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후예 고려인 ‘국내 유일’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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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후예 고려인 ‘국내 유일’ 학교
  • 오성환 기자
  • 승인 2023.04.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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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우리 국민으로 인정받길 고대합니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독립운동 후예 고려인 ‘국내 유일’ 학교

 

“당당히 우리 국민으로 인정받길 고대합니다”

 

결혼과 취업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나라에 흡수되는 외국인들과 그 자녀들을 일컬어 다문화가정이라 칭하고 우리 사회가 이들을 향한 지원의 손길을 넓혀가고 있다. 교육, 취업, 생계 등 다양한 지원책들이 강구되면서 인프라가 확장되고 있는 지금, 최근 특히 더욱 눈에 띄는 교육기관이 생겨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안성에 위치한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다. 수많은 대안학교들 중에서도 특히 이 학교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흔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아닌, 중도입국한 고려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설립된 글로리교회를 2019년 대안학교로 전환해 고려인 청소년들을 돕고 있는 이 학교의 설립자 소학섭 이사장은 이 같은 과감한 행보의 이유와 배경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준다.

 

독립운동가의 후예들 ‘까레이스키’

 

까레이스키(혹은 카레이츠). 1994년 동명의 TV드라마로 알려지게 된 이 이름은 바로 옛 소련의 고려인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1860년 무렵부터 광복 시기까지 현재의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이주한 이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이라 칭하고 연해주 곳곳에 한인촌을 만들어 한민족으로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애써왔다. 초기 이민자들은 조선시대 봉건지주와 관리들의 수탈과 착취, 횡포를 피해 연해주로 이주한 함경도 출신 농민들이었다. 그러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이들이 항일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면서 연해주는 독립항쟁의 배후기지로 이름을 드높였다. 그리고 이후 이들은 1937년 소련의 스탈린정권에 의해 갑자기 맨몸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6천km를 이동한 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버려진 후 척박한 땅을 개척하며 지금까지 고려인으로서 살아왔다. 1991년에는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15개의 신생 독립국이 탄생하고, 이들이 각자 독립국가로서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민족주의가 팽배하면서 그간 러시아어를 사용하던 고려인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렇게 러시아 내 고려인들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이들은 2000년 즈음부터 고향인 한국으로 귀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2010년에는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해마다 그 수가 대폭 증가해 2020년에는 이들의 수가 약 8만5천 명에 이르게 된다.

언어소통의 벽에 부딪히는 정체성

고려인들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특히 고려인들 내에서 혼인하는 경우가 많아 생김새는 우리와 거의 흡사하지만, 러시아 당국의 정책에 따라 한국말이 금지돼 2세부터는 거의 한국말을 이해하고 사용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음식문화와 명절 문화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등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있으면서도 언어와 문화방식에 있어 러시아에 동화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고려인의 후예들이 부모를 따라 우리나라로 돌아오면서 언어문제로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됐다. 2018년 우연히 평택대학교에서 고려인 여학생을 만난 소학섭 이사장은 고려인 학생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는 질문에 다른 무엇도 아닌,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대답에 그때부터 당장 학교설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 이사장은 6개월의 준비과정을 거쳐 2019년 8월 바로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문을 열었다. 글로리교회였던 이곳을 개조해 교실과 강당, 급식실 등을 준비하고, 전국에서 모여드는 학생들을 위해서 인근에 아파트 열 곳을 얻어 기숙사로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제 형편을 고려해 학비와 급식, 심지어 기숙사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고려인 청소년들이 처음엔 할아버지의 나라에 온다고 부푼 꿈을 안고 우리나라로 오지만 당장 말이 통하지 않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학교는 이렇게 우리말에 서툰 고려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 빠르게 정착하기 위해 바리스타, 베이커리, 가죽공예 등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를 경험함으로써 스스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도록 돕고 있습니다.”

시설확충과 자금확보의 어려움

서툰 우리말로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학교는 한국어를 비롯, 정규교과 과정 외에도 세계시민 교육, 창의적 체험활동, 사회융합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특히 자아와 진로탐색을 통해 한국생활 적응에 필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교육과정 외에도 학교는 설립 후 매년 ‘고려인의 밤’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하고 5월 20일 세계인의 날을 맞아 체육대회를 여는 등 인적 연결고리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송년 한글놀이 한마당, 고려인 청소년 한국역사 문화체험, 평화통일 현장체험학습, 제주도 문화탐방, 영화 시사회 등 다방면의 문화행사를 마련해 적응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을 위한 자금과 부족한 시설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있다. 지난해부터 경기도 공모사업에 선정돼 일부 교사들의 급여는 충당하고 있지만 이전까지 모두 소 이사장의 사비로 운영해온 만큼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은 여전히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더욱이 난방비마저 상승한 마당에 처음 10곳으로 시작한 기숙사도 보증금 상승 문제로 이제는 6곳만 재계약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학생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부족한 교실과 안전 및 소방장비 등 환경개선을 위한 여건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진로체험 프로그램 등의 학교 밖 사업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공교육 내 직업체험이 다양한 우리나라 학생들과 달리 저희는 학교 밖 사업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어서 도움을 받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대학진학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요. 지난해에는 다행히 학적을 갖고 들어온 학생이 있어 과학기술대와 아주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고려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비자문제 해결 시급

따라서 올해 반드시 추진하고 해결할 과제로 소 이사장은 현재의 위탁인가가 아닌, 로뎀학교의 단독 교육인가를 받기 위해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최근 대안학교 중에서도 다문화 시설의 경우 교육인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이는 행정상일 뿐, 실제 인가를 받기 위한 절차는 여전히 까다롭다. 이에 소 이사장은 관련 정부와 지자체 및 담당 공무원들이 이 분야에도 관심을 돌려 교육인프라를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주길 간곡히 바라고 있다. 또 고려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개선도 시급하다. 학교가 고려인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는 가르치고 있으나 여전히 이들에 대한 국민적인 시선은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이를 접한 학생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인정받은 경우 체류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러시아 변방의 작은 나라에 거주할 경우 이를 증명하기 어려워 여전히 국내외를 정기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단순히 다문화가정이 아닌, 고려인들만의 문화를 이루고 살아온 엄연한 같은 민족인데도 아직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요. 언젠가 우리나라 정부도 분명히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들이 독립운동의 후예로 당당히 우리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그저 아이들이 좋았고 그 대상이 고려인이 된 것뿐이라며 겸손히 말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인식개선과 단독 교육인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소 이사장. 이제 그의 사명과도 같은 교육철학이 널리 퍼져 고려인의 자녀들이 한국의 주류 사회에서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그날까지 우리나라 유일의 고려인 학교,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앞날이 환하게 비춰지길 기대해본다. 

                                                           [KNS뉴스통신=오성환 기자]

오성환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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