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향기로운 삶, 따뜻한 나눔이 있는 '고봉산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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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향기로운 삶, 따뜻한 나눔이 있는 '고봉산 길상사'
  • 오성환 기자
  • 승인 2022.02.0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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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대한불교조계종 고봉산 길상사주지 보산 현도 스님
영험한 ‘통일 미륵대불’, ‘남북평화통일 시대’ 예언

[KNS뉴스통신=오성환 기자]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로에 위치한 고봉산 길상사는 아늑한 수목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사찰로, 잘 조성된 경내는 부처님의 마음처럼 넓고 편안하다. 시민들에게는 편안한 쉼터, 열린 사찰, 또 언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길상사는 신도 뿐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사찰을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한 주지스님의 흔적이 여기저기 엿보였다. 그래선지 길상사의 분위기는 하나 같이 밝고 맑았다.

길상사를 방문한 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만난 보산 현도 주지스님은 너른 경내에 잘 조성된 나무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었다. “나무가 있어야 새도 날아오고, 사람도 온다”고 말문을 여는 주지스님은 “좋은 나무를 심어 시민들은 휴식공간으로, 또 아이들은 맑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경을 하고 있다”고 깊은 뜻을 밝혔다.

언제나 청빈의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천하고 있는 보산 스님은 10년이 넘도록 자장면, 피자, 떡볶이, 빵 등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 군부대나 경찰서, 그리고 지역의 배고픈 이웃에게 골고루 나눔 봉사를 해왔다. 복지의 사각에서 고통 받는 대중들에게 다가가 음식을 나누고, 삶의 지혜가 담긴 자비실천의 행을 몸소 보이며, 인과(因果)로서의 불교를 이해하도록 하는 수행자의 삶을 실천해 모범을 보였다. 이와 같은 자비실천은 스님의 연꽃같이 맑은 정신과 자비의 가르침이 담겨있어 사람들의 영혼까지 아름답게 바꿔나가고 있었다.

스님은 “승가의 삶이라는 게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출가하고 돌아갈 때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리”로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유해 내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이상”이라고 설파했다. 코로나로 인해 지쳐있는 사람들과 경기불황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우울한 소식 가운데에도 나눔과 베풂, 자비 나눔으로서 건강한 사회를 조성해가는 스님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였다.

한편 보산스님은 1996년, 인도 성지순례에서 기원정사를 참배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한국에도 기원정사처럼 부처님 성지를 창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스님은 한국으로 돌아와 천일기도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불사를 시작해 1996년 6월 고양시 일산 고봉산 자락에 길상사를 세웠다. 이후 시민과 함께하는 따뜻한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향기 가득한 희망을 나눈다

매주 화요일이면 길상사 보산 주지스님과 길상사 신도들의 봉사단체인 길상사 대길상공덕회 회원들이 모여, 100여 개의 빵을 정성스레 만들어 힘든 이들에게 자비의 나눔을 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빵 나눔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는 각 군부대와 경찰서, 사찰 인근 마을에 찾아가 떡볶이와 자장면, 피자 등을 보시하며 자비정신을 전파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닥쳐온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눔 활동에도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료급식이 중단되면서 급식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과 어르신 등이 적지 않았다”며, “그렇다고 굶는 사람들을 보고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릴 수 없어서 보관하기도 쉽고, 두 세끼 정도는 식사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을 우리가 직접 만들자는 것이 시작이었다”고 보산 스님은 전했다.

하지만 베이커리에 대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원이 한 명도 없는 터라, 빵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피와 스님의 원력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븐을 기부해 협력한 불자가 있는가 하면, 빵 기술을 전수해준 베이커리 회사 대표 등의 도움에 힘입었다. 그렇게 출발해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패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빵’, ‘건강을 고려한 맛있는 빵’이 탄생하게 됐다.

