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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6)
무일푼, 골병든 몸뚱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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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6)
무일푼, 골병든 몸뚱이뿐...
  • 이호준
  • 승인 2011.09.23 0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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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으로

빛바랜 보라색 모직벙거지에 풀어헤친 긴 머리, 준은 보름동안 투숙했던 여관을 나와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등에 짊어진 찐빵처럼 부풀은 옷가방과 손에 든 검은색기타케이스가 전부, 사람들의 지레짐작한 시선과 향수냄새가 사막태풍의 모래 알갱이처럼 허기진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다. 아침부터 굶은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갈 곳 없는 막막함이 미치도록 서글프다.
준이 부산에 내려오게 된 것은 장난 같았다. 대안학교설립을 위한 제주도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김포공항을 나서고 있었다. 뒷주머니에서 경쾌하게 울리는 비발디[Vivaldi, Antonio]의 사계[四季]중 봄, 도착하자마자 궁금함을 못 참는 버릇처럼 전원을 켠 핸드폰 벨소리다.
“예~ 이준입니다.”
“준이가! 내다. 니 지금 어디고?”
불우이웃돕기거리공연으로 경남지역에서는 이름깨나 날리던 성호였다. 그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천애고아로 준과는 공연을 같이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종종 의정부 집까지 찾아와 친분을 과시 했었고, 제주도에 있던 동안도 잊어버릴만하면 전화통화로 자질구레한 사연들을 늘어놓는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그러나 준은 학교설립으로 의기투합했던 친구들과의 갈등 때문에 하루일과를 술과 낚시질로 보내야 했었다. 몽상가에게 자본 없는 현실은 무기력한 조롱거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돈으로 저울질하는 타협은 죽기보다 싫어 육지를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싫었던 것이다.

“김포공항, 근데 나 나오는 것 어떻게 알았소?”
“내가 쪽집개가 그걸 다 알게! 학교에다 연락해봤다 아니가. 뭐 잘됐다. 쭌아 니, 지금 부산에 올수 있겠나?”
“무슨 일 있소?”
“부산에 비가 엄청 와가 난리다. 그래 부산역광장에서 ‘수재민돕기모금공연’할낀데, 니 내려와가 일주일만 도와도.”
김포공항에 내린 준은 그렇게 해서 어머니가 계시는 의정부가 아닌 부산으로 향했다. 이상기온으로 퍼붓다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비릿한 바다향이 적당히 뒤섞여 활기보단 어수선함이 먼저 느껴졌던 부산역, 모든 일은 보름 만에 악몽이 되어버렸다. 성호의 홍수라는 말은 구실일 뿐이었고, 준을 같이 공연할 후배라며 지인[知人]들에게 소개하더니 그동안 생활하면서 밀린 여관비, 밥값, 술값에 적잖은 돈까지 빌려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성호의 오랜 친구로 부산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태민 조차 예상 못했던 일이었다.

어째든 준은 현 상황을 이겨내고 다른 인생을 살아보던가? 아니면 또다시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사회부적응자’가 될 기로[岐路]에 서야했다. 그러나 선택은 성호의 채무를 대신 변제하겠다는 것으로 단호했다. 그런데 4인용 탁자2개를 붙어놓고 둘러앉은 태민과 악기점, 술집, 여관사장님들은 의심의눈초리를 반짝이며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생각지도 않는 준의 선택은 의심해 볼만한 여지가 충분했지만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2. 만남

얼마나 걸었을까? 벌써 서면번화가다. 양쪽도보에는 젊은이들의 싱그러운 행렬들이 넘실거리는 강줄기 같고, 차선 바깥쪽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액세서리[accessory]자판리어카들은 행렬들의 넘실거림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barricade]같다.
그런데 그 틈바구니에서도 유난히 눈에 띠는 레코드판 난전[亂廛]이다. 확연하게 표가 나는 것은 최소한 한두 명의 손님들이 구경하고, 흥정하는 액세서리리어카와는 다르게 눈길조차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붙어있는 ‘명반 판매합니다.’란 문구가 접근금지 푯말이 아니가 싶을 정도다.
준은 기타케이스를 아스팔트바닥에 내려놓고, 얼굴에 땀을 훔치며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 박스 안 LP판들을 능숙하게 꺼내 살펴본다. CCR, Tom Jones, Lobo, Joan Baez..... 배고픔에 암담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7~80년대 팝 아티스트[pop Artist]들의 회상이다.

“벙거지에 긴 머리, 와~! 키타, 멋지네.”
뒤돌아보는 준, 곱슬머리에 손때가 반질반질한 밀짚모자를 쓴 사내가 태양을 등진 채 서있다. 비쩍 마른 몸이 그렇잖아도 큰 키를 더 커 보이게 하는데, 구릿빛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표정은 누가 봐도 인상적이다. 준과 눈이 마주치자 목에 두른 노란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등받이가 있는 파란플라스틱의자를 파라솔 안으로 끌어당겨 앉는다.
“뭐 오핸 마시고 손님도 없는데, 키타연주 함 해보소. 내, 밥 살텔께네.”
준은 레코드판을 내려놓는다. 대중음악역사상 가장 성공한 그룹으로 1963년 오빠부대의 원조인 비틀마니아[Beatlemania]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당대의 흑백음악인들 모두에게 칭송받았던 멤버전원이 영국 리버풀[Liverpool]출신인 비틀즈[Beatles]의 빽판이다. 중기에 ‘Yesterday’와 후기의 ‘let it be’등 수록곡들의 시대적 조합[照合]이 ‘뒤죽박죽’ 제멋대로다.

