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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의 以言傳心] BTS, AMA,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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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의 以言傳心] BTS, AMA, DNA
  • 이재광 논설위원
  • 승인 2018.01.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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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AMA, DNA.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과정에서 이 세 개의 단어가 통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 말 BTS(방탄소년단)가 그들의 미국 TV 데뷔 무대였던 AMAs(어메리칸 뮤직 어워즈) 시상식에 이어 ABC 방송의 신년맞이 특별쇼에서 자신의 히트곡 ‘DNA’를 부르며 대중에게 보여준 강력한 퍼포먼스 때문일 것이다. 떼창, 괴성, 눈물, 연호(連呼).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공연 중 미국의 어린 소녀들이 보여준 광적인 반응을 기이하게 여겼을 것이다.

필자도 그중 하나다. 톰 존스나 클리프 리차드, 레이프 가렛 등 서양 스타를 향한 한국 소녀들의 열광에만 익숙해 있던 50대 중장년 아닌가. 미국의 3대 음악상 시상식장에서 미국 소녀들이 한국 청년들의 노랫말, 그것도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등 어려운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떼창’에 무척이나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기이한 느낌’은, 꿈결인 듯, 필자를 아주 먼 과거로 이끌었다. 꼭 20년 전인 1998년, 흔히 ‘IMF위기’로 불리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다음 해였다. 그 전 해인 1997년 12월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후보는 그해 1998년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국민은 그에게 위기와 불안과 혼란의 극복을 기대하고 있었다.

새 대통령은 이 기대에 부응했다. 엉망진창이 된 나라살림을 살리겠다며 ‘돈줄’인 해외투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돈 많은 나라가 돈을 그냥 내줄 리 없었다. 초고금리, 규제 완화, 시장 개방 등 하나같이 부담스러운 조건들을 투자의 전제로 내걸었다.

일본도 그중 하나였다. 위기를 틈타 한국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겠다는 심산이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위안부’ 문제를 걸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는 달랐다. 일본은 제조업을 넘어 중국 등 아시아 문화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이를 위한 전초 기지로 한국의 문화시장이 필요했고 당연히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새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있었다.

일본에 문화시장을 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국내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바로 그때 일본 3대 연예기획사 중 한 곳에서 초정장이 날아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 연예 PD가 일본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취재와 함께 그 회사의 소개를 부탁했던 것이다. 때가 때인 만큼 필자는 출국 전 국내 전문가들을 만나며 다양한 사전 취재를 준비했다.

국내 관계자들 대부분은 부정적이었다. 일본의 문화산업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반면 한국은 여전히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함께 “일본에 대한 문화시장 개방은 제2의 강화도 조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소수지만 문화시장 개방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음반 비즈니스 사업가였던 K대표가 딱 그랬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수 천 년 뿌리를 갖고 있는 우리 문화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지요. 음주가무(飮酒歌舞)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DNA를 갖고 있는 민족 아닙니까. 문화시장 개방으로 한국은, 어쩌면, 일본과 중국을 넘어 세계시장까지 진출할 좋은 기회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음주가무와 관련된 특별한 DNA’. 그때 들었던 이 말은 20년이 지난 지금 BTS의 ‘DNA’ 노랫말과 연계되며 필자가 이 글을 쓰게 하는 강력한 동인(動因)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노는 분야’에서 어느 민족이 우리를 따라오겠는가. 1차에서 소주 한 잔, 2차에서 노래와 춤은 우리 모임이 갖는 ‘수학의 공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BTS의 노랫말처럼 ‘우리 혈관 속 DNA’가 그렇게 알려주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얘기다.

그렇게 사전 취재를 마친 필자는 며칠 뒤 일본 출장을 떠났고 그곳에서 일본 문화산업 관계자들의 고무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났던 일본의 한 대형 연예 기획사 대표의 말 또한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는 한국민과 한국 전문가들의 반발을 의식했던 것인지 일본의 일방적인 진출을 강조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는다면 중국과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업계의 ‘기회’를 설파했다.

꼭 20년 뒤 상황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한류열풍은 일본에 대한 문화시장 개방의 파고를 넘어 지난해 말 BTS의 AMAs 시상식 출연과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체인 스모커스의 표현대로 “국제적인 슈퍼스타의 첫 미국 TV 데뷔 무대”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한 시대의 끝자락을, 그리고 ABC방송의 새해 첫 무대는 새 시대가 왔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일 수도 있다. 일본의 눈총과 부러움은 한국 문화산업의 승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잣대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년 전 K대표의 말이 맞았다. 그의 말대로 ‘음주가무의 관련된 특별한 DNA’가 일본에 대한 한국 문화산업의 승리에 크게 공헌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몇 가지 더 생각할 게 있다.

우선 이것이다. 한국인의 ‘우수 DNA’는 ‘음주가무의 DNA’ 하나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1897년 영국의 여행가 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보라. 그 책에서 필자는 “한국인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다르다”며 “한국인은 그들보다 체격이 크고 잘 생겼고 똑똑하고 활기차다”고 썼다. 이 같은 ‘외모’와 ‘기질’의 특별한 DNA는, BTS의 성공은 물론 멤버 뷔(김태형)를 ‘세계에서 가장 잘 생긴 얼굴’로 만들어 주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또 있다. 어려운 단어지만 ‘전사인자(轉寫因子)’라는 것을 떠올려 보자. ‘유전자 발현 조절 단백질’인 이 ‘인자’는, 특정 유전자가 발현 또는 억제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인자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모든 DNA가 늘 자신의 독특한 특성을 발현시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 연구진이 인위적으로 이 인자의 조절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 중 하나는, BTS의 성공 뒤에는 ‘자유주의’라는 ‘전사인자’의 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인자는, 과거에는, 한국인에게 발현이 억제돼 있던 ‘경쟁’이라는 DNA를 활성화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조선 시대를 보라. 구한말 선교사들은 한국인의 단점으로 ‘게으름’을 꼽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서양인들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의 ‘코리안 타임’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썼었다.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의 팽배로 인해 우리에게 새롭게 활성화된 ‘경쟁’이라는 DNA는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아이들은 평균 5년의 시간을 모두 춤과 노래 연습에 쏟아 붇는다. 그러고도 실패하는 아이들과 기획사가 비일비재하다. 이들 ‘루저’의 삶은 처참하다. 지난해 말 30대의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그렇다고 ‘위너’ 모두가 행복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성공한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의 사례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쟁’의 DNA는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심각한 상태의 패자와 부적응자를 양산한다. 모름지기 ‘경쟁’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본질로 하는 탓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또 하나의 새로운 DNA를 발현할 시점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패자’와 ‘부적응자’를 아우르는 ‘배려의 DNA’가 그것이다. 산업화와 자유주의로 억제됐던 이 ‘특별한 유전자’가 활성화되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사회 전체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다수 국민의 상처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이 새로운 DNA를 일깨우는 ‘전사인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2018년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BTS, AMA, 그리고 DNA라는 세 단어에서 이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 /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재광 논설위원 imu@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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