보산 스님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제대로 밥을 먹기 힘든 어린이, 복지사각지대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 빵 한 개에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 추위만 피할 수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면서, “대부분 돈을 많이 벌어서 남을 돕겠다고 하지만, 분수에 맞는 삶을 살며 남을 위하는 작은 선행, 보시행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잘 사는 길이다. 보시행이 일상생활로 젖어드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설파했다.

덧붙여 “이제는 구성원부터 빵 굽는 터까지 마련돼, 중단 없이 빵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봉사가 이어질 것”이라며, “음식을 먹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밀가루를 반죽하고 만든다. 드시는 분마다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란다.”고 진정한 종교인의 마음을 전했다.

한편, 매주 나눔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대길상공덕회는 보산스님의 원력으로 2017년 12월에 만들어졌으며, 인종·종교·국적·이념 등을 뛰어 넘어 온 세상에 자비를 베풀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서원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2018년 경기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며 공신력도 얻었다.

현재 대길상공덕회는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는 100여 명이 넘는 회원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의 선한 영향력이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후원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것은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고 조용한 봉사를 하는 점이다. 실제로 100여 명의 회원 중에서 불자가 아닌 이들도 더러는 있다. 여기엔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돕는데 있어서 어떤 종교를 믿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보산스님의 가치관이 담겨있었다.

옛말에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 베푸는 보시,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끼 베푸는 것만큼 큰 공덕이 있을까. 부처님이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는 이유도 깨닫자마자 보리수나무에서 일어나 중생들 구제에 나섰다. 또한 ‘사람은 모두 부처가 될 수가 있으니 희망을 가지고, 서로 존중하며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하는 삶을 강조했으며, 이를 실천하셨다.

사실, 그동안 불교계는 사회 변화에 더디게 조응해왔다. 기독교와 천주교가 이웃을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일 때 불교계에서는 내세우지 않고 음으로 도우며 불교의 소명을 다해왔지만, 이제는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사찰에 앉아 혼자 평안하다면 어려운 이들을 언제 누가 돌보겠느냐”는 보산 스님을 본받아, 이제 사찰에서도 팔을 걷고 광장에 나와야 한다. 그리고 불교가 갖고 있는 사명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대중들과 공유하고 나눠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평화통일의 길은 길상사에서 시작된다

길상사에서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면 현달산 정상에는 군부대 철책이 있고, 그 안쪽에 1200년으로 추정되는 된 커다란 미륵부처님이 보인다. 보산 주지스님은 2016년, 남북통일의 인연을 이루게 될 이 미륵부처님을 현달산 정상에 모셨다. 이 미륵부처님을 모시게 된 기이한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인천에 주석하고 계신 노스님이 우연히 길상사에 방문하게 됐는데 노스님은, “수년 내로 아주 영험한 큰 부처님이 오실 것”이라며, 그 부처님의 모습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또 “대략 1200년이 된 그 부처님이 오시면 꼭 현달산 정상에 모셔라. 그러면 그때부터 남북한의 평화통일의 길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달산 정상은 부처님을 모실 상황이 되지 않아 “이곳에서 모시겠다”고 하니, 노스님은 “그 부처님이 오시면 머지않아 남북통일이 이뤄지는데 반드시 모셔야 할 곳이 이산 정상이고, 그 일은 할 사람은 스님 밖에 없다”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보산 스님은 “부처님 오시는 날짜가 언제쯤 되겠느냐?”고 질문했는데, “날짜까지는 자세히 모르고 1,200년 정도 되신 영험한 부처님”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보산스님은 조금 의아해하긴 했지만 크게 무게를 두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정말 신묘한 일이 일어났다. 노스님이 당부했던 날로부터 4~5년이 지난 뒤에, 한 농부가 찾아왔다. 농부는 “우리 집 농장에 석불이 계시는데, 꿈에 부처님이 자꾸 나타나 고양시에 있는 길상사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 하셔서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그가 미륵부처님을 기증하겠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불상의 형태가 노스님께서 말씀하신 모습과 너무도 닮아 스님은 깜짝 놀랐다. 참 기이한 일이었지만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이고 인연인’가 생각했다.

