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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백양산 선광사 고성문 주지스님, 나눔과 베풂의 맑고 향기로운 자비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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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백양산 선광사 고성문 주지스님, 나눔과 베풂의 맑고 향기로운 자비실천
  • 박동웅 기자
  • 승인 2021.05.04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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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 대한불교법화종 백양산 선광사(仙光寺) 고성문 주지스님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끝도 없는 무한경쟁시대, 복잡한 현대사회는 무질서한 혼돈으로 발목을 묶어 놓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씩 자기가 있던 곳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평온한 사찰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어수선한 마음을 비우고 사찰에 들어가면 가열된 일상을 가라앉혀 편안한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도심에서 빠져나와 가파른 산길을 한참 걸어 사상구에 위치한 낙동정맥 백양산 선광사에 올라서니 고고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너른 들판의 맑은 기운에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지면서,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청량한 바람에도 무겁기만 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두루 갖춘 선광사는 미륵도량으로서 차분하게 정돈된 경내에 들어가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면 심연을 일깨우는 대자연의 소리에 삼라만상을 모두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산에 오를 때는 힘들게 올라가지만 하산할 때에는 좀 더 쉽게 내려온다. 또한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서 정상에 데려다 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선광사 성문 주지스님은 “산 위에서 보면 시야가 트여있듯이 경험한 자만이 진정한 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요,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며, “부처의 종이 되지 말고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되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갈 때 깨닫지 못하면 사공이 필요하지만 노를 저을 줄 알면 사공이 필요 없듯이 스스로 깨달으면 바로 부처”라고 설파했다.

이어 “복과 덕의 꽃을 피우고 복덕의 열매를 맺으려면 복과 덕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분노·다툼·미움의 씨앗을 뿌린다”면서 “그런 씨앗을 심으면서 절·참선·염불을 한 듯 어떻게 복과 덕의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라고 가르침을 전했다.

이를 위해 “자신을 올바르게 돌아보고, 바른 수행자세로 부처님의 참 법신을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어렵지만 인류에게 액난과 고통이 없는 용화창조의 평화 대운력이 항상 함께 머물기”를 기원했다.

한편 선광사 성문 주지스님은 17세에 출가해 부처님의 뜻에 따라 청빈의 도와 나눔과 베풂의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천해왔다. 특히 매년 가을 선광사에서 경로잔치를 개최하고 사찰 인근 대덕여고에 재학 중인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는 인재 불사를 펼쳐왔다. 이와 함께 사상구청, 덕포2동 행정복지센터 등을 통해 꾸준한 보시행을 실천해오고 있다. 이처럼 성문 스님은 대중들과 함께하며 삶의 지혜가 담긴 자비실천을 몸소 보이며, 인과(因果)로서의 불교를 이해하도록 하는 수행의 삶을 실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미륵불 출현, 용화세계(龍華世界) 이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미륵불 출현이 미래희망으로 수용되어 폭넓게 전승되어 왔다. 이미 3천 년 전 석가모니는 “삼천년이 지나면 미륵불이 출현하여 후천 용화세계를 이끌어간다”고 예언한 바가 있다. 특히 미륵불이 출현한 용화세계는 이상적인 불국토로 변하여,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있고 평화와 평등의 세계로 행복과 기쁨이 가득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1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선광사는 이러한 미륵불출현을 예고한 대한불교법화종 소속 사찰로서 미륵불을 신앙하면 사후 도솔천 또는 용화세계에 태어나 죄업이 소멸되고 복덕이 성취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미륵부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하여 미륵 불공을 드리고 그 공덕으로 미륵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 수행 성불하기를 바란다. 또한, 내생에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 미륵보살님의 교화를 받고자 염원하기도 한다.

한편 선광사의 마애미륵불은 기존의 불화 상태에서 지난 2010년 그 자리에 조각을 새겨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조각기법은 고려시대의 기법을 그대로 재현해냈다고 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미륵불 조성기가 기록되어 있다.

