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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눔·실천이 인류 사회의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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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눔·실천이 인류 사회의 구원이다
  • 문형봉 월간 KNS뉴스통신 사장
  • 승인 2013.12.16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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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봉 월간 KNS뉴스통신 사장

▲ 문형봉 월간 KNS뉴스통신 사장
성경 레위기 19장에 보면, 곡식을 추수할 때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또 추수하다가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 것과 포도원의 열매를 거둘 때에도 다 따지 말고 남겨 두며 떨어진 열매를 줍지 말라고 명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 규정을 ‘이삭줍기 법령’ 이라고 부른다. 이 말씀의 목적은 자기의 밭과 소산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타국인에게 먹을 것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이삭줍기 법령은 안식년, 희년 제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근거한 이웃 사랑의 대표적인 실천 규범으로서, 유대 랍비들은 구체적으로 밭 모퉁이를 그 밭 전체 면적의 1/60로 규정하였다고 한다. 또 포도원 열매를 다 따지 말라는 명령은 올리브(감람) 열매에도 해당이 되는데, 유대인들은 이 율법의 실천을 위해서 과일을 막대기로 딸 때 막대기가 닿지 않는 곳의 열매까지 모두 따기 위해 나뭇가지를 흔드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이삭줍기 법령은 그 자체로서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그리고 이 법령들을 볼 때 율법이 결코 딱딱하고 엄격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을 향하신 우리 하나님의 따스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무명의 화가가 있었다. 그는 각종 대회에 계속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 소재는 항상 농촌 풍경이었는데 고향에 대한 향수와 농촌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한 부자를 데리고 와서 이런 제의를 했다.

 

“자네, 지겨운 농촌 풍경 좀 그만 그리게. 그림이 팔리겠나? 이제 부터는 누드화를 그려 보게. 이 신사분께서 전량 사겠다고 하시니까 말일세.”

땔감을 살 돈조차 없던 그는 매일 자기의 작품을 땔감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잠시 기도를 한 후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군요. 사양하겠습니다. 예술에서 진짜 귀한 것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내가 시골 풍경과 농부를 즐겨 그리는 이유는 그들의 진실한 생활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명의 화가는 자신의 믿음과 취향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깊은 신앙심에서 나온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그는 끝까지 자기가 사랑하는 일에 대한 집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바로 ‘만종’, ‘이삭줍기’ 등으로 유명한 밀레이다. 가난 가운데서도 올곧은 믿음을 지켜 가는 사람은 복되다. 하나님께 항상 여쭤 보고 결정하는 자는 곁길로 행하지 않는다.

밀레의 이삭줍는 그림이 나오게 된 1857년은 나폴레옹 3세 시대가 시작된지 5년째 되는 해로 탄압왕정시대, 혁명시대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절이라, 일반 대중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폴레옹 3세 시대에는 정책적으로 추수 후에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그래서 추수 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추수가 끝난 농지에서 이삭줍기를 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삭줍기하는 사람들이 추수가 덜 끝난 곳으로 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처럼 ‘이삭줍기’ 라는 작품은 밀레가 가난한 농부들의 편에 섰던 화가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림의 배경은 추수가 끝난 ‘샤이’ 들판이다. 세 여자가 가을걷이 뒤에 남겨진 이삭을 줍는다. 두 여자는 얼굴이 땅에 닿을 듯 허리를 구부렸고, 다른 여자는 노동의 무게에 짓눌린 양 구부정하게 몸을 구부린 채 허리를 펴지 못한다. 이런 힘겨운 몸동작에서 여자들이 지나치게 일을 하고 있고,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여인을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노동의 신성함, 수확의 기쁨에 앞서 변함없는 농부의 삶과 죽음이다. 우리는 그 긴장감을 느껴야 한다.

대지에서 태어나 다시 대지로 돌아가는 인생. 변함없는 삶 속에서, 농민들의 구원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던 화가 밀레. 묵묵히 일만 하는 여인들에게는 어떠한 여유로움이나 온화함을 느낄 수 가 없다.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이삭을 줍는 그 당시 농민들의 긴장을 느끼며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20:80 사회’ 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전체 부(富) 중에서 80%를 인구의 20%가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20%를 80%가 나누어 소유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한 동안 이 말이 맞았다. 그런데 IMF 사태와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5:95 사회’ 하더니 지금은 ‘1:99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1%가 전체의 99%를 갖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너무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10:90 사회’ 라는 명칭을 붙일 겨를이 없게 되었다. 중산층 붕괴, 빈부 격차. 부익부 빈익부 심화, 양극화 현상. 아직도 뉴스의 제목으로 계속 나오는 말이다.

사실 가난한 사람과 부자는 예로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열심히 노력을 하든지, 아니면 시대를 잘 만나서 5%, 1%에 진입하면 된다. 지금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옛날 양재천의 판잣촌 같은 빈민촌에 살았던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으로 정통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가 타팰에 살았는데 그는 옛날에 화장실 문도 없는 집에 살았던 사람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기를 뛰어넘어 생존 투쟁을 위한 전선에서 있다. 개인의 욕구 충족과 첨단 이기주의로 전쟁과도 같은 현실에서 과연 한 모금의 물, 한 줌의 식량이 없어서 죽어가는 이웃의 생명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있을런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나눔문화’ 정착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매월 12일을 ‘나눔의 날’ 로 정하지 않았는가. 극빈층인 기초생활 수급자가 134만명, 준극빈층도 400만원 명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뒤돌아보면 부끄럽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눔에 인색하다고 평가 되었던 대기업이 최근 들어 나눔 실천에 앞장 서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 해소는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사랑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고액 기부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의 1%만이라도 한 생명을 살리려는 운동에 함께 참여해 주었으면 한다. 가난은 죄가 아닐진대 가난으로 인하여 죽음보다 더한 상대적인 고통의 삶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이 시대.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남기고 있다.

어쩌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더 많은 자살자를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도, 생명을 연명할 수 없는 소외된 이웃, 절대 빈곤의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결국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이 될 것이다.

문형봉(文炯鳳) - 스포츠미션 사장, 시사연합저널 발행인, 연합타임즈취재본부장 녹색성장범국민실천대회 기획실장, 한국통신카드 홍보실장, (재)국제녹색재단행정이사,(재)국제서번트더십재단언론위원장, 세계행복플러스전도협회 회장, 월간 향복한 삶 발행인쪾현) 한민족문화선양회 이사, 소비자연합방송취재본부장, 헤드라인 코리아저널 발행인, 한국기독인신문 편집인, 초이스태교연구원 이사, 월간 예닮 편집인, 월드기자협회 상임회장, 월간 <KNS뉴스통신> 사장

문형봉 월간 KNS뉴스통신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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