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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인천의 역사 찾기 “백제, 미추홀에서 출발한 700년 황업(皇業)의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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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인천의 역사 찾기 “백제, 미추홀에서 출발한 700년 황업(皇業)의 태동”
  • 최도범 기자
  • 승인 2016.11.04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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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최도범 기자] 저는 오늘 인천의 관광 콘텐츠 개발을 역사적 배경에서 찾아보고 이를 통한 관광 사업의 앞날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인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약 130여 년 전 개항의 역사일 것입니다.

월미도, 차이나타운 등을 중심으로 한 먹거리 중심의 관광. 개항장 거리의 박물관현 볼거리. 하지만 정작 이야기가 없는 인천. 이것이 인천 관광의 오늘입니다.

민선 6기 유정복 號는 새로운 관광 콘텐츠 개발을 위해 섬으로 눈을 돌렸지만 북과 접경해 있으며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 등으로 몸살을 앓는 현실에서 얼마나 유효한 정책이 될 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보유한, 그래서 그 어느 도시보다 외국으로 부터의 접근성이 탁월한 인천에 없는 단 한 가지, 이야기.

이제 인천은 바로 이 ‘이야기’에 주목할 때가 됐습니다.

오천년(어쩌면 그보다 더 오랠) 민족의 역사에서 인천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인천의 옛 지명 ‘미추홀(彌鄒忽)’이 처음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로 고구려를 벗어난 소서노와 두 아들 비류, 온조가 처음 정착한 곳이자 소서노의 장자이자 온조의 형인 비류가 ‘도읍을 삼아 나라를 세운 곳’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한 줄에 백제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중심에서 시작된 고대 왕국의 역사, 패망과 고난의 역사가 아닌 미래를 향한 태동의 역사. 미추홀은 700년 대제국 백제의 시작점인 것입니다.

비록 장구한 역사에서 10할도 되지 않는 시간에 머물지만 미추홀은 백제의 자궁이자 어머니 품이며, 태(胎)이고 본향(本鄕)입니다.

누구나 시작은 어머니의 자궁입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던 그 시작은 어머니의 태(胎)입니다.

하나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왕업의 뜻을 품고 국가를 설계한 곳. 그곳이 그 나라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백제의 시작은 미추홀, 바로 인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인천의 백년대계(百年大計)가 있습니다.

100~200년이 아닌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제국을 탄생시킨 황제의 도시, 제국의 태동 인천은 그 자체로 인천의 향후 100년 간의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잊혀진, 아니 잊고 있던 제국의 역사를 복원해 풍부한 이야기거리, 볼거리를 찾아낸다면 그 어떤 특별함이 없어도 인천은 존재 자체로 빛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최도범 기자 h21y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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