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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은 물럿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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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은 물럿거라"
  • 김희숙 기자
  • 승인 2011.03.18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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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그룹사운드의 대부 장계현을 만나다.

                                                        (가수 장계현)
70,80년대 그룹사운드 전성기 때 정상에 우뚝 자리했던 장계현, 그가 다시 한 번 그룹사운드의 정열을 불태우려 전국순회공연 및 대규모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떠나가는 겨울의 아쉬워하는 몸부림처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 초순, 서초동 중앙박물관 뒤의 소담한 식당, '토박이'에서 왕년의 스타, 장계현을 만났다.

독립유공자이신 할아버지와 선친 역시 서울 출신으로 그리 흔치 않은 서울토박이라 식당 이름을 '토박이'로 지었단다. 대광고등학교 시절,  미대지망생이었으나 유별난 영화광이었던 그는 당시 유행했던 영화들이 'Sound of Music'등 뮤지컬이 대세여서 음악 또한 영화와 분리하기 힘들었단다. 또 세계적인 뮤지션, 'Cliff Richard'의 내한 공연으로 'PoP' 음악의 열풍이 한국을 휩쓸자 기타를 배우고 팝송에 심취했단다. 그렇게 갈고 닦은 실력을  홍대미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다고.

대학교 3학년,  1970년에 있었던  '전국 아마추어 포크 페스티발' 에서 당당하게 그랑프리를 차지한 그는 가수의 길로 접어든다.  평론가들은 통기타에 팝송이 유행하던 그 시절, 콧수염까지 기른 자신을 두고 눈 감고 들으면 거의 미국인이라 착각할 정도였다고 했다.  통기타로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윤항기씨의 제의로 “키브라더즈”에 합류,  본격적인 그룹사운드 활동을 시작했다.

그 시절 오리엔탈 호텔 3층의 한국 최초 나이트클럽, <닐바나>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그룹사운드 전성기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장계현과 템페스트' 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그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다.

“그 시절 그룹사운드들의 특징이라면 모든 멤버들이 악기 연주를 하며 같이 노래를 불렀지요. 물론 리드보컬이 있었지만 하모니와 코러스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음악성이 부족하면 그룹 전체에 영향을 끼쳤어요, 다행히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음악성을 인정받아 성공할 수 있었지요. 그룹의 타이틀도 당시 연예부 최고의 기자이었던 서병후씨가 붙어주어서 영광이었죠.”

 그는 1974년 한국 최초로 'Pop Live' 음반을 출시, <잊게해주오>란 히트곡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 후 당대의 최고 스타들만 출연했던 풍전호텔 나이트클럽에서 4년의 세월을 보내고 1977년 솔로로 독립,  공전의 히트곡 <나의 20년>을 발표한다.

고고클럽 음악의 선두주자였던 그룹사운드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그 때,  일본에서 수입된 가라오케가 음악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분위기에서 직접 손님이 노래를 부르던 패턴으로 문화가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스탠드 바’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며 설자리를 잠식당하던 그룹사운드들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여기에 디스코 열풍까지 불어 닥치자 그야말로 본격적인 사향 길로 접어들며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그는 부산의 코모도 나이트클럽 등 지방의 유명 나이트클럽을 순회하며 명맥을 유지했지만 결국은 디스코 음악의 열풍을 거스르지 못하고 팬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인생에 대해 추호도 후회가 없단다.  다만 자신이 음악을 할 때에 비해 너무도 좋아진 장비를 보면 후배들이 부러울 뿐이란다. 드럼 스틱이 없어 목공소에 부탁을 해 겨우 연주를 했던 그때와 비교하면 세계의 최신 악기들을 사용하는 후배들의 여유에 감탄할 밖에.

결국 음악을 잠시 접고 음악장비 사업을 했으나 끊임없이 개발되는 새로운 고가의 장비에 손을 들어버렸단다. 장비 렌탈 사업을 하면서 세계적인 그룹들을 자연히 접할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 배운 점이라면 스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우리네 스타들이 꼭 배워야 할 부분이라며 강조를 한다. 음악은 인간이 하는 최상의 감성예술이기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누구나 지난 삶에 있어서 후회가 없을 수 없겠지만 난 음악과 천사 같은 부인으로 인해 대통령 부럽지 않은 최상의 삶을 영위했기에 너무 행복했어요. 아들만 둘인데 큰 아들은 요리에 대한 취미가 유별나 <토박이>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고 둘째는 나름대로 가수에 대한 열정을 키우며 자신들의 삶을 헤쳐 나가기에 고맙기만 합니다. 더 행복을 바란다면 남들이 욕하겠지요?”

                   (가수 장계현과 그의 부인-식당 앞에서)

“세시봉은 물렀거라”, 7080으로 대변되는 복고의 바람에서 그는 음악은 역시 그룹사운드 음악이 제격이라며 강변한다. 특히 이번에 11번째 앨범, <분다, 분다!>를 내놓으며 마침 불어주는 세시봉의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는 장계현, 세월이 조금 흘렀을 뿐 결코 늙지 않았다고 호언한다. 봄바람처럼 음악계에 세시봉을 필두로 부는 복고의 바람에서 단순한 바람이 아닌, 장계현씨의 폭풍 같은 콘서트가 진원지가 되어 70.80그룹사운드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 본다.

 

김희숙 기자 green87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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