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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8)
부산역 꼬지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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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사람들(8)
부산역 꼬지꾼
  • 이호준
  • 승인 2011.11.28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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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동근

택시 승강장스테인리스펜스에 두 팔을 걸친 기사들, 북적되는 피서객들, 하품을 내뱉으며 우동마차를 정리하는 아줌마들,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모여드는 노숙부랑인들...... 시선들이 뒤죽박죽이다. 일상생활에선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인데, 볼거리를 제공으로 열심이었던 지훈은 하늘을 우러러 뻗어버렸고, 긴장 풀린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준은 땀범벅인 얼굴을 세수하듯 비벼 털며 가까운 느티나무가로수벤치에 가 주저앉는다.
“괘안나?”  

갈색벙거지모자와 때 구정물이 덕지덕지한 흰색반팔, 그리고 검은색바지차림에 멍투성이 얼굴을 한 성동근이 왼손엔 갈색뿔테안경을 오른손엔 수건을 준의 코앞에 들이민다. 싸우는 통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준의 안경과 자신의 땟물이 덕지덕지한 노란수건이다. “하~아~ 하~아~”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경을 받아쓰더니 뒤이어 건네받은 색깔 의심스러운 수건을 ‘펄럭펄럭’ 대꾸할 여력이 없다는 손사래를 친다.

자신의 인사에 대꾸라도 할 줄 알았던 동근은 생각지 않은 준의 반응에 ‘휘적휘적’ 널 부러져 미동도 없는 지훈에게 걸어가 손가락질 동원한 그렁그렁한 목소릴 내뱉는다.
“아~ 자슥, 이거 기절했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더니, 꼴 좋타.”

준의 업어치기 한판에 나가떨어져 다리를 떨 때부터 ‘수군수군’ 구경꾼들에게 지훈의 상태는 최우선으로 알고 싶은 공통의 화재였다. 그런데 감기약 처방하는 의사처럼 간단명료하게 비아냥거린 동근, 갑자기 준에게 걸어간다. 그리고 가쁜 숨을 쉭쉭대는 코앞에 몇 날 며칠을 씻지 않아 검댕이 내려앉은 메기 같은 얼굴을 들이민다. 시퍼렇게 멍든 눈과 부어터진 입술, 뭔가 할 말이 있으니 봐달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쁜 숨을 쉭쉭대는 준의모습에 머쓱해진 표정을 가장하며 쭉 뻗은 지훈에게 다시 걸어가 손가락질지휘를 동원한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그렇게 ‘휘적휘적’ 왔다 갔다, 마치 길 잃고 헤매는 주정꾼 같다.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 없이, 위아래도 몰라보고................”

마산출신으로 젊은 시절 레슬링선수였던 성동근은 부산역앵벌이꼬지꾼들의 두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인정받고 있었다. 덤비는 누구든 소주를 병째 들이키며 내던지던 힘도 힘이지만, 뭐든 있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나누는 푸근함이 있어 환갑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어느 누구 이의[異議]를 제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몇 주 전, 그렇게 쟁쟁하던 성동근이 한 주먹거리도 안돼 보이는 치에게 죽도록 쳐 맞은 일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벌건 대낮부터 술 취한 동근이 처음 보는 치들에게 돈 몇 푼 뜯으려다 엉겨 붙은 싸움이 된 것이다. 준이 목격 했을 땐 이미 피범벅이 된 얼굴로 쓰러져 주먹에 임자 없고 술과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린치[lynch]를 당하고 있었다.

가슴에 포효하는 호랑이문신, 칼 같은 흉기에 의해 찢겨진 수십 군데의 상처자국들, ‘번들번들’ 반쯤 벗겨진 이마에 땀, 부서지는 파도처럼 격정적인 욕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자 웃통을 벗어던진 170Cm정도 키에 30대 후반의 사내가 악을 쓰며 성동근을 차고 밟는데 열심이다.
아스팔트 바닥을 허우적거리는 성동근은 쥐며느리처럼 몸을 오그라트린 채 차이고 밟힐 때마다 “욱, 욱,” 단발의 비명을 토할 뿐이다. 상태로 봐서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당연히 와 있어야 될 경찰이나 119는 감감무소식, 마냥 지켜볼 수 없었던 준이 밟고 차다 지쳐 한숨 돌리려는 찰나 두 사람사이를 가로막고 선다.
“예이~! 이제 그만 합시다. 싸울 기백도 없는 것 같은데!”