이후 보산 스님은 미륵불을 모셔 와서 현재의 위치인 현달산 정상에 모셨다. 그리고 전문가로부터 고증을 받은 결과, 이 미륵불은 고려 시대 초기에 제작된 1,200년 된 미륵불인 것으로 밝혀졌고, 원래 현달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에 반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런데 미륵부처님을 모셔놓고 보니 보산스님에게는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현달산 꼭대기에는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그 자리에 주석하시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모시지 않는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후 스님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면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100일 기도에 들어간다. 그리고 문턱이 닳도록 군부대를 출입하고, 결국 부처님의 가피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부처님을 모시고 통일 미륵대불 점안식을 성대히 개최할 수 있었다. 이 부처님은 남북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 미륵대불’이라 불리고 있다.』

 

“아주 영험한 부처님이시라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들어가서 기도한다”는 보산스님은 안타깝게도 “군부대 안이라 일반인들은 입구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노스님의 예언대로 부처님의 가피, 또 보산 스님의 원력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미륵부처님은 먼 훗날 이 땅에 출현하셔서 중생을 제도할 미래 부처님이다. ‘미륵삼부경’에는 미륵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부지런히 덕을 닦고 노력하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보살을 만날 뿐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 제일 먼저 미륵불의 법회에 참석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했다. 혹자는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시는 부처님이라고 한다.

보산 스님은 “많은 불자들의 발길이 닿고 부처님의 가피가 두루 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전했다. 이어 “통일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통일이 된다면 이 통일 미륵대불이 계신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노스님의 예언을 그대로 전했다.

이후 지금까지 길상사에서는 군부대에도 자비 나눔을 펼쳐오면서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특히 한국전쟁 기념일 때마다 통일 미륵대불 앞에서 소중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돌아보며 “다시는 이 땅에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늘 소망하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법회를 열어오고 있다.

보산 스님은 “천년의 미소를 지닌 미륵부처님을 모신 길상사는 영험한 도량”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등으로 힘든 시기지만 평화로운 통일과 앞날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멈추지 않는 시계 ‘행복한 세상 만들기’

보산 스님의 ‘행복한 세상 만들기’ 시계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돌고 있다. “이제 맹목적으로 절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며, “우리 사찰에서는 오늘날 사회에 눈에 보이지 않게 가슴앓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보산 스님은 “중생의 근기에 맞추고 사회에서 필요한 사찰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웃돕기 외에도 최근 시작한 보산 스님의 행보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시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지역민들과 함께 고양시 주변 지역을 돌아보며 걷는 야외활동을 시작,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돌아보고, 신심을 단련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고양 누리길 14코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걸으며 화합을 다지고 ‘깨끗한 주변 환경 만들기’ 활동도 펼쳐진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에서는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문화 해설까지 곁들여져 걷기를 통한 건강, 역사 알기, 환경정화까지 세 가지를 한꺼번에 실천하고 있다.

보산 스님은 “제가 고양시 온지가 어느덧 25년이 됐는데 39개 동이 있다는 사실 외에는 고양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며, 그래서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건강도 찾고, 고양시의 산과 들, 하천, 마을 할 것 없이 구석구석 다니면서 변화된 것도 보고, 뭐가 부족한지도 보고, 우리 지역이 어떻게 발전해야 좋을지도 알 수 있으니 걷기 시작했다”고 깊은 뜻을 전했다.

그렇게 수행인 듯 수행이 아닌 듯 걷기 시작한 게 어언 17회 차를 지나고 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고양시를 먼저 돌아보고, 좀 더 활성화되면 이웃 도시도 한 번씩 보면서 이웃사랑을 만들어갈 생각”이라는 보산 스님은 “전국 사찰이 중심되어 더불어서 살아가는 공동체 운동들이 활발히 이뤄져서 지역사회를 견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의지를 전했다.

