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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탈현실의 미학…강민숙 시인 '둥지는 없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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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탈현실의 미학…강민숙 시인 '둥지는 없다' 펴내
  • 임종상 기자
  • 승인 2019.11.08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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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임종상 기자] 1990년대 중반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로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강민숙 시인이 실천문학에서 네 번째 시집 '둥지는 없다'를 발간했다. 남편의 사망신고와 아이의 출생신고를 같이 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강 시인. 이번에 발간한 시집 '둥지는 없다'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절망적인 삶에서 빚어낸 시집 ‘둥지가 없다’는 시인 자신의 탈현실의 몸부림을 미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순간에 산산이 깨어져 버린 둥지는 상상할 수 없는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상실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기구한 상실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둥지를 찾아 시인은 길을 떠난다.

그것이 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도, 티베트, 히말라야, 아프리카, 그리고, 사하라 사막과 산티아고 순례길… 그의 둥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끝이 없다. 마침내 시인은 애초부터 ‘둥지는 없다’는 사실을,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둥지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사는 나라와 지역이 다르고, 문화와 종교가 겉으로는 달라보여도 본질은 모두가 같다는 자각에 이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영위해 가는 행위나 방법은 각기 달라도 생명을 받아 유지해나가고자 하는 본질은 어디 하나 어긋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시편에 짙게 배어 있다. 시집은 시 53편 4부로 구성됐다.

강민숙 시인은 "둥지를 잃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몽골과 티베트 거쳐 갠지스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탄자니아 세링게티 그리고, 사하라와 산티아고 순례길 까지 돌고 돌아보았다. 내가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 이념과 이념이 저마다 다르지 않았으며 개와 염소 사람과 동물도 단지 모습과 색깔만 다를 뿐이지 않았던가. 여기, 바람 구두로 떠돌면서 따 담은 별꽃 바구니를 내놓는다.오다가다 만난  보들레르, 랭보, 라캉, 니체, 고리키. 사르트르를 사유하다 보니 마른 꽃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

■도종환 시인은 해설에서

“시인은 이상주의자다. 시인은 꿈꾸는 자다. 시인은 별을 노래하는 사람이다. 별도 시인의 눈빛을 알아보고 시인의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시인은 천성적으로 고독한 사람이다.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상식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려하지 않는 이들이다. 현실세계의 모순을 비판하고 즉자적인 세계에 편입된 자기 자신까지도 못마땅해 하며 비난하는 이다.”라고 했다. 
보들레르는 시인은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射手)를 비웃는 / 구름 위의 왕자 같았으나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어 / 그 거대한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 되는 새 ‘알바토르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알바토르스는 하늘에서는 창공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매끈한 자태로 비행하지만, 지상에서는 잘 걷지도 못하고 두 날개를 질질 끌면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조롱하며 즐거워한다.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나를 금치산자, 인격 파탄자로 내몰아도 저기 밤하늘의 별들은 내게 찾아와 빛으로 피어나고 있다. 내 안의 세계를 보여 줄 수 없는 나는 기호의 창문 열고 불안과 우울의 털실로 옷을 짜고 있다. 별빛과 달빛 뽑아내어 한 올 한 올 옷을 깁고 있다.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어 건네 보지만 사람들은 입지 않는다. 보이는 현상이 실제라는 관념의 다리를 끊어 버리고 훌쩍 건너오라고 해도 그들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만 본다. 흔들리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우울을 읽는다. 상징은 꽃이 아니라 기호의 둥지가 아니던가. 둥지는 없다. 날아갈 곳이 없는 새 한 마리 상징이 날개인 줄도 모르고 날개 접고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둥지는 없다 - 보들레르' 전문

이 시의 화자는 “불안과 우울의 털실로 옷을 짜고 있다”, “별빛과 달빛 뽑아내어 한 올 한 올 옷을 깁고 있다” 그렇게 짠 옷을 건네 보지만 사람들은 입지 않는다. 그 옷은 별빛과 달빛으로 짠 아름답고 소중한 옷인데 왜 입지 않을까?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별빛 옷, 달빛 옷이지만 동시에 불안의 옷, 우울의 옷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건 관념이라고, 관념의 다리를 끊어버리고 내게 오라고 권하지만 그들은 물끄러미 바라볼 뿐 내게 오지 않는다. 이 시의 화자는 현실에서 금치산자, 인격파탄자로 내몰리는 이다. 다만 밤하늘의 별들이 찾아와 주어 빛으로 피어나고 있는 이다. 이런 모순된 조건 속에 사는 이가 시인이다. 그래서 “둥지는 없다” 현실에서는 안착할 곳이 없는 것이다. “날아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날아갈 곳이란 시인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곳이리라. 그러나 없다. 날아갈 곳이 없는 새는 어떤가? “날개 접고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현실에서 시적 자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날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어둠을 웅시하는 일이다. 시적 자아를 둘러싼 주위는 어둠뿐이고, 그 어둠을 응시한다. 그러나 어둠을 응시하면서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별이라 했다. 별빛이 시적 자아의 내면이다.

시인은 천상의 존재일까, 지상의 존재일까? 시인 이성복은 '보들레르에서의 대립적 세계의 갈등과 화해'라는 글에서 “예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현실과 신비,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두 세계 사이의 긴장된 공간인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그는 “보들레르는 그 대립적인 본질로 인하여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세계 사이에서 스스로 고통스러운 왕복을 되풀이함으로써 문학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명확히 해주었다”고 평가한다.

바라나시
갠지스강은 시간이었다
길게 누워 흐르는
시간이었다
타닥거리는 불길 속
환한 미소
삶과
죽음의 시간이 뒤엉켜
고삐 없는
피안(彼岸)으로
물소 한 마리
풍덩 뛰어들고 있다
아, 물씬한 이승의 냄새여.

■ 신경림 시인은 시집 추천사에서

“강민숙 시인처럼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시인은 흔치 않다. 그는 아들의 탄생을 알리는 기쁨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동시에 남편의 사망을 신고를 해야 했다. 이때의 심경을 그는 곧잘 두려움 속에서 날개를 접고 어둠을 응시하며 떠는 연약한 새에 비유했다. 만약에 시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 어둠속에 한 개의 그림자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에게 시는 어둠을 이겨내고 일어서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비참하고 절망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궁상스럽고 슬프지만은 않다. “곰소 염전에/ 발 한번 담가 보자 / 그러면 나도 눈부신 / 소금이 될 수 있을까 / 한나절 쯤 발 담그면 / 빛나는 결정이 될 수 있을까 / 햇볕에 등짝 태우며 / 온종일 견디다 보면/ 나도 뼛속까지 빛나는/ 소금이 되어/ 새우, 멸치, 바지락 젓갈에 섞여 / 구수하게 곰삭아질 수 있을까”「곰소항」(부분) 오히려, 햇볕에 등짝 태우는 곰소항의 소금처럼 뼛속까지 눈부시고 빛이 나서 그의 시는 재미가 있다.“

■ 강민숙 약력

전북 부안 출생. 숭의대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고 동국대와 명지대에서 문예창작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1년 등단해 아동문학상과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외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임종상 기자 dpmkore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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