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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의 거장 마에스트로가 빚어낸 서정적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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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의 거장 마에스트로가 빚어낸 서정적 감동
  • 오성용 기자
  • 승인 2023.04.17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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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마에스트로(maestro)뮤직홀카페, 자연과 치유, 공연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

최선용 대표

[KNS뉴스통신=오성용 기자] 우리나라 음악계의 거장 최선용 지휘자가 고향 평택에 뮤직홀, 뮤직카페를 오픈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넓은 잔디와 어우러진 평택호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이곳에 석양이 질 무렵이면 빛나는 저녁노을빛이 뭉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자연의 생생한 숨결과 하모니를 이루는 원곡에 가까운 음악의 풍미 또한 거대한 예술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아름다운 공간으로서 평택의 문화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마에스트로 뮤직홀을 건립한 최선용 대표는 “제가 나고 자란 이곳, 청소년 때부

터 꿈이었던 고향 평택에 음악이 있는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며, “제가 이곳에서 위로받고 힐링을 하고 있듯이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오픈 소감을 전했다.

2021년 5월, 오픈하자마자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그 주가를 높이고 있는 마에스트로 뮤직카페는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조화로워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이 서정적인 감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또 카페 안에서 통유리 밖의 풍경을 바라보면 잔디정원의 벤치, 그네의자 등이 곳곳에 위치해 잔잔한 서정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서, 뮤직홀 대관부터 각종 모임, 스몰웨딩, 문화공연장 등 사계절 다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차와 베이커리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대형스크린을 통해 오케스트라나 다양한 공연, 뮤직 비디오 등을 실제 공연장에 앉아있는 느낌으로 시청할 수 있다. 

지친 일상에 감동을 선사한다

청정한 자연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건강에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마에스트로 카페에서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햇빛 치유, 바람이 부는 것에서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는 바람 치유, 음악을 통한 음악치유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고향을 사랑하는 최선용 대표의 마음이 깃들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이곳에는 어느새 편안한 벤치와 흔들이 의자가 야외 곳곳에 배치된 잔디정원을 비롯해 뒤뜰 150여 평의 텃밭에는 상추, 호박, 토마토, 쪽파, 무, 배추 등 온갖 채소들이 줄을 맞춰 푸릇푸릇 자라고 있다.

“운이 좋아서 이 시골 촌놈이 최정상에서 20년 동안 누렸으니, 이제는 가만히 경치 바라보는 것도 지금의 늦복인 것 같다”고 소회하는 마에스트로 최선용 대표는 관객들이 독특한 감수성을 담아갈 수 있도록 몇 배 더 열정과 힘을 쏟아 예술 혼을 불태우던 어느 날부터 몸이 심하게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피로가 가시지 않는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았는데 뜻밖에 “식도암 3기, 3~4Cm의 종양이 자라고 있으니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그는 곧바로 통원하면서 2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이후 종양은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30% 정도는 저절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재발 위험이 있으니 수술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스스로 치유해보고 그래도 나빠지면 내 운명일 터”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는 고향 평택에 내려와 치유하면서 증조부로부터 내려온 땅에 아내와 함께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마치 지휘자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 음악이 피어나듯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작은 쉴 곳이 마련됐다. 나무와 꽃, 채소도 그가 빚어낸 음악 위에서 생명을 이어갔다.

중국 후한서에 ‘요차불피(樂此不疲)’라는 말이 있다. 즉 ‘좋아서 하는 일은 지치지 않는다’고 했듯이 단 한번 뿐인 삶을 비우고 채워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공연이 적어진 이유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고향에 농사를 지으며 멋진 문화공간을 갖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의 생각대로, 항상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결과를 내놓는 열정과 정신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휘자 최선용 대표는……

마에스트로 최선용 대표의 굵직굵직한 인생사와 성공담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다이내믹하다. 세계적인 성악가 소프라노 조수미의 전속 지휘자로도 5년 간 활동하기도한 그는 평택 중, 서울예고,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이태리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수료했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벨링크 음악원에서 Diprom을 획득했다. 그리고 오페라의 거장 마르크스 에르데이, 쟈코모 쟌니에게 오페라, 오라토리오 전문 지휘를 사사했다.

한편 그가 음악에 천부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찾아준 사람은 음악선생님이었다. 평택중학교 2학년 때 음악선생님에 의해 거의 반강제적으로 밴드부에 가입하게 된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라 방과 후에도 늦게까지 연습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밴드부를 그만두려고 했다. 선생님을 설득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부탁했는데 “음악으로 대성할 수 있다”는 음악선생님의 말에 오히려 어머니가 설득 당했다. 이후 중학생이던 그는 선생님 댁에서 기거하며 연습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 댁에도 자녀가 4명에다 시어머님과 시누이도 같이 살고 계셨는데 저까지 돌보시느라 사모님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까지도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자주 방문해 큰 절을 올리고 안부를 챙기고 있다.

