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8 21:01 (월)
[특별기획] 정법의 원류를 찾아서 - 정맥선원 조실 '농선 대원 선사'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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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정법의 원류를 찾아서 - 정맥선원 조실 '농선 대원 선사'에게 듣는다
  • 박동웅 기자
  • 승인 2021.01.19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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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란 깨달아서 100% 마음이 내가 된 삶을 사는 공부"
석가모니로부터 직계 전승되어 경허, 만공, 전강 선사로 이어진 육조정맥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찍이 보리수 아래에서 우주와 인생을 관철(觀徹)하는 최고의 진리를 깨달아 영원히 자유롭고 평안하며 고요한 상태인 열반을 성취하였을 뿐 아니라, 온갖 탐욕과 무지와 격정 속에서 미망의 삶만을 거듭하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위대한 가르침의 횃불을 들어 미혹한 중생을 일깨웠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생명체가 제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이고, 자신의 마음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진리의 실상은 불성(佛性)을 깨달아야만 알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불교에서는 ‘참 나’를 깨달으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인 행복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지구의 생존 자체는 불교를 통한 인간의 정신 혁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정이 넘치고 갈등이 없는 사회로 전환되려면 불교에서 강조하는 ‘나’라 하는 ‘참 나’부터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참 나’를 깨닫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말로 설명할 수도, 경전을 통해 표현될 수도 없는 이심전심(以心傳心)법이다.

이는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고, 그 체험은 또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영산회상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문을 할 때, 대중들에게 꽃을 들어 보이자 대중들은 모두 그 뜻을 몰라 묵묵히 앉아 있었지만 오직 마하가섭만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처님은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 나에게 있으니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라고 말하였다.

이로써 가섭존자는 전법의 증표로 가사와 발우를 받으며 부처님 법을 이은 첫 번째 조사가 되었다. 이러한 이심전심법은 인도의 28조 보리 달마 대사까지 이어졌고, 달마 대사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져서 중국 선불교 법통인 33조 육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크게 융성하였다.

우리나라에 선종이 처음 도입된 것은 통일신라 시대였는데, 이 시기의 승려들이 유학길에 올라 혜능 대사의 후손들로부터 선법을 전해 받아 돌아왔고, 고려 시대에 이르러 태고 보우 선사가 석옥 청공 선사의 법을 이어받아 ‘정맥(正脈,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직계로 이어져 온 법맥)’의 계보를 잇게 되면서 선종이 크게 부흥하였다.

이렇듯 융성해진 선맥은 한국 선불교를 더욱 굳건하게 하여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했던 조선 시대를 거쳐 오면서도 불법이 흐트러지지 않고 근현대까지 내려올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시기에 국가의 대사를 도우면서도 선의 정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한 63조 서산 휴정 대사와 무애행으로 이름을 떨치고 걸출한 제자를 배출해 수많은 선문을 열어 보인 75조 경허 성우 선사는 이러한 ‘정맥’을 수호하여 육조 대사의 선풍(禪風)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근현대 한국의 ‘정맥’은 경허(鏡虛) 선사로부터 76조 만공(滿空) 선사, 77조 전강(田岡) 선사에 이어 78대 농선 대원(弄禪 大圓) 선사로 계승되었다.

본지에서는 제77조 전강 선사의 법맥과 용성 진종 선사의 강맥을 한 몸에 받은 제78대 농선 대원 선사를 만나 ‘올바른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청해 들었다.

성불사 대웅전
성불사 대웅전

대원 선사는 1953년 18세가 되던 해에 일찍이 깨달음에 뜻을 두고 구도에 올라 이듬해 해인사에서 출가했으며, 1962년 대구 동화사에서 전강 선사의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 포천에 위치한 국제정맥선원을 본원으로 광주·부산·해남·청도 등 전국 6개 선원의 불사와 교화, 역경, 저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대원 선사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본래의 진면목인 ‘참 나’를 깨달아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고, 본래 갖춘 지혜와 능력을 꽃피우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불교인들이 신뢰를 얻으려면 “스님은 스님다워야 하고, 불자는 불자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다움이란 계율을 지키고 수행에 전념해 깨달아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고, 불자다움이란 부처님의 마음으로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신념을 갖추고 불교정신을 가정과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다스려 가기 위한 실천 덕목으로 육바라밀을 강조했는데, “자비의 마음으로 베푸는 보시의 삶, 자신을 다스려 그릇됨이 없도록 하는 지계의 삶,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이겨내는 인욕의 삶, 그리고 항상 밝고 맑은 정신과 마음이 되기 위해 닦는 정진의 삶, 나의 참모습이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깨닫기 위해 내면을 비추어 보는 선정의 삶, 그리고 지혜로운 삶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자비와 행복을 나누고 실천하는 것이 불교인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설파했다.

