경찰관을 달고 나타나 기고만장[氣高萬丈]했던 두 덩치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눈 둘 마땅한 곳을 찾기 바쁘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하늘을 우러러 큰대자로 뻗어 있던 지훈, 두 팔을 교차시켜 아스팔트바닥을 내려치며 눈을 뜬다. 이에 놀란 나이많은구급대원이 동공[瞳孔]을 키운 엉덩방아를 찧는다.
“와 이리 시끄럽노?”
“와아~ 놀래라.”
머리 쪽에 쪼그려 앉아 지훈의 동공을 살피려다 놀란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환자가 더 흥분하기 전에 상태를 보다 더 면밀하게 파악해야하기 때문이다.
상식대로라면 폭력을 행사한 준은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연행되고, 폭행당한 지훈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어야했다. 그런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심판이란 합리주의[合理主義]에 나서는 사람은 없고, 사회구성원으로서 구경이란 합법적인 방관을 할 뿐이다. 그래서 지훈과 두 덩치들이 가해자[加害者]가 될 판인데, 증명이라도 하듯 노숙부랑인들이 설득력을 발휘하기위한 손짓발짓 섞은 맞장구질을 친다.
“보이소. 저 새끼! 지금까지 죽은 척, 쇼~ 했다니까.”
“그래! 그래! 쇼다. 쇼, 치료는 무슨 치료, 내 저 새끼한테 며칠 전 돈 빼깃고, 사람 때리는 것도 봤다. 잡아가소. 내 증인 할텐께네.”
“잡아가라. 잡아가,”
“내도 옷이랑, 신발 빼긴 적 있다. 잡아가라.”
“그래, 잡아가라. 잡아가,”
누워 맥없이 지켜봐야하는 지훈은 울컥함을 주체할 수 없다. 응급처지중인 구급대원의 손길을 차내며 팔 굽혀 상체를 비스듬하게 일으키는 악다구닐 친다.
“지금 뭐라카노? 다들 더위에 노망든기가?”
이에 구급대원이 반사적인 손길로 가슴을 눌러보지만, 막말을 내뱉는 대[對]거리에 어쩔 수 없다는 한숨을 내쉰다.
“진정하시고,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와? 알아서 뭐할라꼬? 엿이라도 바꿔 먹을끼가?”
“흐~ㅅ~음~”
그래도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다. 상의포켓에 의료용 플래시를 뽑아 양쪽 눈을 번갈라 살피는데, 나이어린구급대원이 맞은편에 무릎 구부려 앉는다. 이동용 침대며 응급처치기구들을 사용 적절한 위치에 꺼내놓았으니 이젠 응급처치를 돕고, 또다시 발생할 돌발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내 피해자요. 저기 저 머리 긴 행님한테 뒤지게 처 맞았단 말입니더.”
약지손가락으로 준을 지목한 지훈은 진작 깨어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일어나지 않았던 건 피해자가 될 타이밍[timing] 때문이었다. 그것은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던가, 경찰관의 동정을 받으며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구세주여야 할 경찰관은 생각 같지 않고, 119 또한 감감무소식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일어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뒤늦게나마 도착한 119구급대가 상황을 풀어나갈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마음 같지가 않게 꼬여간다. 이런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 노숙부랑인들은 말에 말을 더하는 비아냥거림으로 상황을 조작하고, 지훈과 두 덩치들은 서로를 애써 외면하는 자기 살길 찾기 바쁜 곁눈질이다.
“히~아야~! 이놈보소. 생사람 잡을라꼬 난리치는 것이 미친는갑다!”
“그러게 시비 걸다 처 맞는 거 말린 사람한테 와 지랄이고?”
“에이! 더럽은 자슥, 입만 벌리면 협박에,”
“맟다.”
“거짓말에, ”
“맟다.”
“차라리 지랄 옆차기를 해라.”
“맟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노니까네.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인기라.”
“맟다.”

