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절한 금자쌤의 공감대화] 비난, 평가, 강요의 말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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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절한 금자쌤의 공감대화] 비난, 평가, 강요의 말을 버려라~
  • 서혜정 기자
  • 승인 2016.08.19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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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감대화 3무3행(三無三行)-<1>

잘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 생각에 몰두하며 길을 걷다가 누군가 내놓은 흙만 있는 화분에 걸려 넘어졌는데, 다친 상태로 집에 갔다. 가족들이 어떤 말을 했을지 적어보자.

“또 넘어졌지?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걸어 다니니?”라고 말하면 속상할 것이다. “에고, 또 넘어졌어? 많이 아파?”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질 것이다.

국어사전에 ‘비난’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거나 꼬집어 나쁘게 말하는 것이라고 적혀있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비난의 말이 많다. 남의 허물이 보이거든 그 눈을 안으로 향해 나의 허물을 찾고, 고쳐나가야 한다.

우리의 언어습관 중에는 본인이 기준점을 세워놓고 그 기준점과 '비교'해 판단하고, '평가'하는 말도 많다. 평가를 잘하는 것이 잘난 것이라고 인식돼 끊임없이 평가를 내린다. 강요하는 대화도 많다. 자신보다 어리거나 낮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게는 주로 강요한다. 강요를 하는 쪽도 강요를 받는 쪽도 결코 유쾌하지 않다. 비난과 평가와 강요는 공감대화에서 버려야 할 대화형식이다.

지각을 자주 하는 학생이 일찍 왔으면 좋겠는데 또 지각하는 것을 보았을 때 “네가 그렇지 뭐!”라고 하면 비난의 말이 된다. 비난받은 학생은 위축이 된다. 그리고 반감이 생긴다. 반감은 자신을 공격하고, 나아가 선생님을 공격할 수도 있다.

자신을 공격한 사람은 자존감을 키워나갈 힘이 없어진다. 비난은 불편함을 만들고, 불편함은 상대를 할퀸다. 자신이 받은 비난을 돌려주려고 더 심한 비난을 하곤 한다. 이 경우 비난하지 않고 공감대화로 “네가 또 지각하는 것을 또 보니 엄청 답답하다. 고쳐지기를 바라고 있었거든”이라고 말해야 한다. 덧붙여 “내일은 어떻게 하면 제 시간에 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어떤 학생이 청소당번인데 하기 싫어, 그냥 집에 가버렸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하게 되었을 때, 선생님은 학생에게 “너는 다른 사람 배려할 줄도 모르는 이기주의자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이기주의자라는 평가는 말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평가의 말보다는 “네가 청소를 안 하고 가버리니 다른 친구들이 늦게까지 남아 청소를 하게 되어 안타까웠어. 자신이 맡은 구역은 책임지고 해주길 바라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공감대화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쉽게 나이, 지위, 돈 등에 의해 상대를 강요한다.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수동, 복종, 군림의 사회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이해, 상호 존중과 배려의 사회를 원하는가?

배려가 가득한 사회를 원한다면 강요하지 말자.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듣는 거야!”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맹목적으로 들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의 키에 맞게 자세를 낮추고, 눈을 맞춘 후 “네 의견은 어떠니?”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물어보아야 한다. 새로운 희열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 자신에게도 굴레를 씌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니까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해야 해!” “엄마니까 밥을 해야 해!” “나는 선생님이니까 아파도 참아야 해!”라고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 엄마, 선생님 등 신분에 의해 일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신분이더라도, 어떤 상황이더라도 스스로 결정에 의해 하는 것이다. 신분, 나이, 지위에 강요당하지 않고, 자발적 결정에 따라야 한다. 자신의 결정을 넣어 이렇게 바꾸어 말하면 된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어!”

“가족이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하길 바라기 때문에 밥을 하기로 결정했어!”

“가르치는 일이 보람 있어 방과 후에도 학생들을 지도하기로 결정했어.”

이렇게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결정은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내가 한 것이 된다. 가족부양을 원하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이다. 가족들의 건강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지, 엄마이기 때문에 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기에 교육활동을 위해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지도하기로 결심한 것은 ‘나’이다.

누가 옳지도, 누가 그르지도 않다. 다만 자신이 결정한 대로 할 뿐이다. 지구상의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편안한 사회가 될 것이다.

백금자 서울 관악고 수석교사

 

서혜정 기자 alfime@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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