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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길위의 사람들-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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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길위의 사람들- '싸움'
  • 이호준
  • 승인 2011.10.24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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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판사판

한판 붙자 덤벼대는 지훈, 준은 당혹스럽다. 앞으로 제 멋대로 커질 소문도 문제지만, 한대라도 맞는다면 형님으로서 체면 구겨질 일이요, 행여 잘못되었다간 부산을 떠야하는 이겨도 잘해야 본전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지훈 또한 1년 전 분수대 앞에서 불우이웃돕기공연 중이던 준에게 행패 부렸다 당한 기억만 생생할 뿐,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은 구치소에서 막 출소했을 때의 일이고, 오늘은 그동안 쌓아온 전적에 여차하면 합세할 두 부하들도 있다. 떡 벌어진 어깨가 듬직한 두 덩치들을 배경으로 짧은 목을 휘돌리며 하늘 향해 두 팔을 펴고 앉잖다 섰다 요란법석을 피우더니, 준을 향해 비아냥거림 섞은 닦달을 한다.
“뭐 하는교? 이제 겁나나 보제. 빨리 오소. 마! 내, 바쁨니데이.”
“참! 새끼하고는.”
흥분에 묶여 용솟음치는 아드레날린[Adrenaline], 이젠 오로지 승패뿐이다. 준이 지훈을 향해 ‘휘적휘적’ 두 걸음 잰 오른발을 내딛으며 상체를 옆으로 돌려 선다. 그리고 고개 숙인 쭉 뺀 목에 안경 넘어 치켜뜬 두 눈을 ‘번들번들’ 히죽인다. 자신 있으면 쳐보라는 식의 거북이흉내다. 이런 상황이면 안전거리확보를 위해 뒤로 주춤거리던가, 준비한 공격을 해야 하는 법인데, 지훈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이런 두 사람에게 싸움에 있어 최고의 수인 대화를 통한 타협이나 삼십육계 줄행랑은 이젠 물 건너 가 버린 이야기고, 남은 것이라곤 선방이란 선제공격뿐이다. 그렇다고 서투른 공격을 할 순 없다. 하지만 머뭇대다 그 마저 놓쳐버린다면 승패는 안 봐도 빤하다. 서투른 공격일지라도 기회를 잡기 위해선 수학공식 같은 타이밍[timing]과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로 행동할 종교보다 더한 믿음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싸움이든 힘만큼이나 사상과 철학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번들거리는 준의눈빛, 부담스런 구경꾼들, 후덥지근하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공격하기엔 수가 없고, 물러서기는 죽기보다 싫어 똥배짱으로 버티던 지훈이 빈약한 속내를 털어놓으며 불끈 쥔 오른 주먹을 휘두른다.
“장난하는교?”
어정쩡한 궤적을 그리며 준의 턱을 향해 휘어들어가는 주먹, 허리를 뒤로 재낀 준이 오른발을 뒤로 빼며 왼손을 뻗어 헛손질로 눈앞을 훑는 오른팔 바깥쪽을 잡는다. 그리고 한걸음 더 물러서며 오른손을 뻗어 왼쪽어깨 옷섶을 움켜잡는다. 지훈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끌려가는 것이 마냥 불안하지만, 어정쩡한 주먹질에 상체중심이 앞으로 쏠려 어쩔 할 수가 없다. 그런 두 사람 모습이 마치 격정적인 춤을 추기전의 댄스파트너[dance partner], 왼쪽으로 45도 턴을 할 땐 의심할 여지없는 모습이다.
준은 그렇게 해서 생긴 반동으로 고분고분 잘 따라준 지훈을 “으차”하는 용까지 써가며 던져버린다. 그러자 지구본을 돌리다 원심력을 못 이긴 개구쟁이처럼 모로 나가떨어진 지훈이 반 바퀴를 뒹굴더니 하늘을 우러러 큰 대자로 널 부러진다.

물끄러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준, 그렇다고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도둑펀치에 임자 없다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들은 예측불허[豫測不許]이기 때문이다. 두 덩치를 쏘아본다.
지훈의 자신만만했던 악다구니배경에서 이젠 도살당한 식육 견처럼 축 늘어진 몸뚱이를 걱정스레 내려다 봐야하는 두 덩치들, 엉거주춤 눈 둘 곳을 찾기 바쁘다. 준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왼손을 펴 안쪽으로 까불린다.
“차~ㅁ! 새끼들,”
그런데 못 본 척 고개 숙인 딴청을 부리는 두 덩치들, 짜증 섞인 준의 채근[採根]에도 묵묵부답[黙黙不答]인 것이 의지력을 포기한 채 처분[處分]을 바라는 죄인 같다.
“........................”
“뭐야? 새끼들아.”
“........................”
그냥 넘어가줬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날 수 없는 일, 그렇다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빌 수도 없고, 줄행랑은 더욱더 부담스럽다. 준의 싸움실력도 실력이지만 “별거 아니네.”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퀭하게 반짝이는 추레한 차림들에게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 덩치의 행동에 준이 나무라는 목소릴 낮추며 알아서 물러가는 듯 편 손을 바깥쪽으로 까불린다.
“에라 이 한심한 놈들아!”
“.........................”
여전히 시각적해석이 불가능해 묵묵부답인 두 덩치들, 결국 안 되겠다 싶은 준이 쉰 목소릴 높여 다그치자, 그때서야 약속이나 한 듯 파묻은 고개를 들고 “두리번두리번” 뒤도 안돌아보는 줄행랑을 친다.
“이 새끼들이, 빨리 안 꺼져,”