이룬절 지장보살상
이룬절 지장보살상

깨달음의 세계

사람의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생각하는 기능, 기분이나 감정 등을 ‘마음’이라고 알고 있다. 또 마음이나 기분은 아침이 다르고, 지금이 다르며, 내일은 또 달라지면서 자꾸자꾸 변한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하나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겪고 있는 고통, 번민, 방황, 불행 등 모든 것은 참된 마음을 모르고, 허상으로 만들어진 그림자와 같은 마음에 집착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실체를 바로 터득하는 것이다.

선(禪)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본성을 보면 구경에는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에 대해 대원 선사는 “우리 불법은 달리 말할 것 없이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깨달아서 100% 마음이 내가 된 삶을 사는 공부이다”라고 말했다.

선종의 주된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은 선지식이 제자에게 화두를 주면 제자는 그 화두가 타파될 때까지 일구월심으로 참구하는 것이다.

대원 선사는 “모든 간화선은 듣는 사람의 이해능력에 맞춘 수기설법(隨機說法)으로서 지도자가 개개인의 근기에 따라 어떻게 이끌어주는 지가 중요하다”며, 그래서 “참선을 하더라도 때때로 지금 공부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탁마하고, 바로 이끌어주는 그런 수행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눈뜬 이가 나오지 않는다. 한국 선의 맥이 끊어질까 염려된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화두 참구를 하는 제자는 일어나는 경계와 의문을 끊임없이 스승에게 일대일로 물어서 탁마와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을 선방에서는 독참(獨參), 청익(請益)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중을 경책하고 수행의 방향을 잡아 줄 필요가 있을 때는 소참법문(小參法門)을 통해서 선지식의 뜻을 전달한다.

대중수행인 좌선(坐禪)과 더불어 독참과 청익 그리고 소참법문은 간화선 수행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선종에서는 모든 사람이 처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을 닦아서 자기의 본성을 보아 부처를 이룰 것을 근본종지로 삼고 있다.

대원 선사는 “진리는 자신의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다. 화두를 통해서 자기의 본래면목을 회복하게 되면 그것이 곧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처님이나 중생이나 근본 성품은 다르지 않다”고 전하며, “다만 부처님은 부처의 성품을 깨달아 쓰지만 중생은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처럼 성품의 능력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본래 갖춰져 있는 성품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점은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어야만 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재가에서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다”면서 “중국의 방 거사, 인도의 유마 거사, 우리나라의 부설 거사도 재가에서 수행한 월등하게 뛰어난 분들이다. 재가에서 깨달은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앞에서 승가가 모범적으로 먼저 잘 닦아야 재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며 출가의 의미와 필요성도 짚어주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떠나서, 단 한 시간이라도 다른 생각 없이 오롯이 삼매에 드는 것을 길들이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하며, “그 어떤 일보다 우선 깨달아 마음이 내가 된 삶을 살자”고 당부하였다.

선사의 삼매(三昧)체험

1936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한 대원 선사는 5세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어린 나이에 바닥에 원상을 그리며 ‘유아독존이로다’라는 말을 중얼거렸고, 9세 때에는 ‘하늘 저 밖에는 그 밖이 있을텐데, 그 밖에는 또 그 밖이 있을텐데, 그 밖에는…’하고 끝없이 생각하다가 ‘나’와 모든 경계를 잊어버리고 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18세부터는 오직 깨달음에 뜻을 두고 전국을 방랑하는 구도의 행각 길에 오르게 된다. 대원 선사는 18세가 되자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 답을 찾지 못한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무인도에 들어가고자 떠났으나 뱃삯이 부족하여 전라도에서 제일 먼 섬인 비금도라는 섬에 가게 된다.

