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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4)
3인방의 두목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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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4)
3인방의 두목 등극
  • 이호준
  • 승인 2011.08.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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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1. 두목등극의 여파

지훈은 그렇게 3인방의 두목으로 등극을 했다. 그것은 서면롯데백화점과 공판장을 거점으로 노숙을 하는 부랑인들과 앵벌이들이 떠받들어 모셔야 할 두목이 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축하나 복종의 예를 표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고, 심드렁한 침묵 속에 흩어져버린 것이 전부였다. 더욱이 생각보단 쉽게 무릎 꿇은 동만과 호삼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를 일, 지훈이 진정한 유아독존[唯我獨尊]으로 군림하기위해선 특별한 본보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늘을 마다하고 도망친 앵벌이들을 잡아 족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곤란한 일을 처리 할 때 부리던 두 명의 덩치들을 불러드렸다. 먹을 것, 입을 것만으로도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들, 도망친 앵벌이들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지하철만 타도 벌이하기 바쁜 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고, 잡아 눈만 부라려도 술술 불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불 것이기 때문이다.

지훈과 두 덩치들은 그렇게 찾아낸 족족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에 협박과 갈취를 일삼더니 급기[及其]야는 부산역에 까지 쳐 들어갔다. 그리고 박스한 장을 의지해 지친 몸을 쉬는 노숙부랑인들을 깨워 돈이나 물건들을 빼앗고, 반항하는 이들을 밟고, 차는 그야말로 무법천지[無法天地]를 만들어버렸다.

이런 호랑말코 같은 지훈도 1년 전, 준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었는데, 명우는 그 모든 상황을 구경꾼으로 목격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 고자질 아니 고자질을 하는 것이다.
소파 뒤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며 “음음~~~음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가수 강애리자의 ‘분홍립스틱’, 1988년 서울올림픽열기가 한참 뜨거웠던 당시 선남선녀들의 가슴을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였던 노래다.

준은 그런 명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일어나 선반 위 약상자를 건넨다.
“풋훗, 새끼. 자!”
“와~ 우습나.”
“그 얼굴을 해가지고 노래가 나 오냐?”

뒤돌아 약상자를 건네받은 명우의 말이 30%만 사실이라 해도 ‘실직노숙인협동조합’ 위원장인 준이 나서야 될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훈을 찾아가 감 놔라, 대추 놔라할 수는 없다.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칼이나 병 같은 흉기를 들거나 떼거리로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준에겐 뭔가 확실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별 뾰족한 수는 떠오르질 않고, 만지작거리는 음료수 캔을 통해 채 식지 않은 냉장고의 기운이 느껴질 뿐이다.

“명우야. 지훈이 보면 상대하지 말고 연락해라.”
거침없이 내뱉는 것 같지만 고민한 흔적이 역역한 준의 목소리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붓고 터진 얼굴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명우에겐 간절히 원했던 답. 남은 꿍꿍이속을 마저 털어버리려는 듯 너스레를 ‘주저리주저리’ 머리끝을 걷어 올리는 멋을 부리며 뒤돌아본다.
“내가 바보가, 그 자슥을 상대하게, 내, 아~무리 생각해 바도 그 자슥, 제대로 상대 할 사람은 쭌이 니 밖에 없는기라. 어떻노?”
“이제 좀 사람 같네. 좀 씻고 다녀라.”
“그자! 옛날엔 끝내 줬는데.”
대화중에도 뒤를 ‘힐끔힐끔’ 거울 속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명우, 멈췄던 콧노래를 ‘흥얼흥얼’ 밖으로 나가 답례라도 하듯 사무실과 주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와 주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음음~~음~”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띠~이, 띠~이.......”
“아~! 냄새 좋다.”
명우는 세탁기를 통한 개과천선(改過遷善)으로 제 색깔을 찾은 옷가지들을 입 벌린 검은 비닐봉투에 구겨 담는다.
“왜? 그냥가게!”
“이 여름 땡볕에 몇 번 털면 된다 아니가.”

걸을 때마다 ‘부스럭부스럭’ ‘흔들흔들’ 그네를 타는 빵빵한 검은색비닐봉투, 정문을 나서는 명우의 뒤꽁무니를 쫓던 준이 지레짐작한 훈계를 한다.
“술 좀 작작 마시고 다녀.”
‘휘적휘적’ 부산역을 향해 걷던 명우가 처진 등 뒤로 손을 흔든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운명이라는 듯, 미안하다는 듯.......

현실의 차이를 꼬집어 내고 싶어도 별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뒷모습이다. 하지만 자본우선주의와 종교패권주의에 길들여진 현실에선 그저 같아 보이는 것일 뿐, 섞이고 싶어도 섞일 수 없고, 죽어서도 같을 수 없는 절대적 괴리[乖離]가 존재하는 것이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멀어지는 만큼..................

