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S뉴스통신=이종순 국장] 전통 전각(篆刻)이 문자의 틀을 넘어 입체 조형예술로 새로운 가능성을 펼친다. 오랜 시간 축적된 문자 예술의 정신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재해석해 온 김정민 수원대학교 특임교수가 11월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개인전 '내면의 자각(Inner Awareness)'을 개최한다. 오프닝 행사는 11월 7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전각이라는 전통 예술이 평면적 새김의 영역을 넘어 공간과 빛을 품은 입체예술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정교하게 제작된 다면체 형태의 구(球) 작품이다. 나무를 재료로 완성한 각 면에는 전각의 조형적 특징을 담은 문양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으며, 면마다 형성된 개방 구조는 내부로 빛을 끌어들인다. 빛은 작품을 통과하면서 바닥과 주변 공간에 독특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작품 자체의 형태를 넘어 또 하나의 시각적 풍경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문자는 조형이 되고, 조형은 공간이 되며, 공간은 빛을 통해 또 하나의 예술이 된다.

특히 자연스러운 나무의 색감과 붉은색, 녹색 등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동일한 조형 원리가 서로 다른 감각적 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벽면을 채운 정방형 전각 연작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도 각각의 문양은 독립적인 조형미를 지니며, 전통 문자에 내재된 질서와 현대적 추상성이 한 화면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문자에 담긴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새로운 시각적 경험으로 전환하는데 집중한다.

김 교수의 예술적 기반은 오랜 서예와 전각 수련, 그리고 고전문학에 대한 깊은 연구에서 비롯된다. 1988년 서예를 시작한 그는 1990년부터 전각에 본격적으로 몰입했으며, 중앙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고전문학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학문적 토대는 작품 속 문자와 문양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역사와 철학,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조형 언어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다. 과거의 형식과 정신을 계승하되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의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2018년 훈민정음 언해본을 예술작품으로 재구성해 주목받았으며, 시경(詩經)의 '천보(天保)'를 주제로 한 2022년 작품 '천보-여일지승(如日之升)' 등에서도 고전의 문학적 의미와 조형적 실험을 결합하려는 작가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태양 아래 새것은 없으나 편향한 시선에서 벗어나 시대를 수용하는 세계관으로 작품에 임해야 현대적인 재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전통을 과거의 유산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재발견해야 한다는 작가의 예술관을 함축한다. 전시명인 '내면의 자각' 역시 외형적인 형식의 완성에 앞서 자신과 인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의 성찰이 예술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개인전과 부스전 20여 회를 비롯해 취리히국제아트페어, 조형아트페어, 부산국제아트페어, 서울아트쇼 등에 참여하며 작품세계를 국내외에 소개해 왔다. 2019년 한국미술협
회 미술문화상, 2022년 죽농서단 신진작가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과 인천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전각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수원대학교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통 전각이 지닌 문화적 깊이와 현대 조형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문자를 새기는 행위에서 출발한 예술이 나무와 공간, 빛을 만나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지, 김정민 교수의 '내면의 자각'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과 내면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종순 국장 kns@kns.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