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7:26 (금)
[조성진의 진품명품] 글쓰기에도 명품이 있다
상태바
[조성진의 진품명품] 글쓰기에도 명품이 있다
  • 조성진 기자
  • 승인 2013.09.21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NS뉴스통신=조성진 편집국장] 글을 쓰는 행위에도 일류와 삼류, 명품과 짝퉁이 있다.

문장 하나라도 결이 곱고 탄탄한 구성이 있는 반면 애매한 수사어 남발과 짜깁기로 ‘리라이팅’ 수준에 머문 글도 있다. 전자는 멋진 옷(문체)을 입고 명쾌한 논리(글의 의미)로 춤을 추지만 후자는 '진짜같은' 짝퉁(문체)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호화된 언어를 부리는 일이고 그것에 생명을 입혀 상대를 고양시켜 움직이게 하는 작업이다.  

글쓰기 또는 글을 ‘쓰다’의 ‘write’는 단지 ‘쓴다’라는 뜻 이외에도 ‘인상 깊게 하다’, ‘스며들게 하다’, ‘확실히 나타내다’의 의미도 내포한다. 직업적인 ‘라이터(writer)’의 글이 깊은 인상을 주고 독자의 가슴에 각인된다면 그는 이 단어가 가진 의미를 충실히 보여준 것이다.  

라이터나 마술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마술(magie)과 이미지(image)는 같은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지는 마술과도 같은 것이며 마술은 이미지와도 같다. 대상에 쉽게 빠져들던 어린 시절, 마술을 볼 때 마다 머리와 가슴은 수만 가지 이미지의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걸 생각해보자.  

명작을 읽으며 무한한 상상력에 빠지고 한 문장 한 문장을 통해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이미지를 연상하듯 명 문장가의 한 줄은 읽는 이에게 마술을 건다. 잘된 문장 하나는 갖가지 사색과 정서를 고양시킨다. 월러스 스티븐스는 소설가 헤밍웨이를 가리켜 ‘시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시인으로 여기지 않지만 그는 현존하는 시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이것은 헤밍웨이가 소설가임에도 ‘언어의 마술사’라 일컫는 시인들을 능가할 만큼 문장력이 빼어나고 단어 구사에 있어서도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러한 평가를 했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에즈라 파운드 역시 헤밍웨이를 가리켜 ‘세계 최고의 문장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글은 다양한 형태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글 쓰는 이의 취향에 따라 가볍기도 무겁기도 하며,쉼표를 신들리듯 현란하게 구사하는 만연체의 명문에서, 냉정한 듯 하면서도 단순 명료한 단문으로 촌철살인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투르게네프식의 냉정함이나 윌리엄 포크너의 그로테스크한 가공인물 창조력 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치열함이 있는가 하면 장 그르니에의 휴식 같은 잔잔함이나 이문열 식의 지성적인 미문도 있다. 첫 문장의 달인 랜스 모로의 번뜩이는 기지, 육중한 무게감과 날카로운 분석력 그리고 한없는 깊이가 느껴지는 아놀드 하우저의 고고한 지성미, 명문들은 결코 죽지 않고 한번 읽은 사람의 가슴 속엔 화석으로 영원히 남는다.  

그러나 글쓰기는 가장 어려운 행위이기도 하다. 직접 상대와 마주보며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글을 통해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 그 얼마나 '매직'스러우면서도 불가사의할 만큼 놀라운 일인가?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