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경 화백, 한지그림 첫 개인전 성료…전통 한지에 담아낸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
80세 생일·결혼 50주년 기념 첫 개인전…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서 30여 점 선보여 물감 없이 한지만으로 완성한 독창적 작품세계 눈길…전통 한지의 예술적 가치 재조명
[KNS뉴스통신=김준 기자] 전통 한지의 독특한 질감과 아름다운 색감을 활용해 자연과 삶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낸 박정경 화백의 첫 한지그림 개인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박 화백은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6전시실에서 한지그림 개인전을 열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 생명의 신비 등을 표현한 작품 30여 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박 화백이 80세 생일인 산수(傘壽)와 결혼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인생의 오랜 여정 속에서 마주한 자연과 일상의 풍경,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한지라는 전통 소재에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단순히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넘어 한평생 살아오며 쌓아온 삶의 경험과 감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전시에서는 ‘아들과 손녀’를 비롯해 ‘그 자리에 그대로’, ‘중정(中正)’, ‘생명의 신비’, ‘지난 여름’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담은 작품들이 소개됐다.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세대를 이어가는 따뜻한 정서와 가족애를 엿볼 수 있으며, 자연을 표현한 작품에서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풍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가의 시선이 돋보였다. 특히 가로 길이가 100㎝를 넘는 40호 크기의 대형 작품은 한지그림이 지닌 표현의 확장성과 조형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박 화백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평면 회화임에도 입체적인 느낌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염색된 한지만으로 색채와 명암, 질감과 깊이를 표현해 일반적인 회화와는 또 다른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한지를 손으로 찢고 겹겹이 붙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미세한 결의 차이와 색감의 조화는 작품에 독특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자연 속 돌과 나무, 빛과 그림자 등 다양한 소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한지가 가진 고유의 질감과 부드러운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작가만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한지 특유의 섬유질과 겹침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명암은 작품에 깊이감을 더하고, 손으로 찢어낸 한지의 불규칙한 가장자리는 붓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회화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같은 표현 방식은 작품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때와 멀리서 감상할 때 서로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도 한지그림만의 매력으로 꼽힌다. 박 화백의 작품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삶을 대하는 섬세한 감성이 녹아 있다. 화려한 색채나 과장된 표현보다는 한지 본연의 질감과 색감에 집중하면서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평단에서도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감성이 느껴진다”며 “돌 하나, 빛 하나에도 정성을 담아내며 한지가 지닌 고유한 질감과 깊이를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호평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 고유의 전통 소재인 한지가 현대 회화의 표현 재료로서 얼마나 폭넓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한지그림은 물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염색된 한지를 손으로 찢어 풀로 붙이는 과정을 반복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하는 독창적인 미술 기법이다.
약 40년 전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것으로 알려진 한지그림은 전통 한지를 활용하면서도 기존 회화와 차별화된 표현 방식으로 독자적인 예술 영역을 형성해 왔다. 붓과 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일반 회화와 달리 이미 염색된 한지의 색채를 조합하고, 찢어진 한지의 결을 활용해 형태와 명암을 표현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지를 여러 겹 겹치거나 붙이는 방법에 따라 색의 농담과 질감이 달라지며, 이를 통해 자연 풍경은 물론 인물과 정물, 추상적인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표현이 가능하다. 특히 한지그림은 전통적인 한지공예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회화 장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지공예가 한지를 이용해 생활용품이나 입체적인 조형물을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한지그림은 한지 자체를 회화의 재료로 활용해 평면 위에 예술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또한 특별한 회화 도구 없이도 한지와 풀 등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할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할 뿐 아니라 생활용품과 실내 장식, 문화예술 교육 등 여러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한지그림은 한국의 전통과 정서가 깃든 한지를 현대적인 예술 언어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크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생활과 함께해 온 한지는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은은한 색감, 뛰어난 보존성 등을 지닌 전통 소재로,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한지의 특성을 회화에 접목한 한지그림은 전통문화의 계승과 현대적 창작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예술 분야로 평가된다.
박 화백의 이번 첫 개인전 역시 전통 한지가 지닌 아름다움을 새롭게 조명하고, 한지그림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특히 80세 생일과 결혼 5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마련된 전시를 통해 나이와 세월을 넘어 이어지는 창작의 열정과 예술이 지닌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삶의 오랜 기억과 자연을 향한 따뜻한 시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한지에 담아낸 박 화백의 첫 개인전은 한국 전통 소재의 아름다움과 한지그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전시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