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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유일무이 명품DJ 김광한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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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유일무이 명품DJ 김광한을 보내며
  • 조성진 편집국장
  • 승인 2015.07.11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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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건강관리 철저
정확한 발음과 깔끔한 멘트 스킬 등은 역대 방송DJ사상 최고
“나에겐 천국이 따로 없고 방송하는 그 순간이 천국”
보훈처 지정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도

 
[KNS뉴스통신=조성진 편집국장] 지난 9일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발목 수술 후유증으로 피곤해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누운 지 10여분후 휴대폰이 울려댔다. 후배가 다급한 목소리로 “방금 김광한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라며.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혹시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후의 환청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했을 만큼. 고인은 불과 몇 일전에 있었던 파파스 단독 공연때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사회를 보며 좌중을 리드하지 않았나.

사인이 심장마비라는걸 알곤 더욱 믿기지 않았다. 고인은 평소 담배는 전혀 하질 않았고 술도 1~2년에 한번 정도 약하게 마시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오랫동안 파륜궁 수련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강하게 단련시키던 중이기도 했다.

몇 년 전 고인의 마포 사무실에 갔다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고인은 내 음식만 주문해주고 자신은 집에서 싸온 야채 중심의 도시락을 먹는 것이었다. 그만큼 건강함을 추구하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있던 것이다.
물론 고인은 한때 혈압에 높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7~8년 전쯤 관련 약을 잠깐 복용했던게 사실이다. 이후 치료가 되었고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어 정력적인 활동을 해왔다.

나는 40살이 되는 해의 생일을 기념해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홍대의 단골 술집에서 파티를 연적이 있다. 고인도 이때 참석해 “성진이처럼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일상적 선물보단 이런 게 좋을듯해 가져왔다”며 발렌타인 17년산을 건네는 것이었다. 고인은 이 자리에서 딱 한잔만 입에 대고 절주할만큼 자기관리가 뛰어났다. 그럼에도 파티 후반까지 언론계, 연예계, 음반계, 산업 문화계 등등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파티장의 분위기를 생기 넘치게 했다.

몇 년 전 조카 결혼식 때 고인에게 주례를 부탁한 적이 있다. 고인은 식장에서 “검은머리 팥뿌리~” 등의 상투적인 주례사가 아닌 팝송가사를 인용한 매우 색다른(위트+세련미) 주례사로 하객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 주례사에 감동한 결혼식장 여사장은 식장에서 판매하는 고급 수제 떡세트를 다량으로 선물해주기도 했다.

혹 고인의 마지막 말, 유언과 같은 한마디라도 있었나 해서 알아보았지만 전혀 없었다. 지난 6일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에 실려 온 이래 입에 호스를 낀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투병중에 별세했기 때문이다. 배우자 최경순씨도 바로 이점을 너무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최경순씨는 단순히 고인의 부인이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중요한 조력자였다.

몇 년 전 일본 최대의 음악출판그룹 ‘신코뮤직’의 최고경영자이자 기타 전문지 ‘영기타’ 편집장이기도한 야마모토가 내한해 장시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야마모트의 방한은 고인과의 친분 때문에 이루어졌던 것이고, 이때 통역사가 바로 최경순씨였다.

가끔씩 “광한이형, 건강은 좀 어떠세요?” 라고 안부전화를 하면, 고인은 입버릇처럼 “술 많이 먹는 너보다는 내가 더 오래살 수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하곤 했다.

어제(10일) 저녁, 문상객 중엔 홍서범을 비롯해 왕년의 명DJ들인 최동욱과 김기덕도 모습을 보였다. 가수 조용필도 대형화환과 함께 매니저를 대신 보내 생전 고인과의 많은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오늘(11일) 고인은 이천호국원에 안장되었다. 사람들은 김광한 하면 명DJ로만 알고 있지만 한때는 월남전에 참전해 용맹을 날리기도 했다. 따라서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호국원에 안장된 것이다.

고인의 애제자로 상주 역할을 했던 DJ 박현준(경인방송 ‘라디오가가’ 진행)은 “많은 분들의 지지로 상 잘 치렀고 선생님도 기뻐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 김광한은 디지털 음원 시대에도 줄기차게 아날로그 타입의 정통 음악감상회와 방송진행을 고집했다. 이에 대해 고인은 내게 “현대는 기계가 찍어주는 숫자(디지털)에 음이 담겨지고 그걸 수학적으로 풀어서 재생하는 게 마치 로버트가 되어가는 기분 아니니? 당연히 옛날 방식대로 살고 싶은 거지”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또한 입버릇처럼 “나에겐 천국이 따로 없고 방송하는 그 순간이 천국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모든 점에서 김광한은 국내 독보적인 명품DJ였다. 멘트가 들어갈 때와 곡을 넣었다 뺄 때의 그 순간적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조절했으며, 정확한 발음과 군더더기 없는 교과서적인 진행, 깔끔한 멘트 스킬 등은 역대 방송DJ사상 최고라 할만하다. 발성적 측면에서도 중저음과 고음의 이상적 배합으로 톤 하나하나가 마치 풍요롭게 잘 익은 숙성미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고인 이름 앞에 ‘유일무이 명품DJ’라는 수식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조성진 편집국장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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