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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조, 함께 가는 길[1] 시조는 독립된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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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조, 함께 가는 길[1] 시조는 독립된 장르이다
  • 이민영 기자
  • 승인 2019.02.26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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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문학박사(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김민정 문학박사(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 「하여가」 이방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단심가」 정몽주

참 간단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는 문학작품이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이렇게 정리하여 간단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에 시조의 묘미가 있다. 고려중엽에 그 형식이 정리되어 이 시조들이 지어질 고려말에는 완성된 형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작품들은 널리 회자되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조이고, 작가도 역사에 유명한 정치가들이다. 고려말에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려는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 그리고 유명한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정몽주가 자신들의 마음을 주고받은 작품인 것이다. 

‘하여가’는 이방원이 정몽주가 자신들과 함께 조선건국에 대한 의사가 있는지를 시조를 통해 물어본 것이고, ‘단심가’는 정몽주가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서 죽어도 고려에 대한 충신으로 남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내용이다. 

이 두 시조 작품을 통해 우리의 선조들이 지금의 정치가들보다 풍류와 멋을 알고, 신념도 확실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면 문학의 종류(장르)도 바뀐다. 한국문학사에 있어 많은 장르의 발생, 성장, 쇠퇴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지속적으로 시조를 창작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시조가 우리 민족의 생리에 잘 맞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생활과 정서에 잘 맞고, 또 우리 언어의 구조가 시조와 잘 부합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언어는 2자, 3자, 4자의 글자수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그러니 시조의 음수율인 ‘3/4/3/4// 3/4/3/4// 3/5/4/3’이라는 자수는 우리 민족의 언어 호흡에 잘 맞는 것이다. 또한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매우 짧은 글이다. 그래서 외우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고, 또한 짓는데도 부담이 적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민족의 감성에 잘 와 닿고, 오래 살아남았을 것이다. 중국에 ‘율시’가 있고, 일본에 ‘하이꾸’가 있다면 한국에는 ‘시조’가 있다.

우리 문학의 브랜드로 우리 민족은 ‘시조’를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할 단계에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학인 시조, 문학진흥법에서 시의 범주 속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도,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시조는 독립된 장르도 인정하고 있다. 문학진흥법에서도 마땅히 시조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정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한국문학의 모태로 대접해 주어야 한다.

우리민족은 고유한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와 문자로 만들어진 고유한 문학, 전통적인 문학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시조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자기다운 것,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국제적이 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문학의 브랜드로 시조는 자리매김 되어야 마땅하다. 때문에 새로 건립될 한국문학관에는 필히 시조관이 존재해야 한다.

 

 

 

이민영 기자 mylee0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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