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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동, 도올 김용옥 비판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 아들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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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동, 도올 김용옥 비판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 아들 아니라고(?)"
  • 박봉민 기자
  • 승인 2011.11.03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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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박봉민 기자] 김두한은 정말 ‘백야 김좌진’ 장군의 아들일까? 때 아닌 논쟁이 지난 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이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가 지난 1990년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며 그를 비판하고 나선 것.

이날 김 의원은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와 ‘EBS 도올 사태에 격분한 김을동 의원, 신상발언을 통해 ‘前 김두한 의원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증거 강력히 밝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도올은 역사 앞에 사죄하고, 진실을 바로 잡으라”며 김용옥 교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성명서에서 김 의원은 “현재 의 갑작스러운 중단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EBS 심의실에 어떠한 외압이 있었나의 진실 여부를 떠나 그동안 도올의 행적을 미루어 짐작컨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의원은 “저 역시 한때 도올 선생을 지성인이라 생각하고 존경한 적도 있었지만 그가 얼마나 근거 없이 편향된 사람인지, 악의를 가지고 진실을 왜곡하며 심한 막말을 일삼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며 장군의 아들로 흔히 알려진 김두한 의원의 딸이라는 것을 아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옥 교수는 지난 1990년 ‘신동아’에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 글에서 김 교수는 “김두한은 개성에서 자라난 부모를 모르는 고아이며 선천적으로 재능을 부여받은 쌈꾼인데 서울로 올라와서 거지왕초에게 붙들리어 거지소굴에서 컸다”며 “다리 밑 거지에서 조선일대를 제패하는 깡패두목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가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픽션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그 외에 어떠한 논리도 가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김 교수는 “감옥은 사람을 키운다. 그리고 상상의 기회를 준다. 김두한에게 감방살이는 그의 삶에 정치성을 부여했던 것”이라며 “단언컨대 김좌진의 신화는 일제하의 김두한의 성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김좌진의 신화가 신화로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오로지 해방 후 그의 애국심이 잘못 전도된 반공투쟁의 행각과 더불어 시작된 것임을 못박아 둔다”라고 언급했었다.

김을동 의원의 발언은 이러한 김용옥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발이다.

김 의원은 “(김용옥 교수의 주장은) 김두한이 감방살이를 하면서 상상으로 스스로를 김좌진의 아들로 만들었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기자가 도올에게 그 주장의 근거에 대해서 물어보자 대답을 피했다. 그가 왜 기자의 답변을 피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마디로 어떠한 역사적 근거도 없이 허위사실을 떠들어댔다는 것을 자신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며 “그러나 그의 명성이나 인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은 계속 번져나갔고 인터넷에는 아직도 제가 당시 DNA 검사를 하지 않았다며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것은 날조된 사실이며 따라서 김을동도 김좌진 장군의 손녀가 아니다’라는 글들이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김 의원은 자신이 김좌진 장군의 손녀라는 근거에 대해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 하에 있던 1920~30년대에 도대체 누가 그것도 어린아이가 무슨 정신으로 ‘나는 독립군의 자손이요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다’라고 얘기하고 다녔겠는가”라며 “저는 6살까지 김좌진 장군의 어머니인 증조할머니와 김좌진 장군의 부인인 오숙근 여사와 함께 살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자랐다”고 밝혔다.

또한 “1930년 2월 18일 중외일보에 김좌진장군 슬하에 두한이라는 아들이 있고 5년 전, 즉 1925년 만주에서 장군과 두한 군이 만났다라는 기사가 있다”며 “같은 해 3월 18, 19일, 9월 15일에도 조선일보와 매일신보에 이와 같은 내용의 기사가 있고 김두한 씨의 사진도 실렸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930년 5월 20일 중외일보에 ‘김좌진 유고로 안동김씨 회합, 두한군을 위하여’라는 기사에서는 장군이 돌아가신 후 안동김씨가 모여 두한군의 장래교육을 논의했다라는 기사가 있다”며 “우리 할머니가 손자도 몰라보는 청맹관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봉민 기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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