“진짜 밥 사는 거죠?”
말끝머리에 힘을 주며 등에서 풀어 내린 옷가방을 깔고 앉은 준, 자신의 마음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사내의 대답을 들으며 검은 케이스 안에 기타를 꺼낸다. 시쳇말로 잘나가던 시절 장만했던 300만 원짜리 클래식기타다.
“아~! 박수 칠정도면 밥뿐이겠습니까. 기분인데 술도 한잔 사지예.”
보라색모직벙거지, 자동차가 지나칠 때마다 살랑거리는 꽁지머리, 움직임의 각도에 따라 ‘번들번들’ 카리스마를 내뿜는 기타,.... 지금껏 별 볼일 없었던 길거리 한 귀퉁이풍경이다.
“드라랑~ 띵, 딩, 띵............”
준이 연주를 시작하자 가던 발길을 멈추고 좌판 앞으로 다가서는 사람들, 표정들이 진지해지더니 연주가 끝나자 박수에 환호성을 친다. 레코드좌판주인장 또한 의외[意外]라는 듯 감상을 평하며 준이 내려놓았던 비틀즈 빽판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던진다.
“앵콜~ 짝짝짝~~~”
“와~! 비틀즈에 예스터데이[Yesterday] 아닌교. 아제는 무지 쉽게 연주하네.”
“.................................”
대답대신 구경꾼들의 시선을 즐기며 기타 줄을 조율하는 준, 레코드좌판주인장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의외의 연주 실력에 확인이 필요한 구경꾼들을 대변[代辯]하는 재촉을 한다.
“아제요. 아쉬운데 한곡 더해 보소!”

기다렸다는 듯 오른쪽 입 꼬리올린 미소를 지으며 기타를 연주하는 준, 흥겨운 비긴템포[beguine tempo]다. 시각적인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박자에 맞춰 가볍게 몸까지 흔들자, 레코드좌판주인장 또한 가볍게 몸을 흔들며 강약을 조절한 손놀림으로 기타연주를 받쳐준다.
흥겨움이 농염[濃艶]한 기타연주와 어울리는 교묘한 박수소리, 중년의 노신사가 구경꾼들을 배경으로 몸을 흔들며 나선다. 백구두에 빨간 넥타이를 맨 하얀 정장차림, 관록[貫祿]을 엿볼 수 있는 유연한 스텝[step]과 몸동작, 구경꾼들이 흥미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한걸음씩 뒤로 물러선다. 재대로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춤동작이 파트너[partner]라도 있는 듯 절도 있게 활발해진다.

막힌 길을 비켜가는 사람들, 왁자한 소음과 교묘하게 어울리는 기타소리, 엇박이 되었다가 정박이 되는 박수소리, 절도[節度]있는 동작으로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노신사, 보라색모직벙거지에 갈색뿔테안경의 사나이, 꽁지머리를 ‘살랑살랑’ 몸을 흔들 때마다 각도를 달리하며 ‘번들번들’ 카리스마[charisma]를 내뿜는 기타............
“짝짝짝............”
“와! 끌로드 치아리(claude ciari)에 래 플레아 (La Playa) ‘밤안개속의 데이트’주제곡 아닌교?”
“오래 되서 제목은 잘..........”
구경꾼들의 박수소리에 뭔가 발견한 아이처럼 호들갑스런 레코드좌판주인장, 약지가 구멍 난 목장갑 벗은 손을 내밀며 일어난다. 준 또한 간발의 시간차로 일어나며 레코드좌판주인장이 내민 손을 잡는다.
“뭐 아무튼, 내는 김 상중입니더.”
“이준입니다.”
절도[節度]있는 춤 동작으로 흥을 돋웠던 노신사, 준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잡은 손에 손을 더해 흔들며 속마음을 늘어놓는다.
“야~! 나하고도 악수 한번 합시다.”
“야! 예.”
“길거리에서 이런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줄이야! 귀가 즐거워서 어디 몸을 가만둘 수가 있어야지!”
“아닙니다. 어르신 춤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요.”
세 사람의 손을 잡고 흔들며 나누는 통성명, 구경꾼으로 뭉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간다. 볼 장 다 봤다는 걸 눈치 채고 원래 계획했던 행선지를 향해 갈 길을 재촉하려는 것이다. 그래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몇몇은 각자 개성 있는 포즈로 LP판들을 살핀다. 앨범재킷[album jacket]만을 보겠다는 듯 박스 안에 LP판을 꺼냈다 넣었다, 반복하는 이도 있다.

기분 좋은 너스레를 늘어놓던 노신사가 이런 변화된 환경이 아쉽다는 듯 뒷주머니지갑에서 꺼낸 만원권 지폐를 내민다.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와봤는데, 와~아! 진짜 옛날 생각나게 하데, 바쁘지만 않으면, 한곡 더 청해 듣고 싶은데, 그건 그렇고 이건 성의니까 받아주게.”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준이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상중이 타박하듯 타이르며 몸을 낮추는 인사로 노신사의 손에서 지폐를 낚아 채 준의 청바지주머니에 반쯤 쑤셔 넣는다. 구릿빛 얼굴에 하얀 이를 드려내는 것이 미워할 수없는 행동이다.
“아니!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교. 어르신 무안하구로. 감사합니다.”
“주인장 인상이 참! 좋네. 나중에 LP판 좀 사려 와야겠군.”
뒤돌아서는 노신사의 칭찬에 상중은 트레이드마크[trademark]인 하얀 이를 드러내며 허리를 굽실굽실 마중을 한다.
“살펴가시이소. 한번 들리시소. 지가 커피 한잔 대접하겠심다.”
그리고 자신이 앉았었던 의자를 준에게 권하며 뒤에 의자를 끌어 당겨 앉는다. 여름 볕에 노골해지도록 방치해 놓았던 등받이가 없는 손님맞이용 빨강색플라스틱의자다.
“청바지에 돈 챙기소!”
“아! 예, 감사합니다.”
챙겨주는 것에 허리 굽혀 감사를 표한 준, 반쯤 삐져나온 만 원짜리 지폐를 쑤셔 넣으며 상중이 권한 자리에 앉는다.

“아제, 키타리스튼가베?”
“뭐 작곡을 좀, 하다 보니.”
“와~! 그럼 작곡갑니까? 뭔 곡 작곡했는교?”
“가수들한테 몇 곡 줬는데 히트곡은 없습니다. 말해도 잘 모를 겁니다.”
“어데, 작곡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인교! 뭐, 때가되면 히트곡도 나오겠지예! 근데 서울에서 왔는교?”
“아닙니다. 오긴 제주도에서 왔는데, 설명하기가 좀 복잡합니다.”
“말씨는 서울 말씬데, 무전여행 하는 가베?”
“아뇨. 고향은 전북 정읍인데, 의정부에서 오래 살아 사투리가 없습니다.”
“잠깐, 잠깐만.”
“?..............................”
“우리 인사도 했는데, 커피라도 한잔 하입시다.”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상중이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들을 두 손 모아 ‘짤랑짤랑’ 흔들어대며 잡화점 옆 자판기를 향해 걸어간다. 장기매매, 급한 돈 해결해드립니다, 선원급구, 등의 스티커로 도배된 커피자판기다.