2. 1년 전 굴욕

지훈은 이런저런 행정처분으로 쌓인 과태료 150만원 때문에 한 달 조금 넘는 구치소생활을 했다. 면회한번 안온 식구들에 대한 야속함도 잠시 이제 끝났다는 낯익은 후련함에 부산역지하철계단을 두 계단씩 뛰어 오르는데, 시끄럽다.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에 나라로 갑시다.”

180Cm정도 키에 뒤로 묶은 허리까지 내려온 생머리, 갈색뿔테안경, 파란벙거지를 쓴 사내다. 앞에는 모금함을 뒤엔 ‘불우이웃돕기모금공연’이란 글귀가 선명한 현수막을 분수대 철제난간에 묶어 세워놓고, 시원하게 물을 뿜어대는 역광장분수대를 배경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다.
“짜슥! 돼지 멱을 따라.”

누군가에겐 문화라는 고전적 가치가 누군가에겐 술이나 담배 값 정도 우려낼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도 있는 법, 지훈은 의미심장한미소가 쑥스러운 듯 코를 비비며 발길을 돌린다. 택시 승강장 쪽 풍성함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그늘아래다. 부산역식구 중에서도 제법 잔뼈가 굶은 치들의 아지트[agitpunkt]로, 대낮인데도 벌써부터 박스를 깔고 둘러앉아 벌린 술판이 왁자지껄 요란하다. 그런데 걸어오는 한 사내를 향해 의심스런 눈을 모으는 사내들, ‘성큼성큼’ 가까워질수록 확인되는 모습에 사내들이 바쁘게 일어나 부르고 악수를 나누며 자릴 권하는 인사를 한다. 묵묵히 앉자 술잔 채우기 바쁜 노인을 뺀 4명이다.

“저 자슥, 지훈이 아니가?”
“그래 맟다. 지훈아!”
“행님들 잘 계셨는교?”

“언제 나왔노? 고생 많이 했제?”
“고생은 무슨.........”
“일리와 앉아라.”
“지금 나오는 길이가? 면회한번 못가가 미안하다. 자! 한잔 받아라.”
경제, 사회, 정치적인 괴리현상에 해고, 가정파탄,...사업실패, 카드빚, 등의 사연들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 돈, 명예,...... 학력, 종교가 아닌 빈곤, 죽음,...... 좌절, 절망의 소통이다.

언제나 그랬듯 할 일없어 이유 없는 버릇처럼 시작했던 술자리가 지훈의 출감환영파티가 되어 왁자지껄,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훈이 갑자기 일자 눈을 희 번득 휘두르며 대들듯 묻는다. 변변치 않는 안주에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킨 때문인데, 둘러앉은 모두가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 다퉈 말려본다. 처음부터 본체만체 술잔 기울이기 바빴던 노인만이 여전 할 뿐이다.
“행님들,”
“와?”
“지기, 지기 뭡니꺼?”
“와?”
“저! 머리 긴 안경잽이 기생 오래비 같은 자슥, 지가 뭔데? 시끄럽구로, 부산역에서 노래질 입니꺼? 행님들이 하라 했는교?”
“김지훈이 니 벌써 취했나?”
“행님도 참! 지가 취해보입니꺼?”
“근데 와 그라노? 좋타 아이가. 심심치도 않고.”
“좋긴 뭐가 좋은교? 와이로 받아 먹었는가베?”
“니, 나오자마자, 와 이라노?”
“그만하고 자! 자! 자! 술이나 한잔 받으라.”
“잠깐만 기다리 보소. 내 손보고 볼 테니까네.”

술잔을 외면한 채 일어난 지훈이 노래 중인 준을 향해 취한 몸을 ‘비틀비틀’ 걸어간다. 자신이 없는 사이 생긴 변화도 못 마땅한데,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 더욱더 부아가 치민 것이다.
“바라. 바라. 시끄럽다. 시끄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
못들은 척 노래를 열창하는 사내, 가수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다. 지훈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기 가득한 팔을 휘젓는다.

“이 개돼지 같은 자슥이 씨~ ”
“우카캉캉~” 악보와 분리되어 요란하게 나동그라진 스탠드, 마이크스탠드 앞에서 두 사람을 가로막고 서있던 검은색 악보스탠드다. 그 우악스러움에 노래를 멈춘 사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본다. 긴 머리를 배경삼은 갈색뿔테안경 넘어 흥분과 멸시 가득한 눈빛, 지훈의 생각과는 영 딴판이다. 그렇다고 시작한 시비를 되돌릴 순 없는 노릇, 술 취해 풀린 눈을 치켜뜨며 불퉁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눈에다 그래 힘 주믄, 레이저 광선 나오는가베?”

