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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 전통 주류 브랜딩, 이젠 제품의 속성을 얘기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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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 전통 주류 브랜딩, 이젠 제품의 속성을 얘기해야 할 때
  • 한명륜 기자
  • 승인 2013.09.23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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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마케팅에서의 브랜딩 방식과 흡사한 방식은 곤란

[KNS뉴스통신=한명륜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 전통주 진흥협회가 주관하는 2013년 ‘우리술 품평회’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심사 끝에 8개 부문 각각 4등급의 수상주를 선정하며 막을 내렸다. 2007년 5개 부문 16점에서 시작해 2011년 8개 부문 32점까지 분야와 수상 품목을 추가해 온 본 품평회는 2013년 과실주 부문 특별상을 포함해 33개 제품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 중 실제 지역 상권을 넘어서서 소비자에게 ‘이거다’ 하고 각인되는 제품은 이렇다 하고 꼽기는 어려운 형편. 물론 매니아들의 입소문과 인터넷 그리고 수출로 활로를 찾는다고 하지만 그도 원활한 것은 아니다. 전통 주류가 괄목할 만한 품질향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를 갖는 것은 결국 빈곤한 브랜딩 전략 탓이라는 지적이 종종 있어 왔다. 

사실 전통주 브랜딩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부족했다고 보는 쪽이 정확할 것이다. 현재까지 전통 주류의 브랜딩은 지자체의 도시 마케팅에서의 브랜딩 방식과 거의 흡사하다. 구체적인 속성으로부터 어떤 형상이나 이름을 뽑아내고 상징을 만들기보다는 추상적 수식어구(‘최고의~’, ‘~가 내린’ 등)를 먼저 설정하고 거기에 제품의 이미지를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정반대로 전혀 가공을 하지 않는 방식(지명, 원재료명 노출)이 선택되기도 한다.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 한국의 소비시장은 더욱 더 도시화의 길을 걷고 있다. 전철과 간선도로의 연결, 대기업의 유치 등으로 인해 지역은 서울, 경기도가 아닌 지역조차 수도권 주민의 삶의 방식에 동화되어 간다. ‘웰빙’에 이어 ‘힐링’ 등으로 지역 특산의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각광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도시 중심 라이프스타일의 소비 기호, 즉 편의와 세련됨이라는 가치가 브랜딩 단계에서 구현됐을 때의 이야기다. 전통 주류의 ‘전통적’ 브랜딩이 엇박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이런 도시화는 지역 상권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재조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셰막(Chez-Maak)’이라는 브랜딩으로 서울 가로수길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충남 당신 신평양조장 측의 전략은 이례적이랄 만한 모범사례다.  

프랑스어로 ‘집’이라는 뜻의 전치사 ‘셰(chez)’를 활용, 신평양조장 80년 전통의 가업이라는 점과 전통 제조 공법의 살균막걸리라는 속성을 연결시켰다. 지역명이나 추상적인 수식구를 쓰지 않고 얻어낸 브랜딩인 것이다. 외국어의 사용이 능사란 이야기가 아니라 제품의 속성을 이야기할 준비가 됐는가의 여부가 중요한 셈이다.  

물론 모범적인 예로 든 신평양조장과 셰막 역시 자신들의 제품 스토리를 명확하게 관통한 100%의 브랜딩 성과라고는 하기 어렵다. 80년간의 양조장 운영기간이라면 그간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질곡과도 필연적으로 교차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걸 회사 소개가 아닌 제품의 브랜딩에서 어떤 식으로든 녹여내는 것이 과제다. 테네시 위스키의 대표격인 잭 다니엘(Jack Daniels)은 노예제도와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술에 녹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삼, 술이란 인간의 희로애락 중 하나도 예외로 삼는 것이 없다.  

세계 유수 회사들은 디자인 그룹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브랜딩을 의뢰한다. 특히 주류의 경우는 브랜딩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분야다. 세계적 광고회사인 TBWA가 1980년에 구현한 ‘앱솔루트 보드카’의 브랜딩은 그대로 보드카의 대명사적인 존재가 됐다. 신평양조장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하되 엄청난 자본을 가진 경우는 예외이고, 대부분의 한국 전통주 양조장은 이런 업체와의 파트너십은 쓴웃음의 소재일 뿐이다. 

하지만 앱솔루트 보드카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 TBWA가 천착한 건 의외로 심플했다. ‘이 술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느냐’와 ‘술병의 그림 및 카피가 가판대에서도 팔리게 하려면’이라는 단서였다. 얼마나 도전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가의 여부, 그에 대한 답이 어떤 것이 되느냐에 따라 각 전통주 제조업체가 브랜딩에 치를 비용은 달라질 터다.

한명륜 기자 trashfairy@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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