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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의 以言傳心] 강남 세입자가 겪은 ‘강남의 부동산 광풍(狂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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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의 以言傳心] 강남 세입자가 겪은 ‘강남의 부동산 광풍(狂風)’
  • 이재광 논설위원 ·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승인 2018.01.2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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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강남에 산다. 그것도, 화산 간헐천(間歇川)만큼 ‘핫(hot)’하기로 서울에서 몇 번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한민국의 ‘부촌(富村)’, 삼성동에 산다. 때가 때이라서 그럴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집값 얘기로 인사를 대신한다. 집값 많이 올랐죠, 좋으시겠어요. 말은 맞다. 그가 사는 집뿐 아니라 동네 집값이 엄청 올랐다. 몇 달 전에는, 1년 전만 해도 말이 안 되는 값에 집이 팔렸고, 지금은, 또 그 몇 달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집값이 새로 매겨져 있다.

하지만 동네 집값 오르는 게 그에게는 달갑지가 않다. 전혀. 이유는 하나. 그가,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집값 상승은 오히려 치명적 해악이다. 집값이 오르면 전세 값이 따라 오른다는 게 무엇보다 큰 부담이다. 그러면 새로 빚을 내 세를 올려 주거나 아니면 이사를 가야 한다. 거기에, 잘 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 집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집값 오르는 게 반가울 리 없다.

얼마 전 그는, 실제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살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같은 집 세입자로 산 지 어느새 7~8년 됐다. 집도 동네도 정이 들었다. 마침 집주인도 지방에 있었다. 관리가 어려워서였는지 하루빨리 집을 팔려고 했다. 이자가 많이 부담되기는 했지만, 은행 빚을 낸다면, 집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값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적정가보다 5000~6000만원이 비쌌다. 그는 주인이 욕심을 낸다고 봤다. 사실 지난 7~8년 동안 동네 집값은 변한 게 없었다. 그러니 상황이 여의치 않은 사람은 급매로 집을 내놓기도 했다. 사업을 하는 집주인도 집을 내놓은 지 꽤 됐다. 그런데 안 팔리는 것 아닌가. 시간이 좀 지나면 욕심을 꺾고 값을 좀 낮춰 집을 내놓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버텨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지난 1년 사이 보도 듣도 못한 이상한 일들이 마구 벌어지더니 순식간에 집값이 몇 억이 올랐다. 곧 나이 60이니 사회 경험은 할 만큼 했다는 소리를 듣는 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지난 1년 사이 있었던 일들은 모두 새롭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답은 쉽다. 강남에 세찬 ‘부동산 광풍(狂風)’이 몰아쳤고 이 ‘광풍’이 이 땅위에 사는 모두를 미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

‘광풍’의 서곡이 울린 것은 1년 쯤 전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가 격렬했던 지난 해 1월의 어느 날 저녁. 그는 집에서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고 물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창문 밖 풍경이 좀 이상했다. 창 밖 부동산중개소 간판 칼라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노란색이었는데 깔끔한 청색으로 바뀌었다. 10년 이상 된 ‘동네 복덕방’이 깔끔한 현대식 ‘중개사무실’로 탈바꿈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 댓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고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새 정부가 진보 성향이 강해서 강력한 부동산 규제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1400조원에 이른다는 엄청난 규모의 가계부채도 화두였다. 이래저래 부동산 값은 이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삼성동은 달랐다. 전망과 다른, 아니 정 반대의 조짐이 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상했던 것은, 우후죽순 격으로 부동산중개소가 생기더라는 것이었다. 새해 들어 반년도 안 된 사이 대여섯 곳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집을 보겠다는 사람도 늘었다. 지난 몇 년 집 보자는 사람이 통 없었는데, 봄이 되자 하나 둘 생기더니 급기야 5월 들어서는 주말에 두세 팀이 한꺼번에 집을 보는 일까지 생겼다. 그러자 집 주인이 집값을 올렸다. 두 달 간격으로 3000만원씩 두 차례, 모두 6000만원을 올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초여름이었다. 전세 재계약이 8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도 부동산을 한 바퀴 돌아 봤다. 무슨 일이예요, 왜 집값이 오르나요, 계속 오를까요, 내년 초 전세 재계약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중개사들 얘기는 한결같았다. 값은 오른다, 빨리 사라, 안 사면 후회한다....... 그가 반론을 폈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다, 금리도 오르지 않겠느냐,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았으니 양도세나 보유세도 올린다고 한다, 다주택자도 규제한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중개사들도 ‘모범답안’을 갖고 있었다. 강남에 집을 사는 사람은 빚을 내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많다, 빚을 낸다 해도 이자 정도는 전월세 인상으로 커버된다, 진보정권도 고위직 대부분이 다주택자여서 제대로 규제 못 할 것이다, 노무현 때도 그랬다....... 여기에 현대자동차 본사 건립이나 영동대로 개발 등의 호재를 들이댔다. 한 젊은 부동산 중개사는, 놀랍게도, 자기 팀이 ‘동네 집값을 올리기 위해 작업 중’이라는 말까지 했다. 기가 막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미친 짓으로 보였다. 합리적으로 따져봤다. 가계부채가 1400조인데, 금리가 오를 텐데, 규제가 심할 텐데 빚을 내 집을 산다? 말이 안 됐다. 게다가 집주인이 부르는 값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4000~5000만원 비싸서 사는 걸 미뤘는데 이번에는 1억 원 이상을 더 줘야 집을 살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이것저것 고민할 필요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섰기 때문이다. 6월 초 그는 한 부동산 중개사로부터 매매가 결정됐다는 얘기와 함께 계약 당일 전세계약서를 갖고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해 주면 좋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계약 예정일은 6월 9일 금요일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있었다. 이제 고민도 혼란도 모두 끝났다고 생각됐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계약 전 날, 그것도 저녁 무렵에,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것 아닌가. 부동산 중개사도 계약 상대방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 당사자는 구두 계약도 계약 아니냐며 집주인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두계약은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약은 계약 전날 일방적으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며칠 뒤 집주인이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부동산중개사 C를 비난했다. 그가 시세보다 훨씬 싼 값으로 집을 팔아먹으려 한다며 화를 냈다. 집주인이 집을 판다는 얘기를 들은 동네 지인 몇이 직접 전화를 걸어 최소 4000~5000만원은 더 받을 수 있는데 왜 그 값에 집을 내놨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값이 폭등할 조짐이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보면 어떻겠느냐는 조언도 들었다고 했다. 결국 집 주인은 이전 가격에 4000만원을 더 올려 집을 새로 내놨다. 너 댓 달 사이 1억이 올랐던 것이다.