『기도 중에 홀연히 한 노스님이 출연하여 ‘이제 때가 되었으니 미륵불을 조성해야 중생들의 구심점이 되게 하고 현세에는 수명과 복덕이 구족하고 내세에는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여 모든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이루게 하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보니 기도 중에 일어난 일이라 이에 미륵불을 조성하여 공덕을 길이 남기어 만세에 전하노라. 증명법주 묘허, 청해 주지 성문. 불기 2545년 정월 9일』

이러한 유래가 전해져 내려와선지 ‘선광사는 영험한 터로서,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터가 센 만큼 기도발이 세다는 입소문 때문인지 사업하는 사람, 중대한 시험을 앞둔 사람, 인연을 만나지 못한 사람 등 다양한 사연을 들고 찾아와 기도한다.

성문 주지스님은 “절이나 기도를 한다는 것도 먼저 스스로 깨달아야 진정한 절이고 기도로서 부처님과 한 마음이 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일상사에서도 공덕을 쌓으며 일념으로 항상 기도하면 그 기도는 길잡이가 되고 힘이 된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부처님 법대로 살면서 희망을 놓지 않으면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고 지금 시련이 있으면 그 시련도 지나갈 것으로,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말자”고 당부했다.

이어 “제가 17세 때 출가했던 충청도 사찰의 미륵부처님께 기도해서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다”며, 그래서 “제가 평생 기도하는 분이 미륵부처님으로서, 이 자리도 중학교 때 선몽을 받았던 자리로서 인연 따라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선광사와의 인연에 대해서 전했다.

특히 성문 주지스님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의 불상을 관음전에 모셔 놓고 일반인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성문 스님이 아시아 각국을 돌며 발견한 소중한 불상을 하나 둘 모셔와 50여 상이나 봉안했다. 따라서 모두 형태와 양식이 다른 각국의 불상 양식을 한 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영가의 한과 슬픔을 달래는 고혼청(孤魂請)

고혼청은 영가의 슬픈 마음과 한을 소리로 풀어내는 음악이자 경문(經文)로서, 성문 주지스님의 고혼청에는 영을 위로하고 달래는 깊은 불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스님의 고혼청은 마음 속 번뇌를 다 씻기는 듯 맑고 청량한 소리로서 악보도 계명도 없이 오롯이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왔으며 회심곡과도 맥이 닿아 있다.

오늘날 이 고혼청을 가장 정확하게 듣고 볼 수 있는 의식이 바로 천도재로서, 한국불교유산 의 색깔이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성문 스님은 천도재를 가장 잘 지내는 스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연 따라 크고 작은 천도재를 많이 지내온 스님이기도 하다. 성문 스님의 천도재에서 고혼청을 들은 사람들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 영험함에 정신을 놓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로, 스님의 염불에는 심금을 울리고 영을 달래는 깊은 불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400년 통한의 세월을 보냈던 조선의 무명도공 위령 천도재가 기억에 남는다. 임진왜란 당시 한국 도예촌에 살던 800명이 사방이 절벽지대인 일본 이만리 마을로 끌려가 굶어 죽었는데 영가들의 원한으로 인하여 마을에 지진ㆍ물난리ㆍ화재 등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일본의 한 스님이 지난 2008년 12월 23일 그곳에 비석과 지장보살상을 세우고 천도재를 올린 후부터 우환이 사라졌고 한다. 마침 삼중스님이 이만리에 방문했을 무렵 원혼의 음기가 쎈 이곳의 천도재만큼은 성문스님이 제를 지내야만 구천을 떠도는 넋의 한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삼중스님의 요청으로 우리 도예가가 정성스럽게 빚은 도자그릇에 술을 담아 반야심경으로 천도재를 올렸다. 제상에 정성스럽게 만든 도자그릇(술잔)에는 알곡이 국화꽃 모양으로 변했고, 평범하게 빚은 그릇(술잔)에는 아무런 무늬도 생성되지 않는 희귀한 현상이 일어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조상영가들도 제례를 올리는 사람의 정성을 알아차린 듯이 보였으며, 의식 중에는 영가의 흐느끼는 애환이 서린 통곡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제를 올린 후 영가의 종이옷을 태웠는데 불기가 별로 없었음에도 재가 30미터 상공으로 타올라 한국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지상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3년전 일본 이만리 도공 천도재 당시를 회상하는 성문스님은 “영가는 마음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았는가”라면서 “제를 올리면서 우리 조상의 깊은 한이 서려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처럼 성문 스님은 2003년 임진왜란 당시 도공을 위한 일본 이만리에서 열린 천도재는 물론,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베트남 청룡부대 천도재를 비롯해, 2013년에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불교조계종이 주최하고 한반도평화대회 봉행위원회에서 주관한 한국전쟁 희생자를 위한 위령 수륙재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성문 스님의 혼을 넣은 청청한 염불소리가 울려퍼지며 역사에 희생된 많은 분의 아픔과 설움, 그리움으로 한 맺힌 17개국 4만896위의 UN군 장병영령을 위해 불교계 처음으로 천도재가 올려진 것이다. 이를 포함해 수많은 수륙대재를 봉행했으며 대한민국을 넘어 지구촌의 정신문화유산으로 그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불교문화와 각종 불교의식을 전파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한편 천도재는 망자로 하여금 해탈과 극락왕생을, 살아있는 대중에게는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불교와의 인연을 짓고, 깨우침을 주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서 스님은 맑고 향기로운 소리,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하고 있으며, 신심을 더욱 증장시키고 있다.