감은 듯 뜬 듯 종잡을 수 없는 일자 눈을 희 번득 치켜뜨며 노려보는 사내, 검게 그을린 피부와 175Cm 키에 비해 짧아 보이는 팔과 스포츠머리, 주저앉은 주먹코,......우악스럽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볼 때마다 요구하는 뭔가를 들어줘야하기 때문이다. 준이 메고 있던 기타를 분수대 안쪽으로 벗어던지며 지훈의 멱살을 움켜잡는다.
“이 새끼가 미쳤나? 술 처먹을 라면 곱게 처먹어 새꺄.”
벗어던진 기타야 분수대난간 넘어 풍성하게 조성된 관목[灌木] 숲의 쿠션역할을 믿어보는 것이고, 일단은 기세등등한 상대방의 기를 꺾고 보자는 맞대응이다.

“뭐! 이른게 다 있노? 나(놔)라. 이거 안 놓나. 니....”
“싫다면 어떻할네? 새꺄.”
지훈은 자신의 멱살을 움켜잡은 상대방의 악력[握力]도 악력이지만 일단 당황스럽다. 그래도 김지훈하면 부산역근방에서는 먹어주는 이름, 대충 이정도면 힘 좀 쓴다는 몇몇을 뺀 나머진 제 몸 추스르기 바빴었다. 그런데 계집처럼 긴 머리에 하얀 얼굴의 사내가 할 테면 해보자는 식이다.
단단히 움켜잡힌 멱살을 통해 조여 오는 숨통에 힘의 균형이 옮겨질 때마다 흔들리는 상체, 지훈이 무게중심을 앞으로 이동시키며 신체조건보다 덜 발달된 팔을 내민다.

“니~ 김지훈이라고 안 들어 봤나.”
급한 대로 준의멱살을 잡아 호각세[互角勢]를 유지하려는 것인데, 준이 기다렸다는 듯 멱살을 당기는 동시에 오른발을 뒤로 빼며 상체를 왼쪽으로 틀어 숙인다. 그래서 업히지 않으려고 억지를 쓰다 등에 매달린 꼴이 된 지훈, 뭔가 잘못대도 크게 잘못 됐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 풍경들이 180도 세차게 회전하더니 숨쉬기 불편한 통증이 온몸을 괴롭힌다.

“아~하~! 쪽 팔리구로, 니 자슥~”
준의 어정쩡한 업어치기에 회전하는 풍경들과 함께 나가떨어진 지훈, 충격완화요법인양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난다. 그러나 맨손으로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 출감파티로 흥청거렸던 술자리를 향해 뛴다.
“비키라. 비키, 내 저 새끼, 죽여 벌끼다.”
어깨를 내둘 거린 우악스러움, 둘러앉은 노숙부랑인들의 움직이는 엉덩이가 바쁘다. 덕분에 계획보다 더 수월케 골라잡은 병, 아직 소주가 반이나 남아 있는 소주병이다. 지훈은 이제 가감(加減)없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 시작으로 소주병을 휘두르며 준을 향해 코뿔소처럼 돌격해야하는데, 어떠한 싸움이든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지 못하더라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훈이 결의에 찬 일자 눈을 부라리며 돌아선다. 그런데 관할지구대경찰관들, 부산역노숙부랑인들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우호적인 박 경장과 김 순경이다. 박 경장이 친근한 얼굴을 가장하며 지훈을 향해 한 발 내딛는다.

“그 병 가지고 뭐 할라 그러는교?”
“니희들은 뭐꼬?”
“김지훈씨. 그만하고 그 병 이리주소.”
“내 말리지 마라. 저 머리 긴 놈, 화~ㄱ, 죽어벌끼다.”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라는교? 못 본 걸로 할 테니까네 그 병 이리주소.”
“비키라, 내 저 머리 긴 새끼한테, 맞았다 아니가. 내 쳐 맞을 땐 뭐하고 있다. 이제 와 지랄이고?”
지훈은 만류하는 박경장의 눈높이에 맞춰 소주병을 휘두르며 준을 향해 한발 두발....걸음을 내딛는다. 박 경장은 김 순경과 함께 지훈이 내딛은 간격 맞춘 뒷걸음질을 치며 타이르듯 공무를 집행한다.
“자꾸 이라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채포합니데이.”
“그~래! 법 좋타(좋다). 내 저 쌔끼한테 맞았으니까. 법대로 해 바라.”
비아냥대는 지훈이다. 하지만 두 경찰관들 또한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상황을 헤쳐 나온 터다. 박 경장이 뒷걸음질을 멈춘다. 그러자 김 순경 또한 구경꾼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준을 지킬 마지노선[Maginot Line]인 양 버티고 선다.
“김지훈씨, 진짜 이럴랑교?”
“왜 쳐 맞은 내한테만 이라는데?”
“그러니까. 병 노으소.”
“하~아, 참! 박갱장님이나 좀 놓으소.”
지훈과 박 경장의 잡고, 고함치고, 뿌리치고, 밀고, 당기는 진전 없는 활극(活劇)이다. 이에 뒤에 서있던 김 순경이 단호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나선다.
“아~~ 좀 그만 좀 하소. 자꾸 이러면 진짜 체포합니다.”
활극을 펼쳤던 두 사람이 주춤대는 짧은 순간을 포착한 것인데, 아스팔트바닥을 차며 나서는 동작이 과장스럽지만 시위진압의 위용(威容)이 엿보인다. 때마침 어깨 위에 은빛잎사귀까지 햇볕에 ‘번들번들’ 세를 더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역한 지훈이 활극을 펼쳤던 몸을 뒤로 기우뚱, 푸념 섞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와? 내한테만 이라는데?”

