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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메뚜기와 꿀벌; 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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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메뚜기와 꿀벌; 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
  • 강병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9.1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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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제프 덜건 저, 김승진 옮김, 세종서적, 2018
강병환 논설위원
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 지는 170년이 되었다. 이후 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제 무덤을 파는 요인이 무엇인지 찾고자 했다. 설령 이 무덤을 안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기도 어렵다.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에 가장 적합한 제도라는 가설은 더는 성립되기도 어렵다. 왜냐면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여러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이다.

인간은 협동적이면서도 경쟁적이고, 두려워하면서도 희망을 지니고 있다. 소유욕과 탐욕도 인간 본성의 일부지만 남을 위한 배려, 협력, 연대, 돌봄도 그렇다. 자본주의가 역사의 종착역도 아니다.

자본주의는 야누스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야누스의 어원이 1월에서 왔듯이,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한다. 마치 서로 반대편을 보고 있는 두 얼굴이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메뚜기와 꿀벌은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상징한다. 메뚜기는 자본주의의 약탈성을 상징하고 있다. 메뚜기는 타인에게 기생하고 선한 이에게 해를 끼친다. 메뚜기 떼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이 약탈은 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군대에도 있고 어디든지 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강국은 늘 군사적 패권 강국이었다. 꿀벌은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이고 좋은 면이다.

생산적으로 일하고 대중에게 이득을 주고 협력하며, 집단지성을 가지고 있다. 약탈의 세계가 디스토피아라면 창조의 세계는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No Where라는 의미다.

모든 사회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요인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군주제에서는 과도한 군사적 지출과 부채가, 종교에서는 제사장들의 위선이 심해져 신자들도 혐오를 느끼게 만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과도한 위험 감수와 부채, 과도한 탐욕이 자신들을 묻어 버리는 무덤이 된다.

동물의 세계를 보라. 사자에게 있어서 한두 마리의 버팔로면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다. 포식자가 약탈에 과도하게 성공하면 이후의 생산성을 저해할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먹잇감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시장에서 과도하게 이윤을 짜낸 나머지 미래를 위해 투자할 것이 남아 있지 않으면 문제가 나타난다. 약탈적인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들이 남게 마련이다. 그래서 반자본주의 혁명가들은 자본주의에 대칭되는 거울상을 꿈꿨다고 저자는 본다. 즉 자본주의와 정반대 특성인 세계, 사유재산, 화폐, 불평등, 약탈자가 없는 세상을 그렸다.

거울상의 효과는 그것이 비판하는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지 그 세계를 밀어내고 대체하는 또 다른 세계를 말하고 있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 꿀벌에 힘을 실어주고 메뚜기를 제약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의 물음이다.

강병환 논설위원 sonamoo3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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