비금도에는 섬으로는 드물게 서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그곳은 이월제 스님이라는 청정한 노장 비구 스님이 40년간 화두선을 하고 있던 사찰이었다. 그곳에서 대원 선사는 반야심경 설법을 듣게 되는데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이다)’ 대목에서 뇌리를 스치는 경이로운 체험을 얻었다.

여기서 색(色)은 몸을 뜻하고 공(空)은 마음을 말한다. 색과 공이 둘이 아닌 이 경지는 어렸을 때 경험했던 이름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었던 경지와 하나가 되어 막힌 숨통이 터지듯 열리면서 질문이 쏟아졌다. 이러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해 질의 응답하던 중, 월제 스님이 말했다.

이룬절 대웅전
이룬절 대웅전

“학생은 정말 전생에 불법을 많이 닦은 사람이다. 40년간 선을 한 나도 아직 그 경지를 모른다. 너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주 다보사에 계시는 전강 선사님 뿐이다” 하면서 친필 소개편지를 써주었다.

그러면서 전강 선사를 뵙고 법을 받으면 꼭 자기를 구제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는 편지를 가지고 전강 스님을 찾아 다보사로 떠난다. 하지만 다보사에 전강 스님은 없었고 그가 만난 사람은 이우화 라는 인가받은 스님이었다.

그는 우화 스님으로부터 “전강 스님은 돌아다니시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정도 들른다”라는 말을 전해 듣는다.

전강 스님을 기다리며 다보사에서 기거하던 중, 당시 행자였던 그는 법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는데 “이 뭐꼬”라는 화두 법문을 듣는 순간 그대로 화두삼매에 들어버렸다.

그렇게 화두삼매에 들어 몰입이 된 채 콩밭을 매라고 하면 콩도 잡초도 매어버렸고, 깨밭을 매라고 하면 깨와 잡초까지 다 매어버렸다. 그리고 6.25 전몰 위령재 준비를 위한 심부름을 가는 도중에도 다보사 밑에 있는 경현리 저수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에 다시 삼매에 들어 심부름을 가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서 있다가 해가 지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돌아와서 재 준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그는 수시로 삼매 가운데 있었지만, 우화 스님은 물론이고 절의 신도들 사이에서는 ‘말썽만 피우는 행자’로 많은 구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늦가을에 발생한 일로 인하여 그간의 오해를 풀고 우화 스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

그날도 그는 메주를 만들기 위해 불이 타고 있는 아궁이 앞에 앉아 콩을 삶다가 또다시 삼매경에 들게 되었다. 그래서 부엌 아궁이에 잔뜩 통나무를 넣어놓고는 콩 삶는 방에 앉아 있다가 콩이 모두 타버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는 그때 우화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 몽둥이로 마루를 내려치면서 “야 이놈아! 당장 나와라!”하고 주위 산천이 울릴 만큼 소리를 질렀다.

그가 삼매에 들어 그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앉아 있자, 우화 스님이 그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려고 하다가 잡았던 멱살을 놓고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방 안은 펄펄 끓는 가마솥 같아서 잠시도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오르는 듯 뜨거운 방바닥에 앉아 있는 그에게 “야! 너 이리 나와 봐라”고 하자, 천천히 기어 나온 그의 바지를 벗겨 불에 덴 자국이 전혀 없이 깨끗한 것을 확인하고는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대원 선사가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자, 우화 스님은 그제야 그가 여태 화두삼매에 빠져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뜨거운 방바닥 위에서도 태연한 젊은 행자의 모습에 우화 스님은 “오늘부터 영산각에 올라가서 네가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공부하라”고 말했다.

그 뒤로 대원 선사는 묵언을 철저히 지키면서 하루 한 끼만 먹고 용맹하게 정진했다. 모두가 그를 일컬어 ‘벙어리 행자’라고 부를 정도로 쉬지 않고 분발했으며, 일념으로 수행정진의 세월을 보냈다.

육조사 대웅전
육조사 대웅전

소나무 바람 스치는 한 소리에 활연대오(豁然大悟)

1954년, 대원 선사는 박인곡 선사를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했으며 자운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가 박인곡 선사를 시봉하며 지내던 어느 해, 강원도 강릉 칠성산 법왕사에서 탄허 스님을 모시고 80명이 100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했는데, 훗날 종정이 된 혜암 스님과 단둘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100일 정진을 마쳤다 한다.