2. 패자부활전(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준의 다그침을 들으며 엉거주춤 일어난 지훈이 바지를 턴다.
“아~~ 쪽 팔리구로, 이게 뭐꼬.”
그러나 부릅뜬 눈을 번들거리며 ‘터벅터벅’ 금방이라도 코앞까지 쳐들어올 준의기세에 그 마저도 잊은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바쁘다.
“뭐 쪽팔려? 이 양아치 새끼들은 반성할 줄을 몰라요.”
“해..행님! 그만 하입시다.”
“너 이 새끼, 까불다 한번 잘못 걸리면 죽는다고 했지.”
“지가, 지가 잘못 했습니다.”
“뭐, 잘못? 그니까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새꺄!"
처음부터 안 했으면 모를까 이미 내지른 주먹이다. 이대로 싸움을 끝낸다며 소문과 억측이 난무할 것은 안 봐도 빤한 사실, 두 말 못하게 조저야 한다. 그렇게 지훈을 따라잡은 준이 무게중심을 낮추며 쭉 뻗은 주먹을 허리반동에 실어 날린다. “퍽” 명치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30도 각을 잡은 왼 주먹, 지훈이 “흐~ㄱ” 바람 빠지는 신음을 뱉으며 명치를 감싸 안고 앞으로 꼬꾸라져 모로 눕는다. 무슨 행동이든 해봐야하는데, 모든 가능성은 온몸을 타고 전해오는 폭력이란 야만성에 지배당해 비명조차 먹어치운 공포다. 괴로운 숨을 뱉어내며 구둣발로 “그윽 그윽” 아스팔트바닥을 긁는다.
“해...행님요. 흣으~.. 잘...못” 
“웃기고 있네. 새끼 안 일어나.”
“ 흐~으~ 흣~~”
“그래! 맞아보니까 어떠냐? 미치고 환장하겠냐? 죽겠냐? 슬프냐? 근데 어떡하냐? 아직 안 끝났는데, 어이 김지훈씨 엄살 그만 피고 일어나시지.”
준의 비아냥거림에도 여전히 구둣발로 바닥을 긁어대며 괴로운 신음을 뱉어내기 바쁜 지훈, 쉽게 일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준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두어 걸음 떨어진 느티나무가로수벤치를 향해 걸어가 앉더니 악다구니훈계를 쏟아낸다.
“아~하! 날씨라고 개 벼락 맞게 덥다. 에라이 개 상놈의 새꺄! 쥐어 터지니까 속이 시원하냐? 그러게 함부로 힘자랑하는 것 아니라고 했지. 아무리 쌩 양아치라도 최소한 예의는 있어야지. 힘없는 사람들이나 괴롭히고 돈을 뺏어. 아이구 새끼야. 이 개,돼지만도 못한 씹 새야. 그러고도 니가 인간새끼라고 삼시세끼 꾸역꾸역 챙겨 먹지?”

