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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람들(2)-짭짭한 돈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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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람들(2)-짭짭한 돈벌이
  • 이호준
  • 승인 2011.08.14 20: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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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소설 연재] 

 1. 앵벌이

앵벌이는 지하철이나 역전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벌이를 한다. 혼자 하는 것 같지만 구걸하는 꼬지꾼을 중앙에 두고 앞과 뒤에서 망을 보는 앞방과 뒷방, 보통은 이렇게 세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꼬지 꾼의 대부분은 중증장애인이고, 망 잡이들은 술, 밥, 담배 값에 따라나선 신체 건강한 노숙부랑인들로 벌이하는 꼬지 꾼을 지하철직원이나 경찰관, 지하철이용객들에게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두목행세는 배고픔을 모면하고자 의기투합(意氣投合)한 이들이라 수입의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꼬지 꾼들이 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화, 조직화, 범죄화 된 상황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꼬지 꾼으로 키워지는 어린아이들이다.

이런 이들을 앵벌이라 불렀다. 당장 밥한 그릇, 술 한 모금이 아쉽고 우격다짐의 알력이 판치는 길 위의 생활. 산전수전(山戰水戰)으로 다져진 터줏대감들을 형님으로 모시고, 정한액수나 그만큼의 술, 담배, 먹을 것을 사는 상납[上納]을 해야 했다. 그래서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도둑질이건 뭐든 닥치는 대로해야했다. 하지만 범죄가 싫은 이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꼬지, 즉 구걸을 했다. 그러던 것이 1974년 서울에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유동인구가 많은 역 주변에서 했던 꼬지 즉 구걸을 조를 짜 지하철을 타고하는 것이다.
이들을 앵벌이라 불리게 된 것은 구걸을 하기위해 약 먹은 혀를 굴리며“차안에 계신 신사숙녀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꼬지꾼들의 일장연설을 한참 듣다보면 앵앵...우는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2. 생계형

자본우선주의사회가 내세운 법과제도 앞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일 것이다. 법과제도의 통제에서 벗어나 거리에 나앉은 인생에겐 더욱더 그렇다. 길거리에 나 앉은 인간이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본의 속성이란 것이 있다가 없으면 더 필요하고 절실한 것, 풍요가 넘치다 못해 쓰레기가 되는 세상, 그로인해 느껴야하는 원시적인 위기감이란 사회 주도적인 괴리[乖離]가 만든 자화상이다. 어느 누구든 콩이야 팥이야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도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박탈감과 두려움에 세상설움을 곱씹어본다. 하지만 보통 3~4일이 지나면 자존심이고 뭐고 없다. 주머니사정 좋을 때 술, 밥, 담배를 사며 사귄 노숙부랑인들을 따라 무료급식소와 지원센터를 들락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선택권 없는 일상의 반복.......
세상은 그것이 직장과 가족에게 버림받고 거리에 나앉아 이들을 위한 유일한희망이라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의지력[意志力]을 무력화시켜 거리에 알맞은 개체로 재생산하는 인큐베이터[incubator]일뿐이며 부도덕한 주머닐 채우는 교묘한 은덕[恩德]일 뿐이다.

그렇게 길 위를 배외하다 고착(固着) 돼버린 사람들, 하지만 꼬지로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장애노숙부랑인들에겐 좋은 파트너[partner]감이다. 특히 직장문제나 카드빚 등의 사정으로 집을 나온 젊은이는 더욱더 그렇다. 자유롭지 못한 신체적 열악함을 대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배며 술, 밥 등을 사는 선심을 쓰는데 결국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았던 젊은이들이 앞방, 뒷방 하는 역할로 앵벌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런 목적을 잃은 수단이 되어 자본의 혜택을 맛본 순간 무너진 사회적 바로미터는 불평불만[不平不滿] 일뿐이며, 미미하게나마 남아있던 열정 또한 빈곤과 소외의 구렁텅이로 곤두박질치는 하루를 연명하기위한 비열한수작질일 뿐이다.