이때가 기회다 싶은 박 경장, 타이르듯 누그러트린 목소리로 손을 내민다.
“그러니까네. 그 병 이리주고 야기하소. 우리가 처리할 테니께네.”
“.......................”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경찰관들의 업무분담이다. 할 말을 잃은 지훈이 못이기는 척 소주병을 내밀자 박 경장이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를 뽐낸다.
“자! 이제 천천히 알아듣게 말해보소?”
나이는 못 속인단 말처럼 쩔쩔맸던 모습은 온데간대 없고, 당당하게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훈은 부담스럽다. 뭐 하나 잘 했다 큰소리 칠 것 없는 쌍방폭행, 이 상태대로라면 징역살고 나온 지 하루도 안 돼 경찰서로 끌려 가야하기 때문이다. 준을 향해 손가락질 동원한 악다구니를 치며 ‘휘적휘적’ 자신의 출감파티로 흥청거렸던 술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니, 머리 긴 놈, 언젠가 니는 내손에 죽는기라. 알았나.”
둘러앉은 치들 틈바구닐 비집고 들어가 앉더니 어느 누구 허락하지 않은 술잔을 들이키며 헛기침 섞인 헐떡거림을 삭혀본다.

그런 지훈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던 박 경장은 안심이란 듯 뒷짐을 지며 옆에 서있는 준에게 걱정 섞인 권유를 한다.
“어디 다친 덴 없는교? 오늘은 좀 그러니까! 정리하고 내일 하이소.”
그러나 준이 고마움 물씬한 사과(謝過)로 입을 때자 난데없는 인사를 던지며 뒤꽁무니에 김 순경을 달고 황급히 자리를 뜬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는데? 참.......”
“그럼 고생하이소. 김 순경아! 가자.”
언제나 그렇듯 삶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업무 때문이다. 그리고 더 있다간 준의 하소연을 마냥 들어줘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훈은 어느 누구 허락한적 없는 술잔을 들이키고도 둘러앉은 이들의 불편한 기색을 나 몰라라 가쁜 숨을 몰아쉬기 바쁘다. 이를 지켜보던 황 영감이 소주잔을 들며 입을 연다.
“아이구, 자슥아. 고마해라. 니 실력 갖고 어림없다.”
무리 중 제일 연장자로 검은머리 한 올 찾아볼 수 없는 황 영감, 처음부터 지훈을 반기지도, 말리지도 않은 채 묵묵히 술잔이나 기우리며 자리를 지켰던 몫인 것이다.
지훈은 말리는 시어미가 더 밉다고, 종잡을 수 없는 일자 눈을 ‘번들번들’ 황 영감을 쏘아보며 불퉁한 목소리를 쏟아낸다. 언성을 높이며 더듬을 땐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흥분에 사래라도 들린 듯하다.
“지금 뭐라켔는교? 내.. 수.. 술 머(먹)었다 아니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우악스럽게 낚아 챈 소주병을 “벌컥벌컥” 하늘 향해 나팔을 불더니 “크흐~” 사정없이 팽개친다. “파~ㄱ~” 검은 아스팔트바닥에 물기어린생채기를 만들며 깨져 흩어지는 소주병, 그 섬뜩함을 배경음악삼아 손등으로 입 주위를 훔치며 희 번득 야비[野鄙]함이 이글대는 눈빛을 휘두른다.
황영감은 그런 지훈에게 한심하다는 눈빛을 놀려대며 달래더니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선다.
“자슥아, 자슥아, 니 나온지 얼매나 됐다고 이라노? 저 양반이 온 진 얼매 안됐어도, 식구들 밥 매기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갑드라! 데려 올텐까네. 시끄럽게 말고, 회해해라.”
“웃기는 소리마소! 내는 그렇켄 못하겠심더.”
일어서는 황 영감을 향해 원망 가득한 눈빛을 휘두르며 침 튀기는 악다구니를 친 지훈,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어깃장이 난 것이다. 황영감은 그러거나 말거나 ‘휘적휘적’ 준을 향한 걸음이다.