나이많은경찰관에겐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어가는 골치 아픈 상황이다. 자칫 폭력사태라도 발생하게 되면 이 많은 사람들을 연행해야 하는데, 피서 철에 일요일아침, 지구대는 이미 잡다한 사고사건으로 포화상태다. 어떤 식으로든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내 놓아야하는 것이다. 그리기위해선 심증이 아닌 증거나 증인를 확보해야 하는 법, 엉거주춤 곁눈질하기 바쁜 두 덩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이에 두 덩치 중 사실을 밝힐 기회, 역전의 발판이라 판단한 덩치가 나서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노숙부랑인들이 침 튀기는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저기 저 머리긴 행님이.......”
“뭐꼬? 저 양반이 뭐가 어쨌다는 기가?”
“니그들 자해공갈단이가?”
“어린놈의 자슥들이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는가베?”
“참으소. 좀 더 지켜 보입시더.”
“그래! 일단 두고 봅시다.” 
손가락질하는 이, 눈을 부라리는 이, 어깨에 멘 가방을 풀어 던지며 한방 칠 듯 나서는 이, 앞을 가로막는 이, 뒤에서 잡는 이....추레하지만 거리를 주름잡는 억양과 몸짓들이 잔잔하다 몸부림치듯 몰아치는 성난 파도 같다.

3. 밝혀지는 진실

이젠 윗옷 딱 단추를 채우고, 산발(散髮)한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묶은 준, 고른 숨을 쉬며 땀을 닦기 위해 수건의 깨끗한 부분을 찾는 여유까지 부린다. 그래봐야 농도 차이 일뿐 더럽기는 마찬가지지만, 딱히 나설 일이 없어 불안, 초초했던 시간동안 맨토[Mentor]역할을 했던 수건이다. 나이어린경찰관이 그런 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반짝이더니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지훈을 가리키며 눈앞에 서있는 덩치에게 묻는다.
“대체 누가 이 사람을 폭행했다는 겁니까?”
사실을 밝혀보겠다고 한발 나섰다 말 한마디 못한 채 엉거주춤 서있던 덩치다. 준을 지목[指目]하며 할 말 많다는 듯 입을 여는데, 옆에 서있던 노숙부랑인이 갑작스런 발길질을 날린다.
“그러니까. 저 머리긴 행님이..............”
“씨 부리지 마라. 새꺄.”
펑퍼짐한 엉덩이를 향해 타원형 궤적을 그린 발길질로 잘못하다간 모든 게 탈로 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섞은 것이다. 나이많은경찰관이 당황한 목소릴 높이며 두 사람사이를 가로막아 선다.
“아! 참, 말로 하이소.”
나이어린경찰관 또한 발길질한 노숙부랑인과 덩치사이로 뛰어든다. 하지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파릇파릇한 경력을 말해주듯 어쩔 줄 모르는 굼뜬 행동이다.
그러나 뒤에서 눈치 살피기 바쁜 덩치에게도 옆에 서있던 노숙부랑인이 이를 악문 발길질을 날리는 것이 이미 점염된 상황이다.
“너도 죽어봐라. 새캬,”
배를 향해 거침없이 휘어들어가는 바나나킥, 당황한 얼굴을 구긴 덩치가 태권도하단 막기 흉낼 내며 뒷걸음질을 친다. 그런데 정체모를 충격, 뒤에 서있던 노숙부랑인이 뒷걸음질로 다가오는 덩치 등을 향해 쭉 뻗은 주먹을 꽂은 것이다. 등을 가격당한덩치가 단발의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친 만큼 앞으로 튀어나간다.
“이 짜슥이! 피해,”
“욱크~”

공권력이 깡그리 무시당하는 사태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경찰관들은 답답하다. 그렇다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과 가까이 있는 문제부터 해결해야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 나이많은경찰관이 폭행에 관련된 3명중 제일 가까이 서있는 노숙부랑인을 밀친다.
“말로 하라니깐예.” 
뒤에 서있던 덩치의 배를 걷어찼던 노숙부랑인으로, 가까이 있는 관련자부터 처리하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볼멘 목소리를 뱉으며 밀려나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그래서 나이많은경찰관이 본보기로 삼을 양 주의를 휘둘러보며 서슬 퍼런 공권력을 공지[公知]한다.
“이 자슥들 말로해선 안된다아니오.”
“어쨌든 이젠 그만 하이소. 누구든 한번만 더 그라믄 체포 할 낍니다.”
이에 인파 속으로 파고드는 노숙부랑인, 뒷걸음질로 다가온 덩치의 등을 후려쳤던 행위가 폭행범의 최우선조건임을 알기에 일단 피하고 보잔 것이다.