1......5. 6초....30....
흐르는 시간은 진리인 법, 회복의 기미가 확연한 지훈이다. 그래도 숨쉬기 불편한 오만상을 찌푸리며 엉거주춤 일어나 여전히 훈계를 내뱉는 준을 향해 ‘어기적어기적’ 불편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젠 이미 결정 난 승패보다 어떤 식으로든 예전의 관계를 회복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싸움이 정리 되어버린다면 지금껏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었던 대가(對價)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그것은 다구리[집단폭행]을 당하던가, 칼이나 쇠파이프 같은 무기로 기습적인 린치를 당하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하고도 끔직한 거리의 응징이다. 그래서 어떡하든 싸움을 하기 전의 동생으로 인정받아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준의 주먹 한방에 동생이고, 뭐고 쪽이란 쪽은 팔릴 대로 다 팔려버렸고, 사방팔방[四方八方] 흥미로운 눈빛을 반짝이는 구경꾼들, 환한 아침볕에 달궈져 후덥지근한 공기, 비둘기 때들의 날개 짓 소리, 시끄러운 자동차소리,.... 지훈은 치미는 화를 주체할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일자 눈을 ‘번들번들’ 주둥이를 ‘오물오물’ 준의 발밑에“퉤~” 마른침을 뱉어버린다.
순간 준의 뇌리를 독차지해버린 명우의 목소리(“근데 그 자슥, 오른쪽 허리에 칼 차고 다닌단다.”), 긴장과 두려움이 교차된 눈동자가 지훈의 오른쪽허리춤으로 가는 것은 기회가 있을 때 확실히 조지지 않아 후회막급[後悔莫及]한 것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는 법, 두 눈을 휘 번득 치켜뜨며 먹잇감의 숨통을 끊기 전 삶에 의지를 먼저 거둬드리는 짐승처럼 으르렁댄다.
“이 새끼가~ 씨, 아주 끝을 보자 이거냐!”
그러나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입 꼬리 올린 미소에 콧소리를 뭉그러트린 지훈이 빈정거린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교! 가이바이보(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라는데~ 행님과 나 사이에 야박하게시리, 패자부활전[敗者復活戰]함 하입시더.”
(“아~! 이 새끼, 진짜 칼 차고 있구나.”) 준은 짐작했던 것들이 사실로 확인된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다. 벤치에서 일어나 치룬 일전으로 익숙해진 장소를 향해 느린 뒷걸음질을 친다. 승자에겐 심리적인 안정을 패자에겐 당한 일전[一戰]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징크스[jinx]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알 리 없는 지훈이 미끼에 홀린 짐승처럼 쫓아간다.
“행님, 각오 하소. 내 이번엔 안 봐줍니데이!”
‘어슬렁어슬렁’ 뚜렷한 대책이 없는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과장된 몸짓이다.

3. 결과(하늘을 우러러 보는 자)

이미 승패가 명확하게 나눠진 싸움을 되돌려보겠다 설치는 지훈이다. 하지만 한번 당한 것이 있으니 쉽게 덤비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준이 선방을 날리는 것 또한 무모한 짓이다. 한방에 나가떨어지면 모를까 칼 뽑을 구실만 제공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뒷걸음질을 치던 준이 오른발을 마지막으로 멈춰 선다. 지훈 또한 그런 준을 노려보며 맞선다. 잔뜩 힘이 들어간 종잡을 수 없는 일자 눈을 ‘번들번들’ 먹이를 가로챌 욕심으로 골똘한 하이에나(hyena)같다.

1..3초....
부산역 넘어 부두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구경꾼들의 열기와 뒤섞여 이마에 땀으로 ‘송골송골’ 변화를 확신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던 지훈이 두 눈을 비벼대며 ‘깜박깜박’ 준에겐 두 번 다시없을 절호에 기회다. 오른발을 들어 “타~ㄱ” 아스팔트바닥을 차는 동시에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비호처럼 전진한다. 하지만 지훈에겐 따가운 눈에 정신 팔린 찰나(刹那)의 암흑에서 벌어진 일, 졸다 놀란 캥거루[kangaroo]처럼 어쩔 줄 모르는 두 다리를 ‘팔짝팔짝’ 뒷걸음질을 뛴다.
준은 그런 지훈을 쫓아가 멱살을 움켜잡고 몸을 밀착시키며 한발두발.... 밀어붙인다. 우선은 옆구리에 감췄다 짐작되는 칼 뽑을 여유를 빼앗고, 한방 날릴 기회가 생길 때까지 동작을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훈에겐 한걸음, 한걸음.. 뒤로 밀릴 때마다 느껴야하는 위기감이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버티더니, 이내전열을 정비한 장수(將帥)처럼 고함소리도 우렁차게 밀어붙인다.
"뭐꼬? 이거? 진짜 이럴끼가? 이~잇, 이~아~아~”

그 기세등등[氣勢騰騰]함에 오른발, 왼발 뒷걸음질 치던 준이 다음 오른발은 왼쪽으로 30도 비켜 빼며 몸을 오른쪽으로 낮춰 튼다. 그리고 활시위를 당기듯 허리를 굽히며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버린다. 그러자 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던 지훈이 자연스럽게 준의 등에 업혀 어깨를 타고 넘어가, 1년 전 그때처럼 큰 대자로 나가떨어져 파르르 다리를 떤다.
긴박한 순간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이 가장 긍정적으로 받아드려야 할 운명, 지훈이 철썩 같이 믿었을 칼은 자랑한번 못해보고 하늘을 우러러 기절해 버린 것이다. <계속>

 

<이호준 약력>

전라북도 정읍 태생
문화복지)여섯줄사랑회 회장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작사,작곡가(비개인 오후 외 다수)
거리음악가
컬럼리스트

이호준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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