서서히 포기하고, 원망하고.....분노하는 길 위의 마스터코스(Master course), 젊은이들이 육체적 월등함을 앞세워 앵벌이를 장악한다. 그렀다고 동요[動搖]하거나 제지[制止]하는 사람 한사람 없다. 힘도 힘이지만 되돌린다고 한들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인생, 뺏고, 나누고, 아니다 싶으면 외면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벌이는 요일별, 시간별, 조별로 나눠서하는데, 아예 다른 지역패거리들과 일정기간구역을 바꾸기도 한다. 지하철역내 CCTV나 이용객들의 신고로 신변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지 못해 선택했던 앵벌이는 악착같이 서로의 몸에 몸을 꼬며 비벼대는 가시넝쿨의 애증이 되어 착각과 과신으로 오늘을 속이고, 원망과 후회로 내일을 포기하게 하는 주홍글씨인 것이다.

3. 범죄형

그렇게 배고픔을 충족한 앵벌이는 투자 금 한 푼 없이도 손발만 잘 맞추면 언제든 생각이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벌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 된다. 대부분 앞방, 뒷방 하는 망 잡이로 뛰어든 젊은이들이 생계형앵벌이들을 장악해 변질된 경우인데, 문제는 독자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행사하는 감금, 갈취, 매춘, 협박, 폭행 등의 범죄행위다.
이들은 우선 자신의 정체를 위장하고, 거점을 확보하기위한 일자리를 구한다. 큰 기술 필요 없고 정리하기 쉬운 배달 등을 하는 일자리들이다. 그리고 노숙했던 경험으로 꼬지 꾼과 망 잡이들을 물색한다.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게 앞방, 뒷방 하는 망 잡이들, 문제는 꼬지꾼이다. 굳지 순서를 정한다면 여성장애노숙인, 남성장애노숙인, 가출청소년, 가출여성 등의 순서다.

그래도 가출청소년이나 여성들은 부담스럽다. 환각제를 먹이고 폭력과 협박에 감시를 한다 해도 십중팔구[十中八九] 도망쳐 신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우선목표가 장애여성노숙인이다. 노숙할 때 친분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숙소로 유인하는 데는 먹을 것 잠자리정도면 별 문제 없다.
일단 꼬투리를 잡기 위해 길어야 일주일 동안 주로 음식이나 옷, 생리대 등의 여성 필수품들을 사다 주며 온갖 생색이란 생색을 다 낸다. 그리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짭짤한 수입을 기대하는 교육으로 설득과 폭력을 행사한다. 하다하다 안되면 혼인신고까지 하기도 한다. 장애인여성은 잠시나마 세상설움을 잊게 한 헛선심에 동화(同和)된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앵벌이를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날엔 큰일이다. 보호자를 자처한 남편이나 삼촌, 오빠들의 폭력 때문이다. 그래서 도둑질이든 뭐든 해야 한다. 매춘(賣春) 또한 그런 선택 중 하나이기에 임신을 한다 해도 모멸감이나 수치심은 없다. 오히려 이들에게 임신이란 벌이를 위한 최고의 도구로, 출산 전엔 배부른 채로 출산 후엔 갓난쟁이를 업고 앵벌이를 한다. ‘앵벌이베이비’, ‘수챗구멍세대’의 탄생,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볼 내야 찾아볼 수 없는 배금(拜金)의 표본인 것이다.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 아니면 도망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 할 수도 없다. 앞방, 뒷방 하는 감시 조들이 자석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개 같은 인생, 무엇보다도 먹고 자는 것에 길들여진 육신 때문이다. 그리고 용케 도망 쳤다 해도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법과제도에 눈물을 흘려야했던 장애인들, 의지할 곳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다.

