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9:52 (금)
사지선택(四枝選擇) 교육으로 사지선택(死地選擇)
상태바
사지선택(四枝選擇) 교육으로 사지선택(死地選擇)
  • 최성식 종로일보 발행인
  • 승인 2011.05.10 0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四肢選擇”교육으로 “死肢選擇”된

잘못된 교육이 더 더럽습니다! 왜냐고요?

창의력의 새싹이 나기전에 말살되기 때문입니다!

 

학문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는 곳에는 교육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 이다.

교육이 죽어가는 곳에는 적당히 골라잡아서 성취하고, 실력이 없어 잘 알지 못해도 과묵 속에서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인이고

현인인척 어정쩡하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점잖은 미덕처럼 여겨지는 우리사회가 되어 버렸는지도 오래 된 것 같다.

확실한 실력과 자신 없이 처리되는 실현되고 보니 어떤 일에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구렁이 담 너머 가듯이 매사를 적당히 하고 넘어가는 습관이 온 국민에게 언젠가부터 생겨났고

정식학교보다는 사설학원 입시학원이란 잡초들이 무성하여, 공교육이 시퍼렇게 질식되어 좌충우돌하는 바람에

멍들게 되어 설자리를 잃어 버렸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어디로인가 행방을 감추었으며, 교사 역시 사명감을 어느 때보다 상실하게 된

현실에 대해서 깊이 성찰을 통한 반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한국에 근무하고 있는 외국기업 경영자들이 지적한 우리 교육과 정치현실에 대한 부끄러운 모습을 부각시켜보면<경향신문, 2000.3.18, 6면, 박기찬 교수, 정동컬럼 인용>:

 

첫 번째는 기업에 필요한 전문인을 키우지 못하는 잡화점식 교육방식으로, 일류대학조차 학생이나 교수나 경쟁 없이 졸업과 정년을 맞도록 운영되고 있다.

 

두 번째는 행동방식이 너무 근시안적이라 눈앞의 경쟁에만 이전투구를 벌리지 10년 후의 모습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세 번째는 낡은 정치가 시장경제를 지배하고 주요 뉴스시간도 정치이슈가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무엇이든 단기에 끝을 보려는 조루 증세를 보이면서도 미래는 자기 자신보다 자식들에게 맡기려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이 이런 중요한 점을 지적해도 국민들은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부류도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교육열이 세계최고라 한다. 또 언뜻 보기에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인간사회가 정신적으로 왜 더 풍부해지지 않고, 왜 더 행복하지 않고 메말라 하는가?

사제 간의 존경심은 왜 날로 감소되는가?

교육이 잘되어 졌다면 결과가 더 훌륭해야 하지 않는가?

 

교육이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교육의 목적)

그렇다면 우리들의 교육은 실패를 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육열이라 생각한 것은 교육열이 아니라, 단순한 경쟁열에 불과한 것이었다.(교육의 수단)

경쟁열과 교육열은 그 뜻이 끔찍할 정도로 다른 결과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교육환경은 한참 잘못된 현실, 물론 장유유서도, 상하도, 도덕도, 윤리도 없는, 오직 돈밖에는 보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이 대부분인 변질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답지 못한 사회의 현실은 국민교육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우지 못해 한이 맺힌 자들이, 지식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거기에다 정치9단이라는, 권모술수만이 머리에 가득한 졸자가 보복의 일념으로 일국의 정권을 잡기위해서, 온갖 수단으로 일은 하지도 않고 공천권을 팔아서 巨富가 된 다음.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패거리인 집단이기주의 정당의 두목이 된 서자출신들이 대통령이 되는, 기막히고 기이한 세상이 된 오늘의 불행한 현실이다.

 

오늘날 젊은이가 이런 인간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권모술수? 이것은 모두가 교육이 잘못되어 자신의 탐욕에만 치우진 나머지 국가를 정신적 망국으로 몰고 가는 참담한 세상이 되었다.

 

현재의 세상은 인간이 인격과 덕망이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인간을 파악하는 세상이다.

학문적 역량보다 지금은 돈이 학문의 명예조차 사고판다. 학문의 권위와 명예가 죽은 死地가 바로 한국사회인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우선 우리교육의 한 단면이라도 분석해보면 그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간을 가장 황폐하게 만든 것은 바로 四肢選擇-試驗制度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채점하기 쉽다고 선책한 객관식 출제방식이다.