“아니 무전여행도 아니데, 무슨 일로 제주도에 까지?”
“아! 예. 친구들이랑 대안학교를 만들었는데 뭐 마음이 안 맞아 그냥 나왔습니다.”
“사연 많은가베? 안 바쁘면 나랑 있다, 저녁 먹고 내 후배 만나려 가입시다.”
“..............................”
“내, 오늘 먹고, 마시고, 자고 풀코스로 모시께.”
“뭐 그렇게 까지!”
“그래하입시다. 그 친구도 아제처럼 키타를 쳤는데, 잘 통하겠네. 술도 한잔하고.........”
그렇게 종이커피를 홀짝거리는 친숙함에 준이 지난 보름동안의 신세한탄을 늘어놓자, 상중 또한 자신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토막을 늘어놓는다.
“와~! 그런 일이 있었는가베. 내도 부산에서 꽤~ 큰 레코드 가게를 했는데, 빌어먹을 IMF 때문에 가게 부도나삘고, 마누라 도망가삘고, 빚보증 때문에 은행에 집 뺐기삘고, 술로 세월아 내월아 하다 몇 번 죽을라꼬 했는데, 죽지 못해 이레라도 한다 아닌교.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죽으라는 법 없으니까네. 힘내소.”
“예 감사합니다.”
“아! 그럼 아침도 안 먹었는가베?”
“뭐 괜찮습니다.”
“그럼! 내랑 비빔밥이라도 한 그릇 하러 가입시다.”
일어선 상중이 머뭇대는 준을 부축하듯 달래며 도심지 의심스러운 골목을 익숙하게 앞장선다.
“장사는 어떻하시고?”
“장사는 뭐! 1500원 짜리데 부담 갖지 마소.”

식당에서 다시 난전으로 시시덕거리는 이야기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장황하다. 그렇게 장사를 정리한 상중, 뒤꽁무니에 준을 단 바쁜 걸음이다. 후배와 약속한 장소를 향해 가는 것이다.
기름 냄새, 쇠 냄새가 풀풀한 공업사 간판들이 도열[堵列]하듯 붙어있는 뒷골목 깊숙이 단비소주방, 인적 드문 어둠에 불안이 좀 지나치다 싶을 때 눈을 환하게 하는 불빛, 요염[妖艶]하다. 상중이 밤색알루미늄출입문을 잡아당긴다.
“캭~”하며 귀청을 찢는 소리와 더불어 코끝을 물씬 자극하는 음식냄새, 누런 물들어 흐릿한 형광등불빛, 손님들이 3~4명씩 짝 지어 앉자 있는 4개의 낡은 4인용탁자위엔 술이며 담배, 안주거리가 널려 있다. 그리고 자욱한 담배연기와 왁자지껄한 사연들이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와 뒤죽박죽 한마디로 정신사납다.

3. 다른 시작

두 사람이 확인하지 못한 구석에 4인용 탁자를 뭐라도 되는 냥 차고앉자 있는 사내, 게슴츠레한 눈으로 손을 흔들며 일어난다.
“행님, 여깁니더.”
“벌써 한잔 했는가베!”
“기다리다. 그래 됐심더. 앉즈이소.”
인사를 대신해 권한자리에 상중이 앉으려다 말고 준에게 인사를 종용[慫慂]하는 소개를 한다.
“아 참! 내 정신 좀바라. 서로 인사부터 하이소. 후배데 아제처럼 키타를 쳤지.”
“이준입니다.”
“아! 예~ 지는, 안경탭니더.”
“예전엔 이 친구도 아제처럼 긴 머리 휘날리며 잘 나갔제.”
“행님도 참! 쑥스럽게 와 이라는교.”
“맞다 아이가. 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니 키타 메고, 아가씨 끼고 잘 나갔다 아니가.”
“아제 들어오시는데 참! 옛날 생각나데예. 반갑십더.”
손을 맞잡고 분위기를 띠우기 위한 너스레로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은 세 사람, 서먹함도 잠시다. 소주 몇 잔에 데워진 정신이 왁자지껄한 환경에 적응하는가 싶더니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오히려 시끄럽다.

“아제도 참! 오갈대도 없는 것 같은데, 수가 생길 때까지 내랑 노가다라도 뛰보는게 어떻켔는교? 도로 건너편 골목으로 한 백메다(미터) 쯤 들어오면 ‘행진인력’이라고 있으니까. 생각 있으면 다씨삼십분(5시30)까지 오소.”
나이트클럽에서 기타를 연주하다 노래방기계 업그레이드[upgrade]에 밀리고 밀린 안경태, 젊은 시절엔 돈, 여자.... 무엇하나 무서운 줄 몰랐다. 거짓말 조금보태 기타만 있으면 널린 게 여자요, 빳빳한 현찰을 주머니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술과 여자에 마약까지, 그렇게 몇 번의 구속과 출소를 반복하는 사이 세상은 적응하기엔 너무나 생소하게 변해있었다.
“시간가는 줄 몰랐던 거죠. 아제도 내꼴라지 나지 말고, 안되겠다 싶으면 발 빼이소. 이 돈밖에 모르는 세상에서 음악, 그것도 돈 있고 빽 있어야 음악이지, 나이 먹고 돈 없어보이소. 음악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음악! 구걸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제. 안 그런교?”
세월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변화를 요구한다지만, 누군가에게 변화란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익숙지 않은 현실을 인정 할 수 없었던 안경태는 매일 매일을 케케묵은 넋두리에 술타령이었다. 결국 만나는 여자들마다 3류 딴따라, 사이코란 악담을 퍼부으며 떠나버렸고, 변변한 통장하나 없이 나이만 먹어버렸다. 그나마 아직 버텨낼 몸뚱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노가다라도 뛰어 떼거리를 해결하고, 마음 편하게 소주라도 한잔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혀 꼬부라진 안경태의 넋두리를 끝으로 술자리가 끝났다.

