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 전력반도체 불량 잡는 ‘빛의 지문’ 15년 만 오류 바로잡아…세계 최초
전기연구원 나문경 박사팀, 국제 결함 판별 기준(424nm→459nm) 개정 근거 마련 최상위 학술지 ‘Acta Materialia’ 무수정 통과, ‘호리바 마사오상’ 국내 연구기관 최초 수상
[KNS뉴스통신=김관일 기자] 전기차의 ‘근육’으로 불리는 SiC(탄화규소) 전력반도체의 불량을 찾아내는 글로벌 판별 기준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15년 만에 새롭게 쓰였다.
한국전기연구원(KERI) 차세대반도체연구센터 나문경 박사팀은 충남대학교 홍순구 교수팀, 호리바에스텍코리아, SK실트론 등과의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해 약 15년간 전 세계적으로 잘못 알려져 온 SiC 반도체 내부 결함의 ‘진짜 빛깔(특성 발광 파장)’을 새롭게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디. 오랫동안 국제 표준에 반영돼 통용된 기존 파장을 원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검증해 바로잡은 세계 최초의 성과다.
SiC 전력반도체는 고온·고압의 가혹한 환경을 견디며 전류 방향과 전력 변환을 제어하는 등 사람의 몸으로 치면 근육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설비 등 높은 전압과 열을 버텨야 하는 첨단 산업에 널리 쓰인다. 하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원자들이 겹겹이 쌓이다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이른바 ‘적층결함(Stacking Fault)’이 생기면 제 성능을 낼 수 없어 꼼꼼한 품질 관리가 필수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원판(웨이퍼)을 깨지 않고 불량을 찾아내기 위해 빛을 쏘아 검사하는 ‘광발광(PL) 검사’를 쓴다. 즉, 빛을 비춘 뒤 결함에서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다르다는 점을 마치 범인을 찾는 ‘지문’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상용 웨이퍼 207장에 담긴 10만여 개의 결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프랭크형 적층결함이 상용 웨이퍼에서 중요한 결함군으로 나타났다.
특히, ‘(4,1) 프랭크형 적층결함’은 약 15년간 '424nm(나노미터)'의 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기준에도 반영돼 있었으나 빛의 신호와 실제 원자 구조를 1대1로 꼼꼼하게 대조해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었다.
나문경 박사팀은 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빛으로 ‘지문(결함 위치)’을 찾은 뒤 바로 그 위치를 나노(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잘라내 원자분해능 주사투과전자현미경(HAADF HR-STEM)으로 ‘지문의 주인(실제 원자 배열)’을 직접 확인하는 고난도 분석을 수행했다. 이를 위해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나노 시편을 176개나 직접 깎아내어 관찰했고, 여기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첨단 이론 계산(밀도범함수이론·DFT)까지 더해 교차 검증을 마쳤다.
그 결과, 해당 결함의 진짜 지문은 424nm가 아닌 ‘459nm’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증명해 냈다.
이번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반도체 소재의 품질 검사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점에서 산업적 파급력이 크다는 평가다. 불량의 원인을 정확히 추적해 제조 공정을 고치면 궁극적으로 전기차와 전력 변환 시스템의 연비와 안전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압도적인 분석 역량은 국제 무대에서도 그 권위를 연이어 인정받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금속·무기재료 분야 세계 최고 학술지인 ‘악타 머티리얼리아(Acta Materialia, JCR 상위 5% 이내)’에 게재됐다. 불과 4개월 전 동일 학술지에 SiC ‘킬러 결함(사다리꼴 결함)’의 내부 구조를 최초로 밝혀내 초고속 게재 승인을 받았던 연구팀은 이번 후속 연구를 통해 ‘프랭크형 결함의 분류·구조적 연결성·에너지 안정성·전자 및 광학 특성을 연결한 학술 체계’까지 정립하며 연속 쾌거를 거뒀다. 특히, 심사가 깐깐하기로 유명한 이 학술지에서 이례적으로 심사위원의 아무런 수정 요구 없이 투고 원고 그대로 게재 승인(Publication as is)을 받으며 완벽성을 입증했다.
또한, 나문경 박사는 이러한 일련의 규명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일본 분석·계측 전문기업인 호리바(HORIBA)가 주관하는 국제 연구상 ‘2026 호리바 마사오상(Masao Horiba Awards)’에서 Honorable Mention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4년 첫 시상 이후 국내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가 이 상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다년간 축적해 온 KERI의 SiC 결함 분석 연구가 세계적인 탁월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KERI 나문경 박사는 “빛의 신호와 실제 원자구조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직접 연결해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글로벌 판별 기준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데 의미가 크다”면서 “이번 최고 권위 학술지 연속 게재와 국제상 수상은 우리가 축적해 온 분석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보여주는 결과인 만큼, 앞으로도 국내 전력반도체 산업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든든한 기반이 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한편, KERI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부 ‘화합물전력반도체고도화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