그러나 이 출제방식은 은연중에 인간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옳은 답을 쓰도록 했으면 진실 된 답만 쓰던지, 모르면 안 쓰면 된다면, 진실만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四肢選擇형은 4개답 중에 하나만이 진실이고 3개는 허위사실이다.

몰라도 운이 좋아서 연필이라도 잘 굴리면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25%의 답을 고를 수 있는 맹점이 함축되어 있다.

 

그런 결과의 답들은?

 

1. 답이 아리달송하여 아는 것 까지도 아리달송 혼동하게 만들어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2. 헷갈리는 답들을 속에서 고르는 습관 때문에 일상생활이 헷갈리게 습관화 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질문하면, “그렇겠지요, 그럴 겁니다,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거예요“라는 말들을 사용한다.

정답을 모르더라도 책임을 회피하여 미꾸라지처럼 모면을 피해나가는 습관들이 엄청 잘 길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적당히 알아도 시험 때는 답을 찍는 요령으로, 눈치로, 문맥으로, 정답을 찾는 기술들이 잘 습득되어 있다.

즉, 평소에는 공부 못해도 시험 잘 보는 요령꾼들이 대량으로 양성된다.

 

4. 무조건 한 번호만 골라도 25%의 확률은 있으니, 주관식 시험에서는 모르면, 0점이 이지만 4지선택형 시험에서는 25%의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5. 정확한 답도 모르고, 신용도 없어지는 교육을 받다보니,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없어서

“四肢選擇”은 “死肢選擇이 된다.

 

결론은, 75%는 허위를 착실히 배우고 25%만이 진실을 적당히 배우고 있다.

창의력의 새싹조차 말살되는, 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시험제도를 40년 이상을 아무런 생각 없이 실시해 오고 있단 말인가?

국민들이 75%의 허위교육을 받았으니, 사회의 75%는 모두가 허위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미국문화에서 식민된 ‘미국식 선진문화’라는 것이 아닌지?

 

유럽에는 사지선택형 시험제도는 공교육에는 아예 없다. 아니 금지다.

유럽에는 주관식 시험과 무서운 구두시험이 기초교육과 대학교육에서 실시되고 있다.

진실만을 쓰고 말하는 진실 된 공교육이다.

입시학원이나 과외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거짓말 잘하고, 약속 잘 안 지키고, 공갈 잘 치고, 거짓으로 잘 꾸며대고, 사기 잘 치고, 신용 없고, 신뢰 없고, 남에게 폐 끼치고, 변명 잘하고, 이유 잘 둘러대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하고, 대화의 명확성이 없고, 대답은 미지근하게 또는 불확실하게 잘하고, 똑 불어지게 진실 되게 대답하는 법이 없고, 말 잘 바꾸고 또 없는 말 잘 꾸며대고, 속임수 잘 쓸 수 있는 능력은 四肢選多-시험방식으로 오랜 세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거짓이 확실하게 수십 년 잘 트레이닝 되어서 확실하게 이기주의적 체질화가 된 결과이다.

 

우리가 자녀를 잘못 교육시킨 덕분에 대한민국을 혼미로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국민들 사이에 이러한 진실 되지 않는 삶에 골병들어 있어도, 아무도 불편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속이고 속고 사는 세상이다 보니까! 국민들의 의연한 모습이 자연히 살아지고 있다!

대통령후보가 국민을 속이고 별 장난을 다 해도 돈 풀어 당선만 되면 그저 그만인 세상이 되어버린 병든 나라가 현재 우리나라 이다.

 

머릿속에서 생각하기 전에 이미 입이 알아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먼저 척척 거짓말하는 몸은 말짱하나 정신은 기형적인 불구의 장애인들이 되어버린 국민들이다.

거짓이 몸에 75%나 배도록 하는 거짓교육을 함께 잘 받아왔다는 무서운 사실들이다.

요즘은 인격, 인품, 덕망은 물론 진실까지 四地選擇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국민 모두를 음성적인 사기꾼으로 양성하는 대한민국의 공교육제도를 이제는 바꿔야지요!

진리는 변함이 없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교육혁명’을 다 함께 성공 시켜야 합니다.

 = 본 칼럼은 'KNS뉴스통신'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성식 종로일보 발행인 hjn5114@paran.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