군데군데 실밥 터진 보라색모직벙거지, 허리까지 풀어헤친 생머리, 낮술이라도 했는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 다홍색계량한복상의에 착 달라붙은 청바지차림의 사내다. 오른손에 쥔 빨간색 포장용 노끈에 묶여있는 ‘포동포동’ 살 오른 검은색 닥스훈트[Dachshund]가 잘 지내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듯 긴 꼬리를 ‘흔들흔들’ 혓바닥을 ‘날름날름’ 짧은 다리로 왔다 갔다, 한마디로 정신없다.
“뭐꼬? 니도 한패가, 아니면 비키라. 괜히 처 맞지 말고.”

허리춤에 양 주먹을 올리며 삐딱하게 짝 다리를 집고서는 호랑이문신, 자신보다 머리하나 더 큰 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폼이 5.16쿠데타를 상징하는 사진 속 중요인물 같다. 그 기세등등(氣勢騰騰)함에 말려보겠다 나선 준이 당혹스러운 입맛을 다시는데, 빨간색 노끈을 당기는 인기척, 뻥구다. 뒤돌아본 준에겐 ‘헤실헤실’ 이미 하고 있었는지, 이제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눈인사를 하더니, 포효하는 호랑이문신에겐 오만상 구긴 손가락질에 혀 짧은 우격다짐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승리를 기원하는 주문인 것이다.
“느이핸 주으스(너 이젠 죽었어.)”

2. 뻥구

40 중반임에도 150cm를 조금 넘는 왜소한 체구에 지적장애인인 뻥구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일단 ‘헤실헤실’ 웃어대고 봤다. 그런 그와 몇 번 마주치다보면 그의 헤실거림엔 두 가지표정이 있다는 걸 어렵잖게 눈치 챌 수 있다. 그것은 호들갑을 동반한 헤실거림과 상대방을 빤히 응시하는 헤실거림, 보고 있으면 비웃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분 나쁜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 그는 젖먹이 때 고아원 문 앞에 버려진 천애고아로 원장수녀가 입만 벌리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하나님아버지가 부모요, 발견된 날짜가 생일날이었고, 원장수녀가 자신의 성에 천년을 살아보라 지어준 강 천수[天壽]라는 이름이 전부였다.

그러나 목 놓아 불러도 아버지는 내려다 볼뿐 대답이 없고, 코흘리개들의 왁자지껄한 생일축가는 왠지 슬펐다. 천수라는 이름 또한 거의 불러져 본적이 없었고, 대부분 땡칠이, 칠득이, 멍충이, 바보, 먹보, 등신 등으로 불렸다. 그게 듣기 싫어 싸움이라도 했다 치면 원장수녀는 유독 뻥구에게 심한 매질을 했다. 그러면서 외쳐댄 주문이 “천수야 웃자.”였다. 하다하다 지치면 기분전환 하듯 “왠수야 웃자”라고도 했는데,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한 동안은 웬수로 불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헤실거린 덕에 어린 시절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 경험한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양하다 못해 종합선물세트 같은 전과기록이 “세상에 이럴 수가”라는 푸념 섞인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이런 뻥구 때문에 부산역이 시끄러웠던 적이 한번 있었다. 그것은 연쇄적으로 벌어진 절도사건 때문이었는데, 수사가 오리무중이 되자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고 무작정 뻥구를 잡아간 것이다. 모르쇠로 일관한 부산역식구들의 수수방관[袖手傍觀]과 영악한 범인이 흘린 잘못된 정보가 실적을 우선으로 하는 공권력의 공명심과 교묘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헤실헤실’ 종종걸음으로 앞장서는 것이“걱정 마. 다녀올게.”하는 인사 같았다.

공연하려 나왔다, 노숙부랑인들의 호들갑으로 뒤늦게야 소식을 알게 된 준이 지구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은빛 찬란한 수갑을 찬 손을 공손히 깍지 낀 채 앉아 있는 뻥구, ‘헤실헤실’ 반가움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묘한 눈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준의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다그침에 왜소한 어깨를 움츠리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혀 짧은 입을 때고, 심상찮음을 느낀 김 경장은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준을 반긴다.