또 1956년에는 전북 고창 선운사를 혼자 정화하여 임원강 스님을 주지로 임명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또한 같은 해 고창 선운사 도솔암에서 홀로 용맹정진하다가 소나무에 바람 스치는 한 소리에 활연대오(豁然大悟, 마음이 활짝 열리듯이 크게 깨달음을 얻는 일)하여 그 자리에서 막힘없이 오도송을 읊었다.

제1 오도송

『이 몸을 끄는 놈 이 무슨 물건인가? (此身運轉是何物)

골똘히 생각한 지 서너 해 되던 때에 (疑端汨沒三夏來)

쉬이하고 불어온 솔바람 한 소리에 (松頭吹風其一聲)

홀연히 대장부의 큰 일을 마치었네 (忽然大事一時了)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땅이런가 (何謂靑天何謂地)

이 몸이 청정하여 이러-히 가없어라 (當體淸淨無邊外)

안팎 중간 없는 데서 이러-히 응하니 (無內外中應如是)

취하고 버림이란 애당초 없다네 (小分取捨全然無)

하루 온종일 시간이 다하도록 (一日於十有二時)

헤아리고 분별한 그 모든 생각들이 (悉皆思量之分別)

옛 부처 나기 전의 오묘한 소식임을 (古佛未生前消息)

듣고서 의심 않고 믿을 이 누구인가! (聞者卽信不疑誰)』

오도송을 읊은 후 대원 선사는 “어제의 너는 오늘의 내가 아닌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너였구나.”라고 말하고, 연이어 다음과 같은 다른 송을 읊었다.

『환으로써 환을 멸하니

멸해서는 멸함도 없음이여

삼삼은 뒤집어도 아홉이다』

그 후, 대원 선사는 도솔암을 떠나 김제 들을 지나다가 석양의 해와 달을 보고 제2 오도송을 읊게 된다.

제2 오도송

『해는 서산 달은 동산 덩실하게 얹혀 있고 (日月兩嶺載同模)

김제의 평야에는 가을빛이 가득하네 (金提平野滿秋色)

대천이란 이름자도 서지를 못하는데 (不立大千之名字)

석양의 마을길엔 사람들 오고 가네 (夕陽道路人去來)』

대원 선사는 경봉 선사, 하동산 선사, 고봉 선사, 설봉 선사, 금봉 선사, 효봉 선사, 금오 선사, 춘성 선사, 청담 선사, 전강 선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지식을 두루 참문(參問)하여 깨달음의 경지를 인증을 받았으며, 이후 전강 선사만을 유일한 스승으로 믿고 모셨다고 한다.

전강 선사의 인가(印可)를 받다

선운사 도솔암에서 활연대오한 대원 선사는 이후 스승을 찾아 자신의 깨달음을 점검받는 인가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가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깨달음을 스승이 인증하고 제자가 전해 받아 끊임없이 그 맥을 이어가는 법도이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말세에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징표이다.

대원 선사는 이러한 인가를 통하여 스승인 전강 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와 부송(付頌)을 받아 전강 선사의 법맥을 잇게 된다. 1962년, 대구 동화사 하안거 결제 중 대원 선사는 전강 선사에게 인가를 받게 된다.

전강 선사는 대원 선사의 3연으로 되어있는 제1 오도송을 들어 “깨달은 바는 분명하나 대개 오도송은 짧게 짓는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원 선사는 김제 들을 지나다가 석양의 해와 달을 보고 문득 읊었던 제2 오도송을 일렀다. 제2 오도송을 들은 전강 선사는 그와 같은 경지를 담은 게송을 이 자리에서 즉시 한 수 지어볼 수 있겠냐고 하였다. 대원 선사는 곧바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바위 위에는 솔바람이 있고 (岩上在松風)

산 아래에는 황조가 날도다 (山下飛黃鳥)

대천도 흔적조차 없는데 (大千無痕迹)

달밤에 원숭이가 어지러이 우는구나 (月夜亂猿啼)』

전강 선사는 위 게송의 앞의 두 구를 들을 때만 해도 지그시 눈을 감고만 있다가 뒤의 두 구를 마저 채우자 문득 눈을 뜨고 기뻐하는 빛이 역력했다고 한다. 전강 선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물었다. “대중들이 자네를 산으로 불러내고 그 중에 법성(현 진제 종정스님)이 달마 불식(不識)도리를 일러 보라 했을 때 ‘드러났다’라고 답했다는데, 만약에 자네가 당시의 양무제였다면 ‘모르오’라고 이르고 있는 달마 대사에게 어떻게 했겠는가?”