지훈은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나마 상체를 비스듬히 일으킨 채 응급처지를 받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 볼멘 목소리를 점진적으로 증폭시키는 악다구니를 친다.
“바라, 바라, 뭐 하노? 죄 없는 아덜 폭행당하는데, 눈이 포경이가?”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불가항력[不可抗力]의 흥분을 떨쳐내기 위한 히스테리[Hysterie]로 두 덩치들 또한 상상을 못했던 상황이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시 줄행랑이라도 치고 싶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썩은 옥수숫대라면 모를까 불가능한 일, 두 경찰관들을 향해 두려움과 야속함이 섞인 곁눈질을 힐끗거릴 뿐이다.
그런데 2~3겹의 구경하는 인파들을 헤치며 조심조심 나서는 사내, 이유야 어떻든 벌어진 판에 힘을 보태려는 진봉이다. 그래야 앞으로 벌어지는 술자리마다 한자리 차고앉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왜곡과 외면 속에서 죽지못해 살아온 세월, 주장했던 사실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등을 강타당한 두려움에 ‘힐끗힐끗’ 눈치 살피기 바쁜 덩치 등 뒤로 접근한 진봉, 눈앞의 수박만한 뒤통수를 향해 “빡~” 권투선수의 훅처럼 손바닥을 휘두르더니 뒤도 안돌아보는 줄행랑을 친다. 잡목을 밀어붙이는 코뿔소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완벽한 준비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로틀 담의 꼽추’콰지모도처럼 한쪽 눈을 찡그리며 두 팔로 강타당한 뒤통수를 감싸 안은 덩치, 나이어린경찰관이 도주하는 폭행 범을 잡기 위한 빠르고 의욕적인 걸음을 뛴다.
“아흐~! 지..희는 못 봤심더.”
“좀, 비켜....”
그런데 도주하는 폭행 범을 위해선 성경책 속 기적처럼 갈라졌던 노숙부랑인들이 햇빛을 차단하는 커튼처럼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그런 일사불란[一絲不亂]함에 지훈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악다구니를 치고, 나이어린경찰관은 아쉬움과 야속함이 섞인 눈빛을 휘두른다.
“그거 하나 못 잡고 뭐하노? 죄 없는 아덜만 때려잡을 기가?”
“..........................”
추잡하고 가소롭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합의와 단합은 그만큼 더 절실하고, 끈질긴 것이다.

4. 씨 부리지 마라.

“경찰 아제요. 지는 피해잡니다.”
갈수록 범법자가 되어가는 상황이 억울하다는 지훈의 쉰 목소리, 발굽 진으로 대형을 유지하며 콩이야 팥이야 흥겨운 노숙부랑인들의 빈정거림이 주파수[周波數]가 맞지 않는 스테레오라디오 같다.
“뭐 잘 했다고 큰 소리 치싼노. 고마 입 꽉 다물라.”
“그래! 씨 부리지 마라. 니 언젠가 이래 될 줄 알았다.”
"긴 말 필요 없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인 기라."
“터진 입이라고 나불거리는 거 보니까네. 아직 혼이 덜 났는갑다.”

