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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대한불교조계종 오봉산석굴암 주지 도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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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대한불교조계종 오봉산석굴암 주지 도일 스님
  • 박동웅 기자
  • 승인 2018.09.05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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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묵일여(禪墨一如) 깃든 ‘선서화도예전’ 개최
수행 통한 맑은 ‘향기’와 원력의 힘찬 ‘기운’ 담겨
양주 오봉산 석굴암 도일스님이 선서화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박동웅 기자>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양주 오봉산 석굴암(石窟庵,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 519) 주지 도일스님의 선서화와 도예명장 양계승 작가의 작품이 만나, 깨달음의 향기를 전하는 ‘선서화도예전’이 개최된다. 천년고찰 오봉산 석굴암의 대작불사 원만성취를 기원하는 이번 전시회는 9월 19일 수요일부터 10월 2일 목요일까지 14일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추석연휴를 맞아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우리의 전통과 옛 멋을 알리고 계승하고자 함”이라고 도일스님은 말하며, 또한 “천년고찰 석굴암이 명실상부한 수행기도처로 거듭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길 기원한다”면서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이번에 열리는 ‘선서화도예전은 양주 석굴암 대작불사의 원만성취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전시회 수익금은 전액 석굴암 불사에 사용하게 된다. 도일스님의 작품세계에 대해 평론가들의 평가를 빌며, “선묵(禪墨)은 붓을 잡은 사람에게는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길이 되고, 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며,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힘차게 움직이며,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법당 주련의 글씨에 빠져 붓을 들기 시작한 도일스님은 최고의 전통서예의 대가인 여초 김응현, 우봉 한상갑, 청계 양태석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은 실력파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후 20년이 넘게 선(禪)을 수행삼아 서화의 작품세계를 가꿔 왔다. 선(禪)수행은 고요함이자, 지혜의 빛이다.

도일스님은 붓을 잡을 때는 번뇌 망상을 모두 쏟아버리고 무아(無我)상태가 된다. 수행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선묵일여’(禪墨一如)를 지향하는 만큼, 쏟아지는 대우주의 기운을 화선지와 도예에 담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에게는 수행이 되고, 서화를 보는 이들은 마음의 정화를 얻는다. 특히 수행을 통해 밝아진 마음을 담은 도일스님의 선서화도예에는 어두운 마음을 맑고 밝게 정화시켜 사람들을 밝은 기운, 밝은 삶으로 이끌고 전달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도일스님은 불교미술대전, 백제미술대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사진부문과 서예부문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바 있다. 또한 해인사승가대학시절 재학하던 중 1993년 해인사 구광루 사진전 ‘산사와 스님’을 시작으로 1994년 ‘산중서화전’(인사동 경인미술관), 2006년 ‘선묵서화전’(조선일보사), 2007년 우림화랑 초대전 등 다수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이번 전시회는 12년 만에 개최하는 선서화도예전 전시회인 만큼 그 의미가 크다. 도일스님의 글씨는 이미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수종사.회암사.용문사 인근 사찰, 1일군단 군 법당 등의 전각 현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석굴암대작불사를 위한 도일스님과 함께 전시에 동참한 금산 양계승 작가는 전남 공예대전 우수상, 대한민국 공예대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2017년에는 전라남도 제4호 공예명장으로 선정됐다. 또한 국내외의 다수 초대전에 참여할 만큼 주목 받는 작가이다.

불법(佛法)의 향기가 깊고 깊은 천년고찰

북한산과 도봉산사이 오봉산자라 우이령길과 인접해있는 수도권 최고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천년고찰 오봉산 석굴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오봉산 관음봉(觀音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나한기도도량이다. 특히 석굴암 위로 다섯 봉우리가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는 오봉(五峰)으로 불리는 곳으로, 가람의 지세는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부처님을 떠받들고 있는 듯이 웅장하면서도 온화한 산세이다.

양주 오봉산 석굴암 대웅전

이렇게 아름답고 수려한 산세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 등,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어 서울 인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한다. 이 주변에 석양이 물들 때면, 나무 향과 어우러진 저녁노을이 눈부시게 쏟아져 그야말로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 같아 절로 숙연해지기도 한다.

도일 스님의 난을 주제로한 선서화.

한편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시대 나옹왕사와 조선시대 설암선사의 뒤를 이어 동암선사 등 선지식이 주석했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의 제자인 설암관익(雪庵寬益)대사가 주석하며, 석굴에 지장과 나한 두 존상을 조성했으며, 1455년에는 단종왕후가 단종을 위해 3년간 기도한 왕후원찰로 중수하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여러 고승들이 선맥을 이어갔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이 가람은 일반인들에게 잊혀져가는 사찰이 되었다.