대원 선사가 대답했다. “제가 양무제였다면 ‘성인이라 함도 설 수 없으나 이러-히 짐의 덕화와 함께 어우러짐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하며 달마 대사의 손을 잡아 일으켰을 것입니다.” 전강 선사가 탄복하며 말했다. “어느새 그 경지에 이르렀는가?” 대원 선사가 답하였다. “이르렀다곤들 어찌 하며, 갖추었다곤들 어찌 하며, 본래라곤들 어찌 하리까? 오직 이러-할 뿐인데 말입니다.”

이런 철저한 검증의 자리가 있었던 다음 날, 전강 선사는 주지인 월산 스님 입회하에 다음과 같이 전법게를 전해 주었다.

『부처와 조사도 일찍이 전한 것이 아니거늘 (佛祖未曾傳)

나 또한 어찌 받았다 하며 준다 할 것인가 (我亦何受授)

이 법이 2천년대에 이르러서 (此法二千年)

널리 천하 사람을 제도하리라 (廣度天下人)』

그렇게 전강 선사의 인가를 받은 대원 선사는 결제 중에 동화사의 포교당인 보현사로 내려가 교화에 힘쓰라는 전강 선사의 명을 받는다. 대원 선사가 보현사로 떠나던 날, 전강 선사는 미리 적어 두었던 부송을 전해 주었다. 인가 과정에서 전법게에 부송까지 함께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한다. 부송은 다음과 같다.

『어상을 내리지 않고 이러-히 대한다 함이여(不下御床對如是)

뒷날 돌아이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리니(後日石兒吹無孔)

이로부터 불법이 천하에 가득하리라(自此佛法滿天下)』

대원 선사는 전강 선사의 명에 의해 보현사 시민선방에서 교화를 시작한다. 그는 보현사에서 설했던 금강경을 동화사에서 ‘바로보인 금강경’으로 출간하는 한편, 시대에 뒤떨어진 불교의 진흥을 위해 방송국 건립, 병원 건립, 승복 개정 등 대대적인 개혁을 종단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대원 선사는 잠시 승단에서 벗어나 거사로서 종단개혁 자금 마련을 위한 발명에 몰두했으며, 이로부터 은둔 생활이 시작되고 20년간의 오후보림 과정으로 이어진다.

20년간의 보림 이후, 대원 선사는 석도륜 스님의 청에 의해 1986년 광주에 선우회를 조직하면서 다시 교화문에 서게 되었다. 2007년 포천에 국제선원 대웅전이 완공되면서 선원 이름을 ‘정맥선원’으로 개명했고, 2009년에는 전강식(傳講式)을 통해서 남방 가야산 해인사 용성 대선사와 북방 금강산 장안사 회광 사선불의 양대 강맥을 전강 받아 이로써 선교양종의 법맥을 다 이어받게 되었다.

2018년 법맥을 승맥으로 이어가게 하기 위하여 고불식(告佛式)을 통해 다시 승려의 삶으로 돌아가 오늘날까지 불사와 교화, 역경, 저술, 발명 등에 매진하고 있다.

생사를 초월한 선사의 인연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죽음만큼이나 타인의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한 사람의 삶은 그의 죽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음이란 삶의 총결산이자 그의 삶의 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원 선사는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답했다. “마음을 깨달아 본래 지혜를 발휘하면서 일상을 영위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 생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고, 마지막 순간에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힘들어하지 않고 잠자리가 나뭇가지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가듯 그렇게 가볍게 이 몸을 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끝없는 고통의 길인 육도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히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열반의 경지에서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

대원 선사에게는 죽음을 자재한 세 분의 가까운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먼저, 그의 부친인 오림 거사는 독립운동가였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하동 칠불사로 피신을 하여 그곳 아자방에서 6년 동안 거하면서 수행하여 법의 지혜가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 오림 거사는 아자방에서 나오지 않고 화두를 받아서 공부를 하다가 해방 후에는 종정 스님이자 주지 스님인 송만암 스님이 계셨던 백양사에서 종종 설법을 하셨다”고 대원 선사는 회고하며,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의 요청으로 죽음을 12시간 연장했다”고 전했다.

