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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회사법인 성은화훼유통센터, 신뢰로 일군 연매출 120억원 화훼유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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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회사법인 성은화훼유통센터, 신뢰로 일군 연매출 120억원 화훼유통 신화
  • 박동웅 기자
  • 승인 2023.04.15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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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 농업회사법인 성은화훼유통센터, 대규모 도소매 아울렛 화훼단지 농장 꿈꾸다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영화 ‘터미네이터’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영화배우이자 보디빌더이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단돈 20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와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상징적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2017년 미국 휴스턴 대학 졸업식에 연사로 참석해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자수성가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착각이다. 누구도 그럴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자수성가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남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있음을 깨달아야 지금이 바로 남을 도울 적기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람은 자칫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했다고 믿기 쉽지만 사회관계망 속에 있기에 온전히 홀로 일어설 수는 없다. 그리고 나를 일으켜 세워준 이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남을 위해서 베풀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성은화훼유통센터 박찬규 대표를 만나며 오래된 할리우드 배우가 떠오른 이유다.

겁 없는 임실 청년의 꽃을 향한 포부

설립 5년 차에 800평 규모에서 하루 물동량 최대 1억원, 연 매출 120억원. 봄을 맞아 가장 바쁜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이곳은 매일 경기도권의 다양한 화훼품종들이 들어와 전국으로 출하되는 대규모 화훼유통센터(이하 센터)다. 1986년도부터 시작된 꽃과의 인연으로 지금껏 오로지 꽃만 보고 살았다는 박찬규 대표는 스스로 이제 꽃에 대해서라면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할 정도로 업계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경기도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훼 도매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센터로 농가와 10만개 단위로 상품을 계약하고 상인들에게 물건 들어오는 시기를 알려주어 시즌마다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진 것 하나 없이 맨몸으로 뛰어들어 업계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 업계의 쓴맛, 단맛을 고통스럽지만 묵묵히 겪어왔다.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자란 박 대표는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돈 만원을 훔쳐 겁 없이 서울로 상경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꽃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1986년 당시 꽃집이 즐비한 서초동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급여는 안 받아도 좋으니 잠만 재워달라고 했습니다. 장사에 대해 배우려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들 어린 나이에 도망치듯 온 저를 선뜻 받아주지 않았죠. 눈도 많이 오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던 그때, 자신의 큰 아들과 동갑이라며 우선 자고 가라고 받아주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 밑에서 일하며 꽃 장사의 기반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뼈아픈 실패에도 굳건히 다져온 신뢰 

다음날 정말 장사를 배우고 싶은지를 재차 확인한 당시 사장님은 그렇다면 지금부터 알려주는 나무의 이름을 일주일 동안 다 외우면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고, 그렇게 일주일간 수백 가지 나무의 이름을 전부 외운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월급 6만 원에 새벽 5시부터 서초동 법원에서 서울고등학교까지 이삼백 집을 다니며 물건을 옮기는 일을 맡았다. 일주일에 두 번 쉬는 날에는 농장을 따라다니며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가져오는지 확인했고, 근무 후에는 대형 화환을 만들며 작업을 도왔다.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도매 유통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과천화훼집하장에서 2년간 일을 배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동탄에서 사업을 시작한 그는 당시 아파트 공기질 개선으로 유명해진 산세베리아를 수입해 홈쇼핑까지 납품하며 탄탄대로를 이어가던 중, 수입했던 10억 원 어치의 산세베리아가 냉해로 전부 팔 수 없게 되면서 뼈아픈 실패를 맛봤다. 동탄 신도시 개발로 받은 토지보상금과 하우스 뼈대까지 전부 팔았지만 빚을 다 갚을 수는 없었다. 장모님이 재기하라며 주신 3천만 원으로 방 하나를 얻어 새 출발을 다짐한 그는 이후 8년간 다시 화훼농협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남은 빚을 청산했고 5년 전 친구가 빌려준 하우스에서 지금의 성은화훼유통센터의 문을 열었다.

“지금이야 지나서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정말 당시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자식이 있기에 극복할 수밖에 없었죠. 빚을 갚아 떳떳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자식들에게 내 돈을 뜯기더라도 남의 돈은 단 10원이라도 빚을 져선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농가와 유통의 동반상승을 꿈꾸며​​​​​​​ 

이렇게 신용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유통사업을 시작했기에 센터는 이제 농가와 상인들 모두에게서 신뢰를 받으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다만 유통산업의 최전선에서 안타까운 일은 미비한 화훼 경매시스템으로 농가가 제대로 수익을 보전받지 못하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공급과 농가수익을 위해서는 가격이 고정되어야 하는데, 매번 달라지는 단가로 농가가 이익이 많은 작물만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일이 빈번해지며 수요예측이 어긋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표 입장에서는 농가가 애지중지 키운 작물의 가격을 높게 책정해주고 싶어도 품목포화로 불가능한 상황이 안타깝단다. 1차산업이 탄탄해야 그 뒤에 유통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는 그는 농가와 유통이 동반상승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유통단계가 너무 많아지면서 소비자 단가가 높아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소비자들과의 가격 갭을 줄여야만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으니 가격을 낮춰서 많이 판매할 수 있는 화훼아울렛 시스템에 대해서 고민해보라고 합니다.”

추운 겨울날 자신을 거둬준 첫 직장부터 큰 빚으로 어려웠던 시기까지 자신을 도와준 모든 이들,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히 거래를 이어주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는 박 대표. 만원으로 시작해 이제 120억 원의 매출까지 도달한 그는 이제 아울렛매장까지 확대해 도매와 소매를 아우르는 대규모 화훼단지와 농장을 꿈꾸고 있다. 화훼유통은 물론 고되지만 행복한 일이라며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그의 소박하고 정직한 마음이 농가와 유통가에 널리 퍼져 꽃처럼 아름다운 화훼단지로 정착하길 기원한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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