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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람들(1)- 알콜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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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람들(1)- 알콜중독자
  • 이호준
  • 승인 2011.07.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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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S뉴스통신/소설 연재]

여섯줄사랑회 회장
* 프롤로그 *

 내 인생의 최근 13년 세월 중 10년은 부산역광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풍경이었다.
달랑 기타하나를 들고 노래하고, 나눠먹고, 싸우고, 절규하는 풍경.
욕구불만 일수도 있고 몽상일수도, 그림자일수도, 깨달음일수도 있다.

그러나 부산역에 눌어붙어 떠날 수 없는 나는 무숙자다.

하지만 오늘도 버릇처럼 노래를 할 것이다.

그것이 매너리즘에, 편리주의에, 우선주의에, 합리주의에, 종교주의에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일 것이라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 동안 이 글을 썼다.
구성상 미화시킨 부분이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사실이다.

매몰찬 세상인심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오늘도 길 위를 누비는 식구들에게 무한한 행운이 따르길 바라며 먼저 세상을 저버리고 간 식구들의 명복을 빈다.

 부산역 광장에서 이 호준

 알콜 중독자 

1. 명우

여름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후 ‘철도노동조합부산지방본부’건물 1층, 한 사내가 검은 매직으로 휘갈겨 쓴 ‘실직노숙인조합’이란 나무명패가 붙은 사무실문 앞을 서성이고 있다. 입김 분 손바닥에 코를 박고 흥흥.... 멍들어 붓고 터진 얼굴에 계절을 무시한 겨울파카차림의 명우다. 반나절을 참고 이러는 것이 억지스럽지만, 문전박대는 죽기보다 싫은 까닭에 며칠째 푼 술의 잔존유무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하아~ 씨팔!”
명우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중고핸드폰을 중국에 내다팔았던 사업가였다. 자신만만했던 그에게 낮선 이국땅이란 말은 남의 이야기, 한마디로 잘나갔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사업 확장을 계획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쫄딱 망해버렸다. 당시 중국엔 한국인들은 어딜 가나 현금을 소지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때, 술 취한 기분에 팁을 뿌려대는 한국인사업가는 범죄자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어찌됐든 무일푼에겐 단1분도 허락하질 않는 이국땅, 범죄의 표적으로 전 재산이 털려버린 무일푼에겐 더욱더 그랬다. 믿을 데라고는 오직 대사관을 비롯한 대한민국기관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익만을 내세우며 미온적이고 형식적인 태도로 일관 했다. 복잡 미묘한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끼어드는 인권[人權]이나 존엄[尊嚴]은 귀찮고 하찮은 애물단지였던 것이다.
결국 사건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돼버렸고, 냉정을 잃은 명우만이 미친 듯 사방팔방[四方八方]을 들쑤셔댔다. 하지만 경찰관 앞에서도 목숨을 위협하는 범죄자들의 막가파식대응엔 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비루한 국민임을 원망하며 국가기관원이 틈만 나면 앵무새처럼 권했던 한국행비행기에 몸을 실어야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다 국가와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명우는 그렇게 토실한 볼 살을 실룩인 미소에 팔랑개비처럼 손을 흔들어대던 국가기관원의 배웅을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발이 붓도록 관계기관들을 들락거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모두들 업무의 과중함을 성토하는 비슷비슷한 떠넘기기식오리발에, 심심풀이 땅콩 캐러멜 같은 에피소드[episode]취급을 하는, 당한 놈만 억울한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숨어보길 수십 번, 막노동판과 달 셋방을 전전하며 ‘아등바등’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견뎠다. 하지만 막노동일감이 떨어지고 당장 호구지책[糊口之策]이 문제가 되자 현실은 죽음보다 더 냉담했다.

그렇다.
오로지 자본의 팽창이 목적인 제도와 규범 속에서 99%의 권리는 1%의 기득권형성의 거수기[擧手機]에 불과할 뿐이며, 보편성에 미래를 저당한 채 기껏해야 자본의논리가 짜놓은 먹이사슬의 하층부를 차지할 뿐이다.
1%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위와 권력, 범죄와 전쟁, 탐욕과 환락에 99%의 노동자서민들을 미치게 하는 정치, 종교가 판치는 스펙터클(spectacle)의 세상에서 돈도 없고 빽도 없이 따지고 파헤치겠다는 명우의 행동은 명백한 반역[反逆]이요 역적질인 것이다.

