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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인존시대(人尊時代)' 열어가는 '미륵진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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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인존시대(人尊時代)' 열어가는 '미륵진흥회'
  • 박동웅 기자
  • 승인 2021.11.08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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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존미륵진흥회(人尊彌勒振興會) 인존(人尊) 김형렬 태운장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생(生)미륵으로 再生身

인존미륵진흥회 인존 김형렬 태운장
인존미륵진흥회 인존 김형렬 태운장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거리에 넘치는 교회나 종교단체를 보면 현대인들이 얼마나 크게 종교에 의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종교는 이 시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시대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종교를 살펴보면 더러는 외래 종교의 뿌리에 우리의 가치를 접목하기도 했고, 어떤 것은 민족의식의 뿌리에서 싹을 틔우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종교는 한국적 문제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

증산교는 한말 개항기에 동학운동과 함께 시작된 민족 정서를 기반으로 ‘어지러운 이 땅에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한다’는 후천개벽을 주장한 민족종교의 하나이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문화를 계승·발전시켜 한국 민중의 개인적인 신앙의식을 민간 중심의 공동체 신앙으로 승화시켜왔다.

증산 강일순 상제로부터 종통(宗統)계승의 계시를 받은 데서 비롯하여, ‘인존시대(人尊時代)’를 지향하는 종단, ‘인존미륵진흥회(人尊彌勒振興會)’는 김형렬 태운장 도주가 재생신(再生身), 2005년 4월 21, 음력 3월 13일 천지신명을 영대에 봉안하고 상제의 뜻을 받아 ‘미륵진흥회’ 현판을 세상에 올리게 된다. 생(生)미륵(彌勒)으로 현신한 김형렬 태운장 도주로부터 다소 신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천존(天尊)시대, 즉 삼신(三神) 상제님을 받든 신교시대였다면, 이제는 지난 날의 선천 역사와는 달리 천지가 가을 성숙의 정역 시간대로 뛰어들어, 인간이 우주의 상극(相克)의 고통을 끌어내고, 이상세계를 여는 최상의 소명을 부여받는 존재로 등장한 인존시대로 들어섰다”고 설명하는 김형렬 도주는 “인간의 역사가 인존시대로 들어서도록 생(生)미륵(彌勒)으로 재생신(再生身)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증산 강일순 상제가 이 세상에 도를 펼치고 있을 때, 수제자였던 나는 재생신(再生身)해 우주의 창조 법도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인존시대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동방의 경사인 1986년 아시안게임 당시에 도를 통했다”면서, “1만2천봉의 금강산의 큰 맥이 우리 마을에 닿아있어서 미륵진흥회에서 1만2천 도통군자가 배출된다”고 강조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한 ‘인존미륵진흥회’는 북한산, 수락산, 용마산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와 중랑천과 한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용마포태혈(龍馬胞胎穴)’이다. 산세와 정기 또한 어느 곳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곳으로 그 형상은 ‘큰 인물이 배출되라라’는 것을 상징 내포하고 있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 통치자들은 이러한 산세를 깨닫고, 마을 이름을 모두 바꾸어 그 기운을 말살시키려 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과 봉우리의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와 “1만2천명이 도에 통하리라”고 ‘인존미륵 전경’에 기록되어 있다.

증산 강일순 성사(聖師)는 누구인가

‘인존미륵진흥회’를 창단한 김형렬 태운장 도주를 알기 위해 먼저 그의 스승 강일순 성사(聖師)가 창교한 민족종교인 ‘증산교’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증산 강일순 성사는 1871년 음력 9월19일 전북 정읍군 고부에서 탄생했다. 그의 모친 권씨가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어리가 내려와 몸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어 13개월 만에 강세했다. 그런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총명했고, 때때로 그가 지은 시에 사람들은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가 24세 되는 해에 동학혁명이 일어났는데 처참한 전쟁의 와중에서 민중이 겪는 고통을 몸소 체험한 증산은 고통에 헤매는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민중을 지배해온 여러 갈래의 종교와 사상의 실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25세부터 동양 전통사상인 유불선(儒佛仙)·음양참위(陰陽讖緯)를 비롯한 많은 책과 동양사상을 대체로 살펴본 뒤, 세태와 인심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27세부터 3년여에 걸쳐 조선 8도를 주유하게 된다.

