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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리 강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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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리 강변 이야기
  • 윤석구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0.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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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구 교장

논산에서 자동차로 20여분 소요되는 벽촌 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내가 태어난 매찰(馬車洞)은 그중에서 가장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앞산과 실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강변이 쭉 깔려있어서 여름에는 위쪽에서 아낙네들이 저녁에 미역을 감고 아래쪽에서는 장정들이 하늘의 쏟아질 듯 한 별을 바라보며 노곤한 하루를 강변의 넓적돌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쉼을 갖는 한적한 마을이다.

나이어린 우리들은 나무로 만든 조그만 수레를 끌고나와 돌을 실어 나르며 나름대로 돌집을 짓기도 하고 어떤 애들은 자기들 집처럼 짓는다고 하면서 초가집을 짓기도 하며 서로 건축가인양 허세를 떨었었고 밤에는 자기들이 지어놓은 집에서 잠을 잔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부모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각자 집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면 희미한 등잔불에 의지하여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짜시다가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보리밥 한 그릇, 고추장, 열무김치 등을 한 상에 차려 아들 앞에 내어 놓으신다. 그리고 “배고프지 어서 먹으라”고 채근하신다. 밥상을 물리고 마루에 앉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반짝반짝하는 반딧불들의 곡에를 보고 하루를 정리한다.

지금은 조기교육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자식들은 단지 일하는 도구로 농사일에 전념하여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것이 상례였다. 그렇지만 나는 조부의 손을 잡고 서당에 다니는 특혜를 받아 일찍이 한문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 하면서 다섯 살 박이 소년이 구성진 목소리로 수염이 길게 늘어뜨린 훈장님 앞에서 열심히 글을 읽는다. 지금 같으면 영어친구마을학교(E-times College)에서 이지펜(Ezi-pen)을 이용하여 재빠르게 영어를 배웠으련만….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해서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서당 앞마당에 있는 자두나무에 원숭이처럼 재빨리 타고 올라가 갓 익은 자두를 따먹으면서 널따란 나무 가지위에 팔다리를 쭉 펴고 망중한을 즐기던 휴식의 즐거움이야말로 지금에 와서도 다른 어느 것에 이루 비길 데가 없을 것 같다.당시에는 먹을거리도 참 귀해서 어린이들에게는 날마다 혹독한 삶이었으며 하루하루의 생활자체가 극기 훈련 이었던 같다. 만약 비가 오면 책보를 옷 속에 넣고 4km를 구보로 집까지 달린다. 그 덕택에 학교마라톤 시합에 여러 번 참석한 적이 있다.

껌이 먹고 싶으면 밀밭에 나가 무심코 어느 정도 알맹이가 들었다 싶은 것을 따서 수십 번 입속에 넣고 씹으면서 껍질의 이물감이 느껴지면 입 한 쪽에서 뱉어내며 속살만 남게 만들어 거의 하루 종일 씹고 다니다가 잠들기 전에 황토흙벽 기둥에 붙여놓는다. 물론 동생들한테도 엄명을 내려 그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해둔다. 집안에 있는 파리가 모두 덤벼들어 모처럼 한바탕 회식을 한 다음 날에도 열심히 씹고 다닌다. 당시는 위생관념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부모님들은 논밭으로 나가 일과 길쌈하시느라 자녀들의 양육은 그저 하늘과 자연에 그대로 방치해두었으니까….그래도 우리는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났다. 하늘의 힘으로 자연에 의해서….

마산에 있는 구자곡 초등학교 까지는 걸어서 십리길….지내기재를 넘어가야 되고 채돌박이동네와 소룡리 마을을 거쳐 학교에 도착한다. 여름에는 온몸에 땀이 흠뻑 젖고 겨울에는 눈길에 수십 번 둥글어야 학교를 간다. 한번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학교 가기를 주저했을 때 아버지가 새끼줄을 검정고무신에 넘어지지 말라고 가로로 묶어주신 일이 있었다. 이마저도 많은 눈을 밟고 가니 오히려 스케이트가 되어 마치 게처럼 옆으로 자꾸 미끄러져나가 계속 넘어지니까 당시 네 살 위이면서 5학년에 다니던 형이 넘어진 나를 붙들고 일으켜 세우면서 “너는 왜 이렇게 자꾸 넘어지니”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형제간의 정이 이런 게 아닌가 싶어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동생은 늦게나마 고마운 정을 느끼며 고희를 넘긴 형님이 날로 강건해지시기를 기원 드린다. 오늘의 하루를 쉼으로 마감하며 잠시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를 묵상해 본다.
감사합니다.

윤석구 영어친구마을학교 교장

 

<윤석구 경력사항>

총 경력 년 수 (40년 6개월) [ 해외근무 1년 0개월 | 전체 ]

1972년 9월 ~ 1978년 02월 대전 상업고등학교 영어교사

1979년 8월 ~ 1984년 02월 천안상업고등학교 영어교사

1968년 7월 ~ 1972년 06월 공군기술고등학교 영어교관[과장]

1984년 3월 ~ 1999년 02월 서울 대원고등학교 영어교사[과장]

1999년 3월 ~ 2007년 12월 서울 대원여자고등학교 영어교사[외국어부장]

2006년 3월 ~ 2010년 01월 (주)에듀프로 영문원서 첨삭지도 교수

2011년 7월 ~ 2011년 10월 영어친구마을학교(E-times College)교장 재직 중

윤석구 칼럼니스트 ysk08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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