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영덕 전투에서 전사한 故 황병준 하사 73년만에 가족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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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영덕 전투에서 전사한 故 황병준 하사 73년만에 가족 품으로
  • 장완익 기자
  • 승인 2023.08.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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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북 영덕군 우곡리 일대에서 발굴 당시 고(故) 황병준 하사 유해 모습. [사진=국방부] 

[KNS뉴스통신=장완익 기자] 6·25전쟁 당시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국군 전사자가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10년, 2017년 경북 영덕군 우곡리 일대에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3사단 소속 고(故) 황병준 하사로 확인했다.

이번 신원확인은 전사자들의 병적자료 등을 바탕으로 유가족을 찾아가는 기동탐문을 통해 이뤄졌다. 국유단 기동탐문관은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를 경북 의성군으로 확인한 후 의성군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고인의 조카로 추정되는 황태기 님(72세)을 2022년 10월에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이에 따라 채취한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정밀 분석해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로써 고인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게 됐다. 이는 유해발굴을 개시한 이후 215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이다.

고인의 유해는 고인의 희생과 헌신의 흔적을 끈기 있게 추적해 온 후배 장병들에 의해 수습됐다.

지난 2010년 3월경 국유단과 해병 1사단 장병 100여 명이 6·25전쟁 당시 개인호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가로로 줄지어 늘어선 뒤 경사면을 따라 발굴을 하던 중 머리뼈, 위팔뼈 등을 수습했으며 이후 2017년 3월, 1차 발굴지점 기준 약 10m 떨어진 곳에서 아래턱뼈를 수습했다.

고(故) 황병준 하사는 국군 제3사단 소속으로 '경북 영덕 전투'(1950. 7. 19~8. 17)에 참전 중 전사했다.

고인은 1929년 9월 경북 의성군 신평면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인은 큰형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되자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집안을 챙기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또한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입대 직전에 약혼을 한 후 약혼녀에게 ‘꼭 살아 돌아올 테니 결혼해 아들딸 낳고 잘살자’라고 약조하며 눈물로 이별을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1950년 5월 부산에 있는 제3사단 23연대에 입대해 전쟁이 발발하자 경북 울진으로 이동해 1950년 7월경 ‘울진-영해 전투’에 참전해 북한군 남하를 저지한 이후 1950년 7월 19일부터 8월 17일까지 ‘영덕 전투’에 참전 중 안타깝게도 1950년 8월 14일 20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영덕 전투’는 동해안의 영덕 일대에서 국군 제3사단이 부산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제5사단을 저지하고 반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전투이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지난 24일 대구 동구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에서 열렸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6·25전쟁으로 당시 산야에 묻혀 계셨던 전사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행사로 유가족 대표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한 설명을 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에 조카 황태기님(72세)은 “7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라도 늦었지만 삼촌의 유해를 찾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많은 유해를 찾아 가족으로 품으로 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완익 기자 jwi6004@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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