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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만 국민당, 마침내 탁수계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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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만 국민당, 마침내 탁수계를 건너다
  • 강병환(본지 논설위원, 정치학 박사)
  • 승인 2018.11.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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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탁수계(濁水溪)는 대만을 남북으로 가르며 흐른다. 전체 길이는 186㎞로 대만에서 가장 긴 강이다. 화관산(合觀山)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대만해협으로 흘러든다. 대만인들은 일상적으로 강(江)을 하(河) 또는 계(溪)로 표기한다. 

물살이 느리고 유량의 변화가 적고, 물길이 규칙적이면 하(河)를 붙이고, 그 반대면 계(溪)를 붙인다. 탁수계는 수로가 불규칙적이고 진흙과 모래를 품고 있어 혼탁하다. 그 때문에 탁하다는 이름을 얻었다. 난터우(南投)현, 장화(彰化)현, 윈린(雲林)현을 흘러 400만 인구를 먹여 살린다. 식량과 채소, 과일의 주요 공급지며 대만의 젖줄이다.

섬진강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듯이, 탁수계는 대만의 남부와 북부를 구분하는 천연 경계선이다. 탁수계 남쪽은 열대기후, 북쪽은 아열대 기후를 띤다. 농업도 남쪽은 사탕수수, 북쪽은 쌀을 주로 재배한다. 도(道)는 자연을 본받고, 사람은 땅을 본받듯이, 탁수계를 경계로 해서, 남북 대만인의 성정과 민풍도 차이가 난다. 

대만 남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짜 대만인이라고 자부한다. 일반적으로 대만 남부란 쟈이(嘉義), 타이난(台南), 까오숑(高雄)이 핵심이다. 타이베이(臺北)를 나와야 참으로 대만에 들어간다(出臺北,才算眞正進入臺灣)는 속담도 있다. 

대만을 이해하려면 대만 남부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북부와는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 지리적인 요소 외에,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인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먼저 대만은 남에서 북으로, 서에서 동으로 개발되었다. 원주민과의 충돌, 이민사회의 개간과 개척, 한족들 간의 계투, 식민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한족이 대만에 이주하여, 가장 먼저 개간한 곳이 남부 지구다. 후에 남에서 북으로 서에서 동으로, 연해에서 내지를 따라 발전했다. 

이러한 역사는 대만 남부 민중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대만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둘째, 남부는 대만의 공업 요지며 역시 농업지대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 대만에 온 쟝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은 타이베이시를 정치문화 중심도시로 삼았다. 반면에 석유, 자동차, 철강, 조선 등의 중공업은 모두 남부에 마련했다. 이러한 공업의 경중(輕重) 역시 남북 차이를 강화했다. 셋째, 대만 남부는 농민, 노동자 계층이 주를 이룬다. 통치계층과 자본가 계층이 주로 모여 있는 타이베이와는 다른 정서를 지니고 있다.  

정치성향 역시 탁수계를 기준으로 확연하게 갈린다. 남북 간의 유권자 구조와 투표행위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른바 북람남록(北籃南綠)의 현상이다. 북쪽은 남색 깃발의 국민당이, 남쪽은 녹색 깃발의 민진당이 대세다. 

남쪽은 본성인 위주의 대만 본토파와 민진당, 북쪽은 외성인 위주의 국민당 지지자가 많다. 남북 사회구조의 차이, 경제발전 수준의 차이,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지역 정책은 남부와 북부 간에 더욱더 선명한 이념적 구별을 조성했다. 이는 또 민중의 투표행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에 들어와 대만은 상당 수준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총통부터 이장, 촌장까지 모두 주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여러 선거가 있었지만, 국민당은 탁수계를 건널 수 없었다. 대만 남부는 줄곧 민진당의 텃밭이었고, 대만 독립파의 최대 근거지였다. 하지만 이변이 생겼다. 2018년 11월 24일에 거행된 광역, 기초 지자체 단체장 및 지자체 의원을 비롯하여 9개 직위를 한꺼번에 선출하는 9합1 선거에서 국민당이 대승했다. 직할시, 현, 시 등 22곳에서 15곳을 석권했다. 

마침내 국민당이 탁수계를 건넌 것이다. 특히 민진당의 최대 텃밭이자 대만독립파의 근거지인 까오숑 직할시에 혜성처럼 등장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가 당선되었다. 더군다나 선거와 함께 덧붙여진 10개의 국민투표안도 대부분 통과되었지만, 2020년 동경올림픽에 중화대북(Chinese Taipei)의 이름이 아니라 대만(Taiwan) 명의로 참가하자는 국민투표안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선거의 주된 이슈는 양안관계가 아니라 경제문제였다. 하지만 국민당이 탁수계를 건너면서 경제문제는 이제 양안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향후 국민당과 민진당 간의 권력 교체에 따른 진자운동에서 양안문제가 상수(常數)이고 경제문제가 변수(變數)였던 종래의 투표행위가 역전되어 경제문제가 상수이며 양안문제는 그에 따라 결정되는 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 중국의 대대만 정책에도 중대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이미 중국은 올해부터 중국에 있는 대만인을 자국민으로 대우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대만인들은 취업, 창업, 학업에 있어서 중국인과 동등한 혜택을 누린다. 무엇보다도 이번 투표에서 확인된 것은 대만독립파의 최대 근거지인 남부 민중이 차이잉원의 현상유지 정책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전설에 의하면 탁수계의 물이 맑으면 대만에 변고가 생긴다고 한다. 지금까지 탁수계는 네 차례 맑았다고 한다. 정성공(鄭成功)이 대만에 있던 네덜란드 세력을 축축한 해(1661년), 청․일 전쟁의 결과로 대만이 일본의 수중에 떨어진 해(1895년), 일본이 항복하던 해(1945년), 그리고 2000년 대만 민주의 아들 천쉐이볜(陳水扁)이 총통으로 당선되던 해였다.

최근 난터우(南投) 현을 지나는 탁수계의 물이 맑아졌다고 한다. 중미관계의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인민해방군의 무력통일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예사롭지 않다.  

 

강병환(본지 논설위원, 정치학 박사) sonamoo36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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