그러나 석굴암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54년 초안큰스님으로부터 복원불사를 시작해 1975년에 대웅전을 중수했고, 1980년에 신중탱화, 1985년에 칠성 탱화· 산신 탱화가 조성되었다. 이어서, 오봉산 석굴암의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현재의 주지스님인 도일스님이 토지불사 2만 평을 기증 받아, 현 가람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현대인들이 불법(佛法)의 향기가 깊고 깊은 천년고찰을 찾아 안정감을 얻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 지금 어떤 지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걷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또한 정신의 오염을 씻어 내리고 어두운 마음을 밝히기 위해 관문을 두드려보고자 함일 것이다.

기도하면 소원성취를 이룬다는 나반존자를 모시고 있는 오봉산 석굴암.

도일스님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지 않고 고즈넉한 산사를 찾는 것은 진실로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부처님 곁에 잠시나마 앉아서 자기 성찰과 함께 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며, 불자가 지켜야 할 덕목으로 “간단히 말하면, 악을 떨치고 선을 행하는 것이 불교인데 귀 딱지가 붙도록 말을 해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가보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오봉산 석굴암 도일스님의 선서화 '성심'.

이어 “사회현실이 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국민의 의식이 그만큼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부작용으로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생긴”면서,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가정부터 그리고 사회, 더 나이가 국가가 행복해진다.” 따라서 “모든 것을 남의 탓이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탓으로 하는 책임의식을 감수하는 인내가 이어져야 가족들은 물론 이웃과 사회의 행복한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무슨 일이 생기면 부정적인 면을 먼저 생각하는데 마음훈련을 꾸준히 해서 밝은 쪽을 바라보자”며, “밝고 긍정적인 마음은 세상에 빛이 되어 모두를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불자들은 부처님의 제자답게 모범을 보이고 세상이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불자들은 선행의 실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함께 마음을 모으고 용맹정진하자”고 당부했다.

그래서인지 선(善)을 강조하는 도일 주지스님의 수행을 통한 선묵서화는 유난히 맑고 밝은 기운의 되어 그 기운이 보는 사람에게도 순하고 편안하게 전달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한편, 오봉산석굴암에서는 매월 법회와 기도 도량을 행하고 있으며, 가을에는 산사음악회를 개최해 음악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량,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사부대중의 큰 도량, 부처님의 깊은 큰 가르침을 구할 수 있는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도량 등 각종 불교와 관련한 교육 및 사회봉사 활동에도 소명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소원성취 하는 영험한 나한기도 도량

양주석굴암은 수도권 제일의 나한기도 도량의 하나로 그 영험함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영험해 정성껏 기도한 뒤에 소원성취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실제 나한기도 도량은 지극정성으로 기도 정진하면 빠른 시간 안에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반면, 계율을 어기고 소홀히 하거나 몸가짐이 부정하면 소원성취 이루기 어려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반드시 나한전에서 기도를 하되, 기도 날짜를 신중히 정하고 기도 중에는 몸과 마음을 항시 정갈히 하여, 정성스레 공양을 올리고 한시라도 게으름 없이, 또 흐트러짐 없이 일심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감응과 그 소원성취를 이룬다고 한다.

양주 석굴암 일주문 뒤로 오봉산이 솟아있다.

도일스님은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과 주변의 행․불행이 결정된다. 이러한 진리는 불성을 깨달음으로 가능하다”며, “공덕을 쌓고, 일념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길잡이가 되고 힘이 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한기도 도량에는 그 영험함 때문인지 항상 많은 설화가 전해진다. 석굴암 나한전에도 나반존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동짓날 팥죽과 불씨’, ‘부정한 이가 찾으면 마르는 샘물’ 등의 설화를 갖고 있다.

동짓날 팥죽 설화는 불과 200년 전 이야기로, 안타까운 사정을 굽어 살핀 석굴 안의 나반존자가 이적(異蹟)을 보이셨던 이야기가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설화로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 설화 속에서 나반존자께 팥죽을 공양한 차씨 집안은 6대째에 이르기까지 집안이 나날이 번창하고 화목한 일가를 이루며, 지금까지 그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석굴암 나한전의 수미단 중앙에는 조선 후기의 불상인 석조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조나한상은 60cm의 크기로 봉선사본말사지 고적편에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이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불상으로 조선 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도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나한영험도량으로 유명했던 석굴암은 한국전쟁 당시 초토화되고 폐허가 되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수도 서울로 진입하는 요충지인 까닭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도량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다행이 휴전 후인 1954년 초안스님이 은사이신 동암선사의 뜻을 받들어, 가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어 초안선사의 상좌 도일스님이 은사의 중창불사 원력을 계승해 가격을 일신하기 위해 신도들과 노심초사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편한 세상이 됐지만 불사 초기에는 사방이 낭떠러지인 이곳에 움막을 치고 나무장작으로 불을 때서 밥을 해먹었다”고 고생담을 전하는 도일스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시작된 복원불사는 대지조성, 석굴확장, 요사채 복원, 삼성각 신·개축, 대웅전 신축,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상 신 조성, 범종 및 범종각 낙성, 전기시설, 봉향각 신축, 진입로 확장보수 불사 등이 차례로 이루어져 현재와 같은 손색이 없는 가람을 갖추게 되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이러한 불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초안스님과 도일스님의 뼈를 깎는 헌신과 간절한 기도 원력과 나반존자의 영험함, 그리고 한없는 부처님의 가피로 이루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양주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도일스님과 이성호 시장,정성호 국회의원 및 관계자의 기념촬영.