그렇게 서로에 주장들이 엇갈리는 환경 속에서도 초지일관[初志一貫] 임무를 수행하던 나이많은구급대원, 목에 두른 청진기는 구급상자에, 휴대용플래시는 재킷윗주머니에 ‘주섬주섬’ 챙기더니 일회용비닐장갑을 벗은 손등으로 이마에 땀을 훔치며 일어난다.
“후~! 아침부터 와 이리 덮노?”
두 경찰관은 여전히 흥분한 노숙부랑인들을 경계, 제지, 진정시키기 바쁘다. 땀에 젖은 등이 화학반응으로 표시한곳을 드러내는 보물지도로 보일 정도다. 그래도 상황확인을 위해 뒤돌아보는 나이많은경찰관, 서있는 나이많은구급대원을 보자 잘 됐다는 듯 묻는다.
“환잔 어떻습니까?”
“타박상과 술 취한 것 빼고는 아무 이상 없는 것 같심더.”
“그래예!”
일회용비닐장갑을 돌돌 말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다가가 설명한 응급대원의 처지결과에 푸념 같은 대답을 한 나이많은경찰관, 머릿속 계산이 복잡해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 대화를 엿들은 명우가 경찰관의 복잡한 계산에 마침표를 찍는 목소리를 높이자 지훈이 비스듬히 일으켰던 몸을 최면에라도 걸린 듯 무너뜨리며 아스팔트바닥에 누워버린다.
“보소. 우리말이 맞다아니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 걸다 처 맞고, 넘어졌다니까.”
“우와~ 뭔 말이고, 법대로 해라. 법대로!”
그런 지훈을 지켜봐야하는 나이많은경찰관은 난감하다. 막무가내는 지훈과 기세등등[氣勢騰騰]한 노숙부랑인들, 그리고 나서지 않는 구경꾼들, 이런 식이면 안 봐도 빤한 사건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 나, 김지훈씨 일어나 보소.”

5. 현실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젠 다 됐다! 니는 가만있어라.”
그동안 교묘한 선동으로 상황을 편집 재단하기 바빴던 동근, 아침을 밝히는 태양의 후광을 받은 모습이 장대하다. 올려다본 준이 조심스런 고개 짓으로 입을 연다.
“형, 저 짭새들 알죠?”
동문서답[東問西答]하는 고개 짓에 동근이 경찰관을 쳐다본다.
“응! 와?”
“그럼. 짭새랑, 119 보내버려요.”
“와?”
“저 자식 이대로 보내면 복수다 뭐다, 식구들 또 괴롭힐 거 아닙니까! 이례된 거 단디하입시더.”
“알겠다!”
혹여 남이 들을까, 소리죽인 준의 어설픈 사투리흉내에 의지를 다진 동근이 ‘휘적휘적’ 나이많은구급요원을 끼고 있는 나이많은경찰관에게 다가간다.
“술이 취해 저러는데 우찌해야 되겠노? 니들이 실고 갈 순 없을끼고? 누가 연락 했는지 몰라도? 거참! 우리가 챙길 테니까네. 고마 가 일봐라.”

나이많은경찰관은 큰 선심이라도 쓰듯 천연덕스런 너스레를 늘어놓는 동근을 멍하니 쳐다 볼 뿐이다. 의외의 제의, 더군다나 동근이 한 제의는 액면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를 눈치라도 챘는지 손사래를 치는 동근의 호언장담[豪言壯談]에 나이먹은구급대원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듯 나선다. 때마침 나이어린구급대원도 접고 챙기던 장비들을 구급차 안으로 다 집어넣었다.
“에이! 걱정하지 마라. 잘 타일러 보낼끼다. 와! 내를 못 믿겠나?”
“저희는 이만 가봐야겠십더. 술 먹은 것은 좀 있으면 깰 거고, 무릎이나 팔에 타박상은 며칠 지나면 괜찮을 깁니다.”
그런데 동근이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미소를 던지며 중얼중얼, 휘적휘적, 노숙부랑인들 틈으로 합류해버린다.
“내를 못 믿겠단 말이제? 그럼 뭐! 할 수 없다. 우리 짜바리 아제들 법대로 해야제!”
추레하지만 기세등등한 얼굴들, 볼일 다 봤다며 철수하려는 119, 난감해하는 경찰관들, 굳지 나서지 않아도 뜻대로 될 것 같은 것이다.