"저 자슥이 예전엔 잘나갔는데, 근데 아젠 어떡할랑교? 갈 때 없으면 우리 집이라도 같이 가입시다.“
“아닙니다. 아까 형님께서 챙겨주신 돈도 있고.”
“그깟 꼴랑 만원 갖고 뭘 어떻게 할라꼬? 미안타 생각 말고 같이 가입시다.”
“그게 아니라 찜질방에라도 가서 좀 쉬었다가, 아까 말한 인력사무실이라도 가 볼려구요.”
“그럴랑교. 그럼! 가든 안가든, 서면으로 오소. 같이 밥 한 그릇 하입시다.”

저만치 가로등 불빛 아래, 세월 먹은 점퍼 차림의 사내
휘청휘청 걸어가는 뒷모습
슬픔이다.
그래도 내일이 있으니까.
오늘을 아낌없이 살았으니까.

아쉬운 것은 없다.
다만 온 뼈마디가 쑤셔 죽겠는데 주머니엔 먼지뿐이다.

사기나 협박 할 줄 모르는 몫이다.
아직 때를 못 만난 몫이다.
목 놓아 절규해 본다.
그래도 내일이 있으니까.
오늘을 아낌없이 살았으니까.

정신이 명료해진다.
아! 풀어야 할 숙제
활성화되는 만신창이가 된 육신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 연로하신부모님, 이혼한 마누라, 돈, 명예, 탐욕......

새벽5시, 까칠한 낯빛의 준, 엎치락뒤치락 잠을 설친 탓이다. 찜질방을 나와 경태가 술기운을 뱉으며 가르쳐준 골목골목을 여유 있게 헤집는다. 상중과 헤어진 후 다녀간 덕분으로 자주 다닌듯한 느낌이다.
꼭대기에 행진인력이란 획이 거친 빨강페인트글씨가 인상적인 아이보리색3층 건물, 텅~텅~ 울리는 발자국 소리를 짓누르며 올라간 3층 벽에는 행진인력이란 빨간 글씨에 흰 아크릴판 화살표가 붙어 있다. 따라 들어간 복도 끝 황갈색 문, 준이 행진인력이란 먼지 먹은 명패를 노려보며 머뭇댄다. 문 넘어 부딪쳐야 될 생소한 환경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밤새 고민해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손잡이를 돌려 찰깍거림을 확인하며 밀고 들어간다.

50대로 보이는 두 사내가 검게 선탠 한 창문을 배경으로 놓여있는 긴 책상에 앉아 있다. 한사람은 신문을 보고, 한사람은 두 대의 전화를 돌려받으며 필기하는 사무가 바쁘다. 문 옆벽 쪽으로 쪼르륵 붙어있는 색깔이 제멋대로인 3개의 3인용소파와 여러 개의 1인용의자엔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행여 방해나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신문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커피포트가 성급하게 김을 내뿜는 싱크대 앞엔 몇 명이 종이컵을 든 채 서성이고 있다. 개운치 않은 아침을 일회용봉지커피한잔으로 깨우려는 것이다.
그런데 왁자지껄한 활기보단 숨소리조차 내쉬기 불편한 침묵이다. 다만 나지막이 주고받는 목소리와 신문 넘기는 소리,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사이로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간절한 눈빛을 번들거려볼 뿐이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呼名]돼야 입에 풀칠할 돈이라도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왔는교!”
사무실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경태, 고개를 까닥이는 준의인사를 반기며 일어나 검게 선탠 한 창문 앞 책상을 향해 걸어간다.
“소장님. 아까 말한 친굽니다.”
“주민등록증 가져왔는교?”
“예. 여기!”
“하~아! 일하겠단 사람들은 많은데, 일거리는 없고 이거 죽겠네.”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중년의 사내, 보던 신문을 접으며 자신의 처지를 ‘투덜투덜’ 준에게 건네받은 주민등록증을 훑어본다. 그리고 옆에 앉자 울어대는 두 대의 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사내에게 건넨다.
“이거, 경태씨랑 같이 보네소.”

준은 그날부터 가을까지 노가다 판을 누볐다. 아침은 오전 참으로, 저녁은 상중을 찾아가 1500원짜리 비빔밥으로, 잠은 찜질방이나 전포동과 부전동 일대에서 노숙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가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액수가 적은 채무관계부터 해결을 했다.

