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S뉴스통신=송호현 기자] 김정아(우리옷) 명장은 대한민국 한복의 패션화와 세계화를 이끈 디자이너 2세대로 충청남도 논산 가야곡(1959)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고향에서 보내고, 삭 바느질을 배위기 위해 전통한복 1세대인 최고의 권위자 이리자 선생의 수제자로 '생머리 소녀' 19세에 입문하여 대한민국 전통한복 명장으로 거듭났다.
그는 ▶1983년 김정아 우리옷 오픈 ▶85년 미팔군 드래곤힐 호텔 패션쇼 ▶86 아시아게임 축하 패션쇼 ▶88올림픽 축하 패션쇼(KBS주최) ▶일본 동경대사관 초청 출토복식 재현 전시회(3회) ▶아시아 전통복식 교류전(3회) ▶2002년도 한 일 월드컵 전야제(축하) ▶패션쇼 삼국시대 복식 ▶성균관대학교 궁증복식 수료 ▶전통복식 명인 ▶우리옷 공모전 입선 ▶우리옷 공모전대상 ▶한복 문화학회 산업 팀장 ▶월드미스유니버시티 전통한복복식위원장 ▶전국 여성회 수석 부회장직 등 명장이 걸어온 발자취가 한눈에 보인다.
대한민국을 빛낸 13인 수훈 대상 조직위원회가 김정아 우리옷 대표를 대한민국 한복의 패션화와 세계화를 이끈 디자이너로서 공을 높이 평가하여 전통부문 "전통문화공헌대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대한민국은 한복의 패션화와 세계화를 이끈 1세대 두 거장이 있다. 책속에 있는 한복을 끄집어낸 이리자 선생님과 한국의 전통을 세계화로 이끌어낸 이영희 선생님이 있다.
김정아 명장은 한복의 패션화와 세계화를 이끈 디자이너 1세대 이리자 선생의 수제자다. 이리자 선생은 책속에 있는 한복을 전통을 살려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거장으로 1966년 이리자 한복연구소를 설립하고 1975년 국내 최초 한복 발표회를 개최해 '한복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도입한 인물이다. 2020년 3월 21일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3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충남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어려운 살림 때문에 바느질을 시작해 작은 한복집을 연 것을 시작으로 1966년 이리자 한복연구소를 설립했다. 1970년에는 한국인의 체형을 보완해 주는 ‘이리자식 한복 패턴’을 만들어 보급했다. 이전까지 한복은 항아리처럼 가운데가 볼록했다. 끝단이 일자로 떨어지는 모양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실루엣은 키가 작은 한국인의 체형을 왜소해 보이게 만드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고인은 밑단으로 갈수록 퍼지는 A라인 형태의 치마를 디자인한 것이다.
1975년에는 국내 최초로 한복 발표회를 열어 ‘한복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도입했으며, 1974년~1977년 미스유니버스대회 등 세계미인대회에서 최우수 민속 의상상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100차례가 넘는 한복 패션쇼를 개최했고, 프랑스 프레타포르테 쇼에도 참가한 바 있다. 고(故) 프란체스카-이희호 여사, 이순자-권양숙 여사 등 역대 대통령 부인들을 비롯해 유명인들의 한복을 디자인했으며,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한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국내 유일의 한복 전시관을 건립해 우리 전통 복식을 전시했으며, 사단법인 우리옷협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평생을 한복 발전에 헌신해 온 공로로 화관문화훈장과 신사임당상을 받았다.
나는 한복에서 인생을 배웠고 철학을 배웠다. -이영희-
전통한복 벗으면 드레스가 된 현대화를 세계화 중심에 넣은 이영희 선생은로 대구에서 출생(1936.3.26)한 그녀는 199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2001년 6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또 2005년 APEC 정상회의 때는 APEC 정상회의의 이벤트였던 전통의상 부문에서 참가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한 바 있다.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이다.
이영희 선생은 전업주부로 살다가 마흔에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평생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위해 매진해 왔다.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여, 2000년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패션 공연, 2004년 뉴욕 맨해튼에 박물관 개장, 2007년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에 한복 12벌 영구 전시, 2008년 구글 ‘세계 60인 아티스트’에 선정, 2010년 한복 최초로 파리 오트쿠튀르 무대에 오르는 등 그가 처음 내딛은 발걸음은 그대로 길이 되었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다만 늦은 ‘마음’이 있을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채 2018년 5월 17일 82세를 일기로 별세했고, 그해 10월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송호현 기자 songhohyeon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