이후 서울예고로 진학한 뒤에도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평소 “음악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듣다가 소위 말하는 촌놈이 체계적으로 배운 서울학생들을 따라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 학급 60명 중에 여학생이 50명이나 되는 교실에서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마저 수줍음이 많고 예민한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학생들도 적지 않은데 벌서는 일이 잦아지자 자존심이 상했고,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실제 적응하지 못해서 고만두는 학생들도 몇 몇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겼다. 그는 “꼭 이기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새벽 일찍 학교에 가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2학기가 되자 선생님은 물론 학생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다. 그리고 고2 때부터 트롬본에서 호른으로 악기를 바꿨고, 서울 음대에 입학하게 된다.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유학생활을 마친 그는 서울시향 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또 한 번의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갔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무려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인생의 고비를 만나게 된다. 그 사고로 호른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자 다시 시름이 깊어졌다. 그런데 “너는 음악에 조예가 깊으니까 지휘를 하라”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오페라 전문 지휘자가 거의 없었던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 연구원 코스를 통해 작품별로 지휘를 배웠고, 또 밀라노, 헝가리 등 훌륭한 스승이 있는 곳에 찾아가 리골레토 등 오페라와 성악 쪽을 전문적으로 배웠다. 물론 그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의 발레와 라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이다, 라보엠, 사랑의 묘약 등의 오페라, 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콥스키 등 대부분의 교향곡과 서곡 등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국내 최다 공연을 지휘했다. 또한 유니버설발레단과 백조의 호수로 일본 10개 도시 순회공연, 한국-우즈베키스탄 수교기념 음악회, 한중수교 100인 성악가 갈라 콘서트, 월드컵, 아시안게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국제 영화제 등 국가행사 및 축하 공연에도 한국을 대표해 지휘했다. 또한 쇼팽 심포니 오케스트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심포니 오케스트라, 우크라이나 국립교향악단과 연주 및 녹음 등 해외에서도 다양한 레퍼토리로 활동해왔으며, 서울시향, 부산시향, 대구시향, 제주시향, 강릉시향, 코리안심포니, 프라임필하모닉, 서울심포니, 뉴서울심포니를 등 국내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까지 경기도립 팝스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을 역임하면서 뮤지컬, 영화음악, 팝, 대중가요,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몇 페이지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지휘자로서도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최선용 지휘자는 한창 때는 12월 한 달 동안만 무려 23번의 공연, 1년에 100개 이상의 공연을 지휘해왔다. 매 순간 독특한 감수성을 담아내 ‘시민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목표 달려온 그는 현재 국내 유일의 민간기업 오케스트라인 ‘린나이 팝스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으며,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와 뮤직홀을 오픈했다.

음악은 희미해져버린 지난 삶을 선명한 색으로 되돌려 놓는다. 뜨겁게 끓어오르던 청춘은 강렬한 햇빛 같은 여름의 시간으로, 전력을 다하며 삶에 진하게 녹아들었던 중년의 시간은 잔잔하게 물든 단풍 같은 가을의 시간으로 채색해 놓는다. 또 자연과 조화로운 가치를 알아차린 노년의 시간은 기억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끝으로 최선용 지휘자는 우리나라 음악계의 현실에 대해서 “유학까지 다녀온 재능 있는 후배들이 한두 번 무대에 올랐다가 더 이상 공연할 곳이 없어 레슨을 하거나 심지어 택배나 대리기사로 나가는 극한 상황에 몰리는 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안타깝다”고 말하며, “일선에 서있는 선배들이 음악적 기틀을 만들어서 후배들이 소속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고향을 사랑하는 음악가로서 인구 70만 명이 넘는 평택은 주한미군이 있는 국제도시의 특성이 있어 지역적 요건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며 특히 “국제적인 팝스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오페라를 비롯해 발레, 심포니, 가곡, 트롯 등 이 시대에 맞는 음악, 관객들이 좋아하는 음악, 국제적으로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공연을 할 수 있다면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어필했다.

그는 고요하고 단출해진 삶에 ‘고향’을 들여놓았다. 어느덧 고희를 맞이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또한 그의 열정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창밖 호숫가에 우뚝 서있는 단아한 소나무 한 그루가 그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자연이 주는 순수함이 영혼을 달래 주듯, 참 자아를 스스로 찾아서 그 방향을 향해 묵묵히 걸어온 그는 한 마디로 아름다웠다.

순수하고 맑은 자연과도 같이 우리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남에게 따뜻한 향기를 얹어주는 하루가 된다면 얼마나 삶이 아름다울까. 어느 날 문득, 전망 좋은 곳에서 원음에 가까운 음악과 차향이 생각난다면 뮤직카페’를 주목해보자.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맛있는 베이커리와 향기로운 커피의 조합이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오성용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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