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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폭’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특허 낸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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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폭’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특허 낸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을 만나다
  • 안중선 문화예술전문기자
  • 승인 2015.04.15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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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
[KNS뉴스통신=안중선 문화예술전문기자/사진=서규수] ‘주폭’이란 네이버 지식 백과에 따르면 (요약)술에 취해 폭력 등을 행사하는 것이다.

‘주폭이란 용어는 충북경찰청에서 처음 사용했으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폭력과 협박을 가하는 사회적 위해범을 말한다고 기록돼있다.

이와 같은 ‘주폭’ 용어를 특허청에서 서비스 상표등록 신청을 통해 특허를 받고, 주폭대첩 선구자로 알려진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 세계문인협회(이사장 김천우)를 통해 이제는 문인으로 변신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주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주폭이라는 말은 조폭용어에서 차용했다. 조직의 힘을 빌려 상습적으로 폭행과 협박을 일삼는 무리들을 조직폭력배라고 하며, 줄여서 ‘조폭’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술의 힘을 빌려 상습적으로 폭행·협박하는 자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주취폭력배 즉 ‘주폭’이다.

사실 주폭이라는 용어는 2010년 10월 충북경찰청장 재직 시 조폭의 수사기법을 그대로 적용하자고 강조하면서 조폭과 비교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처음 사용한 것이다.
주폭이란 용어뿐만 아니라 그 수사기법까지 내가 독창적으로 창안한 것이 사실이다.

범죄 심리를 선제적으로 제압하는 힘이 있다는 평을 들은 주폭 용어는 주폭척결에 큰 힘이 됐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2’에서 2011년 사회분야 신조어로 소개된 ‘주폭’개념은 치안의 블루오션을 개척했다는 평가와 함께 지역주민과 경찰 내부 직원들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특히 주폭용어를 널리 알리면서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공익 목적 위주로 사용돼야한다는 목적으로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하게 됐다.

◉ 주폭대첩을 역점으로 추진했던 내용과 성과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주폭은 누가 키웠는가?
음주로 인한 범죄에 한없이 관대한 우리의 왜곡된 음주문화가 첫 번째 요인이고, 이들을 제압해야하는 일선 경찰의 미온적이고 단면적인 대처가 두 번째라고 주장한다.

충북경찰청장 재임 시 1만2000명의 주민과 3000여 명의 일선 경찰관들에게 당면 해결과제를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던바 가장 많은 건의사항은 ‘공권력 확립’이었다.

특히 주취자들의 공무집행 방해 행위 등을 뒤치다꺼리 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불평이 가장 많았다. 총을 차고 있는 경찰들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할 정도라면 힘없는 동네 주민들과 여성,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오죽했겠느냐’는 관점, 즉 주민의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주폭 척결 시책이다.

주취자에 의한 경찰관 폭행 등에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 대응토록 하고,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자는 구속되고 척결된다는 것을 전 주민들에게 널리 알렸다.

충북경찰청장 재직 시 주폭 척결 성과에 대해 많은 주민들의 격려와 지지가 있었다. 충북경찰청을 떠날 때 직원들을 상대로 한 무기명 설문조사에서 어떤 직원이 다음과 같이 표현해 준 것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

“우리나라 역사에 3대 대첩이 있었는데, 첫째가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요, 둘째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며, 셋째가 김용판 청장의 주폭대첩이다“

▲ 충북경찰청 홍보 자료

◉ 서울경찰청장으로 옮긴 후에 역점 추진사항 설명을 부탁드린다.

주폭은 결코 파리채로 잡을 수 없었다.
서울경찰청장으로 부임한 후에는 각 기관 및 언론사에 부임인사 가는 곳마다 주폭을 척결해 법질서를 바로 세우고, 경찰이 주폭에게 매 맞는 일 없이 공권력을 확보해서 서민생활을 보호하겠다는 포부를 분명하게 밝히고 협조를 요청했다.

많은 분들이 적극 협조하고 좋은 반응을 보였지만 특히 조선일보 양상훈 편집국장께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 거의 1년간 조선일보 연재로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이라는 특집기사들이 등장하게 됐고, ‘경찰이 취객에게 매 맞는 나라, G20 국가 중 한국 말고 또 있나’, ‘욕먹고 맞고, 물어뜯기는 경찰관, 근무 의욕 뚝뚝 떨어진다’는 제목으로 특집을 다루며 ‘주폭’용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서울경찰청의 주폭척결시책은 날개를 달고 적극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 염수정 천주교 대주교(현 추기경님) MOU 체결

주폭에 대한 엄중한 잣대로 처벌도 하지만 재활문제에 대해 각종정책을 신중하게 처리해나갔다. 예를 들면 서울경찰청이 2012년 7월 국공립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등과 협력해 병원 내에 ‘주취자 원스톱센터’를 설치한 것과 2012년 6월 대한병원협회, 서울시협회 및 천주교 서울대 교구(염수정 추기경)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주취자 재활을 위한 병원치료를 돕게 한 것도 그러한 고민의 실천결과이다.