그렇게 아직 분이 안 풀린 지훈과 준, 4명의 노숙부랑인들이 황 영감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잖다. 그러나 여차하면 주먹을 날릴 듯 일자 눈을 부라리는 지훈, 이에 질세라 노려보는 준, 최악의 상황을 애써 부정하려는 술잔 주고받기 바쁜 노숙부랑인들,....... 이미 두 사람의 우악스러움에 압도돼버린 분위기다.
준의 손목을 끌고 왔던 황 영감 또한 어떻게 할 수 없어 옆자리에 준과 건너편에 지훈을 번갈라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엉덩이를 당겨 앉으며 두 사람의 허벅지를 가볍게 내리친다. 어떡하든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무릎에 부딪친 소주병들이 기우뚱, 술잔을 들이박고 히스테리하게 나동그라진다.
미세하게 퍼지는 알콜 냄새만큼이나 진한색깔로 젖은 면적을 내주는 라면박스, 그러나 둘러앉은 사내들은 눈빛들의 어색함을 애써 감춘 채 쓰러진 술잔을 주고받으며 채우기 바쁘다. 황 영감 또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화해를 종용하는 너스레를 늘어놓는데, 지훈만이 여전히 막무가내기 악다구니를 칠뿐이다. 그래도 황영감은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 지훈의 손까지 잡아끌며 화해를 종용하고, 4명의 사내들은 여전히 술잔 주고받기 바쁘다.
“마! 이제 고마(그만) 지난 일은 이자뿔고, 화해해라. 지훈이 니 빵에 가있는 동안 여기 있는 가수도 우리식구가 됐다.”
“그게 무슨 귀신 콩 까는 소린교? 부산역에 내가 모르는 식구도 있는가베?”
“그렇게 됐다. 마! 더 알고 싶으면 대장한테 물어보고, 자! 자! 화해해라.”

3. 사랑과 우정.

“저기 동근이 행님 오시는데예!”
준의 옆에 앉아있던 노숙부랑인이 턱짓으로 가르친 쪽엔 최신식양복에 중절모를 비딱하게 쓴 중년의 사내다. ‘휘적휘적’ 걸을 때마다 구두가 ‘빤질빤질’ 황 영감이 대장이라 부르는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 성동근이다.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하는 추레한 차림들에게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끄덕’ 바쁘다.
황 영감의 손을 뿌리친 지훈과 준을 포함한 네 사람 또한 일어나 고개숙인인사를 한다. 그런데 짜 맞춘 듯 똑같이 인사말,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눈빛들을 주고받으며 혹여 동근의 비위가 상하지나 않았을까? 서둘러 장단 맞춘 너스레를 떤다.
“행님! 오셨는교.”
“..........................”
“역시 풍채가 있으니께네. 뭘 입어도 멋지십니더.”
“짜슥, 동근이 행님은 옷걸이가 된다아니가.”
“와~! 한 10년 젊어보이네예.”
“그래! 그래! 맞다. 회춘하시는갑다!”
“행님, 지 왔습니다.”
동근은 한마디씩 거드는 모두를 휘둘러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입 꼬리올린 미소가 살갑다. 그러나 자신을 상기시키는 지훈의 인사를 받다 섞이지 않는 불순물처럼 서있는 준을 발견하곤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목소리를 높인다.
“어! 그래 지훈이, 아니 우리 가수 아니가! 무신 일로 대낮부터 술을 다 하노?”
“뭐, 좀, 그렇게 됐습니다.”
준의 머뭇대는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체크무늬상의를 벗은 동근, 옆에 서있는 노숙부랑인에게 건네며 앉는다. 그러자 준과 지훈, 그리고 4명의 노숙부랑인들이 신호라도 받은 양 적절하게 자릴 분배해가며 앉는다.

“험, 우리 황영감은 밥 무은나?”
“됐다. 마, 재미있었나보네!”
“다 늙어가지고 재미는 무슨! 아쿠쿠쿠,”
“와? 삭신이 쑤시는가베! 대장도 참! 아무튼 지극정성이다.”
“.......................................”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이요 자신에겐 대장인 동근을 보고도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앉아있었던 황 영감, 밥때를 챙겨주는 인사에 고마움은커녕 불퉁한 것이 동근의 지난 행적을 다 알고 있다는 것 같다.
동근에겐 1년에 두 번 찾아와 보름정도 지내다가는 애인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말투로 짐작되는 대구사람이라는 것 이상을 알지 못했고, 동근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디에 사는지,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해서는 서로 알려고도, 가르쳐 줄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벌써 10년째, 때가 되면 부산역광장에 나타나 동근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들 들리는 소문으로 알게 된 사실은 보름동안 호텔에 틀어박혀 난리굿을 피워 쫓겨난 적도 있었고, 시시때때로 절정에 다다른 비명에 폭행 범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신고당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름이지나면 오늘처럼 지갑을 두툼하게 채운 동근이 번지르르한 차림으로 부산역을 활보하고 다녔다. 그러니까 오늘이 베일속의 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사라진지 딱 보름째 되는 날이다.