4. 채무여! 안녕

부산역 왼쪽 아리랑호텔 옆 골목, 즐비한 식당에서 밝힌 불빛들로 불야성[不夜城]이다. 준이 마주 오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피하는 종종걸음을 치더니 ‘부영식당’이란 상호가 붙어있는 문을 밀고 들어간다. 태민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성호의 소개로 태민과 첫인사를 나눴던 곳이기도 했다. 저녁시간이 지나 한산한 실내에는 조촐하게 벌여진 술상을 두고 낯익은 얼굴들이 앉아있다. 개인적으로는 태민의 오래된 지인들로 성호에게 돈을 빌려주고, 준과 채무관계를 맺게 된 사장님들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미안함을 감추려는 준의 인사에 출입문을 마주하고 앉아있던 태민이 자리를 권하자, 준이 의자를 “뿌~ㄱ ~” 끌어당기며 앉자있는 모두를 향해 인사를 한다. 이에 소주잔을 권하는 악기점사장을 시작으로 살갑게 인사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아니다! 그리 앉자라.”
“그 동안 안녕들 하셨습니까?”
“그래 니 요새 고생 많채, 한잔 받으라.”
“감사합니다.”
“일 갔다 오는가베?”
“예. 바로 온다고 씻지도 못했습니다.”
“밥은 무읏나?”
“오면서 대충 김밥으로”
“고생이 많다.”
“그렇죠. 뭐!”
“...........................”
안부를 주고받다 끊어진 순간의 침묵이 어색한 준, 황급히 소주잔을 비우더니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뒤적뒤적 궁금한 속마음을 내뱉는다.
“태민형. 근대 무슨 일로 이렇게들?”
“뭐 별건 아니고, 우리가 그동안 쭉~ 니를 지켜봤다 아니가. 그래 하는 얘기데,”
“...........................”
“이젠 됐으니까네. 그만하고 니 할 일이나 해라. 어디 그게 니가 할 일이가? 인간 하나 때문에 나이 먹고 이게 문 짓인지 모르겠다?”
해결한 것보다 해결해야 할 액수가 태산[泰山] 같은 준의 채무에 관한 이야기다. 잠자코 듣고 있던 준이 콩나물을 뒤적이다 집은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자작으로 소주잔을 채운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준이 빚을 갚았단 소릴 전해들은 태민이 관계된 사장들을 설득해서 만든 자리인 것이다.
“....................”
“죄가 있다면 사기 친 성호 자슥이고, 그런 놈을 친구라 소개해준 내 죄지, 쭌이 야가 무슨 죕니까?”
준의 침묵에 태민이 둘려 앉은 인물들을 둘러보며 늘어놓은 자책[自責]에 악기점사장이 담배를 비벼 끄며 나선다.
“이제 더 이상 할 말 없지예. 아까 합의 본데로 하시는 깁니더! 1년 안에 성호가 안 나타나면 우리도 반 양보해서 태민사장이 해결하는 것으로 하는 깁니더.”
준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태민에게 설득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는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다 아니요. 근데 태민사장,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물어봅시다.”
대답하기 쑥스러운 모두를 대변하듯 나서는 발리호프집사장이다. 태민이 운영하는 식당 옆 호프집 사장님으로, 태민의 말 한마디에 성호와 준이 보름동안 외상으로 술을 먹게 해줬으며, 성호에게 제법 많은 돈까지 빌려줬던 사람이다. 그러나 성호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리자 자신의 호의를 배신했다며 세상 상스런 욕이란 욕은 다 동원해 가면 이를 박박 갈았고, 준이 채무의 일부를 갚아 줬을 땐 고마움보다 미안함을 먼저 표했었다. 준이 노가다를 뛴다는 사실은 채무에 관련된 사장님들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말씀해보이소.”
“성호 이놈아. 어디서 뭐하고 있는교?”
“그 도깨비 같은 자슥 속을 누가 알겠는교?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어디서 품바타령이나 하고 있겠지예.”
“허! 참, 아무튼 연락되면 알려주소. 돈도 돈이지만 사람 그래 안 봤는데, 이거 찜찜해서.”

그렇게 준은 생각지 않은 태민의 도움으로 채무관계에서 해방되었다. 그래서 자축하는 의미로 여관방을 얻어 며칠째 틀어박혀 먹고 잤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부산에 내려온 원래 목적 때문이었는데, 고민하며 계획하기엔 하루가 달라지게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래서 무작정 공연장소와 모금액을 기부할 복지관을 정해놓고, 악기점을 찾아 갔다. 성호의 채무관계를 대신한 덕분으로 형, 동생 할 정도로 친해진 악기점이다.

5. 원풀이

“안녕하세요. 형님.”
“아니! 쭌이 니가 왠일이고? 서울 안 갔나?”
“참! 형님도, 인사 없이 가는 법 있답니까?”
“일루와 앉자라. 커피 한잔 할래?”
“아니 커피는 됐구요. 저~ 형님.”
“와? 내한테 할 말 있는가베?”
“뭐 좀...........”
“와? 말해봐라.”
“다름이 아니라 악기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와?”
“공연을 좀, 형님도 아시다시피 내가 부산에 온게 ‘수재민돕기공연’때문이잖아요.”
“근데?”
“그래서 서울에 올라가더라도 일단 공연은 하고 갈려구요.”
“그래! 그럼! 공연은 어디서 할낀데?”
“밀리오레 앞에서 목, 금, 토, 세시부터 여섯시까지 한 달 동안 하기로 하고, 모금한 돈은 전포복지관에 기부하기로 했거든요.”
“한 달이라....... 그럼! 우선 저기, 저것 갖다 써라. 공연하는 덴 큰 지장 없을끼다.”
악기점 안을 휘둘려보던 사장, 턱짓으로 가르친 쪽엔 보호철망이 녹슨 스피커에 노래방초창기에나 썼을 법한 장비들이 모여 있다. 준은 그렇게 후원받은 장비로 목, 금, 토요일은 정해진 공연을, 나머지 요일에는 노가다용역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기부한 모금액은 복지관에서 독거노인들 반찬 마련하는데 쓰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준의 생활에도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부전동악기상가를 가기위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이! 머리 긴 총각.”
길 건너 오토바이수리 점, 얼핏 봐도 직원이라기 보단 사장님으로 보이는 중년을 훌쩍 넘은 사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면식[一面識]이 없는 얼굴인 것 같아 가던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중년의 사내가 재미있다는 듯 준을 향해 손을 까불린다.
“내 어제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하러가다 아제 노래 한참 들었는데, 모금한 돈 진짜로 기부하는교?”
“노가다 벌이가 없을 땐 방값으로 십오만원 정도 빼고 요 위에 있는 복지관에 기부합니다.”
“그래예! 어제 모금함에 돈을 집어넣는데 그게 궁금하더라고, 근데 노가다 벌이가 뭔교?”
“밥벌이로 노가다를 뛰거든요.”
“아니 젊은 사람이 먼저 먹고 살아야지 그래가 되겠는교.”
“저도 한 달만 하고 관둘겁니다.”
“젊은 친구가 좋은 일 하는데 다른 건 그렇고, 내 안 쓰는 발전기가 있으니까 필요 하면 말 하소.”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지나고 이번엔 준이 공연장소인 서면 밀리오레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지나쳤던 택시가 후진으로 다가와 준 앞에 멈춰 선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안을 들여다보자 다짜고짜 손을 내미는 운전사, 기타튜닝머신이다.
“자! 받으이소. 내도 대학 다닐 때 그룹 했는데, 부럽심더.”
손님을 태우고 오가며 준의 공연을 목격한 택시운전사, 뭐 도움 될게 없을까하다 집안을 굴러다니는 ‘기타튜닝머신’을 들고 온 것이다.
이런 우연을 가장한 변화 속에 공연계약이 임박한 마지막 주 금요일은 금방이었다. 공연을 마친 준이 장비정리로 바쁘다. 곧바로 있을 밀리오레자체행사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공연 끝난나?”
“어! 형. 여긴 어떻게?”
태민이다. 부산역 인근에서 제법 큰 식당과 술집을 운영하는 태민은 사기 친 돈을 들고 사라진 성호의 오랜 친구로 혈혈단신[孑孑單身] 부산으로 내려온 준에게 잠자리를 비롯해 생활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게 보증을 서줬던 사람이다. 좋은 일 하겠다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던 것이다. 성호가 그런 자신의 뒤통수를 쳤을 땐 원망하기보단 “이게 다 친구 잘못 둔 내 탓 아니가. 누굴 탓하겠노.”하며 준의 손에 차비를 쥐어줬고, 막노동판을 전전할 땐 심심찮게 찾아와 삼겹살에 소주잔을 나누며 피곤함을 달래줬었다. 채무관계 또한 대신 책임지는 것으로 청산[淸算]해줬었다.
“니 소문이 부산역까지 났다 아니가. 끝나고 소주 한잔 어떻노?”
“뭐, 고 갈비라면 한잔 생각해 볼 수도 있죠!”
“자슥하고는! 그래 하자.”