◉ 주폭 척결 결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린다.

첫째, 주폭에게 매맞는 경찰에서 그 주폭을 제압하는 위엄있는 경찰로 변신한 것이다. 주폭척결은 공권력과 법질서 확립의 획기적 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둘째, 서울역 풍경이 확 달라졌다.
주폭과 전쟁을 시작한 경찰은 술만 마시면 서울역 인근에서 상인과 부녀자 등 행인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린 전과 48범 나 모(당시 53세)씨 등 평균 전과 29범인 서울역 노숙자 주폭 5명을 구속했다.

이후 대한민국 교통 중심지인 서울역을 오가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마저 인상 찌푸리게 하는 풍경이 점차 사라졌다는 2012년8월13일 조선일보 보도 등 주요 언론사 보도가 그 사례이다.

셋째, 서울역의 변화와 마찬가지 맥락으로 서울시내 공원이 시민 품으로 되돌아왔다.
1883개 시민공원을 마치 옛날 산적들처럼 자신들의 소굴로 삼고 지나가는 부녀자들에게 온갖 행패를 부리던 주폭들이 구속됨으로써 공원 또한 평화와 안전을 되찾았다.

넷째, 주취 상태에서 발생하기 쉬운 성폭력과 가정폭력이 감소했다.
주폭 척결 이후 대학가 오리엔테이션의 음주문화도 많이 개선되고, 일반 직장인의 회식문화가 바뀌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다섯째, 주폭 척결은 국내에서만 관심을 끈 이슈가 아니다. 외신의 관심도 자못 컸다.
중국 법제 일보에서도 2차례 보도된 바 있고, 세계적 일간지인 ‘뉴욕타임즈’에서도 한국 사회의 오랜 관행이었던 일그러진 음주문화를 설명하고 주폭 척결 이후 변화상을 보도했다.

◉ 서울경찰청장 당시 또 다른 성과가 있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도심의 무법자 폭주족 일망타진에도 앞장섰고, 학교폭력 근절과 치안복지시책에 역점을 뒀다.
칭찬릴레이, 현장 간담회 확대로 존중문화가 정착했고, 법질서가 무너지면 사회적 약자 순으로 피해를 본다는 관점에서 엄중한 잣대의 치안유지와 지역 주민들의 주체적 동참을 강조 실천했다.

▲ 사진 왼쪽부터 장경택 KNS뉴스통신 대표이사,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 김천우 세계문인협회 이사장, 안중선 화백.

◉ 끝으로 최근에 ‘나는 왜 청문회 선서를 거부했는가’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되셨는데, 책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우리나라 국회개원 이후 66년 만에 내가 처음으로 국회청문회 선서를 거부한 증인으로 기록된 셈이다. 이는 영광의 첫 기록도 아니고, 비난을 받아야 할 기록도 아니다. 국민 한사람으로서 주어진 방어권으로 헌법상 권리를 행사해 선서를 거부한 것이다.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선서를 거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재판 중이었는데 검찰은 나를 ‘공직선거법 위반, 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의 3가지 죄목으로 기소했다. 되돌아보면 2012년 12월11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8일 전에 발생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이후 2015년 1월29일 대법원에서 나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26개월 동안 본의 아니게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되고, 언론 기사 대상이 됐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일선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온갖 압력을 넣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좋은 인상을 가진 일선서 과장에게 “수고 많다”며 “신중하되 당당하게 잘하라”고 격려 전화를 했을 뿐이다.

이 격려 전화 한 통이 외압으로 둔갑돼 지금도 그저 아연할 뿐이다.
이 전화로 인해 나는 파렴치범으로, 상대는 잔 다르크로 불리게 됐지만 1심, 2심, 대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들뿐 아니라 많은 증인들이 출두해 증언했고, 나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 생각하며 책을 출간했다. 변함없이 저를 믿고 격려해준 존경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경찰가족을 비롯해 그간 소중한 인연을 맺어 온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안중선 문화예술전문기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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