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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교황은 이미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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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교황은 이미지를 ‘듣는다’
  • 조성진 기자
  • 승인 2014.08.14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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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은 보이는 대로 사고하는 반면 정신적 고수는 이미지 이면 통찰
가려진 ‘참’의 소리와 향기, 기도를 통해 그 의미 알려

[KNS뉴스통신=조성진 편집국장] 일반인은 대상에 대한 접근방법을 시각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일차적으로 해석한다. 반면 정신적 수양을 오래한 고수들은 이미지에 나타나지 않는 또 다른 의미를 느끼는 능력이 있다. 일반인이 보이는 대로 사고하는 반면 정신적 고수는 이미지에 가려진 면을 통찰한다.

시각은 때론 보는 능력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미지의 현란함 또는 특유의 매력에 빠져 인식의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 눈을 감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시각적 인식 오류의 편차를 최소화하려는 일환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물의 깊이와 매끄러움, 부드러움, 강도 등을 본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은 사물의 향기도 ‘본다’

화가가 세상을 표현하려면 색상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 전체를 드러내도록 배열해야 한다. 반면 시각장애 예술가는 이미지 대신 직접적인 감성의 세계인 청력과 촉각을 빌려 내면의 향기를 해석하고 연출한다. 볼 수 없는 만큼 감각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더욱 민감하게 진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퇴역군인이자 시각장애인 알 파치노는 상대 여성이 뿌린 향수에 고도의 민감성을 발휘한다. 역시 시각장애 뮤지션 스티비 원더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도 그게 몇 센트짜리인지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시각 대신 청력에 의존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었기에 엄청난 공력이 생겨난 것들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배우는 수업시간에 선생은 학생들에게 종종 “대상을 보려고만 하지 말고 들으라”고 지시한다. 사물에 대해 보다 본질적으로 다가간 후에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초음파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청각계를 지닌 박쥐에 비한다면 인간의 청력은 제한적이다.

젊을 때 인간의 평균 청력은 초당 16에서 2만 사이클의 주파수에 달한다. 이것은 10옥타브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늙어 고막이 두꺼워지면 고주파음은 내이에 이르는 뼈를 통과하지 못하고 저음과 고음의 양극을 잃게 된다. 의사들이 종양을 진단하기 위해 음향탐지방식에 의한 기기를 사용하는 데, 그것은 초당 2만 사이클 이상인 점을 볼 때 젊은 시절의 청력은 꽤 강력한 것이다.

가끔은 눈을 감고 청각에 의존해 또 다른 대상의 깊이를 느껴보는 것도 색다른 감흥이자 생활 속의 ‘아트 라이프’의 시작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청력 노화방지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며, 특히 작열하는 태양을 등 뒤로 한 채 세상의 움직임을 귀로 느껴보는 것은 흥미로운 피서법이다. 또한 현란한 이미지들 속에서 인식의 오류를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온갖 이미지들 속에서 이미지를 이미지로 해석하는 방식에 반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지=본다’라는 일반론이 아니라 이미지를 ‘듣고’ 향기마저 ‘맡으려’ 한다. 교황은 가난한 자를 ‘가난한’이란 형용어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난한’이란 기표 속의 다양한 함축을 들으려 한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위험한 분쟁지역도 교황에겐 하느님의 사랑을 약속한 땅일 뿐이다.

그리고 교황은 오늘 한국을 찾았다. 모든 면에서 속죄할 게 너무도 많은 나라, 풀어야 할 숙제가 난지도 쓰레기장보다도 많이 쌓여있는 이 땅을.
기도를 통해 이미지 속에 가려진 ‘참’의 소리를 듣고 그 향기를 맡아 기도를 통해 다시 그 의미를 알리고자 한다. 교황이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하는 순간 이 땅의 오류도 다소나마 줄어들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원해 본다.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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