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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이잉원(蔡英文)의 취임연설로 본 양안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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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이잉원(蔡英文)의 취임연설로 본 양안관계
  • 강병환 논설위원
  • 승인 2016.05.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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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강병환 논설위원] 현재 중국은 백년이래의 전략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학자들 다수의 견해다. 확실히 후진타오(胡錦濤) 시기에 비해 현재의 중국학자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중국을 위협하는 도전적인 문제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순수한 중국내부의 문제다. 예를 들어, 4차문제(도시와 농촌 차이, 빈부차이, 연해와 내륙간의 차이인 동서 차이, 관방과 민간 차이)나 부패, 환경오염, 도덕해이 등의 문제가 있지만, 이는 공산당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둘째 국제적인 도전으로서 미국의 중국대륙에 대한 견제와 주변 국가들과의 마찰이다. 이들 역시 힘들지만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최악의 경우 국제사회의 대응에 대해 중국이 관여하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 번째 유형의 경우다. 국내적인 문제와 국제적인 문제가 뒤섞여 있고, 역사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만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의 내부와 외부, 대만의 내부와 외부의 문제가 뒤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만에 대한 장악능력도 유한하다. 그렇다고 대만문제를 방치할 경우 리훙장(李宏章)처럼 역사의 죄인이 되어 이는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대만문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며, 고도의 전략적 지위를 지니고 있다.

특히 공산당은 대만문제의 민감한 신경은 미국이 자극하고 있으며, 양안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근본원인을 미국의 개입으로 인식한다. 이는 1979년 중미 국교 수립 시의 덩샤오핑(鄧小平)의 관점이나 지금 중공지도부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다. 양안관계를 연구하는 대다수 중국학자들의 견해는 중국과 대만은 현재 일대일소(一大一小)로서 경제력, 군사력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만약 제3자의 강력한 개입이 없다면 대만은 이미 현재와 같은 현상유지(status quo)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만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5월20일 대만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의 차이잉원 총통의 취임식이 있었다. 이는 1996년 대만에서 처음으로 총통 직접선거가 실시된 이후, 세 번째의 정당교체였다. 민진당은 ‘대만독립’을 당의 강령으로 삼고 있다. 대만과 중국의 통일은 덩샤오핑이 말한 중국의 삼대임무중의 하나다. 그러나 통일과 독립은 마주 달려오는 열차처럼, 둘 중에 하나가 궤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충돌뿐이다. 대만독립과 통일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성을 띄기 때문이다.

차이잉원의 총통 취임연설은 양안 간 협력의 요소보다는 긴장의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신남향정책’(新南向政策)을 발표했다.‘신남향정책’은 리등훼이(李登輝)의‘남향정책’을 계승한 것이다. 리등훼이는 비록 국민당의 신분이었으나, 야당인 민진당과 때로는 손을 잡기도 했으며, 암암리에 대만독립을 추구했다. 중국과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동남아와 인도 등으로의 기업진출과 무역투자를 장려했다. 동쪽으로의 중국이 아니라 남쪽으로 가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잇속에 밝은 기업들은 홍콩을 거쳐서 중국으로 들어갔고, 이마저도 1997년 동남아에 불어 닥친 IMF 위기로 인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천슈이볜(陣水扁,2000-2008))은 노골적인 대만독립을 밀고 나갔다. 임기 동안 양안 간의 협상은 없었지만 대만기업들의 중국진출은 역시 막을 수가 없었다. 2008년 국민당 마잉주(馬英九,2008-2016)총통의 재집권과 더불어 양안 간 회담이 재개되어 양안경제기본협정(ECFA)를 비롯한 지금까지 23개항의 협의를 체결했다.

그 결과 급속한 경제·문화교류가 진행되었다. 매주 700편 이상의 비행기가 양안을 오가며, 매년 400만 이상의 중국관광객이 대만을 방문한다. 양안 간 결혼한 배우자 역시 34만쌍을 넘었고, 대륙에 진출해 있는 타이상(대만상인)들의 숫자도 비공식적으로 15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양안간의 무역규모도 2000억 달러를 초과하였으며, 대만의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도 이미 40%를 넘어섰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통일전략은 경제적인 면에서 다소 적자를 보더라도 이를 정치적인 흑자로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경제를 통일의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며, 경제로서 통일을 촉진하는 ‘이경촉통’(以經促統)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으로 먼저‘하나의 중국시장’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차이잉원은 중국 리스크에 대비할 목적으로‘신남향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두 번째는 민진당과 공산당, 민진당과 국민당 간의 핵심쟁점인‘92공식’(1992 Cosnsensus)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92공식’은 “각자가 구두(口頭)의 방식으로 ‘하나의 중국원칙’을 견지한다”는 것으로서, 1992년 홍콩에서 열렸던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공통된 인식이다. 민진당이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배경에는 ‘92공식’자체가 애매모호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의 중국’을 긴고주(緊箍呪)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긴고주는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테를 조이는데 쓰는 주문을 말한다. 그만큼 ‘중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국제사회에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다’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뿐만 아니라, 대만을 중국대륙과 묶어 놓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천슈이볜 집권기에 ‘중국’이라는 말을 빼버리고 대신 ‘대만’이라는 말로 대체하고자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만은 산업화와 민주화 본토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들을‘중국인’으로서 인식하기보다는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만인’이라는 정체성의 변화가 있었다. 대만의 미래는 2300만 대만인이 결정해야하며, 중국에 의해서 대만의 존엄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만의 주류민의와 부합된다. 차이잉원이 대만독립 강령을 포기하지 않고,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만문제는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청일전쟁의 결과 대만은 일본에 할양되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틀 후에 미7함대가 대만해협에 개입하면서 현재의 양안관계가 고착화되었다.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보자면 대만문제는 중미관계의 종속변수로서 작용한다. 중미관계가 협력적일 때 대만문제는 방치되는 경향이 있었고, 중미관계가 악화될 때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그만큼 올라간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아시아‘재균형정책’은 심화되고 있다. 미국이 대만에 대한 안전을 책임지는 ‘대만관계법’과 레이건 시기 대만에 대한 구두승락인‘6항보증’을 미국과 대만관계의 받침돌로 삼는다는 공동결의안이 5월16일 미국 의회 하원을 통과했다. 차이잉원의 총통 취임선물 치고는 매우 큰 것이다. 비록 이 공동결의안은 법률적 구속력은 없으나 미국 국회가 대만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현재 중미관계는 협력의 요소보다 갈등의 요소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우리가 대만문제를 유심히 봐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만해협의 파고가 높을수록 동아시아 역학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강병환 논설위원 sonamoo3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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