그렇게 상실과 박탈, 원망과 절규로 애태워야했던 2년, 명우가 매달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술뿐이었다. 죽을 기회를 외면한 나약함을 원망하며 술,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보고 싶다며 술, 무슨 놈의 술 먹을 이유가 그리 많은지 술, 술, 술........매일 매일이 잃어버린 과거와 죽음에 대한 예찬[禮讚]이었다.
그래도 비가 오는 날이면 코맹맹이가 구성진 중국가요를 불러 노숙부랑인들의 시름을 달래주곤 했었다. 춤동작이 점점 과장스러울 즘이면 사무치는 고독에 술타령도 우울한 노숙부랑인들의 시름은 온데간데없고, 팡팡 터지는 웃음꽃에 사래 들린 기침을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할 정도였다. 배꼽 잡고 바닥을 뒹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죽지 못해 사는 하루살이 인생 곁만 멀쩡할 뿐 위, 간, 폐, 척추 등 어느 한곳 성한 곳이 없다. 예쁜 딸이 보고 싶어서라도 가봐야겠다며 입에 달고 살던 집은 영영 갈수 없는 약속이 돼버렸고, 막일이라도 해야겠단 다짐은 마음뿐이다.

그런 명우가 사무실문손잡이를 비튼다. “끼이익~” 긴 망설임 끝에 확인되는 노크를 잃어버린 차가움, 열린 문을 방패처럼 의지하며 멍들어 붓고 터진 얼굴을 들이민다.
다홍색테이블엔 악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3인용소파를 독차지한 사내의 무릎 위엔 붉은색기타가 작정하고 애정을 과시하는 애인처럼 누워있다. 부산역광장에서 공연할 때 쓸 악보를 연습 삼아 정리 중인 것이다.
명우는 그런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의지하고 있던 문을 활짝 열어젖히더니, 들어선 박력에 노크를 잊어버린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인사를 ‘주절주절’ 맞은편소파에 몸을 던진다.
“준아 잘 있었나? 와! 에어컨, 무지무지 시원하다. 공연 준비하고 있었나?”

낡은 소파가 명우의 몸을 받으며 “삐거덕 풀썩” 2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위기감을 토해내자, 눈살 찌푸린 준이 손부채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기분대로 창문을 열어 제친다.
“야~ 씨~ 노크 좀, 아니, 야~? 드르륵~ 타~ㄱ, 이거 무슨 냄새야? 야~! 진짜,”
태양 볕에 만개한 민들레의 몸부림처럼 피어오르는 창틀에 쌓인 먼지들, 눈부신 호흡곤란이다. 그래도 준은 창틀 밑 선반위에 수건과 옷가지들을 바쁘게 챙겨 명우에게 건넨다.
“후우~ 야~ 인사는 됐고, 자! 이거,”“
헤헤..냄새 많이 나제!”
“그래! 일단 주방에 가서 씻고 와라.”
자신의 왼쪽 어깨에 코를 갖다 대고 흣, 훗,... 냄새를 맡으며 멋쩍은 몇 마디를 던진 명우, 일어나 옷가지들을 받아든다. 그리고 준의 명령에 따라 사무실 밖 옆 주방으로 들어가 언제 씻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보는 요란법석을 피운다.

2. 청결주의

노숙부랑인들에게 술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청결주의다. 팽창을 우선으로 하는 청결주의는 때에 따라선 밥, 떡국, 라면 한 그릇이 영생이고 구원이며 죄수복 같은 잠바, 럭키치약, 칫솔, 인삼비누 한 개가 축복이다.
필요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거룩한 소통, 신의이름으로 구어 먹었는지, 삶아먹었는지 흔적도 없다. 길거리엔 나앉기 전에 믿었던 종교는 온데간데없고, 입맛대로 수정, 분리하는 비계 덩어리들의 주절거림만 메아리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돈 없고 빽 없는 죽음 앞에 믿음, 사랑, 소망은 침묵서약일 뿐이다.

침묵은 가해자 없는 살인.
등장인물.
1.노숙인, 2.종교인, 3.정치인, 4.자본가, 5.배금주의[拜金主義].........
버러지 같은 노숙인들, 자본우선주의에 잘 적응한 종교적 오만[傲慢], 대책으로 일관하는 정치적 방관, 박쥐같은 자본가들의 이중성, 이기적인 배금주의와 편의주의[便宜主義]의 편견과 판단...............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매너리즘[mannerism]의 스펙터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교묘한 투정이며 목숨 던져 한탄해 봐도 변함없을 세상 죽지 못해 사는 목숨이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눈을 뜨면 술이요 세상천대에 지치면 보약 같은 잠을 자고, 배고프면 게걸스런 식당이요 깨달음의 경지에 들면 배설의판타지[fantasy]다. 오로지 지배적 팽창이 목적인 종교와 정치가 판치는 청결한세상은 무일푼들에겐 존엄의 무덤이며 이해와 배려에는 우선권을 주질 않는 자본우선주의[資本優先主義]의 진면목인 것이다.
그런 종교는 청결의 바로미터[barometer]를 들이대고, 정치는 대책이란 교묘함 뒤에서 방임과 방관으로 일관하며 세상인심은 사회적 청산을 요구하는 손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주저하거나 놓아주질 않는다. 착취와 핍박으로 사회를 재편하려는 자본우선주의 기득권자들에게 노숙인은 그 무엇보다도 효율적인도구이며 탄력적인수단이기 때문이다.
자본우선주의사회에서 가난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해야하는 의지박약(意志薄弱)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천박한 냉소주의[冷笑主義]다.