그런 동근이 눈앞에 임자 잃은 소주잔을 들자 지훈이 공손함을 잃지 않은 재빠른 동작으로 잔을 채운다.
“빵에서 언제 나왔노?”
“나와가 바로 왔십더.”
“......................”
고분고분한 지훈의 대답을 들으며 잔을 비운 동근이 마른오징어다리를 뜯어 문다.
“근데 행님, 예전부터 궁금했는데예?”
“...................”
“행수님이 행님 살려준 적있다면서예?”
“..................”
흥미 진지한 눈빛을 반짝이며 물어대는 지훈과 묵묵부답(黙黙不答)으로 뜯어 문 오징어를 씹어대는 동근, 그런 두 사람을 번갈라보던 황영감이 역사적 사실이라도 증언하듯 말문을 튼다.
“말마라. 니는 그때 없었으니까. 잘 모르제? 그때 대구아들이 부산역 잡아보겠다고 때 거지로 내려와가, 장난 아녔다 아니가. 밤마다 술 처먹고 아들 때려 오륙십 바늘씩 꼬매고, 와~! 지금생각해도 살 떨린다. 그래가 대장이 오대일로 붙었다 아니가.”
“동근이 행님 혼자서예? 와~!”
“황영감도 참! 고마(그만)해라. 술맛 떨어지게 무신(무슨) 케케묵은 옛날 얘기고?”
“와?”
흥미 진지한 눈빛을 유지하는 지훈의 감탄사에 만류하는 동근의 얼굴표정이 쑥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영감은 흐름을 가로막기엔 너무 늦었다는 퉁명스런 대답과 함께 지훈을 마주보며 말을 잇는다.
“그래, 대장이 그중에서 제일 큰 놈을 분수대로 집어 던져버렸제. 아! 근데 이 새끼가 재수 없게시리, 물 쏘는 쇠 덩어리에 머리를 박고 골로가가, 잘못하면 살인자가 되게 생겼는데, 대장애인이 한방에 해결해 뿌린기라. 호리호리한 생겨 쌕만 발킬 줄 알았는데 와! 멋지데.”
“참! 그땐, 살인범으로 인생 종칠 줄 알았다.”
“합의금에, 변호사에 몇 천은 깨졌을끼다. 대장 안 글나?”
“.....................”
“명숙씬 대장한텐 천운인기라.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같이 살자 케봐라.”
“.....................”
(어쩌라 기억해주는 사람, 지켜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부평초 같은 인생. 사랑도, 이별도 해봤고 외로움에, 고독에 술잔도 마셔봤다. 이젠 그럭저럭 살다 바람처럼 가면 그만이지 뭐! 이제 와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끼라고 같이 살끼고!) 지난날을 떠올리며 장단을 맞추더니 이내 묵묵부답으로 생각이 골똘한 동근, 그럴수록 황영감은 침 튀기기 바쁘다.
그런 두 사람을 번갈라보던 지훈, 흥미에 호기심을 더한 눈빛을 반짝이며 끼어든다.
“근대예? 황행님. 동근이행님이 행수님을 어떻게 만났는데예?”
그러나 동근의 그렁그렁한 중간 톤이 묵직한 목소리에 이내 윤기 자르르한 눈빛을 사그라트리며 고개를 떨 군 채 묵묵부답이다.
“그만 됐고, 지훈이 니, 우리가수 노래 부르는데 가서 난리 칫다면서,”
“.................................”
“ 나온지 얼매나 됐다고 벌써 그라노?”
“.....................”
“앞으로 자중하고 행님으로 모시라. 알겠나?”
“예! 행님!”
처음보다는 누그러진 동근의 다그침에 묵묵부답이던 지훈이 한 점 망설임 없는 대답과 함께 준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야비(野卑)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길거리의 법, 두목의 명령 앞에 개인의 유감은 나중 문제인 것이다.
“용서 하이소. 앞으로 행님으로 모시겠십더.”
동근은 그런 지훈을 보며 들이킨 소주잔을 준에게 권한다. 용서와 관용을 바라는 소주잔, 하지만 시킨 대로 하란 것일 뿐 선택할 여지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자 받으라. 글고 함 봐주라.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테니께네.”

“대장. 이래 된 마당에 아~덜 궁금해 하는 거 싸~ㄱ, 풀어줘야 되지 않겠나.”
황 영감의 능청 섞은 권유에 술잔을 채운 동근이 술병을 내려놓으며 지훈을 쳐다본다.
“황영감도 참! 그러니까. 지훈이 니, 내가 명숙씰 어떻게 만난 지 궁금하다 이거지?”
“예?”
망설임 없는 대답이 경쾌한 지훈, 호기심에 흥미를 더한 눈빛을 다시 반짝인다. 하지만 처음 듣는 준과 전설의 재림인양 흥겨운 황 영감을 뺀 나머지 4명에겐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만큼 들은 이야기, 흥미 없단 눈치다.