조용한 진실보다는 시끄러운 사실에 귀 기울이고, 공명정대[公明正大]란 고민 속에서 힘의 논리에 충실해야하며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방관과 방임으로 합리화하는 현실, 그리고 체계유지를 위하여 그 관행적 합리주의[合理主義]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쇠뇌 시키는 앞뒤가 다른 이율배반적인제도, 피해자로서 권리까지 박탈당해버린 지훈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 있다면 원망과 애원뿐, 그러나 이런 꼴로 누워있기엔 참! 맑고 푸른 아침하늘이다. 119구급대원들을 향해할 수 있을 만큼 목소리를 꾸며본다.
“내는 안 데려갈 낍니까?”
하지만 이젠 119구급대 업무완 관련 없는 술주정일 뿐이다. 삐쩍 말라 신경질적인데다 인정머리라곤 쥐뿔도 없어 보이는 나이어린구급대원이 경찰관과 인사를 나누더니 구급차를 타기위해 지훈의 머리 위를 지나간다.
“고생하십시오.”
“고생했심니더.”

맥없이 지켜봐야하는 지훈은 ‘뒤죽박죽’ 혼란스럽다. 그럴수록 명료해지는 것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인사를 마치고 뒤이어 지나가려는 나이많은구급대원, 이마저도 놓친다면 희망이고, 뭐고 끝이다. 팔을 휘둘러 다홍색바지 단을 붙잡는다.
“내 좀 데려가주소.”
지훈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구급대원이 내려다보며 볼멘 목소리를 높인다.
“뭐. 뭔교?”
“내 좀 데려가 주소.”
“바빠죽겠는데, 좀 노소.”
“내 좀 데려가 주소.”
“아니 119가 무슨 자가용 줄 압니까?”
“..............................”
나이어린 구급대원이 버릇처럼 힐끗거린 차문 백미러[back mirror]를 통해 확인한 상황이다. 구급차에 올라타려다 말고 뒤돌아 머뭇거리더니 서둘러 올라탄다. 이미 정리된 상황에 일손 부족한 여름피서 철 일요일아침, 상황보고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훈은 이것 이상 답이 없는 듯 바지 단을 붙잡고 늘어지더니 나이많은구급대원의 짜증 섞은 목소리에 바지 단을 붙잡고 있던 손에 손을 더해 발목을 격하게 감싸 안는다.
“술 취한 것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진다잖아요. 아~! 좀 노소.”
“그러니까! 내 좀 데려가 주소.”
“어~~어~”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흔들’ 두 팔을 풍차처럼 붕붕....위태로운 중심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을 쓰는 나이많은구급대원이다.

무전보고를 하면서도 ‘힐끗힐끗’ 백미러를 통해 살피던 차 밖 상황에 나이어린구급대원이 서둘러 보고를 마치며 운전석 문을 연다.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위험스럽게 돌변하는 걸 종종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겨우 중심을 잡은 나이많은구급대원의 애원 반 주장 반을 섞은 목소리에 발끈한 지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이많은구급대원을 밀치며 구급차를 향한 성난 돌진이다.
“아! 참, 바지 찢어집니다. 놓고 얘기 하이소. 그건 저기 경찰관에게 얘기해야 되지 안켔는교?”
“그게 뭔 말이고? 비키라. 내도 세금 내는 국민이다.”

적중한 예감에 쓴 웃음을 지으며 구급차에서 내린 나이어린 구급대원, 돌진해오는 지훈을 저지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게 두 사람이 뒤엉키려는 순간 육중한 몸으로 가로막는 나이먹은경찰관이다. 지훈과 모래판의 스모선수처럼 몸을 비벼대는 것이 필사적으로 찔려대는 창과 운명처럼 막아야하는 방패 같다.
“뭐꼬?”
“자꾸 이럴랑교?”
“비키라. 비키,”
“아주 멀쩡하네예.”
"김갱장님 좀 비켜주소. 내 병원에 좀 가야 겠심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서둘러 구급차에 올라 탄 119응급대원들, 사이렌을 짧게 끊어 두 번 울린다. 지훈을 약 올리는 것 같지만, 볼일은 다 봤고 갈 길을 가야겠으니 좀 비켜달라는 것이다.
서서히 움직이는 구급차, 당황한 지훈이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악다구니를 친다.
"환자 버리고 가는 게 119가, 대한민국은 네 한테 받아간 세금 돌리도.”
이유야 어째든 진실도 설득력 없는 현실에서는 공허한 외침일 뿐, 119구급차에게 길을 터주는 구경꾼들이 인지하면 열리는 자동문처럼 자연스럽다.

