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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상락성원,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는 365일 열려 있는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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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상락성원,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는 365일 열려 있는 법당
  • 박동웅 기자
  • 승인 2023.12.2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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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상락성원 / 대중과 가까운 불교가 되기 위해 도심에 도량을 열다

대구상락선원 혜문스님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대구 남구 봉덕동에 위치한 상락선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원력으로 전도의 전초기지처럼 365일 24시간 항상 열려 있는 법당이다. 선원장인 혜문스님과의 담화를 통해 상락성원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들었다.

부처님은 선지자이자 우리들의 스승

먼저 ‘불교’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분석해 보자. ‘불교(佛敎)’는 부처님을 의미하는 ‘佛’자와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자가 합쳐진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 또는 ‘깨달은 부처가 되는 가르침’을 뜻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부처님과 마주한 대상이 현 상황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그 내용을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떠나서 완전한 즐거움(행복)을 얻는다]로 옮겨 표현했다.

부처님께서 바라보신 대상은 어떠하였을까?

부처님께서는 대상에 해당하는 이 세계를 두 부류로 나누어 보셨는데, 무정물과 유정물로 나누면서 무정물의 행복보다 유정물의 행복을 더 귀중히 여기셨다. 물론 무정물을 완전히 무시하신 것이 절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유정물도 두 부류로 나누셨는데, 식물과 동물이다. 당연히 식물의 행복보다 동물의 행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동물도 다시 짐승과 인간으로 구별하셨는데, 이는 차별이 아닌 구분이셨고, 당연히 짐승보다는 인간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셨다. 인간도 두 집단으로 구별하셨는데 재가자와 출가자였다. 무정물과 식물, 그리고 짐승을 외면하신 것이 절대 아니듯, 재가자의 행복 추구를 외면해서가 아니라 출가자의 행복 추구에 더 마음을 쏟으셨다. 이는 재가자의 행복 추구와 출가자의 행복 추구가 서로 다르고 출가자의 행복 추구가 더 고귀하기 때문이다.

짐승이 인간의 행복을 가늠하지 못하듯, 재가자도 출가자의 거룩한 행복을 가늠하지 못한다.

행복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재가자의 행복 추구를 요약해 정리하자면 오욕락 즉, 식욕·성욕·재물욕·명예욕·수면욕인데 이를 원만하게 누리며 사는 자는 최고의 행복한 삶이라고 규정짓는데 부처님도 부인하지 않으셨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맛있는 것을 챙겨 먹고, 서로 교감이 되는 이성을 만나 교제하고, 재물이 풍부하여 부족함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 권위가 있으며, 이들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 안전한 잠자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재가자는 어떻게 그 행복을 실현할 것인가?​​​​​​​ 

이런 행복을 추구하는 재가자들에게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자세히 알려주셨는데, 먼저 장수할 것을 권하셨다. 오래오래 살아야 그 오욕락의 즐거움을 만끽하여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장수하기 위해서 현대적 방법으로 좋은 음식과 적당한 운동, 정기적 건강검진 등일 텐데, 현재 부처님이 계신다면 이런 방법을 절대 부인하지 않으셨겠지만, 부처님의 장수 방법은 조금 달랐다.

오래 장수하고 싶다면 살생을 금하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을 하라고 하셨다. 그 과보로 오래오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그럼 오래 산다고 다 행복할까? 평생동안 병약하여 온갖 병고에 시달린다면 이는 절대 행복일 수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에 대해서는 남을 괴롭히지 말고 비록 무정물이라고 하더라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부수거나 버리지 말 것이며, 나아가서 남을 편안하게 돌봐주고 물건을 아껴 쓰라는 것이다. 그 과보로 건강이 잘 유지된다고 하셨다.

오래 살며 건강하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을 죽음보다도 더 괴로운 것이라고 하시면서 부유하게 살 것을 가르치셨다. 그 방법으로 주지 않는 남의 것을 훔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지 말고, 봉사하며 나누고 베풀어 보시하라고 하셨다.

오래 살며 건강하고 부유하기는 한데, 미모가 출중하지 못하면 이 또한 행복에 커다란 방해가 된다. 따라서 미모가 출중할려면 부정한 짓을 하지 말고 화를 내지말고 항상 온화하게 웃으면서 상냥한 생활을 하라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 갖춘 사람은 다시 세력이 강할 것을 추구하게 되며, 또한 귀한 대접 받기를 바라게 되는데, 그렇게 되려면 투쟁하지 말고 오만하지 않으며 서로 화합하고 양보하며 배려하여 겸손하게 하심(下心)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다.

출가자의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 

재가자의 이러한 행복 성취에는 많은 수고로움이 따르며, 아무리 풍족하게 누려도 만족할 줄을 모르게 되고, 조금이라도 그 행복의 조건이 줄어든다면 금세 괴로움으로 귀착될 뿐 완전한 행복이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재가자가 오욕락이라는 욕망을 분모에 두고 분자에 성취가 채워지는 만큼 행복하겠지만, 욕망이라는 속성은 끝없이 커 가는 성질이 있어서 영원히 채울 수 없음을 아신 부처님은 성취로 채울 것이 아니라 욕망을 줄여가는 데서 완전한 행복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발견하셨고 그 길을 출가자에게 가르치셨다. 분모에 욕망이 0이 되면 분자에 어떤 성취가 오더라도 거기에서는 무한대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출가자들에게는 ‘오욕락의 추구로 행복 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고 보시를 실천하고 계율을 준수하라. 여러 애욕에는 환난과 공허가 따르기 마련이다. 애욕에서 벗어나면 큰 공덕으로 인해 완전한 행복의 문이 열릴 것이다.’라고 가르치며 그 길을 걸으라고 독촉하셨다. 

상락선원에서 추구하는 일은?​​​​​​​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모든 대상들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상에 따라서 행복 추구가 다르므로 각기 다르게 설법하셨는데 그것을 대기설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라고 권한 대상은 출가자이지 재가자가 아니다. 재가자의 행복은 소유함에 뜻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만사천 부처님의 법문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가르침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상락선원에서는 이러한 가르침을 잘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바탕으로 한다. 즉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복이라든가 행복은 어떤 절대자나 불보살에게 구걸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행위로 인해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지극히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 내용이 부처님의 말씀, 즉 불교다. 여기에 근거하여 자신의 행복과 비행복은 자기 자신의 책임이지 외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성이 설정되었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행위를 하면서 생활한다면 그는 그 행복을 반드시 성취하며 살게 될 것이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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