“그날은 참~ 이상했다. 부슬부슬 비는 내리는데 술은 안취하고 오줌은 마렵고, 그래가 화장실에 갔다아이가. 아~ 근데, 그날따라 화장실이 미어터지는기라. 그래가! 저기 저........”
동근의 손가락질지휘를 따라 호기심어린눈빛을 반짝이는 준과 지훈, 동근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목소리 톤을 과장스럽게 높였다, 낮췄다 속도를 빠르게, 느리게 조절하며 말을 잇는다. 흡족한 마음에 집중력을 높여 현장감을 느끼게 하려는 고도의 화술[話術]인 것이다.
“예식장 담벼락에다 오줌을 갈기는데, 갑자기 계집아 비명소리가 들리는기라. 그래 가 봤제, 지훈아 니 알제? 작년에 1층에서 잠자다 칼 맞아 돼진 새끼.”
“깨구리요.”
“그~래 그래! 그 새끼가, 쫄~딱 젖어 되도 않는 똘똘이를 빨딱 새우고, 계집아를 개잡듯이 때려 잡는기라.”
“와예?”
“안대주니까. 뚜껑 열린기제. 그땐 예식장 뒤편이 밤만 되면 씨~컴 했거든, 그날은 또 비까지 왔다 아니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은 못하겠노!”
“그래 가지고예?”
“옷이 다 찢어 발겨졌는데도 두 손으로 팬티를 꽉~ 붙잡고 얼메나 맞았는지, 얼굴이 이미 피투성이라. 그래 예이! 추접다 싶어 돌아설라는데,”
“.....................”
“ 계집아 눈빛이 너무 애절한 기라. 그래가 그만하고 술이나 한잔 하자 타일렀지.”
“......................”
“근데 아! 이 호로상-놈에 새끼가 칼을 꺼내 막 휘둘려대는데, 와~! 마 그냥 확~ 미치고 환장하겠데.”
여전히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이야기 끊고 잇던 동근의 수단에 장단을 맞추다 결국엔 듣기만 하던 지훈이 결과를 재촉하는 반문을 한다. 흥미와 호기심에 궁금증까지 더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뒤끝을 키운 약간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그래가 어찌됐는데예?
“아~! 자슥, 진짜 처음 듣는가베? 우리는 하도 들어 이젠 달달다~ㄹ~ 외운다.”
동근 옆에 앉아 있는 노숙부랑인이다. 동근의 상의를 받아 가로수가지에 건 다음 앉아 잠자코 술잔이나 비우다 답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너스레를 피우며 끼어든 것이다. 불쑥 끼어든 것 같지만, 그 적절한 타이밍에 동근이 “흣~”하는 코웃음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들이킨다. 그런 동근을 ‘힐끔힐끔’ 훔치며 꺼냈던 말을 잇는다.
“니도 알다시피, 어디 우리 동근이 행님이 누구한테 당할 인물이가. 깨구리 그 새끼가, 그날 천운으로 살아난기제. 그 후론 아무리 흘린 년이라도 안 건드렸다 아니가.”
“와예?”
“그때 행님이 그 새끼 칼을 뺐아, 좆 대가리 짤라삔다고 휘둘려 삣다 아니가.”
“그래예!”
“그래~ 그날 저기 저! 가로수 밑에서 비구경한다고, 내랑 몇 명이서 우산 쓰고 한잔 빠고 있는데, 와~! 진짜 볼만했다아니가. 깨구리 이 새끼가 갑자기 살려달라고 외치며, 저기 저!”
손가락질지휘를 기본으로 이야기를 끊었다 물어 이으며 동근의 무용담을 늘어놓던 노숙부랑인, 이번엔 제법 긴 장황설을 늘어놓는다.
“예식장 쪽에서 반쯤 벗어재낀 바지춤을 붙잡고, 똘똘이를 ‘덜렁덜렁’ 물기를 털어가며 뛰어오는 기라. 뒤에는 우리 똥근이행님이 칼을 들고 불독처럼 쫒아오고, 근데 깨구리 이 새끼가 안 되겠다 싶은까네. 우리가 마시던 소주병을 깨들고 휘둘려 댔 쌓는데, 와~!”
“진~짜예?”
지훈의 단어 앞머리를 뭉툭하게 키운 반문이다. 못 봐서 아쉽고, 미치고, 환장하고,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어 내뱉는 노숙부랑인의 목소리가 한마디로 윤기 자르르하다.
“그래! 니 봤제? 그 짜슥, 좆 대가리 위로 길게 난 자국.”
“뭐 조직에 있을 때, 칼 맞은 거라던데예!”
“조직은 무슨 조직, 그건 신 뺑이들한테 삥 칠 때나 까는 개 구라고, 동근이 행님한테 칼 맞았다 아니가.”
“그래예!”
“창자까지 튀나와 가 우리가 집어 넣어줬다 아니가.”
“.............................”
“그렇게 행님이 행수님을 구해 병원에 데려갔는데, 며칠 있다 붓기가 빠지고 보니까네. 이건 천하일색(天下一色)인기라. 니도 알다시피~ 행님 거시기가 말 거시기만 하잖냐!”
잠자코 듣고 있는 지훈의 눈앞에 크기를 가름해보란 듯 팔뚝을 들이대자 모두가 동근의 눈칠 살피며 참으려던 폭소를 터트린다.
“킥킥키........헤헤헤....하하하....히히히....”
“그냥 바(봐)도 미치고 환장할 판인데, 맛을 봤다면 어찌 마다하겠노?”
“이 자슥들이 어디?”
“동근 행님도 참! 드라마 진행상 어쩔 수 없다 아닙니까.”