“실실대기는, 병신 새끼,”
“예가 아해어여(내가 안했어요.)”
“아니 노래하시는 가수가 여긴 무슨 일로?”
“뻥구 때문에 왔는데요.”
“뭐 하실 이야기 있으며 조용히 하시이소.”
김경장의 호의에도 따지듯 묻는 준의 대거리에 뻥구를 앉혀놓고 컴퓨터자판치기 바빴던 경찰관이 되묻는다.

“아니 뻥구를 이렇게 잡아갈 증거 있습니까?”
“강천수씨와 무슨 관계신데 그럽니까?”
갑자기 지갑을 꺼내더니 주민등록증을 코앞에 들이미는 준, 모니터에 붙어있는 얼굴을 땐 경찰관이 궁금해 할 만한 것들을 늘어놓는다.
“가족이 없으니까. 친구인 내가 보호자로 나서면 되는 거죠.”
“아 그렇게 흥분할 건 아니고요. 이미 다 자백을 했고, 우리야 조사를 꾸며 경찰서로 넘기는 게 임무니까. 증거물이야 형사들이 찾겠죠.”
자백 했다는 말에 준이 휘 번득 휘두른 눈빛을 피하는 뻥구, 경찰관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혀 짧은 입을 땐다.
“예가 아해어여(내가 안했어요.)”

반복하는 뻥구의 주장이 아직은 꺼지지 않은 불씨 같다. 다그침의 기세가 역역한 목소리를 누른 준의채근에 책상 위 펜을 집어 든 뻥구가 프린터에서 빠져나온 진술서에 사인하듯 쓴다.
“알았으니까. 아는 대로 천천히 말해.”
(수녀님이 웃으라고 했어요.)
지장 몇 번만 찍으면 끝나는 진술서, 경찰관은 어이가 없다. 낙서 같은 글씨지만 이런 식의 대화라면 짜 맞추기 수사가 탄로 날 것은 시간 문제, 준의 눈앞에 뻥구의 다양한 전과기록 중 강력범죄기록들을 열거해 가며 꾸민 조사에 대한 강변을 늘어놓았다.

글 몇 자 쓰기를 피카소그림처럼 그려대는 뻥구의 화려한 전과기록......................그렇게 흉악무도한 강력범으로 똘똘만 누군가는 승진을 했을 것이고, 죄를 뒤집어씌운 누군가는 두 다리 쭉 펴고 잠을 잤을 것이다. 꼭 정의감이아니더라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실에 준이 코웃음을 치며 지구대를 나섰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보란 듯이 자수하겠단 사내를 데려 왔다. 묻기도 전에 범행일체를 술 술 자백하는 범인, 경찰서에서는 강력 범죄로 똘똘 말았던 뻥구를 빽차에 태워 부산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시켜야했다.

그러니까. 경찰관만 모르고 있었을 뿐, 뻥구가 체포될 때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범인을 본 노숙부랑인이 있었고, 심지어 범행수법에 거주하는 숙소까지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뻥구를 잡아가 입맛대로 사건조서를 꾸며버린 경찰관들, 제보를 해봐야 오히려 공범체포로 사건을 부풀릴지 모른다는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범인을 직접 잡기로 결정한 준이 숙소로 확인한 여관입구를 벗어나려는 낯익은 사내에게 묻지 마 주먹을 먹였다. 2시간을 넘게 기다리게 한 대가이기도 하지만, 저항에 의지를 꺾기위한 왼 주먹으로 쌍코피가 터진 얼굴이 피 범벅 된 범인은 놀란 마음을 진정할 틈도 없이 준에게 끌려가야 했다.

그 후부터 뻥구는 준의 그림자만 보일라치면 눈인사라도 나누기 위해 부산역광장을 가로질러뛰었다. 그러나 준이 보이지 않는 날엔 무료급식소에서 받은 빵 봉지를 들고, 부산 철도노동조합건물1층 화장실을 개조한 2평도 안 되는 사무실을 찾아가 ‘헤실헤실’ 눈인사를 하며 알아듣기 불편한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준이 없으면 문기둥에 묶여 있는 둥이와 빵을 나눠먹으며 놀았다.
“아고 이브다. 아고.(아이고 예쁘다. 아이고) 헤헤헤...”