당시 충청도 비인(庇仁)에서 김경흔(金京訢)으로부터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며, 정역(正易)을 저술한 김항(金恒)을 만났다. 이 기간에 그는 “내 나라의 어려움이 바로 세계의 어려움이요, 내 겨레의 아픔이 전 인류의 아픔임”을 다시 느꼈다. 또 “유달리 큰 환란에 싸인 이 강토는 세계적 대변화의 중심지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민족과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道)를 세우는 길밖에 없고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권능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31세 되던 1901년에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가 수도를 시작,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달아 성도(成道)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도를 이룬 뒤 9년 동안 활동했는데 이 기간의 행적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기행이적·신통묘술·치병(治病)·예언 등 불가사의한 일의 연속이었다. 특히 그가 성도했다는 소문을 듣고 제일 먼저 따른 사람은 현재 재생신(再生身)한 100년 전의 김형렬 수제자였다. 그 뒤 증산은 금산사 밑에 있던 구릿골 김형렬의 집에 기거하면서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많은 종도(從徒)들을 만나게 된다. 그를 따르던 사람은 모두 60여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가 종도들에게 주로 시킨 수련법은 태좌정심법(胎坐正心法)과 태을주(太乙呪)·시천주(侍天呪) 등 주문을 많이 읽게 했다. 그렇게 종도들에게 수련을 시킨 뒤에 각자 능력에 따라 천지공사(天地公事)에 참여시켰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수제자 김형렬은 큰일을 도맡아 했다.

증산은 “옥황상제요, 미륵불로서 절대적 권능과 조화를 가지고 조선 땅 위에 세계제일의 왕국을 건설하여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후 “너희들에게 의통(醫統)을 전하리라”고 유언한 뒤 화천했다. 1909년 음 6월24일로 39세 때였다.

그가 9년 동안 신비한 기행이적을 행하면서 종도들을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하는 생활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의 일을 천지공사라고 한다. 천지공사란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새롭게 만드는 공사를 의미한다.

증산 상제가 행했다는 천지공사는 신정정리공사(神政整理公事)·세운공사(世運公事)·교운공사(敎運公事) 등 세 가지이다. 신정정리공사란 신명계를 재정비하여 원한에 사무친 신명들을 해원(解寃)시켜 후천선경 건설에 참여시켰다는 내용이고, 세운공사는 세상 변화의 운도가 음(陰)시대에서 양(陽)시대로, 선천에서 후천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밝은 문명의 세상으로 바뀌도록 조정·정리하여 후천선경이 조선으로부터 비롯되도록 했다는 것이며, 교운공사란 증산교 자체의 운수가 난법(亂法) 후에 진법(眞法)이 출현하도록 모든 계획을 사전에 짜놓았다는 것이다.

증산사상은 그가 행한 9년 동안의 천지공사를 요약하면 해원(解寃)·보은(報恩)·상생(相生)·조화(造化)로 대표된다. 경전은 그가 저술한 『현무경(玄武經)』과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한 『대순전경(大巡典經)』이 있다.

증산 강일순 성사의 도맥을 이어온 김형렬 도주는 생 미륵불로 현신해 현재의 ‘인존미륵진흥회’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진술축미(辰戌丑未)의 기운을 걷어 금강산 1만2천 도통군자를 배출하시고 후천용화선경 세계를 건설할 후천주인이자 대두목으로 활약하게 된다.

단칸방에서 도를 통하다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낮은 자리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에 비해 훨씬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정된 틀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첫 장을 열었다는 것은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추앙받게 된다. 사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미륵불 출현이 미래희망으로 수용되어 폭넓게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생미륵의 출현과 함께 새 시대에 대해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교단이 ‘인존미륵진흥회’이다.