양주시에 당부한다

오봉산석굴암의 경내에 서서 주변전경을 바라보면, 부처님의 가피가 퍼져있는 명산의 맑은 기운에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지고,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청량한 바람에도 무겁기만 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일상의 번뇌를 가볍게 내려놓고, 자연에 동화될 수 있는 이곳이야 말로, 진정 도시인들이 찾던 이상향 같은 마음의 기도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늘이 내린 자연 속에 천 년 세월을 이어 온 고찰이 생각보다 일반인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동안 우이령길은 수려한 경관에도 불구 ‘김신조 루트’라고 불려왔다. 그 이유는 김신조가 넘어왔던 ‘1·21사태’ 이후, 1969년부터 40여년간 인근 우이령길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의 재 침투에 대비해 이 길을 폐쇄하고 전경과 군부대를 주둔시키고, 지난 2009년 상반기까지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해왔다.

그러나 이 길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잇는 6.8km의 비포장길로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혜화문을 거쳐 아리랑고개를 넘어 우이령길을 통해 양주로 진입해 연천과 평강, 함흥으로 가던 유서가 깊은 옛길이다. 수백 년 동안 경기북부 주민들이 마차 등을 이용해 각종 농산물을 반출하고 생필품을 반입하는데 사용한 도로였지만, 이 길이 폐쇄되면서 오히려 천혜의 자연을 간직해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일스님의 선서화도예전이 9월19일부터 10월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리메르에서 열린다.

그러나 다시 개방된 2009년 하반기부터 석굴암도 재조명받고 있으며, 강북구에서 송추방면으로 진입하기 위해 20km 구간을 의정부 방면으로 우회하지 않고 6.8km를 직진해 통과 할 수 있어 경비와 시간 등 각종 이점이 크다.

하지만 깔끔하게 단장되어 개통되지 않고 탐방로 형식으로 애매하게 개통되어, 등산객과 주민과의 잦은 마찰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도일스님이 힘을 쏟고 있는 곳은 도로정비 문제해결과 유격장문제해결이다. 특히 유격장 문제는 “이제 남북화합의 장이 마련됐고, 아울러 김신조 때문에 주둔하던 30사단도 다른 부대로 귀속하고 있는 마당에, 소음이 심한 유격장만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로서, 그동안 꾸준히 민원이 제기되어 왔다.

탐방로가 개방되면서 한쪽에서는 등산객들이 모여 즐겁게 담소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젊은 청춘들이 가족을 그리워하며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상황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여러 모로, 천년고찰 정통사찰(97호)은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며, 또한 불자들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도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가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빨리 탐방로 문제와 유격장 문제가 원만하게 마무리돼 전국 최고의 귀의처가 되길 주문해본다.

양주석굴암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불교의 성지이자, 도시인들의 자연을 바라보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이다.

도일스님은 “극단 이기주의적 갈등, 날로 늘어나고 있는 각종 범죄 등은 모두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이라며, “물질적 풍요와 함께 더불어 정신문화에도 조화가 이루어져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받은 상처를 부처님께 귀의하여 위로 받듯이, 사찰에 들어서면 작은 미물이나 돌멩이 하나하나도 숭고한 정신의 세계로 흘러들게 한다. 이러한 마음이 들듯이, 불교의 역할 중에 하나가 마음을 주제로 수행하고 수행을 통해 자기변화 깨달음 세계로 들어가면, 선한 마음이 생성되고 그것이 불교의 목표일 수 있다. 그래서 천년고찰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교가 사회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부처님 말씀대로 살면 사는 게 쉽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마음을 편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 ‘나’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한데, 불평불만이 꽉 차있으면 내 자신이 먼저 상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경제가 어려울수록 자아 완성, 인격 완성을 먼저 이뤄야 할 때”라고 설파하는 도일스님의 연꽃같이 맑은 가르침까지 함께 받을 수 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오봉산석굴암은 누구든지 다가가, 마음의 위안을 얻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는 정신적 안식처와 종교적인 귀의처로서, 도일스님의 설법을 듣고 있으면 근본심성에 부드러움과 온화함을 심어준다. 모든 문제가 완만히 해결되어 양주석굴암의 자비를 일깨우는 아름다운 햇살과 저녁노을에 투영되는 부처님의 은은한 불빛이 어두웠던 우리네 마음을 훤히 밝혀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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