아울러 “복은 특정한 사람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복을 나누는 것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라며, “선인(善因)을 짓고 선연(善緣)을 잘 맺는 것도 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아무리 작은 것도 나누는 것 자체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며, 이러한 시대정신이 함께 해야 건강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설파했다.

덧붙여 “이제 위드 코로나(With Corona)시대로 진입했다. 위축되어 웅크리지 말고 나오셔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면역력을 키워서 건강해지셨으면 한다”며, “이 어려운 시대에 조금 더 큰마음을 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지혜를 모아, 코로나국난 극복을 해서 제2의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고로 “둘레길 걷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길상사 사무소에 연락하시면 토요일 오전 10시에 모여서 걷기 시작한다”고 말하며, “꼭 불자가 아니어도 되니 관계없으니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화 고양시로 자리매김 했으면……

고양시가 어느덧 인구 1백만이 넘는 고양 특례시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보산 스님은 “우리가 물질만 가지고 잘 사는 것이 아니고 문화가 있어야 도시가 발전하고 시민들이 행복해 진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적인 면이 발달되면 고양시민이 더욱 행복한 시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고양시를 대표하는 문화 랜드 마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물론 보산 스님 역시,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해 시민들과 함께하는 자리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지역 문화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관이 합동해 고양시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사실 길상사에도 2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60호 고양시 길상사 묘법연화경으로서, 판본은 중종 34년(1539년)에 덕유산 영각사에서 번각한 것이다. 보통 7권을 3책으로 제본하는데 비해, 이 판본은 처음부터 불상 복장용으로 찍어 내어 7책으로 가철해 제본하지 않고 복장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화재로 등록만 되어 있을 뿐, 국가지정문화재, 경기도지정문화재 등의 입간판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시에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고양시가 조금 더 눈을 뜨고 전통문화를 잘 발굴하고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보산 스님은 진흙탕 같은 싸움을 일삼는 정치인들에게도 한 마디 아끼지 않았다. “지역 곳곳에 불협화음이 많은 지금, 사회 지도층들은 탐욕을 앞세우거나 서로 비난만 하며 갈등 조장에 앞서지 말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높낮이에 맞춰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어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해줘야 한다”며, “리더는 마음을 비우고 인재를 기용해 젊은 세대의 미래를 위해 백년대계를 이루겠다는 그런 원을 살려서 이 세상의 부조리를 시정하고, 좀 더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투명하며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평화의 꽃을 피우고 평화의 열매를 맺으려면 평화의 씨를 뿌려야 하는데 분노·다툼·미움의 씨앗을 뿌린다”면서, “그런 씨앗을 심으면서 어떻게 평화의 꽃과 열매를 기다리는가”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사실 우리사회가 정이 넘치고 갈등이 없는 사회로 전환되려면, 결국 네 탓이 아닌, ‘나’라는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 아울러 보산 스님이 말했듯 정신적 가치에 기반을 둔 배려와 공존의 공동체적 삶과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끝으로 불자들에게 “모두가 어렵지만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지혜로운 불자로서, 주변의 아픈 가슴을 보듬어주고, 축 처진 어깨를 안아줄 수 있는 자애롭고 따뜻한 부처님을 닮은 불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힘들 때도 미소를 잃지 않고 웃을 줄 아는 지혜로운 불자가 되자”고 부탁했다.

찻잔의 차가 식는 줄도 모르고 스님과의 담소는 이어졌다. 스님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원력 때문일까. 스님의 모습이 더욱 밝고 빛나 보였다. 문득 미래 사회의 희망은 수행의 종교인 불교에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불자들을 향해 무소유의 나눔으로서 열린 길상사, 중생구제는 물론 사회봉사, 복지 구현 통해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길상사가 불교의 표본이 되어 한국불교의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일구는 모범이 되길 기대해 본다.

                                                             

오성환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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