그날은 대원 선사의 6촌 누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그래서 몸이 불편한 부친을 돌보기 위해 대원 선사의 누이와 대원 선사만 남았고, 집안 식구들은 모두 결혼식 참석을 위해 집을 비웠다.

당일 부친은 “오늘 밤 12시면 내가 간다.”라고 하고, 몸소 목욕재계를 하고 나서 요를 펴고 누워서 “사람은 누구나 다 한번은 간다. 너희들은 절대 두려워하거나 울지 말고 잘 봐두어라”하고 돌아가실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예언한 시각인 밤 12시가 되었고, 다시 한번 같은 당부를 한 오림 거사가 눈빛마저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어린 대원 선사는 두려운 마음에 오림 거사의 배를 마구 치며 “제발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매달렸다.

그러자 죽음에 임박해 초점이 없었던 부친의 눈빛이 다시 돌아왔고, “내일 낮 12시까지 연장하마. 그때까지 가족들을 오라고 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낮 12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열반했다.

그렇게 오림 거사는 죽음마저 연기할 수 있는 자재함을 보여 주었다. 또한 대원 선사의 은사이자 해인사 조실 스님이었던 박인곡 선사 역시 오림 거사와 마찬가지로 미리 일주일 전부터 열반 시간을 예언하였고, 예언했던 시간에 맞춰 열반하려고 하였으나 효심 깊은 제자 포공 스님의 간청으로 열반 시간을 늦추었다. 포공 스님은 한 사형 스님이 아직 해인사에 도착하지 못한 상황을 들어서 스승의 열반 시각을 조금이라도 늦추고자 하였다.

포공 스님은 “도인은 무슨 도인! 정말로 도인이라면 사형님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셔야지, 꼭 이 시간에 가셔야 합니까?”하면서 마루를 치며 통곡하였다. 마치 부모를 잃은 자식처럼 포공 스님이 서러워하자, 인곡 선사가 다시 살아나 말했다.

“내가 가야 할 시간이 이 시간인데 꼭 그래야 하겠느냐? 그러면 이후 12시간을 연기한다. 그때까지 오라고 해라.” 그리고는 퇴설당 천장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쥐고 다음 날까지 신심명 법문을 마치고 예언한 시각인 아침 8시에 열반하였다.

그렇게 인곡 선사는 1961년 7월 15일 하안거 해제일에 해인사 퇴설당에서 80여 명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열반에 들었다.

보림송을 설명하시는 대원선사님
보림송을 설명하시는 대원선사님

그리고 대원 선사의 법사인 전강 선사는 수행할 때 머리의 혈관이 터져 피가 흘러 나오도록 용맹정진한 끝에 23세에 깨달음을 얻었고, 깨달은 뒤 활발한 행각을 통해 선지식을 친견하고 법거량을 하여 25세에는 당시 7대 선지식의 인가를 한 몸에 받았으며, 이 중 만공 선사에게 전법게를 받아 그 뒤를 이은 분이다.

당대의 선지식들도 모두 탄복할 정도로 법이 뛰어나서 ‘지혜 제일 정전강’이라 불렸다. 33세의 최연소 나이로 통도사 조실을 하였고, 이후로 법주사 복천선원, 수도암선원, 그리고 대구 동화사 선원, 범어사 선원, 천축사 무문관, 용주사 중앙선원 등의 조실을 역임하였으며, 만년에는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의 조실로 일생을 마쳤다.

투철한 깨달음과 뛰어난 법으로 널리 교화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전강 선사는 1975년 1월 13일,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신도의 49재 법문을 마치고 오후 2시에 대중을 모이게 하고, 다시 법문을 하였다. 2시 5분경 “나 가야겠다”하고,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하며 자문한 후에 “악! 구구는 번성(飜成) 팔십일이니라”라고 한 뒤, 10분 후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고 좌탈입망(坐脫立亡, 앉거나 선 자세로 열반하는 것)했다.

