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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人] ‘박근영’ 충북 목칠공예 명장 “전통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충주소반’ 맥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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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人] ‘박근영’ 충북 목칠공예 명장 “전통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충주소반’ 맥 이어갈 것”
  • 이건수 기자
  • 승인 2019.04.11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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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 충주 특성 담은 ‘충주소반’ 전통 맥 잇는 자랑스런 충주人
- 단아한 멋과 깔끔한 곡선미 특징
- 2016년 충북 ‘목칠공예’ 명장 선정, 빛나는 기술력과 장인정신
'박근영' 충북 목칠공예 명장 <사진=이건수 기자>

[KNS뉴스통신=이건수 기자] 한 평생을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며, 2016년 선정된 충청북도 최초 목칠공예 직종 ‘박근영’ 명장은 ‘충주소반(小盤)’ 전승자이자, ‘충주소반’ 예찬론자이다.

충주 출신인 박 명장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충주소반’으로 특별상도 수상했고, 공예작가로 그동안 곳곳에서 전시회를 많이 열었다.

또한, KBS, MBC, EBS 등 방송뿐만 아니라, 각종 신문을 포함해 20여 차례 소개될 정도로 이미 유명한 충주스타이다.

‘박근영’ 명장은 “명장이 되다 보니까 작품 하나 만드는데도 조심스러울 밖에 없다. 왜냐하면 명장이 만든 작품에 대한 평가 때문”이라며, “아무래도 칼이 한 번 더 가게 되고, 완성된 작품도 또 다시 살펴보고 둘러보게 된다.”고 피력한다.

‘박근영’ 명장이 제작해 온 ‘충주소반’은 충청북도 내륙의 전통 목공예품이자, 대한민국 4대 소반(해주, 나주, 통영) 중 하나이다.

‘충주소반’은 은행나무를 수 년 동안 건조 후 제작하는데, 천판(상판)을 파내고 밑으로 운각을 만들어 중대 없이 다리 밑으로 족대를 붙이는 작업을 한다.

다리 형태는 밑 코끝이 안으로 굽어 들어가는 모양이 개다리 형상을 닮았다 하여 개다리 소반, 구족반(狗足盤)이라 했다.

‘충주소반’은 조선시대 신분제도로 인한 ‘독상(獨床)문화’와 일맥상통한다. 심지어 친구와도 동등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겸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독상문화’가 만연했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도가 폐지되면서,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겸상문화’가 발전하게 됐고, 사각형인 해주, 통영, 나주소반이 널리 보급될 수가 있었다.

이런 시대흐름에 ‘독상문화’가 점점 쇠퇴하고, 장인들도 ‘충주소반’을 멀리하게 되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이런 ‘충주소반’을 40년 소목장(小木匠/목재로 가구‧문방구 등을 만드는 기능자) 외길 인생을 걸어온 ‘박근영’ 명장이 홀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4대 소반의 명성을 드높인 ‘충주소반’이 박 명장의 손끝에서 수백 번의 손길을 거치고 온갖 정성을 쏟아 부은 고된 작업 끝에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이어오고 있다.

‘박근영’ 명장의 ‘충주소반’은 사각형의 3개 소반과는 달리 12각이나 원형으로, 단아한 멋과 깔끔한 곡선미가 특징이다. 내륙 깊숙이 자리한 충주만의 특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명장의 기술로 代를 잇고 전통을 지켜 나갈 것이며,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감각과 기술로 훌륭한 목공예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는 ‘박근영’ 명장.

40여 년 외길을 묵묵히 걸어가도록 그를 지탱하는 힘은 우수한 우리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그런 전통을 지켜가고자 하는 남다른 열정이었기에,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각종 자료들을 모아 기록으로도 남겨 놓을 계획이다.

그러면서 박 명장은 “각종 전시회나 다양한 활동으로 ‘충주소반’을 비롯한 지역공예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타 지방처럼 지자체에서 전시관과 체험관 등을 갖춘 관광지로 조성해 주길 희망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오늘도 걸작 ‘충주소반’을 만들기 위해 인내와 끈기로 은행나무를 수백 번 켜고, 깎는 일을 반복하는 고단한 작업 속에서도, 우수한 우리 전통을 이어가며 지역의 귀중한 문화적 가치를 창조해 내고 있는 ‘박근영’ 명장을 충주에 있는 중원공방에서 만나 ‘충주소반’에 대한 예찬론을 들어봤다.

'박근영' 명장(왼쪽)이 '충주소반'에 대한 역사와 특징 등을 이건수 총괄국장에게 설명하고 있다.

- 대한민국 4대 소반(小盤) 소개부터.

대한민국에는 4대 소반(小盤)이 있는데 해주소반(평안도), 나주소반(전라도), 통영소반(경상도), 그리고 충주소반(충청도)을 일컫는다.

내륙의 ‘충주소반’은 다리의 모양이 구부러져 개다리를 닮았다 해서 구족반(狗足盤), 개다리 소반이라고 했다.