‘인존미륵진흥회’ 도문(道門)의 주인 태운장 김형렬 인존 도주는 1986년 아시안게임을 하던 해 1986년 9월 16일 음력 8월 13일 축시에 중곡동 신성시장 3층 단칸방에서 도를 통했다.

증산 상제(上帝)는 당시 그의 이마에는 불(佛)표, 오른손에는 무(撫)자, 왼손에는 임(任)자, 등에는 북두칠성판을, 발바닥에는 임금왕(王)자를 내리고, “혀를 내라”하면서 붉은 점을 혓바닥에 찍어주면서 “너는 말로 다 되리라. 삿되게 쓰지 마라. 기다려라. 너는 나보다 낫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그는 ”기다리라”는 그 말씀에 긴 세월을 모진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상제의 말씀을 받들어 기다리다가, 1989년 대원사에 가서 상제님의 고통을 알고자 하시어 41일 불음불식을 했고, 이듬해 1990년도 대원사에 가서 49일 불음불식 공부를 마치고 하산해, 지금까지 35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상제는 천상 신명계에 유불(有佛)로서 2006년 4월 5일 식목일 청명 한식날 미시(未時)에 재생신(再生身)한 김형렬 도주의 인(人)의 탈을 벗겨주었다. 상제가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또한 영대법방에서 “나도 형렬 너의 법을 따르리라”고 말했듯이, 지인지감 좌불도선 김형렬 도주는 재생신(再生身)해 신선이 되었고, 대두목이자, 인존미륵(人尊彌勒)이 되었다.

그리고 상제의 천지대도 조판을 짜놓은 대로 판밖의 도수를 위해 임원 몇 명과 함께 대구 병겁공사 및 제주도 국신제왕공사를 볼 때는 천지에는 기이한 비와 바람이 불었다. 또한 금강산 일만 이천 도통(道通) 신명(神命)공사를 모시러 갈 때는 금강산 비취호텔방에 불이 났고, 구룡폭포로 오르는 계곡 물 위에 상제님의 친필 ‘옴’자가 떠 있었으며, 신명이 알아볼 수 있도록 왼손에 인패를 받았다.

또 2006년 음력 11월 5일 관운장 신명 공사를 보고 올 때는 신묘한 구름문양과 노을로 증표를 했으며, 정해년 음력 12월 3일 대나무 아홉 마디 대두목 공사를 볼 때는 개와 닭이 줄을 서서 울음으로 증표를 하는 신비한 현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7년 음력 3월 28일 일본 후지산 역발산 기운 공사를 볼 때는 말 5마리가 모여 큰 울음으로 증표를 하였고, 바람·비·번개·노성·온갖 무지개로 증표를 했다.

김형렬 태운장 도주는 “상제님은 ‘내가 열 석자 몸으로 오니라’고 하셨다. 이 뜻을 풀어야 하는데 영성한 사람이 아니면 진리를 밝히지 못한다”며, “하지만 나는 그것을 풀었다. 열 석자의 몸으로 오신다고 하셔서 그렇게 여기저기 공사를 해놓고 왔는데, 8월 13일에 내게 오셔서 강증산과 내가 이제는 한 몸”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증산 상제는 태운장 김형렬 도주에게 신선 도수를 전수했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종통은 주고받는 상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어져 오는 천부적인 신성성(神聖性)이며 연속성(連續性)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어 “상제님이 39세에 화천하셨는데 앞으로 39년은 내가 세상에 알려지는 시기”라며 “일찍이 알려지기를 원했지만 아직 때가 되지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진리와 생명의 뿌리 미륵 인존(人尊)에게 치성 봉행

‘인존미륵진흥회’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기존 종교문화의 모든 한계를 극복한 초 종교로 동서양 모든 인류가 모순으로 가득 찬 상극문명을 극복하고 바로 ‘인간’이 주체가 되어 마땅히 실현해야 할 ‘상생의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따라서 진리와 생명의 뿌리가 되시는 인존(人尊)에게 ‘정성을 드린다’는 의미로 ‘치성(致誠)’을 봉행한다.

