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적 판단의 본질과 대통령이 져야할 책임의 무게
최문 논설위원
최근 정치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일부 세력들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마치 지지율을 자신들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해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국가의 정책과 행정이 늘 냉철한 법률적 잣대와 객관적 데이터로만 움직인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그러나 현실의 행정 집행 과정에는 늘 '정치적 판단'이라는 거대한 변수가 개입한다. 국가적 위기 대응, 대규모 국책 사업, 외교적 결단에 이르기까지 정책의 실마리를 풀고 방향을 트는 것은 결국 사람의 손이다. 그렇다면 이 모호하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판단'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흔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국민은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실체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품은 '국민의 의사'는 백가쟁명(百家爭鳴) 그 자체다. 수천만 명의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100% 일치된 여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어느 의견을 채택하고 어떤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 하는 점은 전적으로 정책의 최고 집행자인 대통령의 권한이자 선택으로 남으며, 이 선택의 순간을 우리는 '정치적 결정'이라 부른다.
여기서 매우 흥미롭고 엄정한 역학 관계가 성립한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정치적 책임의 무게는 갈래가 나뉘는데, 만약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와 합의 속에서 정책이 추진된다면 대통령이 짊어질 정치적 부담은 극히 적어진다. 반대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소수의 의견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리거나, 여론을 거스르는 선택을 한다면 그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 되며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만일 국민의 의견이 100%로 모아진다면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전혀 없지만, 반대로 국민의 반대가 100%에 달하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결단을 내린다면 대통령은 100%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한다. 즉,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의 폭과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은 반비례 관계에 가깝다. 물론 국민의 의사는 시시각각 변하고 이를 계량적으로 수치화할 수는 없기에, 바로 이 지점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이러한 정치적 판단의 무게는 구체적인 현실 사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원자력 발전소의 폐쇄나 신규 건설 여부는 경제성, 환경 안전성,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국민적 합의를 완벽히 이끌어내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되며, 그 선택은 정권의 명운을 건 정치적 책임으로 돌아온다. 감염병 위기 대응 시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방역 조치를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결단은 언제나 찬반 양론의 거센 소용돌이를 낳고, 대통령은 그 결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최근 일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대통령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의견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오로지 대통령의 몫이다. 그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 물고 뜯으며 대통령을 저격한다. 특히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 물론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정은 대통령이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진다.
정치학에서 자주 회자되는 유명한 격언처럼 "한 국가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아무리 탁월하고 결단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 결정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주체는 결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은 대중의 성숙한 비판과 참여 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정치적 결단의 책임을 오롯이 대통령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사회에서는 소신 있는 리더십이 자라나기 어렵고, 반대로 대통령 역시 독단적 결정을 '정치적 판단'이라는 무기로 포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성공적인 국가 운영과 책임 있는 정치는 혜안을 가진 대통령의 결단과 이를 비판적 이성으로 수용하는 국민의 민주적 역량이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