성문 스님은 다양한 천도재를 하면서 기이한 경험을 한 것도 여러 번 있었다. 일본 이말리에서 천도재에서는 허공에서 대성통곡하는 영가의 소리가 들려왔으며, 그들의 슬픈 통곡소리 때문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경우도 한두 차례가 아니다.

“지극정성을 다해 천도하고 무주구혼이 되어 떠도는 영혼을 달래줘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하는 성문 스님의 고혼청은 독보적인 경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혼청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것이기에 그 소리가 수 십 년 동안 뼈에 박히도록 부단히 새겨야만 원형의 음률과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경문을 익숙해질 정도로 외워야하고, 자세 또한 흐트러짐이 없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영혼을 달래고 심신의 안정을 기하는 고혼청을 이어온 성문 스님은 부산무형문화재 9호, 영산재 이수자 염불 고혼청 명인 1호로 인증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성문 스님은 부산불교대학교 불교지도자 강의 법사, 신라대학교 외래교수로 활동하며 가르침을 전하고 있으며, 투철한 호국 불사정신을 계승 발전한 공로로 겨레를 위한 호국영령위령대제 봉행 감사패 수상, 사회봉사단체 대통령상 수상, 세계불교 일붕평화상 수상, 불교발전공로대상 등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다섯 번 환생한 생불 림포체와의 각별한 인연

선광사에는 네팔에서 다섯 번의 환생을 통해 생불로 나툰 ‘니마 라마 셀파 림포체’의 축원문이 적혀있다.

『한국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맥을 잇고 부처님을 전하고파 한국에 왔습니다. 부처님 가피가 충만한 선광사 도량에 오신 불자님 가정에는 늘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간절한 우리의 발원으로 일체 중생들이 여래의 옷을 입고 집에 들어 여래의 자리에 앉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96~2007 백양산 선광사에 머물면서 니마 라마 셀파 림포체』

이 축원문을 쓴 생불 ‘림포체’는 검증을 통해 환생한 승려들에게만 허용되는 존칭으로 두 살 때 티베트에서 가장 오랜 불교종파인 닝마파의 지도자인 ‘페노루 림포체(14번 환생)’와 겔루파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16번 환생)’로부터 다섯 번 환생한 것으로 인가받았다.

 

성문 스님과 ‘니마 라마 셀파 림포체’와의 만남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의 한 단체의 초청으로 서울지역 행사 참여를 위해 방문한 ‘니마 라마 셀파 림포체’가 상술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을 성문 스님이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림포체는 티베트나 네팔에서는 전 국민이 떠받드는 정신적지도자인데도 주최하는 측의 행사가 없는 날이면 허름한 모텔 방에서 라면이나 인스턴트로 겨우 끼니를 잇는 등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성문 스님은 주최 측에 양해를 구하고 그날로 ‘림포체’를 부산으로 모셔왔다. 그리고 숙식을 비롯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당시 15세였던 ‘니마 라마 셀파 림포체’는 1년 반 동안 함께하면서 성문 스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따를 정도로 돈독한 인연이 지속되었다.

