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라!
상태바
불편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라!
  • 서혜정 기자
  • 승인 2016.09.26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문화-5] 이래도 저래도 불편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음의 문제다. 관계의 문제다. 의식의 문제다.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모자람 없이 충분하고 넉넉하면 ‘만족’한다. 때론 불만을 가진 사람이 혁신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불만이든 불평이든 이는 과정일 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는 법, 섣불리 예단하여 선을 긋는 것은 삼가야 한다. 전혀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잘못이라도 ‘하는’ 것이 발전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jtbc에서 방송된 드라마 ‘송곳’은 우리 사회가 상식적인 것을 지켜내는 데 얼마나 요기가 필요한 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줬다. 불편할지언정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결국 이 ‘불편함’에서 찾을 수 있다.

‘불만’이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표출되는 것이 ‘불평’이다. 그 불평이 쌓여 관계망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결정하면 ‘불편한 관계’가 된다. 불편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조직 내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외곬으로 빠지면 된다. 그래서 이 길이 제 갈 길이라 확신하면 ‘도전장’을 드러내야 한다.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근시안적이어서도 안 된다. 현실이니 이상이니 하는 이분법적 굴레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대신 어떤 일을 하든지 말든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불편을 자초하지 않아야 한다. 불편했다가는 ‘입방아’에 오르기 쉬우니 말이다. 또 ‘싸가지’ 없다고 몰매를 당하기 쉽다. 그러므로 ‘적당히’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고 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매사 절반의 선택이 강요되기 일쑤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 일에 무관심을 보이기보다 관리자가 관심을 갖지 않고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승산 있는 게임일 수 있다.

이렇듯 두 삶의 유형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이래도 불편하고 저래도 불편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편하기 싫어서 무조건 협조만 한다면 이 또한 가중된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거부하면 후환이 걱정되기도 하니 선택을 잘 해야 한다. 한번 선택한 그 길은 오랫동안 자신의 여정을 지배할 것이니 말이다.

위정자들을 포함한 높은 지위의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아랫사람을 향해, ‘아나고’를 외친다. 일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일은 안하고 불평만 한다고 한다. 반면 아랫사람은 ‘관리자들은 언제나 지시하고 명령만 한다’고 한다. 관리자가 되기 전과 비교해 변했다고 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자리’라는 한계 때문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 해도 불만은 갈수록 늘어나기 일쑤이다.

초년 시절에는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니, 지시하면 따르고 부탁하면 들어주고, 하나를 하고 나서 ‘또 없어요?’ 하니 말이다. 그러니 초임 때 만일 의견을 관철하려 하고, ‘내 일’만 하고 도우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선배 교사의 집중적 견제를 받는다. 물론 교육의 본질 면에서는 확실하게 한 연후 그 밖의 ‘잡무’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서 분명한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 행동을 하는 것은 발전 가능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으나, 기본이 부족한 가운데, 권리만 주장하는 것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불편하기 쉬운 세상’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불평을 늘어놓자’는 것과는 다르다. 불평은 예나 지금이나 조직 사회에서는 자리한다. 여기서 불편은 불평의 발전(?)적 형태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관리자가 시켜도 옳지 않다면 거부하자. 불편을 감수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르쇠 하자는 것은 아니다. 돌아올 부메랑을 의식해서 더욱 더 철저하게 본질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최고의 지원군은 학생이니 좋은 수업으로 바람막이를 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뒤에서만 불평을 하다가고 나중을 생각해서 앞에서는 긍정의 몸짓을 취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대 놓고 불평을 이어가 결국 불편한 관계를 고착화 시키는 것이 낫다. 나름 계산이 깔린 탓도 있을 것이다. 불편해지면 오히려 이득이 생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지시하는 관리자 입장에서도 불편한 사람에게 일을 시켜봤자 싸움만 생길 것이니 아예 모른 척 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에게 다가가 부탁하기 일쑤다.

하지만 불편함을 이렇듯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학교 조직은 관리자와 교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둘 사이에 학생이 자리한다. 불편부당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학생 때문일 때 힘을 얻는다. 학생이 지장을 받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수업에 문제가 생기기에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한다.

관리자의 지시, 그것이 부당한 것인지 합당한 것인지 따져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해도 되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가 수평적 권위가 더욱 확산되니 말이다. 조직 안에서는 상관이지만 밖에서까지 구속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생각 품지 않는 사람 없을 리 없지만 지금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다.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이 일보다 중하다는 인식이 자리한 탓이기도 하다. 더구나 학생이 행복하니 덩달아 자신도 행복하면 금상첨화 아닌가.

그렇다고 잘난 체하거나 남을 낮추어 보듯이 행동해 건방지지는 말자. 불편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에 ‘건방’이 자리한다면 큰일이다.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다 얻고도 뺨 맞을 일이니 말이다. ‘의도적인 불편’이, 부당한 것을 원천 차단하려는, 올곧은 사명을 가지려는 인고의 결과라면 힘써 즐기는 마음으로 다가서자.

또 선배교사의 교육적이지 않는 요구를 저자세로 받아들여 마음 고생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불편하더라도 수용할 수 없다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불편하자. 그 선배교사가 자신의 교직 생활을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제 갈길 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 아닌가.

임광찬 전남 영흥고 수석교사

 

 

서혜정 기자 alfime@kns.tv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