3. 한방의 블루스

준에게 빨간 노끈을 넘겨받는 뻥구, ‘의기양양[意氣揚揚]’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렸다. 걱정 붙들어 매고 한판 속 시원하게 붙어보란 것이다. 그런데 낑낑거리며 엉덩이를 뒤로 빼는 둥이, 뻥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양쪽 겨드랑일 파 들어 안더니 빨간 노끈을 질질 질..... 빈 벤치를 향한 잰걸음 질을 친다.
“자. 아자. 아자(자! 가자. 가자.)헤헤헤.........”

지켜보던 준이 “흣.”하는 오른쪽 입 꼬리 올린 코웃음을 치며 소매를 걷는다. 포효하는 호랑이문신은 한방먹이기 전 순서인양 주위를 왔다 같다, 바쁘다. 이에 준이 취기 섞인 코맹맹이 코웃음에 사투리흉내를 낸 도발을 한다.
“차~ㅁ! 쥐약 먹은 고양인가베! 고만해라. 어지럽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불리할 이유 없는 20Cm의 신체적 차이다. 그래도 공격을 위해선 주먹보단 발차기가 좋다. 공격이 수포[水泡]가 된다 해도 방어거리를 확보하든가 다음공격을 위한 트릭[trick]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먹질을 할 것 이라면 한방에 치명타를 입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문신이 상체중심을 낮춘 채 산전수전[山戰水戰]으로 다져진 주먹을 휘두르며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결국 물고 뜯고, 뒹구는 개싸움이 될 것은 안 봐도 빤한 사실, 그러다 얽히고설키는 도둑 펀치에 잘못 걸리면 그것으로 끝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먹질을 하겠다면 상체중심을 실어 휘두르는 주먹보다, 어깨 넓이로 양발을 벌여 중심을 잡은 다음 턱이나 관자놀이 같은 급소를 향해 쭉 뻗는 스트레이트성주먹이 좋다. 짧은 예비동작에 에너지소비가 적어 정확하게만 뻗는다면 상대방이 눈치 채기 전에 타격을 입힐 수 있고, 빗맞았다 해도 천하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타격점 밖으로 물러서는 행동을 우선적으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이밍을 잡은 상대방공격에 노출된다는 것인데, 뻗었던 팔을 좌우로 휘둘러 공격해 들어오는 팔, 다리를 쳐내며 목이나 팔, 옷깃 등 잡히는 대로 중심을 흩트려 매치면 된다.

여전히 크고 작은 싸움판을 통한 관록인양 왔다갔다, 틈만 보이면 주먹을 날릴 태세[態勢]인 호랑이문신, 준이 한발 내딛으며 준비한 발길질을 날린다. 바닥을 쓸듯 옆구리를 향해 타원형 궤적[軌跡]을 그리며 파고들어가는 발차기, 호랑이문신이 짧은 다리를 동동동... 바쁜 뒷걸음질을 친다. 이에 연결 동작인 양 양쪽 발을 번갈아 휘돌려 차며 준이 쫓아간다.
“아쭈, 쌈 좀 해봤다 이겁니까!”  

얼굴을 향한 첫 번째 발차기에 호랑이문신이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여전히 짧은 다리를 동동 구르는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나 더 넓은 보폭으로 쫓아가 내지른 두 번째 발길질엔 어쩔 수가 없다. 얼굴에 신경 쓰다 뒤이어 옆구리를 후벼 파는 발길질을 놓친 것이다.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야하는데, 마비된 기능이 예견한 이상으로 밀려오는 통증, 얼굴을 붉게 일그러트린 호랑이문신이 “흐~~ㄱ”하는 공허한 신음[呻吟]을 내뱉으며 준에게 핏발 선 시선 고정한 이를 악문 깡다구를 부린다. 하지만 옆구리를 찼던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다시 밀어 차는 이소룡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준의 발차기에 “욱흐~”하는 명령전달세포가 마비된 단발의 비명을 씹어뱉으며 벼락 맞은 고목처럼 나가떨어진다.
“후~ 덥긴 되게 덥네.”

