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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 김성근 감독, 감독 경력에 오점 남기고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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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 김성근 감독, 감독 경력에 오점 남기고 퇴장
  • 황인성 기자
  • 승인 2017.05.23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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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화 이글스 공식 SNS)

[KNS뉴스통신 황인성 기자]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아직 2017 시즌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23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 올랐다. 이날 한화 이글스 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화 김성근 감독이 지난 21일 홈 경기 종료 후 구단과 코칭스태프 측에 사의를 표명했다"면서 "구단은 현재 감독의 사의 표명에 대한 수용 여부를 협의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창단 투수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김성근 감독은 1984년 김영덕 감독에 이어 OB 베어스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감독 경력을 쌓았다. 이후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를 거쳐 2007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부임해 전성기를 누렸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연구로 자신만의 야구관을 정립하면서 '야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약한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것은 물론 명투수 조련사로 이름을 날렸다. 감각적인 투수 교체와 상대 타자의 특성을 완벽하게 분석한 수비 시프트를 통해 SK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타협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부임하는 구단마다 마찰을 일으켰다. 재정난으로 프로야구에서 퇴출된 쌍방울 레이더스를 제외하면 모든 구단에서 프런트와 마찰을 겪었다. 하지만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에 존경심을 표했다. 급기야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화 이글스 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모시기 위한 청원 운동을 벌였고, 한화 구단은 팬들의 뜻에 따라 김성근 감독을 불러왔다.

한화 이글스 부임 첫해인 2015 시즌은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희망의 한 해였다. 전 시즌까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던 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으로 거듭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주입한 한화 선수들은 매경기 명승부를 연출하며 팬들을 중독시켰다. '마리한화'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이때문이다.

비록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한화팬들은 달라진 팀컬러에 열광했고, 다음 시즌에 기대감을 품었다. 구단 역시 거물급 FA 선수들을 영입하며 김성근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팀의 구성원들을 보면 한국시리즈 우승도 가능할 것 같은 조합이었다. 하지만 팬들의 예상과 달리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발투수 조기교체를 남발하고, 불펜투수를 지나치게 혹사시킨다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수를 존중하지 않고 무리하게 훈련을 시킨다는 논란에도 휘말렸다. 팬들은 현대야구와 반대로 흘러가는 김성근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SK왕조'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한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서는 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일까? 우선 당시 SK 와이번스는 전임이었던 조범현 감독이 어느 정도 팀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당시 신인급이었던 박정권, 정근우, 박재상, 김강민, 이진영 등은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함께 꽃을 피웠다. 여기에 특급투수 김광현까지 합류했다.

반면 한화 이글스는 신인 스카우트 실패 및 전력의 노쇠화로 리빌딩에 성공하지 못했다. 전임 감독들도 성적과 리빌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못했다. 김성근 감독은 거의 제로베이스에서 팀을 만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한화 구단이 투자에 인색한 것은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함께 거물급 FA 선수들을 영입하며 김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려 했다.

김성근 감독의 실패는 SK에서의 성공신화를 너무 과신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이었던 2007년~2011년까지는 경기 수가 적었다. 8개 구단 체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0개 구단 체제에서 경기수는 많아졌고, 운용가능한 선수는 한정이 돼있다. 그래서 운용의 묘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SK에서의 성공적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믿었다.

파격에 가까운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은 부임 초기에는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차츰 변칙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팬들은 팀 컬러를 바꿔준 것에 대해서는 공을 인정하면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 야구를 하는 김성근 감독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부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그의 화법 역시 팬들을 실망시켰다.

김성근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은 명장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당시 선진야구였던 일본 야구 기술을 국내에 전수했다. 프로선수의 근성과 애티튜드를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도 자신의 마지막 감독 경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한화 이글스를 맡으면서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황인성 기자 ent1@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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