1억. 웬만한 서민들에게는 엄청 큰돈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한 해 1000만원 씩 저축한다 해도 10년 동안 모아야 하는 돈이다. 그런데 집 한 채 갖고 그 큰돈을 반 년 사이 벌어들였다. 60평생 처음 겪는 일이어서 그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C 중개사는 몇 차례 그에게 하소연을 했다.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 높은 값에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며 집주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C 중개사는 70쯤 된 노인으로 그 동네, 그 부동산에서만 수 십 년을 일해 왔던 ‘토박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는, 집주인에게 C의 얘기를 전했다. 하지만 반응이 매몰찼다. C의 얘기는 듣지도 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 쯤 갔다. 몇몇 팀이 주말에 집을 보러 오기는 했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수 개 월 사이 너무 올렸어, 나 같아도 안 살 거야. 그는 이렇게 생각했고 또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웬걸.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뒤 꼭 한 달 뒤였다. 집주인이 전화를 했다. 어떤 이가 집을 보지도 않고 사겠다며 무작정 계약금 10%를 통장으로 입금시켰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나이 70 전후의 고령으로 강남에서 잔뼈가 굵은 사업가 출신이다. 별별 풍파를 다 겪었을 것이다. 그런 그도, 집도 안 본 채, 집주인과 얘기 한 마디 없이, 중개사 통해 계약금 먼저 보내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리고 집주인 역시 세상이 미쳤다고 했다. 내 생각과 같았다. 하지만 집은 계약이 됐다. 1억 올린 값으로. 7월 11일 화요일의 일이었다.

3.

2018년 1월. 해가 바뀌었다. 집주인이 바뀐 것도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집값은 또 올랐다.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는 정부의 8.2, 그리고 10.24 부동산대책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황상 집값이 떨어져야 하는데....... 궁금한 마음에 부동산중개소를 또 찾아가 봤다. 하지만 얘기는 똑같았다. 문재인 정부는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노무현 때도 그랬다....... 며칠 전 정부는 강남 집값 잡겠다며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부과까지 발표했지만 현장에는 그것으로 강남 집값을 잡기에는 이미 늦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모두 세상이 미쳤다고 했다. 먼저 집주인도, 지금 집주인도, 부동산중개사도. 그래도 그들은 받아들였다. 집값을 확 올렸는데도, 집도 안 보고, 계약서도 없이 계약금을 주고 집을 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벌었다. 먼저 집주인과 지금 집주인은 억대를 벌었고 부동산중개사도 몇 백을 벌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했던 그만 바보가 됐다. 강남에 집 한 채 마련해 보겠다는 ‘꿈’은 쪽박이 돼 깨져버렸고, 엄청 오른 전세 값에 큰 빚을 내거나 집을 떠나야 하는 서글픈 신세가 됐다.

그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속이 쓰리다. 속이 쓰리면 생각나는 게 있다. 담배다. 새해 들어 그는 몇 년 전 끊은 담배가 당겨 무척 힘들다.

참, 지난해 계약 파기로 맘고생 했던 C 중개사는 올 들어 중개 업무를 그만뒀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 오래된 ‘복덕방’도 깔끔하게 새 단장을 하고 현대식 ‘부동산중개소’로 탈바꿈했다. 당연히 주인도 젊다. 그리고 새 주인 얘기도 다르지 않다. 동네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했다.

 

논설위원 /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재광 논설위원 ·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imu@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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