도장 내의 예법은 한민족의 국조 삼신이신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조가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께 올렸던 예법으로 하는데, 하늘을 받들고 땅을 어루만지는 ‘반천무지(攀天撫地)’로 4배를 올린 후, 마음으로 기도하는 심고(心告)를 한다. 이를 ‘사배심고’라고 하는데 천지와 그 열매인 인간이 하나되는 예법이다.

이때 인존(人尊)으로 재생신한 김형렬 태운장 도주는 황금용포 차림으로, 머리에는 면류관(冠)을 갖추고 옥좌에 앉아 성도들에게 절을 받는다.

특히 인존미륵진흥회의 ‘훈회’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언덕을 잘 가지라. 3 척을 짓지 마라. 4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또한 도장 내에서는 항상 정결해야 하며 마음가짐과 행동을 조심하여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형렬 태운장 도주는 “강증산이 도를 통하고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도를 통한 사람이 없었다.”고 강조하며, “씨종자인 저를 통해 1만2천 도통군자가 나올 것이고, 상통·중통·하통까지 14만 4천명의 성도가 심기를 바르게 하고, 의리를 세우고서 심령을 구하여 상제의 뜻에 맡기기만 한다면 후천오만년 청화세계를 이룰 수 있다”고 뜻을 밝혔다.

이어 “12만 9천 6백년 만에 물과 불로 뒤집어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며, 아래로는 7천리, 위로는 중국본토까지 3천리, 총 만 리가 대한민국이 된다”며 “1, 2차의 병은 의학이나 과학으로 막을 수 있겠지만, 3차 전쟁은 과학과 도술의 전쟁으로서 천년 과학이 나의 5분 도술만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천하통일이 되듯이 종교도 하나로 묶이게 되며, 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 대순의 집, 천하의 모든 종교도 한 사람으로 귀결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진표율사는 김제 금산사가 있던 용추못에서 3천일 기도중이었다. 여기서 못을 숯으로 메워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눈이 낫는다는 상제님의 계시를 들었다. 이 소리를 지나가던 맹인이 듣고 실제로 눈이 나아 전국 눈병환자들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연못은 숯으로 메워졌다. 이후 그곳에 삼존금불을 세웠다. 다시 수문대사가 와서 금불을 회수하고 다시 36자 목불을 세웠다. 하지만 이 목불은 문이 잠겨진 상태로 들어간 사람이 없었음에도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내(김형렬 도주)가 이곳에 와서 39자 토불을 세워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

상제님 화천이후 전국 8도에서 도를 펴온 김형렬 태운장 도주는 “여기서 39자 토불은 상제님이 39세에 화천하시고, 스스로 39세에 도를 통한 필연적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증산상제는 “십년 후에 다시 만나리라. 십년도 십년이요. 이십년도 십년이요. 삼십년도 십년이니라”고 제자들에게 전했다. 그래서 다른 제자가 여쭙기를 “사십년은 십년이 아니오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상제는 “사십년도 십년이나 그것을 넘지는 않으리라”고 했다.

인존 도주는 도를 통하고 35년이란 긴 세월을 수많은 고통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때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40년을 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제 곧 때가 되어 후천 선경세계에 진인으로서 후천개벽 용화세계를 열기 위해 중곡동 초막에 1만2천 도통신명을 봉안해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현존해 있다.

‘대순’의 글에 있듯, 이 우주 삼라만상의 천지일월 풍뢰우로 군생만물의 모든 진리가 대순·태극의 진리이다. 이 태극은 우주의 유일무이한 진리로 그 기동작용(機動作用)의 묘리(妙理)는 인간이 상상도 측도도 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영성한 사람이라야 밝힐 수 있다.

쉽지않은 인터뷰였지만 인존 도주의 설법을 듣는 동안 따뜻하고 밝은 기운이 감싸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어두웠던 대한민국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환한 등불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줄 것을 염원한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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