해주, 나주, 통영소반은 바닷가를 끼고 있어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외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내륙의 ‘충주소반’은 우리 고유의 독창성을 함축하고 있다.

다른 3개 소반은 상 위 4개의 변죽(테두리)을 붙이는데 반해, ‘충주소반’은 통판으로 파낸다. 또한, 3개 소반은 사각형인 반면, ‘충주소반’은 12각이나 원형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해주, 나주, 통영소반들은 쉽게 소장하고 접할 수가 있으나, ‘충주소반’은 고미술품에 가도 보기가 귀할 정도로 구하기도 힘들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유교문화와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철두철미한 신분제도로 인한 ‘독상(獨床)문화’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대부 집에서는 50에서, 많게는 100개 정도를 소장했고, 서민들도 최소 5~6개 정도는 소장해, 가족 및 손님들에게 각자 상을 차려 줄 정도였다. 

심지어 친구와도 동등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겸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독상문화’가 발달했다.

이후, 조선 후기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독상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겸상문화’가 발전하게 됐다. 

이때부터 겸상용이라 할 수 있는 해주, 통영, 나주소반이 널리 보급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장인들도 돈벌이가 되지 않아 멀리하게 되면서 ‘충주소반’은 점점 사라져 갔다. 

이런 ‘충주소반’을 제가 온갖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맥을 이어 가면서 중원문화의 중심 충주의 전통을 알리는 데에 나름 기여하고 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11월, 충북 최초로 목칠공예명장으로 선정됐다.

'충주소반'은 다리 밑 코끝이 안으로 굽어 들어가는 모양이 개다리 형상이라 하여 개다리 소반, 구족반(狗足盤)이라 했다. <사진=이건수 기자>

- 그러면 왜 충주에서 만들어졌을까?

충주는 ‘해상’과 ‘육로’가 발달할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먼저, 남한강을 끼고 있어 수로를 이용해 해주, 나주, 통영과 시장판로가 열려 있었고, 남한강 수계를 따라 한양까지도 소반이나 생활필수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내륙으로는 충주에는 말을 관리하는 기관(연원)이 설치돼 있어, 역원들이 각종 장계를 올리기 위해 지방에서 한양으로, 왕명 등을 전하기 위해 한양에서 지방으로 갈 때는 충주에서 말을 바꿔 타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심지어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왕래할 때도 한양에서 반드시 충주를 거쳐 부산 동래로 향했다.

이렇게, 수로와 육로로 교통이 발달되면서 경제활동도 활발해지고,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충주는 번창하게 됐다.

이때 구족반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자생적으로 충청도를 대표하는 ‘충주소반’이 탄생하게 됐다.

그렇지만, 700여 년을 내려오면서 ‘충주소반’은 소멸돼 가고, 제가 마지막 전승자로 홀로 남아 이어가고 있다. 

만약 제가 손을 놓게 되면 충청도를 대표하는 목공예문화의 맥이 끊길까봐 그 점을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

반면, 나주나 통영에서는 해당 지자체에서 전시관과 체험관 등, 관광지로 잘 조성돼 있어, 만드는 사람이나 작품도 많아졌고, 찾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호주 시드니에서 청주공예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주최한 ‘선비의 밥상’이란 주제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청주의 음식 소개와 함께 충청도 밥상을 대표하는 제 작품 6점도 전시되고 있다.

또, 5월에는 충주박물관에서 저를 비롯한 충주의 3대 충북명장(한복명장 김정옥/ 창호제작명장 김영식)특별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단아한 멋과 깔끔한 곡선미가 아름다운 ‘충주소반’

 - ‘충주소반’의 특징은.

‘충주소반’은 충청북도 내륙의 전통 공예품으로서, 타 지역 사각형 모양의 소반보다 12각에서 느끼는 단아한 멋과 깔끔한 곡선미가 아름답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구전으로 들었던 얘기(설)로, 내륙에는 과거 맹수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밭농사를 짓기 위해 할 수 없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가다 보면 맹수에게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집안의 수호상징 동물인 개를 꼭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맹수가 다가오면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

때문에 수호 상징인 개다리를 모양으로 다리를 구부린 구족반(狗足盤)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왜 충주에서 구족형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대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다, 내륙이라 산세도 험하고, 사람과 친숙한 수호동물인 개의 다리를 본 따서 만들었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인 것이다.

‘충주소반’은 은행나무를 5~6년 동안 건조 후, 제작할 때도 소반 위 상판을 파내서 만드는데 이름도 하늘 천(天)자를 따 ‘천판’이라 했고, 천판을 받치는 밑으로 운각을 만드는데 구름 운(雲)자이다.

다리 형태는 밑 코끝이 안으로 굽어 들어가는 모양으로 제작하고, 다리 밑으로는 족대를 붙여서 완성한다. 또한, 12각(角)은 12지간을 뜻한다. 이처럼 ‘충주소반’의 모든 것에는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천(天)판 가공 모습

소반은 양반이나 서민들 모두가 소유하고 있는데, 소위 벼슬한 양반 집안이나 형편이 나은 집안에서는 옻칠을 해서 사용을 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비싸고 귀해서 옻칠을 못하니까, 색칠이 없는 백골 상태 소반을 구입해 값싼 들기름으로 칠을 해서 사용했다.

