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토리 칼럼] 재동 백송(白松)의 탄핵소회(彈劾所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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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칼럼] 재동 백송(白松)의 탄핵소회(彈劾所懷)
  • KNS뉴스통신
  • 승인 2017.03.1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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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최승희)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5분.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탄핵이 인용되면서 즉시 파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이 되었다.

탄핵이 결정되는 서울 재동의 헌법재판소 앞에는 며칠 전부터 촛불과 태극기가 대치하며 탄핵심판의 찬반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대립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렇듯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조용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역사적 심판을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헌법재판소가 소유한 천연기념물 제8호이자 600살에 이르는 백송 한 그루다.

헌법재판소 뒷마당에 있는 이 백송은 우리 역사의 정치적 탄핵을 생생하게 목도한 산증인이다. 우리나라의 탄핵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물론 임금에 대한 탄핵은 바로 역모로 취급됐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대간들에 의한 간쟁은 수시로 이뤄졌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5,000여회의 탄핵이 언급되어있을 정도다.

현재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재동은 조선정치판의 중심지였다. 당쟁과 세도정치로 인해 급변하는 정치변화에 따라 많은 정치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했으며, 그 낭자한 혈흔을 가리기 위해 재를 많이 뿌렸다 해서 재동이라 불렸다.

그 낭자한 혈흔이 비단 피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사상과 목적이 다른 권력집단간의 정치적 유폐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지난 600년 간 이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목도한 백송이 연관된 하이라이트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 시절이다.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은 헌종과 철종시대는 무려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조선을 지배했다. 부정부패가 극에 달해 조선 전체가 황폐해지고 오갈 데 없는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민란을 일으켰으며 조정은 이를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했다.

심지어 철종이 죽기 전에는 한 해에만 수십 차례의 민란이 일어날 정도로 조선 사회는 붕괴직전이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종식시키고자 측근들과 은밀한 모의를 진행했는데 그 자리가 바로 이 백송이 지켜보는 재동의 사랑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역사는 이 무렵 백송의 밑둥이 유별나게 희어져 있었기에 대원군이 성사를 확신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력을 몰아내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백성들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권력집단이 기존의 다른 권력집단을 응징했던 세력전복일 뿐이었다. 결국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조선은 외세에 의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왕조시대가 사라지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헌법이 제정되면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파면을 위한 탄핵제도가 도입되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탄핵을 의결하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에서 심판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정치견제 제도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됐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며 전횡을 일삼아 임시의정원에 의해 탄핵을 당한바 있다.

그리고 독재와 부정선거를 일삼다 4.19의거를 통해 탄핵 전 하야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헌법의 이름으로 현직대통령을 탄핵 인용함으로써 즉각 파면시켰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사유는 대통령이 헌법수호의 의지와 향후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바 탄핵한다고 전원일치로 파면을 선언했다.

국민의 힘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즈음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묵묵하게 지켜본 백송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지난 600년 간 수많은 정치적 탄핵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지만 대부분은 국민들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독재를 없애면 군부가 들어서고 군부가 물러나면 권력부패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핵심은 권력자 개인에 대한 비리를 문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리의 몸통에 숨어있는 거대한 부패세력을 제도적으로 청산하는데 있을 것이다.

재동의 노송이 국민적 환호에도 불구하고 웃지 못하고 희디 흰 밑둥으로 그 심정을 대신하는 것은 진정한 적폐청산이란 절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아주 오랜 기간 지속적이고도 정의로운 국민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로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재동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모토리 최승희 (2017. 03. 10)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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