6. 부산역으로

“한 달 다 돼간다 아니가. 이젠 어떻할끼고?”
“뭐 할 것 없으면 다시 노가다라도 뛰 야죠.”
“서울 안 올라갈 끼가?”
“서울! 서울이라........ 갑자기 까마득하네요.”
마시려던 술잔을 내려놓은 준, 표정이 어둡다. 태민은 위로라도 하려는 듯 나지막이 늘어놓던 목소리를 감탄사와 함께 제 높이를 찾더니 끝머리쯤에는 격양[激揚]된 시비조다.
“니도 이젠 정착해야 되지 않겠나? 아~! 니 그러지 말고 공연 역에서 해라! 원래 부산역에서 공연 할라 했다 아니가.”
“참 ! 형님도, 하고 싶어도 뭐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니 공연하는 거 보니까. 우리 단란주점에 있는 노래방기계하고 똑같데! 행수 몰래 앰프랑, 스피커랑, 챙기면 되지 않겠나. 문젠 전기데.”
“전기는 후원받은 발전기가 있으니까 걱정 할 건 없는데...........”
“그~래! 그라믄 생각할게 뭐 있노. 부산역으로 가야제.”

저녁이면 겨울을 실감나게 하는 늦가을, 준은 술기운 풀풀한 태민의 설득 반 호기심 반에 떠밀려 부산역으로 갔다.
어느 누구통할 사람 없고 방법이 없으면 무대포가 최고인 법, 준은 불안한 마음으로 공연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를 붕대로 칭칭 동여맨 사내, 우려했던 대로 대화고 뭐고 따질 틈도 없이 주먹을 휘둘렸다. 그러나 스트레이트펀치 흉내를 낸 준의 엉성한 목침 한방에 싱겁게 나가떨어지자, 지켜보고 있던 패거리들이 경찰관을 부르거나, 다구리(집단폭행)보단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눈빛을 던지며 부축해 데려 갈 뿐이었다.
그 궁금증은 다음날 더 쌔 보이는 사내가 덤벼대는 것으로 풀렸는데, 이런 상황의 중심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준을 제외한 부산역식구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로 그가 바로 부산지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 성동근이었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주먹질을 4번 정도 더하고 나서야 그가 나섰다. 반복되었던 꺼림칙한 일들이 거짓말처럼 정리되었고, 부산역 어느 누구도 공연하는 장소에 허튼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의 중심으로 달려가는 날씨를 실감하며 3시간을 공연한 첫날모금액이 32,760원, 처음부터 주먹다짐을 하며 심하게 부대낀 탓인지 매일 매일이 특별할 것 없이 부산역 환경에 적응해 갈 즘이었다.
공연을 마친 준이 추워져가는 날씨를 걱정하며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테인리스휴지통을 뒤지던 누더기차림의 노인, 꺼낸 신문지에 묻어있는 오물을 밥풀인양 떼어 먹는다. 이를 목격한 준이 말린다고 뛰어간 것이 실랑이가 되자 신문지는 힘없이 찢어져버렸다.
퀭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두려움을 조절해보려는 노인의 억지미소, 준은 찾아보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찾아가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동안 저금해놓았던 모금액을 털어들고 부산역을 찾았다.

날씨가 추워진 탓에 썰렁한 부산역광장, 아무리 찾아봐도 밤새 눈앞을 어른거리던 노인은 보이지 않고, 광장분수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러싼 스텐리스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여 앉은 김 서방만이 비둘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고 있다. 노숙을 한 탓에 으슬으슬해진 몸을 햇볕에 말리며 심심 파적삼아 비둘기먹이를 주는 것인데, 새우깡을 던져 줄때마다 오밀조밀 모여드는 비둘기 떼들의 날개 짓이 전부 다 내 놓으라는 듯 폭력적이다.
50대 초반인 김 서방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이니 뭐니 하는 한문서적들을 격조[格調]있게 읊어대는 학식의소유자로 술만 먹으면 주체할 수 없는 도벽 때문에 노숙자가 된 사람이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괴로워하기보단 모든 일들을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누명을 쓴 채 교도소에 갈 때도 그랬다. 준이 부산역에 와 공연보다도 싸움하는 날이 많을 당시엔 구걸한 우동 한 그릇을 “추운데 한 그릇 하소.”하며 코앞에 권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시커먼 땟국이 눌어붙은 엄지손가락을 담근 우동, 그 후론 외롭고 힘들 때면 젓가락질 한 번에 입맛만 버리는 호사스런 중독이 되었다.