화장을 하던 날, 화려한 불빛이 일었고, 정골에서 구슬 같은 사리가 수없이 나왔다. 그러나 사리를 수습하지 말고 몸을 태워서 서해에 뿌려 버리라고 한 전강 선사의 유지에 따라 사리는 수습하지 않았다.

대원 선사는 “굳이 드러내어 알리지 않아서 그렇지 불법 문중에는 이렇게 생사를 자재하여 죽고 살기를 마음대로 하신 선사들이 많다.”고 하며, “세 분의 열반은 단지 특별한 사람들의 열반이 아니다. 누구나 부처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깨닫기 위한 간절함이 있고 이끌어 줄 스승만 제대로 찾는다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마음을 깨닫고 보림을 하면서 이 몸으로 익혔던 업만 닦아내면 누구나 죽음의 문턱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 승화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기설법으로 이끌어 주는 인재양성도량

광주 정맥선원 성도사 법당
광주 정맥선원 성도사 법당

선(禪)은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깨달아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한 불조의 명맥이자 불법 진리의 골수이다. 이 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승의 지도와 점검이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맥선원에서는 선교양종의 정맥을 꽃피우기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도량으로서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승속과 종파를 초월해 입·방선을 허락하고 있으며, 대오견성(大悟見性)해서 생사해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육조 혜능 선사가 수기설법으로 납자들을 제접해서 견성하게 했듯이, 대원 선사도 깨닫기를 절실히 갈구하는 제자와 독대해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직접 깨달음을 지도한다는 점이 정맥선원 지도법의 특징이다.

대원 선사는 ‘이 뭐꼬’를 하는 그 놈을 스스로의 마음에 비추어 ‘이 뭐꼬’하는 그 실체에 사무쳐 들어가서 스스로가 ‘참 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방법으로 깨달음에 이른 이들을 많이 배출했다.

이러한 공부 지도법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 “지금은 수행자들의 근기가 10년 이상 한 가지 화두를 들고 타파해 낼 만한 인내심이 부족하고, 선이 만개했던 당송시대처럼 운력하면서 오가는 일상문답식 법거량으로는 깨닫기가 어려운 시대이므로 스승이 수기설법하여 이끌어서 열어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사진영전
조사진영전

정맥선원의 수행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눠진다.

제1 단계는 전국 각처의 선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대원 선사의 법문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발심하는 과정이다. 이 시기에는 깨달음의 지도를 받을 때까지 최소 3년 이상 수행하며,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 마음의 실경에 사무쳐 들어갈 수 있도록 관법수행 등의 방편으로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더불어 상기되지 않는 가운데 밝은 선정을 익히게 하여 누구라도 고요한 마음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제2 단계부터는 선사와 독대하여 깨달음의 지도를 받는다. 이때 대원 선사는 ‘이 뭐꼬’ 화두를 피상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화두 자체가 마음에 일체되게 하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마음에 사무쳐 들도록 지도하여 깨닫게 한다.

제3 단계에서는 지도를 받아서 '참 나'의 실체를 깨달은 이후에 스스로 결단신이 내려지면 그 마음의 실체에 비추어 하심과 베풂으로 업을 닦아 지혜와 능력을 쓰는 보림 수행에 들어간다.

특히, 대원 선사는 법문 후 질문시간을 통해 수행에 대한 궁금증을 직접 풀어주는 것은 물론, 실제로 체험한 경지를 짚어주며, ‘선문염송’과 ‘무문관’ 같은 공안법문 시간에 공안에 대한 개인 점검도 받게 한다.

불법과 세상법을 아우르는 이 시대의 진정한 선사

대원 선사는 현시대의 불자들에게 “올바른 수행을 통해 어리석음을 깨달아 불도를 이루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누리에 가득하도록 밝은 세상을 열어가고자 혼신을 다하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대원 선사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인재양성을 위해 팔만대장경 중 가장 고준한 전등록, 선문염송 외에도 화엄경, 금강경, 유마경, 반야심경, 벽암록, 무문관, 천부경, 환단고기, 법성게, 영원한 현실, 실증설, 세월을 북채로 세상을 북삼아, 선을 묻는 그대에게, 화두 등 2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경전과 수행에 관한 서적을 역경, 출간하는 등 후대를 위한 부처님의 일에 묵묵히 매진하고 있다.

