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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용담검무’ 명인 장효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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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용담검무’ 명인 장효선 박사
  • 정순아 기자
  • 승인 2018.03.07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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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칼춤, 용담검무 20년간 계승·전승에 앞장

[KNS뉴스통신=정순아 기자] 19세기말 조선, 당시 살기 힘들었던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등불이 되었던 동학. 동학을 창시했던 수운 최제우는 서양의 강한 물리적인 힘을 물리칠 대책 방안으로 동학의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상무정신이 깃든 용담검무(龍潭劍舞)를 활용했다.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그 춤의 명맥이 끊겼던 용담검무가 160년 만에 계승·전승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명인 장효선 박사는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친으로 이어지던 용담검무를 전수받아 20여년여의 검무수련과 학문적 부분으로도 계승·전승하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용담검무의 활용 방안과 검무의 재현은 예술적·미적창조행위로 문화계승의 역사적 가치와 전통무예로, 민족상무정신의 가치로, 심신의 수양을 통한 건강증진,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 주는 가치를 제공하며 역사적 민족 사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 박사는 용담검무뿐만 아니라 용담검무에서 파생된 전통무예 동학의검 검예도를 창시하여 민족무예중흥에 기여도하고 있다. 검예도는 검무의 춤사위와 형식에서 무예 수련의 기본을 만들고 그 자료를 토대로 최고의 검 기술로 승화된 민족전동무예이다.

<사진제공= 시사뉴스&>용담검무 명인 장효선 박사

용담검무, 동학의 근본정신 바탕 및 칼춤의 유례
한때 사라졌던 용담검무는 수운 최제우가 1861년 남원 운적암에서 8개월 동안 기거하며 완성한 ‘동학’과 함께 완성한 동학 정신이 깃든 칼춤이다. 수운 최제우는 무형적 에너지를 품고 있는 동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유형적 에너지가 있는 검의 기운을 얻어 좀 더 널리 알리고자 칼춤을 추었으며, 근본은 외세의 무분별한 침략에 맞서 검이 가지고 있는 상무정신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으로 시작되었고, 검으로 동학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수련 하던 중 역모와 좌도난정률의 누명을 쓰고 44세인 1864년에 처형당하게 됨으로서 그 칼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당시 수운 최제우에게 동학과 칼춤을 배우며 같이 행 하던 많은 동학 도인들은 스승이 죄인으로 처형당하게 됨으로서 자신들도 같은 처지가 될까봐 숨거나 달아나서 남몰래 칼춤을 추었다. 장효선 박사는 7살 무렵 목마를 탄 채 예인이었던 아버지께 처음 검무를 배웠고 13세 무렵부터 향후 20여 년간 검무의 유례와 역사적 가치를 연구하여 박사 논문으로 자료를 정립하였으며, 교육용 비디오 제작, 무보, 학문적 지표자료, 활용방안에 연구와 동학의 전신을 지금 현 시점에 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장 박사는 “철이 없었을 때는 재미로 시작한 검무였지만 이제 인생이 됐다”며 “1980년 부친의 타계 후 사명감을 가지고 용담검무의 재현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장 박사는 용담검무는 동학의 근본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용담검무의 근본은 동학이다. 동학의 근본정신은 민족성, 동질성. 인간평등이다. 이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으로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의미다. 

평등에 대한 근원에 접근하면 높고 낮은 것이 아닌 ‘한울’ 즉 우리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용담검무의 정신은 검과 복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양반가의 신분이었던 수운 최제우는 미색의 저고리 바지에 옥색 도포와 아청색 쾌자를 입고 정자관, 술띠, 버선, 태사혜 차림으로 검결을 부르며 춤을 춤으로써 내면의 기운을 한껏 북돋았다. 장 박사는 “나 또한 용담검무를 재현하거나 전승할 때 복식을 꼭 갖춰 입는다.”며 “도포 차림을 하고 생명과 기예의 의지가 담긴 목검으로 쾌활하게 큰 선을 그리면 내 몸까지 힘이 솟는 기운이 생긴다”고 말했다.


장 박사가 용담검무를 이토록 계승 전승하고 이유는 우리 무예라는 ‘정통성’ 때문이다. 중국, 일본, 태국 등의 무예가 전통무예로 옹립된 것까진 좋으나 그 대부분은 정통성이 없다, 즉 전승자에게 제대로 배우지 않았거나 조금 배우고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켜 더 이상 전통 무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 박사는 “민족혼의 상징인 용담검무는 한국전통무예와 문화예술의 쾌거로서 우리 민족의 기운을 회복하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시사뉴스&

‘용담검무는 내 삶의 사명감’
용담검무가 자신의 영혼이자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하는 장 박사는 용담검무를 계승·전승하며 인생의 매듭 앞에서 갈등과 결단의 시기도 있었다고 말한다. “IMF때 포기하느냐, 계속 이 길을 가느냐의 기로에 있었다. 2004년 홀로 쓸쓸히 포기할까 마음먹었던 시절, 용담검무보존회 창립 계기로 용기와 희망을 찾았고 그때부터 동영상. 교육자료 등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면서 ‘용담검무는 내 삶의 사명감’이 됐다”


장 박사는 이후 내게 ‘동학’이라는 민족적 대 기운을 주셨다면 후대에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용담검무의 춤사위와 검결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논문도 취득했다. 또 장 박사는 검을 가지고 어떻게 예술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용담검무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공연을 끝없이 무대 위에 올렸다. 

1984년 서울예술대학에 처음 검무극을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 박사는 그해에 한빛예무단을 창단해 이순신장군, 최영장군, 계백장군, 온달장군, 광개토대왕 등 역사인물들을 검무극으로 30여 년간 재현해오며 1천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아울러 20년 가까이 동학 관련 무대에서 용담검무를 소개하고 있으며 명성왕후 초연 때 검예도를 통해 명성왕후의 안무 틀을 만들어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장 박사는 후학 양성의 바람도 내비쳤다. “현재 미국 뉴욕에는 제자들 50여 명 중 핵심 제자들 15명이 용담검무를 통해 우리 민족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용담검무를 통해 인문학적으로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교육자가 배출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당당함이 된 용담검무 명인의 길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하는 장효선 박사는 앞으로 용담검무의 무대화를 통해 남원을 문화예술콘텐츠로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용담검무, 동학을 통해 남원하면 떠오르는 큰 줄기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 더 나아가 용담검무를 본토 남원에서 배워 다시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교두보가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


동학의 고장인 남원이 용담검무를 통해 ‘made in KOREA’ ‘made in NAMWON’의 유산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우리민족의 소중한 가치를 이어가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순아 기자 media6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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