“몸 말리고 있습니까?”
“어서 오이소! 가수선생 아닌교.”
거수경례하듯 햇볕을 가리며 올려다보는 김 서방, 준이 옆 경계석에 주저앉는다.
“근데, 사람들이 없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다 대합실에 올라가 있다 아니요.”
“예~!”
“근데 무슨 일로 그라는교?”
“다름이 아니라 내가 공연해 모아 놓은 돈이 좀 있는데, 모두 모여 식사나 같이할까 해서요.”
“가수님도 참! 좋은 노래 들려 준 것만도 어덴데, 우리가 아무리 굴러먹어도 염치가있지!”
“그게 아니라 모금한 돈을 복지관에 기부해 왔는데 독거노인들 반찬 만들어 준다고 말만하지 무슨 반찬을 해주는지 말 한마디 없고 모자란다고만 하니, 차라리 부산역식구들 모여 밥이라도 한 끼 배불리 먹었으면 해서요. 나도 이젠 부산역을 떠나야 할 것 같고!”
준의 말하는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 서방, 비스듬한 몸을 일으켜 앉으며 주머니를 뒤져 찾은 담배꽁초를 추려 입에 문다. 그리고 라이터를 켜는 동시에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후~ 이런 날엔 수재비가 딱~ 좋은데!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추위에 배가 출출해지면, 옹기종기모여 듬성듬성 대충 띄워 넣고 끓여먹던 수제비.”
길게 토해내는 희뿌연 고뇌, 일어서려던 준이 다시 주저앉으며 김 서방과 비슷한 목소리 톤으로 장단을 맞춘다.
“그럼! 수제비 먹으러갑시다.”
“근데 이 근처에는 수제비 파는 데가 없심더. 있다 해도 받아주겠는교? 우리가 아무리 빌어먹는 거렁뱅이라도 눈치가 있지. 끓여먹으면 모를까.”
“그럼! 뭐! 끓여 먹읍시다.”
준은 그길로 의기투합[意氣投合]한 몇몇의 노숙부랑인들과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수제비 끓이는데 필요하다 싶은 도구들과 음식재료들을 샀다.

7. 실직 노숙인 조합.

준에게 허기 채울 식재료 살 자금 마련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노숙인들 사정[事情]에 깊이 관여하면서 집에 간다면 차비를 줘야 했고, 아프다면 병원을 데려가야 했다. 일 나간다고 하면 작업화 등을 해결해 줘야했고, 특히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경찰서며, 법원이며, 변호사를 쫓아다녀야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모금공연을 계속해야 했다. 지금이야 거리공연라면 이런 저런 민원까지 해결해가며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일주일이면 1~2번씩 단속관련조례를 들이대며 범죄행위라 말하는 공무원들에게 “법대로 해라”를 외치는 식이었다.
준이 부산에 오게 된 것이 “수재민돕기공연”을 하기 위해서라면 자본우선주의 재벌국가에 난민(難民)인 노숙부랑인들은 머물러야 될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활동들이 이런저런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수억 원을 기부 받았다는 등의 온갖 유언비어[流言蜚語]에 시달리기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투쟁’이라는 흰색 글귀가 선명한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사람들이 완연한 봄날햇살을 받으며 부산역 한 쪽에 천막을 친다. 3미터높이장대에‘부산양산해고복직투쟁위원회’란 깃발이“푸드득, 펄럭, 펄럭,”심상치 않은 절규를 토하며 몸을 흔든다.
그리고 해고의 부당함을 역설하는 확성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절규의 난장[亂場]이며 부산역광장을 선동하는 촛불 밝힌 노동가요열창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직은 차가움이 더한 봄비다. 제법 굶어지는 빗줄기에 노래를 멈춘 준이 서둘러 공연 장비를 정리한다. 그러나 여전히 확성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열변을 토하는 사내, 170Cm도 안돼 보이는 키에 모자 깊숙이 파묻힌 까무잡잡한 얼굴, 덥수룩한 수염과 이글거리는 눈빛, 우중충한 비옷차림이 비를 피해 이리저리 뛰는 어수선한 환경과 교묘하게 어울려 공포영화속배우 같다.
장비정리를 끝낸 준이 모금함을 들고 가 빨강플라스틱의자 위에 놓여있는 모금함에 털어 붓는다. 비를 맞아 비닐테이프로 덧붙인 흰 도화지가 떨어져 ‘너덜너덜’ 바커스박스라는 것이 탄로 난 모금함이다.
“와 이라는교?”
“비도 오는데! 짬뽕이나 한 그릇하고 하십쇼.”

다음날, 멸치육수물이 구수하게 끓고 있는 둥근 들통을 노숙부랑인들과 둘려 싸고 서있는 준, 수제비를 떠 넣느라 바쁘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두세 번을 끓여야했던 거리노숙부랑인들을 위한 무료배식이다.
“도와줄 것 없는교?”
준이 뒤돌아보자 어제 비를 맞으며 열변을 토했던 사내다. 도와줄 일 없다는데도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서있다, 긴 줄에 끼어 수제비 한 그릇을 받아먹는다. 그리고 두 명의 노숙부랑인이 여자화장실을 ‘들락날락’ 눈치껏 퍼다 나른 수돗물에 설거질 돕겠다며 달라붙는다.
그렇게 설거지가 끝나자 빨갛게 체온저하를 호소하는 손을 비벼대며 입김을 불어넣는 사내, 준이 모락모락 커피 향 피어오르는 종이 잔을 건넨다.
“춥죠! 됐다는데, 하여간 고생 했습니다.”
300원짜리 자판기커피 잔을 받아든 사내, 짧고 두툼한 손을 내민다.
“아~! 춥네예. 참! 내는 부양해복투(부산, 양산 해고복직투쟁위원회)위원장 양춘복입니다.”
“예. 저는 이준입니다.”
“근데 매일 이례 합니까.”
“뭐 그렇죠.”
“누구 도와주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죽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방해나 안하면 다행이지.”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는교? 사람들도 참, 돈도 꽤 들겠는데예?”
“공연해 모금한 돈으로 되는대로 먹는 거죠.”
“와! 그럼 어제는 어떻게 했는교? 우리 모금함에 다 털어 부었다 아니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선생님도 길 위에서 일과를 보내시는데 그 정도야 대접받아야죠. 그리고 어젠 모금도 안됐는데요. 뭘,”
“그래도 이건 미안해서,”
“...............................”
“근데 이준이 본명인교?”
“예”
“와! 로맨스소설 주인공 이름 같네.”
가벼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마친 두 사람, 자질구레한 너스레에 “후루룩, 후루룩,” 온 몸이 녹아들어간다.