6. 계급은 사람을 초라하게 한다.

지훈에게 구급차는 부산역을 벗어날 수 있는 절대적 믿음이었다.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 처한다 해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것, 팔, 다리가 부러지던가 머리라도 깨졌으면 하는 심정으로 아스팔트바닥에 몸을 던져버린다.
"내는 모른다. 법대로 해라. 법대로~"
나이많은경찰관은 답답하다. 119구급대는 술 취한 상태란 진단과 함께 내 빼버렸고 증인, 증언 하겠다나서는 사람 한사람 없이 서로 피해자라 우기는 상황에 전부연행하려해도 지구대는 이른 새벽부터 술 취한 사람들, 물건분실한 사람들 등의 잡다한 사건사고로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휘둘러본 시야[視野]를 채우는 나이어린경찰관, 기세등등한 노숙부랑인들과 아스팔트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지훈 사이에 서서 파릇한 경험으로나마 허튼 접근을 경계하고 있다.
“유 순경.”
돌아보는 나이어린경찰관, 그러나 오리무중인 상황을 해결하기엔 두 경찰관의 계급을 합친다 해도 볼품없고 초라할 뿐이다. 김 경장이 자신의 행동을 책망하듯 손사래를 친다.
“예. 김 경장님.”
“아니! 아니다. 됐다.”
그렇다고 마냥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때마침 눈앞을 왔다 갔다, 서성이는 성동근, 노숙인들 싸움이야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형, 동생하며 유야무야[有耶無耶]될 것은 안 봐도 빤한 사실, 여름피서 철에 일요일아침 지구대는 한정된 인원으로 엄청난 업무를 소화해내야 된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인 성동근을 통하는 것이 최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동근씨.”
“와?” 
“조용히 타일러 보내소.”
“내 언제 거짓말 하는 것 봤나. 걱정하지마라!”
동근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김경장은 지훈 옆에 무릎 구부려 앉기 바쁘다.
“김지훈씨, 서로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이참에 풀건 풀어버리소.”
“풀게 뭐 있는교? 법대로 해주이소.”
“띠리띠리딕,” 
마치 지훈의 불퉁한 목소리를 비웃듯 울어대는 무전기, 유순경이 허리춤에 무전기를 뽑아들고 엄호 섞인 대화를 나누더니 김경장을 채근[採根]하자 내용을 알겠다는 듯 육중한 몸을 일으키는 김 경장, 동근을 쳐다보며 다짐을 받는다.
“김 경장님. 지구대로 가 봐야겠는데요.”
“잘 타일러 보네는 깁니다.”
“알았다마. 걱정하지마라.”
그러나 여전히 동근의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뒤돌아서기 바쁜 두 경찰관들, 아스팔트바닥에 누워 지켜봐야하는 지훈은 당황스럽다. 경찰관들 뒤통수에 대고 얼굴을 붉히며 금방이라도 숨통이 끊어질듯 쇳소리 섞은 악다구닐 쏟아낸다.
“풀긴 뭐, 풀끼 있소. 내 여기다 놓고 가지마소.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공범이란 말이요.”

하지만 이미 지구대를 목적지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유 순경을 앞세운 김 경장, 벤치에 앉아있는 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끄덕’ 볼 살을 실룩인 미소가 의미심장하다. 이에 고개를 까닥거린 준의 인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무언의 합의인양 땀에 젓은 등 뒤로 손을 흔들며 몇 걸음 걸어가던 김 경장이 뭔가를 잊어버린 듯 뒤돌아선다.
“성동근씨. 알았죠!”
앞서 얻은 다짐이 못 미더웠던 것이다. 그런 김 경장과 눈이 마주친 동근이 ‘휘적휘적’ 배웅하던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뭐라 답하기 전에 뒤돌아서 버린 김 경장 뒤통수에 대고 목청을 돋워본다.
“하이고! 마~ 걱정도 팔자다.”
“믿고 갑니다.”
“그~래~ 걱정 붙들어 매고 민중에 지팡이노릇이나 잘 하시게.”
 

<계속>

소설가 이호준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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