성문 스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생활한 ‘니마 라마 셀파 림포체’는 한국과 한국불교문화에 감명했으며, 성문 스님의 후원으로 신라대에서 연수까지 마쳤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네팔을 찾아 다시 ‘니마 라마 셀파 림포체’와 재회한 성문 스님은 티베트 최고의 불교종파인 닝마파 지도자 ‘페노루 림포체(14번 환생)’를 만나 극진한 대접을 받는 등, 지금까지 왕래하며 양국의 깊은 불교문화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

성문 스님은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기를 닦은 만큼 그 인연이 따라 오며, 철저한 인과응보의 법칙을 따른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티끌의 인연조차도 가볍게 넘기지 말라’고 하셨다”며, 즉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것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라는 것으로 하늘과 땅 삼라만상이 그리고 내가 모두 하나로 같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전했다.

아울러 “인과법을 알고 부처님 마음처럼 순한 마음을 갖자. 물질의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창고를 저장하며 사는 것이 부처님의 참 제자”라고 맑은 자비의 가르침으로 당부하며,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지혜로운 불자로서, 주변의 아픈 가슴을 보듬어주고, 처진 어깨를 감싸줄 수 있는 자애롭고 따뜻한 부처님을 닮은 불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사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발원심(發願心)을 세우자

포교는 구호만을 외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불자이어야만 포교가 잘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불자 스스로 지혜롭게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 주었을 때, 자연스럽게 포교가 이루어지고 전법이 된다.

성문 스님은 “바로 이처럼 타인과 세상을 바꾸려하기 전에 ‘나’라는 자신부터 변화해야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을 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설파했다.

코로나사태로 인해 사찰 역시 인적이 끊기는 등, 모두가 어려운 이 시기에도 성문 스님은 복지의 사각에서 고통 받는 대중에게 자비실천의 참뜻을 전하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매년 개최하는 경로잔치를 비롯해 장학금전달과 불우이웃을 위해 쌀, 식료품, 라면, 휠체어 기증 등과 기부금을 후원하며 수행자로서 일체 중생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아끼며, 향훈이 넘쳐나는 맑고 향기로운 베풂을 멈추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자비실천은 부처님이 설하신 자비의 가르침이 담겨있어 세상 사람들의 영혼까지 아름답게 바꿔나가고 있다.

아울러 성문 스님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 사상구불교연합회는 사상구에 위치한 1백여 사찰이 연합하여 부처님 참뜻을 전파해 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사회 사회복지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문 스님은 “불교연합회의 모태가 바로 사상구불교연합회로서 부산에서 제일 역사가 깊은 우리 연합회는 부처님의 자비심을 바탕으로 어려운 이웃돕기와 장학사업 등의 지역행사는 물론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면서, 특히 “스님들은 대한민국과 부산시민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하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자비심은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같이 넓은 것으로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라며, “이러한 자비심은 상대를 볼 때, 내 몸같이 봐야 자비심이 저절로 우러난다”고 설파했다. 따라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비와 지혜로 청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모든 것을 남의 탓이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탓으로 하는 책임의식을 감수하는 인내가 이어져야 가족들은 물론 이웃과 사회의 행복한 화합을 이룰 수 있다”면서 “차별 없이 상대방을 귀하고 고마운 존재로 인정하고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어 바른 길로 인도하자”고 당부했다.

끝으로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자들에게 “선광사의 좋은 기가 퍼져서 여러분에게 전달되기 바란다”며, “인연공덕으로 가피를 입어 무량복락을 누리는 공덕을 쌓기를 바란다”고 축원했다.

성문 스님은 항상 곤궁한 대중들에게 다가가 삶의 지혜가 담긴 자비실천의 행을 몸소 보이며, 인과(因果)로서의 불교를 이해하도록 하는 수행의 삶을 실천해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선광사는 누구든지 마음의 위안을 얻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는 정신적 안식처와 종교적인 귀의처로서, 성문 스님의 설법을 듣고 있으면 근본심성에 부드러움과 온화함을 심어준다. 그런 성문 스님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원력 때문일까. 스님의 모습이 더욱 밝고 빛나 보였다. 선광사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햇살에 투영되는 부처님의 밝은 불빛이 어두웠던 우리네 마음을 훤히 밝혀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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