보라색모직벙거지를 벗으며 깊은 숨을 내 쉰 준, 벙거지를 쥔 손으로 이마에 땀을 훔치는데, 한 사내가 구경꾼들을 뒤로하고 나선다. 181Cm인 준과 비슷한 키에 짧은 스포츠머리와 검게 그을린 우락부락한 얼굴, 王자문신이 거친 필체로 새겨진 팔뚝, 넓은 어깨와 잘 발달된 가슴을 돋보이게 하는 타이트한 옷차림, 경계의 눈빛을 반짝이는 것이 싸우기 위한 투지보단 동료를 걱정하는 것이다.
준이 알겠다는 듯 한발 물러서며 짧고 호의적인 권유를 하자 고개를 까닥이는 예를 표하며 호랑이문신이 일어설 수 있게 부축을 한다.

“그만, 데려가소.”
“괘안나?”
그러나 말이 좋아 부축이지 축 처진 몸뚱이를 순전히 힘으로 일으키려다보니 꺾인 나뭇가지처럼 어깨에 몸을 걸친 꼴이 된 호랑이문신, 기약 없는 악다구닐 친다.
“으~흐~~ 놔, 놔 바라. 후~"
“됐다! 오늘은 그만 가자.”
“으~흐~~ 니 머리긴 놈, 며칠 있다 함, 보제잉~”

이날 싸움은 입에 입을 거치는 소문이 되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것은 성동근이 부산역두목으로서 끝장났다는 것이며, 볼 장 다본 두목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걱정스런 미래이기도 했다. 서열이란 것이 힘 있을 때야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지만, 나이 먹고 힘없는데다 한번 잘못 밀리면 잘해야 새로 군림한 치들 꼬붕노릇이요, 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실수에도 능욕[凌辱]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달픈 몸을 이끌고 먹을 것 잠자리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야하는 부평초[浮萍草]들에겐 만고불변[萬古不變]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동근은 정해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운명을 현실로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부산역 어느 누구도 덤비거나 그런 뜻을 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고, 그렇게 나이 탓, 술 탓을 으로 조용히 묻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틀 전 모두가 잠든 새벽, 다른 사람도 아닌 지훈에 의해 우려했던 모든 걸 사실로 받아드려야 했다. 그것이 분하고, 서럽고, 더럽고, 억울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 부산역으로 흘러들어와 잔심부름에 맥없이 쥐어터지기나 하던 지훈을 거둬 먹이고, 음으로 양으로 뒷받침 해준 사람이 동근이었다. 무엇보다도 비슷한 또래로 성장했을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는데, 명석한 두뇌와 거침없는 행동으로 싸움판을 누빌 땐 거두길 잘했단 끈끈한 믿음까지 가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더니, ‘서면3대악인’이니 뭐니 하는 믿고 싶지 않은 소문이 되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말리지 않는 것이 길 위의 법칙중 하나, 몇 달이 지나자 그 조차도 억지로 꺼내보지 않으면 가물가물한 과거의 작은 편린[片鱗]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 새벽, 그런 60에 접어든 무일푼의 관행적 일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명의 덩치를 거느리고 나타난 지훈이 부산역을 그야말로 무법천지[無法天地]를 만들어버렸다. 동근 또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처지를 상기[上記]하며 초죽음이 되도록 짓밟혀야했다.

그렇게 잔악무도[殘惡無道]했던 지훈이 이젠 준의 업어치기 한판에 나가 떨어져 쭉 뻗어있다. 그래도 동근에겐 한 때 아들 같았던 놈, 성질대로 짓밟을 수 없어 독설에 독설을 퍼붓더니 맺힌 응어리를 토하듯 마른침을 뱉는다.
“카~아~ㄱ, 퉤~ㅅ, 예이~ 개돼지만도 못한 놈의 새끼.”     <계속>
 

 

<이호준 약력>

전라북도 정읍 태생
문화복지)여섯줄사랑회 회장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작사,작곡가(비개인 오후 외 다수)
거리음악가
컬럼리스트

이호준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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