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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명량’ 진기록들이 안타까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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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명량’ 진기록들이 안타까운 이유
  • 조성진 기자
  • 승인 2014.08.25 0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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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문화적 쏠림현상 경계해야
대형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도 문제
문화강국이란 외연 속에 숨겨진 ‘놀 꺼리가 없는 나라’ 슬픈 현실
‘명량’은 이 땅에 ‘문화 비타민’의 필요성 제기하는 사건

[KNS뉴스통신=조성진 편집국장] 지난 3월30일 서울문화재단의 ‘세계도시문화포럼’ 리포트에 따르면, 서울의 연간 1인당 영화입장권 판매 수는 5.6개로 영화 강국인 런던(5.3), 파리(4.9) 시드니(4.8)보다 높아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연간 영화티켓 판매액 총계는 3억9320만 달러로, 프랑스 파리(4억1603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2013년 12월22일 CJ CGV가 영국 미디어 리서치 전문업체 ‘스크린다이제스트’와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4.12회로 세계1위다. 미국(3.88회), 호주(3.75회), 프랑스(3.44회)가 뒤를 이었다.

영화시장 규모 세계10위 안에 들고, 1인당 영화 관람횟수도 세계1위, 한국영화 점유율 59%(영국 22%, 프랑스 33%), 수치로만 본다면 과연 한국은 문화강국이다.

반면 독서 출판 현실은 정반대다.
문체부의 ‘2013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성인들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9.2권이다. 문체부는 독서량 감소 요인으로 스마트폰 이용 시간 증가와 매체 환경의 급변 등을 꼽았다. 세계 제일의 디지털 강국이자 세계 10위 안에 출판 대국 임에도 1인당 국민 독서율은 최저 수준이다. 각종 처세술이나 교과서‧시험서적 등에 편중된 출판시장의 현실도 ‘먹고 살기 바쁜 나라’의 극단적 예를 보여준다.

술집 또한 세계 최고로 많다. 국내에 영업 중인 술집은 총 2만3600개로 브라질 상파울루(1만5000개)와 도쿄(1만4184개)를 압도하며, 인구 1000명당 술집 숫자에서도 210개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의 향락도시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191개)나 상파울루(133개)를 앞선다.

세계에서 1인당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 크리스마스나 명절 연휴만 되면 유독 극장에만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인 나라, 그러면서도 1인당 독서량은 최저이고 엄청난 양의 술집 조명등이 꺼질 날이 없는 나라, ‘문화강국’이란 외연을 쓴 대한민국의 현재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24일 오전 8시(배급사 기준) 1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약 5100만의 남한 인구 중 평균 3명에 한명 꼴로 이 영화를 봤다는 말이다. 인구비례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진기록이다. 자칫 ‘취향의 획일화’로 보일만큼 부끄러울수 있는 수치다.

‘명량’은 상영될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한국 영화사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68만), 역대 최고 평일 기록(98만), 역대 최고 일일 기록(125만), 그리고 개봉 3일째 최단 200만 돌파에 이어 300만 돌파(4일), 600만 돌파(7일), 그리고 13일째엔 최단 1100만을 돌파했다. 뿐만 아니라 개봉 18일째 ‘아바타'를 넘어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다. 개봉 21일째엔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처럼 ‘명량’이 한국 영화사의 ‘경이적’인 새 장을 쓰고 있음에도 마음 한편으론 안타깝고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다.

그간 이 나라는 “(경제적으로)잘 살아보세” 하나만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 왔다. 나이도 잊을 만큼 바쁘게 뛰다보니 자신의 취향과 (문화)소비를 누릴 여유를 잊고 살아 왔다. 문화 전반에 대한 기호 또는 아이덴티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선 결코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연히 가장 ‘믿을만한’ 것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매스컴이나 많은 이들에게 화자되는 것, 다시 말해 그 분야 베스트셀러 또는 상영 1위작이다. 심각한 문화적 쏠림 현상의 시작이다.

문화적 쏠림은 자칫 기형적 팬덤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비판의 수용보다는 오히려 “감히 어떻게 비판을 할 수가”라는 식의 호도된 권력 양산이 가능한 것이다. 영화 ‘명량’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애국코드가 내재되어 있다. 문화에서 애국코드로 인한 대중의 쏠림현상은 때에 따라선 집단적 광기로까지 갈 수 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명량’ 열기를 고조시키는 데에도 한 몫 했다. 그러나 SNS는 인과성이 아니라 일종의 서사성에 기인하는 채널이다. 팩트나 증거보다 매우 개인적인 스토리 분출이 많은 법이다. 성찰보다는 여론의 집단적 쏠림 현상을 강화하는 역할에 비중이 많이 실린다는 취약점이 있다.

극장이 다양한 영화 상영을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특정 작품만 몰아서 상영하는 것도 문제다. 몇몇 배급력 좋은 국내 대형사의 영화관 상영 독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영화들도 상영관을 잡지 못해 개봉 며칠 만에 종영을 선언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명량’의 경우 국내 영화관 스크린 수 2500여개 가운데 1500여개의 스크린을 차지했다.

특정 가수 한 사람이 앨범 100만장을 팔아치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다양성이다. 음악인 하나의 독식보다 5명(또는 그룹)의 각기 다른 장르의 가수들이 각각 20만장씩 앨범을 팔아치우는 게 (음악)문화다양성이란 측면에선 더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에도 영화‧음악‧문학‧연극‧공연‧무용 등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영역이 있는데, 그중 유독 한두 가지만 왕성하게 소비되고 타 영역은 아사 직전에 있다는 건 국가가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편식과 편중, 즉 문화적 쏠림현상은 한 나라의 건강을 병들게 한다.

문화강국이란 외연 속에 숨겨진 ‘놀 꺼리가 없는 나라’, 그러다보니 익히 잘 알려진 ‘낯설지 않은’ 대상으로만 편중되는 채널 경색, 이제 이 땅에도 정치경제만이 정답이 아니라 문화라는 정신적 비타민의 전방위적 필요성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영화 ‘명량’은 바로 그러한 정신적 문화적 경색으로 중증 말기로 치닫고 있는 이 나라에 대수술의 시급함을 웅변하는 ‘사건’이다.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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