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장인정신과 완벽주의로 빚어내는 현악기 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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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장인정신과 완벽주의로 빚어내는 현악기 명가
  • 박동웅 기자
  • 승인 2023.09.16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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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가 내는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

MEISTER 정현악기(주) 정병길 대표

최고의 클래식 명품악기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정병길 대표

하나의 현악기를 완성하기까지 마이스터는 6개월 이상 여정을 거친다. 현악기의 주재료를 찾아 질 좋은 목재를 찾고, 악기 모델의 형태와 비례를 탐구하고, 직접 만든 연장으로 곡면의 몸을 빚어 고유한 레시피로 옷을 입힌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기승전결일 뿐, 각 국면은 더 많은 발단과 위기, 단 하나의 소명을 완성할 주인공들이 필요하다. 앞판과 저음 울림대 역에는 가문비나무, 옆·뒷판·머리는 단풍나무, 지판과 줄감개에 흑단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현악기의 몸통을 구성해 현의 진동을 방해하거나 증폭시킨다. 이른바 ‘노래하는 나무들’이다.

 

반세기 동안 현악기 제작… 국내 최고 명장으로 손꼽히는 입지전적 인물

 

국내 현존하는 현악기 제조 명장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중에서도 남양주시 진접읍 소재 ㈜정현악기 정병길 대표는 ‘명장들의 명장’으로 통한다. 그에게 악기를 받으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기타, 우쿨렐레 같은 현악기들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특히, 악기를 제작할 때 0.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오랜 시간이 걸려 탄생한 정병길표 현악기는 선율과 정교함, 칠과 모양, 색상 등에서 외국의 음악교수나 전문가들로부터 해외 명품악기와 전혀 차이가 없다고 인정받고 있다. 정병길 대표는 “작은 바이올린 하나를 만들 때도 백통작업 1개월, 칠 작업 1개월, 건조 1개월. 이렇게 약 3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첼로는 바이올린의 4배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며 “해외에서 제작된 악기도 직접 품질 그대로 수리하고, 복원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현악기 제조에 뛰어든 지 올해로 43년째, 어려서부터 손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했다. 종로2가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던 누나 덕분에 자연스럽게 악기 제작과 수리를 익혔다. “젊은 시절 어깨너머로 부서진 악기를 수리하고, 틀린 음을 바로잡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대패질, 끌질, 칼질로 하루도 손이 성한 날이 없었는데요. 하지만 눈썰미가 좋아 수리를 맡긴 수입 악기의 모양과 구조, 특성 등을 꼼꼼히 메모하면서 빠르게 기술을 익혔습니다.” 정병길 대표의 실력은 입소문을 타면서 음악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정현악기에서 구입하라’는 조언을 일러줄 정도라고 한다. 전국에서 현악기를 제조하는 전문가 가운데 정 대표에게 기술을 배워 독립한 제자도 상당수다. 그의 솜씨가 알려지면서 유명 음악가들의 주문이 들어왔다. “악기의 생명은 소리로 현악기 역시 좋은 소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현악기 연주는 못 해도 연주자들과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한 연구를 함께 해왔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듣고, 현악기 제작의 최종 마무리를 결정할 만큼 기본적으로 악기들을 다룰 줄은 압니다. 그렇게 밤새워 고민하면서 연주자에게 최고의 소리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흔히 여러 분야의 악기 중에서도 클래식 악기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역사를 품은 악기나 명장이 만든 품질 좋은 악기, 혹은 희소성이 있는 악기라면 그 가치는 더 높게 책정된다. 여러 악기 가운데 현악기 중 최고 음역대를 담당하는 바이올린은 가장 비싼 악기에 속하며 정병길 대표의 손을 거쳤다면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그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수출했지만, 현재 달러 1,200원 선이 무너지면서 오히려 수출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라 지금은 중단됐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첼로 1대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약 500시간,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는 300시간이 든다.

몸체에 주로 쓰는 단풍나무와 진동판을 짜는 알래스카산 전나무, 지판·턱받이·줄걸이·조리개를 만드는 인도 흑단 목재를 건조하는 데만 반년이 걸린다. 이때 나무를 잘 건조해야 울림이 좋다. 나무 두 쪽을 접합하는데도 나이테와 결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마치 울림은 소리의 원리, 공명의 지혜를 좇는 마이스터의 여정이기도 하다. 익숙하거나 낯선 대립적 공명이 조화하여 마침내 음악가가 음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울림이 없다면 악기는 ‘개성’, 즉 생명을 갖지 못한다. 정병길 대표는 “훌륭한 바이올린은 음악가에게 ‘연주 당하는 느낌’, ‘노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혹자는 ‘몸의 일부가 된다’고 표현할 정도”라면서 “절체절명의 순간 생애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것처럼 악기를 만드는 일은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에게 공명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는 아름다운 과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한국에서도 세계적 명품 악기 얼마든지 제작… 인생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울림 담고파

 

과거 정병길 대표가 현악기 제조에 뛰어들었던 시기만 해도 국내 제작 기반이 없어 외국에서 수입해 온 악기를 쓰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 현악기 마이스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급 국내 실력자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비자들은 외국에서 만들면 명품, 한국에서 만들면 그냥 국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몇 배나 비싼 외국산을 선호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물론 외국 악기 중에는 품질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무조건 외제가 좋다는 인식 때문에 거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대학 입시 때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수천만 원씩 하는 해외 올드악기를 구입하고 있는데 중학생 때 국내의 좋은 수제악기를 구입해 꾸준히 사용한다면 몇 년 뒤에는 올드악기와 차이가 없는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그가 걸어온 길은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맏아들 정대성 씨가 10년 가까이 현악기 제조 와 수리 기술을 배우면서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자랑스러워 가업을 물려받을 결심을 했다”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아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품 악기를 내놓아 ㈜정현악기를 명품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정병길 대표는 남양주시북부장애인복지관(관장 공상길) 소속 장애인 오케스트라 ‘Sam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악기를 후원했다. 이들은 남양주시 사암유스필 오케스트라와 협력해 매주 금요일 공연을 펼치면서 전문 역량을 향상시키며 음악적 기량을 펼칠 기회를 가졌다.

공상길 남양주시북부장애인복지관 관장은 “흔쾌히 악기들을 후원해주신 ㈜정현악기 정병길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 프로그램으로 장애인도 교육을 통해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지역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물어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하나의 현악기는 자신을 다루는 연주자와 만나 최상의 선율을 낸다. ㈜정현악기 정병길 대표는 현악기가 절정의 순간에 이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각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길을 닦아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 대표는 현악기가 내는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는 악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울림’을 발견하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악기에서 숲과 나무의 진한 향이 느껴진다.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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