“킥킥킥............히히히......하하하...........”
“그럼 깨구리는 어떻게 됐는데예?”
“어떻게 되긴, 다 죽어서 119에 실려 갔다아이가. 그래도 이 더럽은 새끼가 법 무서운 줄은 알아가 말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마냥 주둥이만 오물대다 흐지부지 됐다 아니가.”
“행수님은예?”
“자슥! 어떻게 됐겠노?”
“어떻게 됐는데예?”
“짝짝꿍이 됐다 아니가. 지금도 거대하신 우리 똥근이 행님이 남겨준 첫정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안 카나! 을마나(얼마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고.”
“그게 뭔 얘긴데예?”
“자슥, 상상력이 없어요. 잘 들으라.”
“.....................”
“행님이 돈이 어딧었겠노! 핏 투성이가 된 행수님을 병원 앞에 던져놓고 며칠 있다 가본기제.”
“.........................”
“근데 돈이 을마나 많은지 1인실에 입원해 있더란다. 완전히 도랑치고, 가제잡고 눌루라라~, 씹빠빠, 할렐루야, 아멘, 하늘이 주신 은총인 게제,”
“..........................”
“그래가, 동근이 행님이 확~ 한 꼬지 하까, 마까 고민을 때릿는데, 지그시 눈을 감으며 이불을 걷더란다.”
“와예?”
굽이굽이 물 흐르듯 쏟아내는 너스레에 정신이 팔려있던 지훈의 짧은 반문, 노숙부랑인은 얼굴을 찡그린 대답에 이해를 돕기 위한 과장스런 몸동작까지 동원한다.
“아~ 새끼, 답답하구로, 볶아먹든 삶아먹든 법대로 하라는기제. 그래가 행님이 못 이기는 척 요래, 요래 누웠다 안카나.”
“아~! 예~”
“자슥, 집중안하나.”
“...................”
“그래가. 행수님에 그 섬섬옥수(纖纖玉手)로 행님 거시기를 더듬더니 눈을 부릅뜨며 끼야~ㄱ, 비명을 지르더란다.”
비명 지르는 과장된 시늉에 지훈이 침을 삼키며 노숙부랑인 쪽으로 다가앉는다.
“와예?”
“행님 거시기 크기 알잖냐! 놀란기제! 뭐 전설에 의하면 어떻게든 합궁을 해볼라꼬, 두 분이서 별짓을 다해봤는데 예이~! 쩝, 소원성췬 못하고,”
“와예?”
“아~! 짜슥. 사이즈, 사이즈가 안 맞다 아니가. 하여간 하루 종일 빨고 흔들어대는 통에 껍질이 다 벗겨졌데나 어쩠데나.”
추임새처럼 물어대는 지훈의 반문에 표현의 수위가 좀 높다 생각되는 부분은 목소리를 낮추던가, 변조[變調]시키며 이야기를 늘어놓던 노숙부랑인, 이젠 조용필 흉내를 내는 노래까지 부른다. 이에 둘려 앉자 있는 이들이 눈을 흘겨 뜨는 동근의 눈치를 살피지만 터져 나오는 폭소를 주체하기엔 역부족이다.
“지금도 사랑에 물~로 꽃을 피운 흔적을,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있단다.”
“큭, 훗, 크~ㄱ........하하하...........킥킥킥..........으하하하.....”
전설의 재림인 양 시작했던 이야기가 이젠 심심풀이 안주거리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능청스런 행동에 눈을 흘기던 동근도 어쩔 수 없다는 코웃음을 치며 황영감과 술잔을 주고받을 뿐이다.

지훈이 그런 동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아무리 그래도 10년씩이나 만났는데, 어데 사는지도 모른단 게 말이 됩니꺼?”
“어허~! 자슥이 불량스럽게 힘이나 쓸라카지, 철학이 없어요. 철학이! 김지훈이,”
“예.”
“잘 들으라. 우리 똥근이 행님 왈, 길에서 만난 인연이란? 당장이라도 갈 길이 생기면 헤어져야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보살피고 챙겨주다 때가 되면 부는 바람인지, 흩어지는 모래알인지 모르게 사라지면 되는 기라. 그것이 길에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고, 진정한 우정인기라. 알겠나.”
그래도 마지막은 자신의 개똥철학이 읊어지는 상황이다. 동근이 만족한 듯 술잔을 독려하며 건배를 선창하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잔을 들어 부딪치며 재창한다.
“자, 자, 자! 그만하고 코 삐뚤어지도록 함, 먹어보자. 건배.”
“건배”

 <계속>
 

<이호준 약력>

 

전라북도 정읍 태생

 

북화목지)여섯줄사랑회 회장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작사,작곡가(비개인 오후 외 다수)

 

거리음악가

 

컬럼리스트

 

이호준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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