3. 증언.

“명우야. 세탁기 돌릴 건데 니 옷도 같이 빨자.”
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방문이 열리며 심술궂게 튕겨져 나온 뭉친 옷가지들, 고약한 풀썩거림이다. 순간 얼굴을 찡그린 준이 문 옆 냉장고에 기대어있는 빗자루와 부삽을 이용해 쓸어 담아들고, 세탁기가 있는 뒷마당을 향해 종종걸음을 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습관처럼 머리를 비벼 털며 사무실에 들어선 명우, 길고 뾰족한 콧대가 멍들어 붓고 터진 상처와 어우러져 갱영화 속 알랭드롱(Alain delon) 같다.
“어! 시원하다.”
스프레이처럼 분사되는 물기, 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소파에 몸을 묻는다. 그러나 명우와 눈이 마주치자 알듯 말듯 한 미소를 담은 눈짓으로 다홍색탁자 위의 음료수 캔을 가르친다.
“그만 털어대고 앉자 저거나 마셔라.”
준이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냉장고에서 꺼내온 음료수 캔을 집어든 명우, 아직 남아있는 물기 때문에 개운치가 않은 머리를 비벼대며 맞은편 소파에 앉는다.
“뭘~ 이런 것 까지! 근데 그 주둥이 길고 다리 짧은, 시커먼 강아지 어데 간노?”
“둥이, 말이냐. 말마라. 집 나간지 오래다.”
“그래! 그래서 암만 불쌍해도, 버린 짐승은 안되는기라. 지금까지 불쌍하다 뭐다 해가. 니 주서다 키운 강아지가 대체 몇 마리고?”
명우의 너스레에 묻었던 몸을 일으킨 준이 얼굴을 찌푸리며 궁금한 목소리를 높인다.
“야~! 머리 아픈 얘기 그만하고, 웬일이냐? 얼굴은 왜 그렇게 개판이고?”
“참! 니, 김지훈이 알제.”
“서면에 지훈이! 잘 알지. 왜?”
“그 새끼가 레슬링 한 아덜 둘 데리고, 앵벌이 하는 아덜 찾아다니며 뒤지게 패고, 꼬지(구걸)한 돈 뺏고 다니는데, 니 아직 모르나?”
“꼬지 본 돈을, 지훈이가? 왜?”
“야~ 말마라. 그 자슥이 아덜 얼마나 괴롭히는데, 내도 그 새끼들 숙소(여관)로 끌려가, 왼쪽 옆구리에 칼을 보여주는데 와~! 살 떨리드라. 밤새도록 쳐 맞다, 그 새끼들 조는 틈에 겨우 도망 나왔다아니가.”

궁금한 것 이상으로 상황을 유추[類推]해볼 수 있는 명우의 비음 섞인 너스레가 넘실거리다 부딪치는 파도 같다. 하지만 술이란 자기중심적 표현수단 중 으뜸, 갈색뿔테안경 넘어 치켜뜬 준의 눈초리가 아직 술기운이 풀풀한 명우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심으로 가득하다. “아니 근데, 지훈이가 왜 너를?”
“니~ 그것 모르제? ‘서면3대악인’이라고....... 차~암! 나, 지훈이 그 아하고 호삼이 동만이 이 세 놈이, 크흐응~~ 글쎄 ‘서면3대악인’이란다.”
중요한 무언가를 암시하듯 몸서리를 치며 말끝을 흐린 명우, 바람 새는 적절한 탄식으로 말을 이어가며 코웃음 칠 땐 제법 갈고 닦은 연기파배우 같다. 그래도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준의 얼굴표정에 명우는 소파에 묻었던 몸을 바로잡으며, 며칠째 가슴에 담아놓았던 응어리를 풀 작정으로 긴장 풀린 목소리를 양껏 돋워본다.
“니 내말 못 믿겠제? 근데 사실이다. 차~암 나, 형이라 부르질 말던가. 새끼들, 형형...하면서 때려대 쌓는데, 와~ 이건 위아래도 없는기라.”

 

이호준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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