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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포토에세이] 雨中 修德寺…절간 마룻바닥에 앉아 딱한 인생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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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포토에세이] 雨中 修德寺…절간 마룻바닥에 앉아 딱한 인생을 돌아보다
  • KNS뉴스통신
  • 승인 2016.12.0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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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비가 오는 수덕사를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며 가랑비가 계속 내렸다. 덕숭총림의 본거지 예산 수덕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나 일반인들은 그저 이곳 대웅전 목조건물의 아름다움쯤을 볼량으로 여기고 그냥저냥 산사를 찾는 즐거움을 느끼고자 찾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산사를 찾는 것은 그 자신이 마치 불교에 심취해 '직관적 깨우침을 느끼는 참선' 혹은 '지성적 사유를 통한 선의 이해' 등의 고단계의 학습을 갈고닦고 알아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걸어 다닐 두 다리만 있으면 언제나 가능한 것이 바로 사찰 기행인 것이다. 비가 내리는 수덕사는 역시 색다른 풍경이 있었다.

그전에 하나, 일주문을 지나기도 전에 맞닥뜨려야 하는 수덕사 앞 주차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북적거리는 것도 모자라 주차하는데 얼마, 또 입장하는데 얼마 도합 일인당 몇천원을 내야 그 유명한 수덕사의 산세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이건 또 어떤가? 전국 풍물시장에서 전부 가져다 온 저 허접 쓰레기 상가하며 시끄러운 밥집들, 막걸리 난전들.... 이래서야 여긴 완전히 수덕사가 아니라 수덕 5일장이다. 일주문 통과하기 전까지 일단 산사를 찾은 사람의 인내심을 대충 테스트해보는 세계에 유래 없는 멋진 사찰이 바로 우리의 수덕사인 셈이다.

하지만 그 생돈을 내고도 일단 일주문과 금강문 그리고 황하정루를 통과해 명불허전으로 일컬어지는 수덕사 대웅전이 보이는 널따란 절사 위에 올라서면 그 북적거리는 느낌은 조금씩 사라진다. 고려 충렬왕 때 만들어진, 정확하게 1308년에 제작된 대웅전은 보면 볼수록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뭔가의 기운이 있다.

천정이 없이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이 대웅전의 측면이 살짝 보이는 백련당의 마루에 앉아 비를 피하며 대웅전의 아슬아슬한 지붕의 라인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그 오랜 시절 당시로 돌아가는 듯한 묘한 짜릿함을 느낄 수가 있다.

비가 흩뿌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응전 안에는 사찰을 찾은 사람들의 정중한 공양이 계속되고 있었고 느지막한 오후가 돼서야 사람들이 서서히 빠져나간 대웅전 앞 터엔 어느새 조용한 바람과 가느다란 비만이 덕승산을 희롱하고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神)이란 단어가 있다. 비 오는 날 특히 짠하게 가슴에 와 닿는 말인데.. 그 말이 특히나 수덕사에 어울리는 것은 나만의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들어 자기의 본래 모습을 찾는 방법으로서의 이 선(神)은 수덕사가 이 곳의 정체성으로 삼는 중요한 수행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웅진을 기점으로 백련당, 청련당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심우당까지 강력한 포스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는 것이 어지러울 때 우리 선조들은 종교에 관계없이 가까운 사찰을 찾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거나 혹은 마음을 조용하게 정리하는 나들이를 즐겨했다. 더구나 남쪽으로 향한 덕숭산 기슭의 수덕사는 산세가 특별히 좋다. 그렇지만 가히 명당이라 할만한 풍광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절의 입구는 아비규환의 지욕으로 만들어 놓아 사람의 심기를 완전히 흐려 놓는다.

그렇더라도 수덕사는 일부러 이 곳을 찾는 이를 끝까지 배신 때리지는 않는다. 덕숭산을 오르며 대웅진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산세와 혹은 대웅전의 지붕 아래로 떨어지는 그 멋진 처마 기울어짐의 맛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세상사 지옥의 역겨운 풍경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누구는 그런 말을 한다. 대부분 책 팔아먹어야 하는 허 접때기 여행 잡가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하는데.. 여행은 알고 떠나야 그 즐거움을 백배로 느낄 수 있다고 떠든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잘 알고 떠나는 것에 대해선 나도 찬성하지만 모르고 떠나는 것을 낭패라고 바로 규정하면 그건 아니올시다이라는 것이다.

수덕사가 딱 그러하다. 많은 정보를 알고 오면 더욱 좋겠지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니 난 오히려 대웅전이 볼 만하데... 배흘림 맞배지붕이라네... 뭐 이런 기존의 정보 자체가 없이 이곳을 찾아서 그서 조용히 법당 마루에 앉아 오랜 시간을 지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수덕사는 영주 부석사처럼 절 입구를 들어가는 맛깔스러운 미학은 거의 빵점인 절이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완전히 개량된 콘크리트 바닥에 적잖이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국립현충원 들어가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돈 아깝다고 투덜거리느니 어차피 온 이상 하나쯤은 얻어가자. 그 방법이 바로 한 시간 동안 법당 마루에 그냥 앉아있는 것이다.

그 정도도 할 자신 없으면 거기 갈 필요도 없으리라. 동네 파전집에 가서 막걸리 마시고 한 잠 푹 자는 게 정신건강에 더 즐거운 일일 수도 있다. 강요가 없는 세상이라지만 절간 중턱에 앉아 제 인생 돌아보는 즐거움은 참으로 맛깔나고도 안타까운 절절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비까지 부슬거리며 내리는 탁월한 배경화면까지 제공하는 데에야 더 말해 뭣하랴..

세상이 어지럽다. 가진 이와 못 가진 이가 우격다짐을 하며 한 세상 뒹굴고... 차마 나아지는 세상은 감감무소식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세상이 힘들 때면 늘 강원도 고성에 있는 건봉사에 가셨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오시곤 했다. 관절이 안 좋아 마지막으로 그 절에 모시고 갔을 때 절터만 횡행하게 남은 그 자리에서 지루하다 싶게 오후 내내 한참을 앉아 계시던 생각이 났다.

그렇다. 그때보다 세상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겉으로 보면 수덕사는 그저 평범한 절이다. 아름다운 목조건물의 전형이라고 하는 대웅전이 있지만 그것으로 다 만족할 만한 사찰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찰.. 그런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절 터.. 그리고 그 주어진 작은 시간 동안 대웅전 마룻바닥에 앉아 힘든 세상을 되돌아보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찾는 그런 산사. 그것은 오직 수덕사만이 아니라 어디든 좋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어이 이 수덕사에 이런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 내가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다모토리(최승희)

속 보이는 짓을 할 수 있는 건 사람뿐이라 했다. 비가 장막을 내려 내 눈으로 그 참담한 속을 보여준다. 이제 그만 덕숭산에서 즐거운 나들이를 했다는 뱀 소리를 감추고 지긋이 눈을 감아 추억을 떠올린다. 까마귀 소리도 잡 소리, 인간의 목소리도 잡소리, 떨어지는 빗소리도 잡소리다.. 그곳에 가라고도 아니요 가지 말라고도 아닌 이야기에 잡스런 오해 없으시기들... 하지만 궁금한 건 분명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by 다모토리· Oct16. 2016)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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