양춘복은 두 아들을 둔 아버지로 부산지하철해고노동자였다. 가난한 농부의 3남1녀 중 막내로 한참 예민할 청소년기에 아버지의 죽음, 솜 공장을 다니시다 기계에 팔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하신 어머니, 그래도 굽실굽실 자식들 공부시켜야한다며 악착같이 시장 통을 누빈 대한민국 천민들의 어머니, 대물림되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가족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고교[광성공고]시절 전기면허를 취득하고,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갔다. 빠른 취직을 위해서였는데, 그런 노력과 계획덕분이었는지 재대하자마자 부산지하철에 전기노동자로 입사[1987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살인적인 노동환경은 노동자들을 시위현장으로 내 몰았었고, 그 대열에 양춘복도 있었다.

“내는 노동운동이고 뭐고 잘 몰랐다. 삼시 세끼 때거리 해결하기도 바쁜 양산 촌무지랭이 자식이 뭘 알았겠노. 하지만 우리 일이라는 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아니가. 그럼 노동자와 시민들에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 뭐가 있겠노? 인력충원 아니가. 근데 인력충원은 고사하고 말도 안 되는 돈타령만 해 댄다 아니가! 내 바라는 것은 아닌데~, 고속으로 달리는 차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바라 악 소리 한번 못해보고 모두 저승행인기라.”
결국 1994년 전지협파업으로 구속과 해고, 1997년 복직, 그리고 또다시 반복된 구속과 해고란 우여곡절[迂餘曲折] 속에서 돈 없고 빽 없는 대한민국 노동자가 받아야 할 대가[對價]는 뻔했다. 수시로 느껴야하는 자살충동과 주체할 수 없는 폭력, 정신병원격리치료 행이었다. 하지만 이겨내야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미안한 부인과 자식을 위해, 차이고 깨지면서도 투쟁을 외치는 동지들을 위해, 암담한 대한민국노동자들의 미래를 위해...........

그 후로는 꼭 노동판 일이 아닐지라도 필요한 일이다 싶으면 동참했고, 그런 서러운 경험에서 우러난 이타적인 예민함이 두 사람을 일맥상통[一脈相通]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거리를 무대삼아 등을 비벼야하는 현실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준은 그렇게 서로에 푸념을 주고받는 술친구로 때로는 함께 행동하는 동지였던 양춘복을 포함한 몇몇 노동운동가들과 ‘실직노숙인협동조합’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숙부랑인들 스스로 대처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인권이니, 권익이니 하는 구호보다는 떼인 월급, 강간, 폭행 등과 같은 일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많아야 40~50명이던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이 300~400명까지 늘어났고, 대부분이 ‘실직노숙인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몇 명의 노숙자들이 민주노총간부들하고 만든 조직이라는 소문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그래서 ‘철도노동조합부산지방본부’에서 지원해준 건물1층 패쇄 된 화장실을 개조한 2평이 안 되는 ‘실직노숙인협동조합’ 사무실에는 억울하고 절통한 수많은 사연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장애인, 알콜중독자, 범죄자, 동네양아치, 정신병자, 등이 직장에서 실직하고 가정문제로 가출한 이들과 뒤죽박죽 섞여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해결을 위한 노력보단 모두들 똘똘 말아 알콜중독자나 정신병자 같은 낙오자나 강간, 절도범죄자로 몰고 가는 복음청결주의가 주도한 사회적 확산, 도덕적 낙인, 정치적 방관이었다.
그런 자본우선주의에 무사안일(無事安逸)과 승승장구(乘勝長驅)를 위해 길거리로 내쫓긴 사람들, 못 먹어 죽고, 추워서 죽고, 병들어죽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거나, 명복을 빌어주는 종교나 정치, 예술은 없었다. 노숙인들 조차 늘 일어나는 일, 언젠간 닥칠 일로 치부하고 당장 자신의 불행이 아님을 안도하며 희희낙락[喜喜樂樂] 술잔 주고받기 바쁠 뿐이었다.

이런 상황을 경계선상에 서서 입 다문 벙어리, 눈뜬장님이 되어 지켜봐야 하는 것은 악몽이었다. 그래서 준은 “뭔가를 해야겠다.” 고민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거리에서 객사한 노숙부랑인들을 위한 ‘거리합동위령제’였다.
서울 대학로에서 노숙하다 객사한 선배가수 송영민의 죽음 앞에 어쩔 수없는 일로 치부하는 선후배들에게 화가 났고, 부산역노숙인들의 죽음 앞에 막연한 죄의식에 휩싸여 고민만을 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철도노동조합부산지방본부’ 1층 창고에 70~80명의 실직노숙인협동조합원들을 모아 놓고 길고 긴 호소했다. 그리고 그 단합된 결과에 지역예술가들과 ‘부산지하철노동조합’에서 공연에 필요한 것들을 후원을 해줬다. 죽은 자를 위로함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화합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 모두들 공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2년11월을 시작으로 매년10월이면 어김없이 위령제를 지냈던 것이 언론들에 관심을 받자, 이치에 밝은 청결주의자들의 지원금을 빼먹고 후원금을 받아내는 사리사욕[私利私慾]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끝 날줄 모르는 하얀 피들의 축제가 된 것이다.
어떤 미사어구로 꾸민다고 해도 누군가가 말하는 거리엔 문화란 어울림의 보편성보단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에 길들여져 억울하고 절통한 매너리즘[mannerism]만이 절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노숙부랑인들의 문제에 있어 수수방관[袖手傍觀]으로 외면할 때 나선 준의 행동은 입에 입을 거치면서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진 소문이 되어 퍼져나갔다.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는 종교인이나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는 정치인, 기업가, 교육자 같은 기득권자들이 만든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정치, 경제, 종교적 합리주의가 만들어 낸 난민으로 길거리를 표류하는 노숙부랑인들의 대부란 닉네임[nickname]으로 각종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이젠 무일푼으로 그에게 남은 것은 죽어서도 벗어날 수없는 족쇄 같은 명성과 평생 병원문턱을 베고 살아야하는 골병든 몸뚱이뿐이다.

<계속>
 

 

<이호준 약력>

전라북도 정읍 태생
문화복지)여섯줄사랑회 회장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작사,작곡가(비개인 오후 외 다수)
거리음악가
컬럼리스트

 

이호준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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