들기름은 나무에 쉽게 배여 썩지 않고, 음식물이 떨어져도 인체에 해롭지 않았다.

특히, 오래 닦을수록 윤이 나 방부제 역할까지 담당했다. 이렇게 실용적이면서 우수한 멋과 전통을 자랑하는 ‘충주소반’은 충주의 자존심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19세기 ‘충주소반’이 소장돼 있다.

그러나 나무는 돌이나 쇠와 달리 보존상태가 어려워,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오기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구족반을 만드는 장인들마저 지식이 일천해, 문서로 작성해 놓지 못하고,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왔다. 그래서 남아있는 소반이 귀하기 때문에 희소성이 매우 높다.

골동품상에 가도 많이 남아 있지도 않지만, 판매가격도 2~300만원선 고가로 책정된다고 한다.

충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나 음식, 의류 등은 많지만, ‘충주소반’은 거의 없다보니 누군가는 계속 이어져 가야 된다.

그래서 후학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제 살아 생전에 ‘충주소반’에 관한 모든 자료를 취합해 기록으로 남겨 놓을 계획도 갖고 있다.

'박근영' 명장이 충주소반을 제작하는 모습

- ‘은행나무’로 만드는 이유는.

‘충주소반’은 은행나무로 만드는데 가장 큰 이유가 가볍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밥, 국그릇이 대부분 사기였다. 

여기에, 소반마저 무거우면 음식을 얹어 나르는 여인들에겐 힘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옛날 할머님들이 키 크신 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담아 나르는 쟁반 역할까지 겸해야 하는 소반은 일단 가벼워야하기 때문에 은행나무로 만들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느티나무로도 만들지만 느티나무는 무겁기 때문에 실용성보다는 ‘장식용’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저는 지금도 은행나무를 고집하고 있는데 구하기도 어려워, 미리미리 전국 여러 곳에 부탁을 해서 연락이 오면 구입해 소반을 제작하고 있다. 

옛날부터 동네 어귀에 있는 은행나무를 잘못 베면 동네에 우환이 생긴다고 금기 시 했다. 실제로 나무를 베서 사고를 당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과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나무를 베기 위해서는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칠 때 오래된 나무에는 가스가 차 있기 때문에, 가스로 인해 사고를 당할 수 있으므로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전하게 장비를 착용한 다음 작업에 임하고 있다.

충북명장 현판과 ‘중원공방’ 전경 <사진=이건수 기자>

- 40여 년 목공예 분야에 종사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목공예를 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매일 눈으로 보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군대 갔다 온 후 기술연마를 시작해, 지금까지 40 여 년 목공예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충주소반’으로 특별상을 수상했고, 공예작가로 그동안 곳곳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다보니 충주에서 보다 서울, 충남이나 전라도 등, 전국에서 오히려 ‘충주소반’ 장인으로 대접을 더 받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충주공예협회도 창립돼, 회원들의 훌륭한 작품을 모아 ‘공예작품 전시회’도 열고 있다. 또한, 도내를 비롯해 전국대회 공예행사 등에 참여해, 충주 공예의 위상을 높이는데 힘을 쏟고 있다.

아울러, 회원들의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볼거리와 정신적 안정을 주며, 충주의 공예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중원공방' 한 면에 자리잡고 있는 각종 목공예 작업도구 <사진=이건수 기자>

- 맥을 잇기 위한 제자양성은.

목공예 수강생도 모집해 저변확대에 힘쓰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수백 년 이어온 ‘충주소반’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제자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과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어쩌면 숙명같은 일이다. 그러나 배우려는 제자들이 얼마 있다 떠나가길 수십 번이다. 지금은 유일하게 ‘박현목’ 제자가 제 곁에서 엄하게 전수를 받고 있다.

문화가 꽃필 수 없는 도시는 흥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충주소반’이 안동 하훼탈보다 문화가 앞서 있었고, 한 때는 충주시가 조선 3대 도시였는데, 옛 영화를 뒤로한 채 갈수록 찬란했던 중원문화마저도 쇠퇴해 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만 가득하다.

# ‘박근영’ 충북명장 <주요 작품전>

- 박근영 전통 문(門)살전(충주공예전시관 /2012.9.9)

- 전국 문화재 작품전(경복궁 / 2014.10.15)

- 충주반(盤) 특별전(충주박물관 / 2015.7.7)

- 충주공예작품전(충주문화회관 / 2016.4.27)

- 대한민국미술작품전(인사동 / 2017.3.29)

#<주요 경력사항>

- 충주시공예협회 회장

-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한국전통문화대전 초대작가

- 문화재기능협회 작품전 운영위원장

- 충청북도 공예협동조합 충주지회장

- 충주소반연구소 소장

- 중원공방 대표

- 문화재수리기능(한식목공)5970호

- 충북 목칠공예 명장

 

 

 

 

 

 

 

이건수 기자 geonba@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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