대원 선사가 보현사에서 법문한 금강경이 책으로 나왔을 때 그것은 한국불교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대목마다 자문과 시송을 하고 과목을 치는 등 모든 면에서 새롭고 특별한 저서였지만 특히 중요한 대목에 있어서의 번역이 옛 스님들이 정통적으로 번역해 놓은 것과 달랐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해남정맥선원 대통사 관음상
해남정맥선원 대통사 관음상

금강경 사구게의 내용 중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는 구절이 있다. ‘무릇 있는 상이 모두 허망하니 만약 상이란 것이 상 아닌 것을 보면 여래를 본 것이다’라고 기존에 옛 스님들이 번역해온 앞의 두 구에서 대원 선사는 ‘있는 상이 모두 허망하다 하나’라고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대원 선사는 “‘있는 상이 모두 허망하니’라고 번역하면 앞의 내용과 서로 어긋나게 된다. 앞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몸과 모양은 몸과 모양이 아니라고 했는데, 부처님께서 있는 상이 모두 허망하다고 설하고 있다면 부처님의 안목은 수보리 존자의 안목보다 못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그 뒤에 ‘상이 상 아님을 보면’이라고 하셨으니 ‘상이 상 아닐 때 무엇이 허망한 상이란 말입니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설파했다.

여름 템플스테이
여름 템플스테이

이것이 많은 논란이 되다가 하동산, 정금오, 이청담, 이춘성 선사 등 만공 선사와 용성 선사 문하에서 인가받았던 선지식들의 점검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선사들이 “이것이 오히려 불법의 뜻을 제대로 드러낸 뛰어난 번역”이라고 인증함으로 해서 자칫 소각될 뻔한 금강경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일은 모든 선지식에게 대원 선사가 깨달음의 경지를 공개적으로 점검받고 인증받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대원 선사는 “불경이 잘못 번역된 것이 많아서 지금도 역경작업을 하고 있는데 화엄경 81권을 거의 다 마쳤다”며, “외국어본 출판과 전자출판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대원 선사는 “오직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며, “이미 1962년 26세 때부터 지구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왔다. 사실 현대의 자연재해는 모두 인재이다. 모든 생명이 좋은 환경에 살도록 하는 것이 도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러한 대원 선사의 신념에 따라 현재 정맥선원에서는 ‘사막화방지 국제연대’를 설립하여서 사막화된 지역에 수도관을 매설하여 바닷물을 끌어들여서 염분에 강한 식물을 중심으로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인 '사막 해수로 사업'과 지구의 심장 역할을 하는 사막에 바둑판처럼 사방이 막힌 플륨관 수로를 설치하여 과학적인 데이터에 의해 원하는 지역의 기후를 조절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심각한 천재지변 등으로 교통이 두절되어 식자재 유통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여 각자의 집에서 농사를 짓는 '울 안의 농법'도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대원 선사는 “지구가 심하게 온난화될 경우, 공기 오염이 심해질 경우, 해수면이 높아져 살 땅이 좁아질 경우 등을 대비해 우주에서의 삶보다는 바닷속에서의 삶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대원 선사는 “이렇듯 깨달은 이는 불법으로는 깨달음을 얻게 하여 영생불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인을 이끌어야 하며, 세상법으로는 일반인이 예측할 수 없는 백 년, 천 년 앞을 내다보아 이를 미리 앞서 대비하도록 만인의 삶을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끝으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류에 물들지 말고 불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고 올바른 마음가짐을 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코로나19와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어려운 시국이지만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부처님 법대로 사는 지혜로운 불자로 살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기회가 올 것이고 지금의 시련도 지나갈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특히, “일체유정무정(一切有情無情) 개유불성(皆有佛性), 즉 이 세상에 부처 아닌 것이 없다”며 “마음작용을 잘못 쓰면 자기도 다치고 남에게도 피해를 준다. 공익을 위해서 공익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진짜 이익이다"라고 전했다.

대원 선사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무조건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선승에 대한 선입견은 사라지고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86세의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불철주야 후대인들을 위한 일에 매진하고 있으면서도 ”부처님 은혜를 다 갚으려면 내가 하는 일은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라고 말하는 대원 선사의 불심에 어느 누군들 공경심을 갖지 않을까 여겨졌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대선사의 원력 때문일까. 대원 선사의 여시상(如是相)이 더욱 맑고 밝게 빛났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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