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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어수업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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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어수업 소감
  • 윤석구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0.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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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둥이로 출생하여 초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당시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부대 앞을 매일 지나치게 되어 있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낯 설은 언어에 늘 관심 아닌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부대에 조금 더 접근했을 때 한 병사가 ‘게라리갓댐손오브비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시시덕거리면서 집으로 향했던 일이 있었다. 물론 보안상 그렇게 했겠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몰상식한 영어였다(Get out of here. You‘re damn. Son of a bitch)

그 이후 중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궁금한 것이 영어 수업이었는데 그 때의 관심은 과연 영어선생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대단한 호기심을 갖고 첫 수업시간이 시작되었다. 당시 선생님의 키가 거의 190cm 정도로 보였고 머리를 숙이고 교실에 들어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키보다 더 긴 장대를 왼쪽에 들고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속으로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외모의 위압감 그리고 긴 장대…….무엇을 먼저 가르치실까?…….등의 기대와 호기심뿐이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전부다 오뉴월에 사시나무 떨듯하며 바짝 긴장이 되어 전전긍긍했다.

이렇게 긴장된 속에서 영어 첫 수업이 시작되어서 무엇을 배웠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 무서운 키다리 선생님으로부터 어떻게 하든지 인정을 받아야 되겠다는 욕심이 생겨나서 수업준비뿐 아니라 눈도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수업도중에 맨 뒤에 앉아 졸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이때다 하고 그 긴 장대를 이용하여 교탁에서 팔을 쭉 뻗어 그 친구의 머리통을 때리니 펑하는 소리가 조용했던 교실의 침묵을 깨뜨리고 말았다. 이제야 우리는 긴 장대의 용도를 알게 되었고 잠이 오면 다른 수업 시간에 자고 영어시간에는 조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영어숙제를 받았을 때 너무나 황당했다. 1학기 동안 배운 교재의 내용 중 모든 동사는 현재, 과거, 과거분사를 하나에 50번씩 써오는 과제였다. 더운 여름날 하루도 놀지 못하고 갱지에 잉크와 펜을 사용하여 열심히 써서 부모님께 부탁하여 책으로 꿰매어 과제를 제출한 일이 기억난다. 이러한 일을 통하여 나도 장차 크면 선생님을 본받아 영어를 전공하여 더 멋있는 영어선생님이 되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으며 결국 지금까지 영어전공자로 인생의 길을 겸허하게 걸어가고 있다.

참으로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일대의 최고 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 절실히 깨닫게 된다. 내가 대학입시 과정에서 만난 하나님, 교육에 열정을 다하셨던 부모님 그리고 믿음 좋은 아내와 슬기로운 자녀들을 만난 것이 내 삶 중에서 지고의 가치가 되고 있다. 아울러 첫 영어수업을 통하여 깊은 감동을 갖게 하여 평생을 영어 교육자로 살게 하신 은사님께도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ysk0848@hanmail.net
 

윤석구 칼럼니스트 ysk08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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