결국 오빠나 삼촌, 남편에겐 탐욕을, 법과제도에겐 사회적 청결을, 종교에겐 할렐루야, 아멘, 복음주의를.......온갖 기득권들의 포만감을 위해 사육당해야 하는 처절한 필요불가결의 법칙, 텁텁한 빵 쪼가리나 씹으며 폭행과 착취로 뒤틀린 몸과 마음을 쉴 수밖에 별 도리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빠, 삼촌, 남편으로 나서는 파렴치한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과기록이 비교적 깨끗하고, 사대육신(四大六身) 또한 멀쩡하며 뉴스에도 정통해 사람사귀는 재주가 남다르다. 그렇게 사회현상에 대한 합리적인판단과 사고(思考)를 가진 이웃으로, 언어소통 안되고 오갈 데 없는 앵벌이장애인들을 가족처럼 보살피는 아름다운이웃으로 이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탄로 난다해도 이들에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근본을 파악해 뿌리를 뽑기보단 오히려 나눔, 행복, 축복......청결 등을 떠벌리며 과대망상[誇大妄想]의사회로 몰고 가는 골빈 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문제되면 버려버리고 다른 도시로 가던가, 아니면 잠잠해질 때 까지 기다렸다가 다시시작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꼬지꾼을 했던 장애여성노숙부랑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몇 번의 이혼경력에 이름만 기억하는 자식이 보통 2~3명씩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렇다. 앵벌이는 매너리즘에 빠진 젊은이들에겐 분노보단 손쉽고 짭짤한 돈벌이며 권력이고, 법과제도의 사각지대에 팽개쳐진 장애인들에겐 좌절과 범죄를 교육시키는 주홍글씨다. 풍요로운 직업적 선택이 아닌 비루(鄙陋)한 하루를 연명하기 위한 최후의 생존수단이며 평등이란 탈을 쓴 자본우선주의의 유산이다. 그리고 권위와 권력의 달콤함에 미쳐 주절주절 쏟아놓은 과대망상을 포장하고 유지하기 위한 평균율[平均率]의 그래프[graph]이다.
모두가 방임과 방관으로 일관하는 사이 폭력, 갈취... 등의 상식 밖의 권력과 자본으로 형상화되어버린 앵벌이. 나눔이니 뭐니 하며 근본을 호도[糊塗]하기 전에 보다 더 강력한 처벌로 사회 안정망을 확보하고 사회적 공론화에 따른 치료를 해야 한다.

명우의 말인 즉은 서면을 거점으로 벌이를 하던 대부분의앵벌이들이 그 동안 소주나 담배 값, 많아야 밥값, 찜질방값을 추가로 ‘서면3대악인’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앵벌이들을 대하는 3인방 중 지훈의 행동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알아서 갖다 바치는 잔돈푼을 횡재한 양 받아 챙겼던 동만과 호삼과는 다르게 똑같이 받아 챙겼음에도 액수가 작다느니, 더러운 돈이라느니.... ‘투덜투덜’ 술이라도 한잔했다 싶으면 숙소에 찾아가 무엇이든지 뒤에다 “사와라.”를 외치며 괴롭혀댔다. 조금이라도 망설일라치면 고래고래 상스런 욕설에 기물을 파손하는 난리법석을 피우며 폭력을 행사했고, 요구하는 것들을 사다 바쳐도 다른 꼬투리를 잡는 식이었다.
3~4명이서 몸을 비벼가며 생활해야하는 비좁은 여관방에 라이터용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적도 있어 당해본 사람이라면 치 떨리는 분을 뒤로 미룬 채 고분고분 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서면의 노숙부랑인들, 특히 앵벌이들은 호삼과 동만이 어떤 식으로든 지훈을 꺾어주길 바랐고, 기세 등등을 넘어 살기등등한 두 사람의 우악스러움에 절대적인 응원과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지훈 앞에 무릎을 꿇어버려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바람이 산산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앵벌이들은 ‘삼삼오오’뭉쳐 소리 소문 없이 롯데백화점지하와 공판장을 떠나버렸고, 그것은 지훈이 두목등극으로 독식[獨食]할 돈벌이가 사라져버렸단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호준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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